소설리스트

9. Delta(6) (95/283)
  • 9. Delta(6)

    “그대가 지금 하는 ‘착각’은 주이원이 한 게 아니라 그대, 혹은 이 별의 시스템이 한 일일 확률이 높아.”

    호진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지호의 안에 계속해서 의심을 불어넣었다.

    “물론 과한 추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감히 그대의 정신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있겠어? 그대가 약해진 탓에 지구와 그대의 연결은 약해졌어. 그 연결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생존본능을 발휘해서, 이 지구가 그대의 인간적인 감정 일부를 봉인했을지도 몰라.”

    “그럼 뭐, 내가 주이원을 사랑하게 되면 정신 팔려서 걔한테 몸이고 마음이고 다 갖다 바칠까 봐 좋아하는 감정을 막아 뒀다, 뭐 이런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던 지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빈정거리게 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치게 다방면의 모욕이지 않나. 지호와 이원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도, 지호가 사적인 감정으로 흔들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도.

    “최악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지. 마음을 놓고 방심한 상대에게 뺏어 가는 게 더 쉽잖아. 그렇지 않니?”

    “말도 안 되는 억측을……”

    “……그렇게 믿고 싶다면 그렇게 믿는 것도 그대의 자유겠지.”

    고집스러운 지호를 보며 호진은 마트에 드러누운 다섯 살짜리 꼬마를 보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지호는 눈을 세모꼴로 뜨고 호진을 노려봤다.

    “내 자유라면 그냥 내버려 둬요.”

    “하지만 내버려 둘 수가 없단다. 우리는 그대의 적이 아니야. 그대를 돕고, 도움받고 싶을 뿐이지.”

    “도움이라고? 난 당신들의 도움 같은 건…….”

    남의 길드에 첩자나 심는 놈들과 손잡을 생각은 없다. 지호의 적대감을 느꼈음에도 호진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우리라는 건 미르 길드가 아니라 이 별 전체란다.”

    “…….”

    “물론 당장은 주이원의 힘이 아주 유용하지. 그 자에게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갑자기 그자가 약탈한 힘을 잘못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이 별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거란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던 호진이 손을 뻗었다. 매끈하고 긴 손끝에서 훅, 새파란 불길이 인다. 투명한 불길 사이로 어떠한 환영이 떠올랐다.

    거대한 건물이 모두 주저앉은 도심. 아스팔트로 만든 도로는 곳곳이 쪼개지고, 그 사이로 차나 사람이 마구잡이로 엉겨 쏟아져 있다. 하늘 위로는 화마가 만든 검은 구름이 빛을 가리고 절망과 함께 어둠을 드리운다.

    죽음이 이곳저곳에 전시된 환영은 거짓임을 아는데도 끔찍했다.

    “주이원의 힘에 기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는 그 자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대재앙을 대비해야만 해.”

    “……대재앙?”

    “예지에서 몇 번이나 존재했던 미래의 재앙이지. 우리는 그것이 아마도 거대한 던전의 형태로 출현하리라 생각한단다.”

    심각한 호진의 설명을 듣던 지호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거… 대던전 이야기 아닌가?

    지호는 과거의 시스템 기록을 불러와 눈으로 흘깃 확인했다.

    시스템 관리

    축하합니다. 당신의 세계는 대던전의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전체 세계 중 12%만이 달성한 업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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