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Delta(4)

새파란 불꽃이 눈앞에서 연달아 요란하게 터졌다. 제임스 휘태커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가 손을 뻗었다. 무척 가볍고 장난스러운 동작이었는데도 제임스는 피하거나 반항하지 못한 채 남자에게 목이 붙잡혀 허공으로 떠올랐다.

“큭, 커헉…….”

“대관절 어디 사는 사특한 자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 거야? 신지호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자는 얼굴이 시뻘게진 제임스를 장난감처럼 다루었다. 노래처럼 음율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흉흉한 폐허 위로 장송곡처럼 울려 퍼진다.

지호는 류대건을 감싼 채, 여우에 홀린 양 두 사람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임스 휘태커의 목을 잡고 서 있는 건 이 자리에 올 거라고 상상도 못 해 본 인물…….

바로 양호진이었다.

노네임 길드의 C급 힐러 양호진. 수줍게 말을 더듬으며 늘 약한 모습만 보여 주던 그 양호진 말이다.

하지만 같은 건 겉모습뿐. 분명 이목구비나 체형은 같은데 순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지호가 알던 ‘양호진’과 지금의 양호진에게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조금 구부정하던 자세가 곧게 펴지고, 늘 주눅 든 분위기 대신 타고 태어난 듯한 오만함이 자연스럽게 묻어 난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신체의 변화였다. 제임스의 목을 움켜쥔 양호진의 손끝에 길고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솟은 세모꼴의 귀. 그리고 어떤 구조인지 모르겠지만 뒤로 툭 튀어나온 풍성한 아홉 갈래의 꼬리.

구미호.

전설 속의 동물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야, 양호진… 헌터?”

“아.”

떨리는 지호의 목소리에 호진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손에 힘을 꽉 주는가 싶더니 제임스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다. 호진은 그런 제임스를 던져 놓고 지호에게로 다가왔다.

“저, 저 사람…….”

“신경 쓰지 마, 묶어 뒀으니까. 그보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닌데… 괜찮니?”

“어…….”

완전히 달라진 말투.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건 똑같지만, 말을 먹는 듯한 이전과 달리 나긋나긋하면서도 또렷하게 질문을 건넨다.

너무도 달라진 모습이 당황한 지호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자, 호진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버티고 있어?”

“아…….”

지호는 그제야 희미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 망설임 없이 대건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던 건 지호가 가진 스킬 [행복한 왕자] 덕분이었다.

이 스킬은 타인을 위해 희생할 때 일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발동됐을 시 상태 이상을 회복한다. 덕분에 지호는 독을 낫게 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한 대 맞아 [행복한 왕자]를 발동시키고 멀쩡한 정신으로 도망갈 작정이었지만…….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어. 치료해 줄 터이니.”

호진의 목소리에 홀린 것처럼 지호는 얌전히 그에게 등을 맡겼다. 지호가 알던 위력보다 훨씬 강한 위력의 [힐]이 지호의 등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지호의 등을 치료한 호진은 대건의 부상도 치료했다.

정말 이대로 맡겨도 괜찮은가. 걱정이 들었지만 [행복한 왕자]의 스킬 효과가 끝나 고통이 밀려들고 있었으므로 물러날 기력도 없었다.

게다가 원래 도망가려고 했던 수단은 [용궁의 보물상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