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Delta(3)
새로 올라온 사진에는 이국적인 풍경을 뒤로 한 채 활짝 웃는 이하연의 모습이 보인다.
‘이하연은 아직 발리에 있군…….’
화보 촬영 목적으로 발리에 갔던 이하연은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나서도 아직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 계절도 7월이니 개인적으로 휴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단서를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모은 단서를 끼워 맞출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그 살인마 놈 때문에 제대로 모으지조차 못했다.
나소정을 중심으로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 박건호는 이하연과 나소정이 과거 몇십 번이나 접촉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물론 그 접촉은 현재에도 계속 이어졌다.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게다가 나소정은 이하연의 소속사인 드림로드의 사장이나 스타일리스트와도 빈번히 접촉했다. 그리고 이하연의 스타일리스트는 아무래도 미등록 각성자 같다는 박건호의 추가 보고도 있었다.
‘수상하지.’
전혀 접점이 없는 나소정과 세 사람의 잦은 만남. 미등록 각성자. 게다가 이전 스캔들에서 주이원이 이하연과 함께 사진이 찍힌 장소도 하필이면 드림로드 소속사 근처다.
수상하다고 확정 지었으면 이후 확인해 보는 법은 간단하다. 지호가 수상함의 중심에 있는 이하연을 직접 만나 [이해]스킬을 사용하면 그녀의 대략적인 이력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이하연에게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넣은 연락은 단번에 거절당했다.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공개적인 장소에서 잠깐 얼굴만 한번 보자고 했는데도 이하연의 반응은 지호가 더러운 요구라도 한 듯 차가웠다.
그 과한 반응이 지호에게는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좀 찔리긴 하지만 살짝 따라가 시스템창만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하필 그 미국의 사이코패스 살인마 때문에 발이 묶여서…….
‘덕분에 일은 열심히 했지.’
발리에 갔다면 방배 제14 던전의 일은 훨씬 미뤄졌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얻은 것도 있다.
지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며 남은 일에 몰두했다. 사각사각, 펜이 움직이고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지호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지호는 한참동안 일에 몰두했다.
지호가 정신을 차린 건 류대건이 어두워진 실내에 불을 켜주고 나서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신 길드장님, 이제 그만 퇴근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네.”
일은 조금 남았지만 지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대건은 경호 장소로 노네임 길드보다 주이원의 집을 선호했다. 그 집은 과장 좀 보태서 핵폭발이 일어나도 멀쩡할 것처럼 보이니, 류대건도 길드에서보다는 편하게 있었고.
지호는 일단 최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먼 길은 아니지만 바로 머리 위에 있는 집을 놔두고 돌아가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위층으로 하는 계단이라도 만들면 좋을 텐데, 그러면 결계의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다나 뭐라나……. 개선 방안을 찾기 전에는 계속 이렇게 다닐 수밖에 없다.
일반 엘리베이터에 올라 잠시 벽에 등을 기대려던 지호의 두 눈이 커졌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수상쩍은 마력.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흉흉하고 강대한 마력이 위협적으로 들끓고 있었다.
“류대건 헌터!”
지호의 비명에 류대건이 반사적으로 지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악!”
“꽉 잡으십시오!”
지호를 가볍게 돌려 등에 업은 대건이 몸을 숙인 채 요란하게 흔들리는 바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 대건의 커다란 손바닥을 중심으로 마력이 펼쳐지고, 그 마력 위로 두꺼운 방패가 형성된다. 거대한 트럭이 충돌해도 견뎌낸다는 대건의 대표적인 방어 스킬이었다.
대건은 거의 동시에 머리 위로 주먹을 뻗었다. 방패를 만든 손에서 뻗어 나오는 안정적인 마력과 달리, 날카로운 마력이 총알처럼 쏘아진다.
콰앙!
대건의 공격으로 거대한 충격파와 함께 불꽃이 요란하게 뛰며 엘리베이터의 천장 뚜껑이 날아갔다. 박살 난 엘리베이터에서 거대하고 날카로운 파편이 위협적으로 튄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파편에 맞을까봐 움찔했지만, 그것들은 대건의 스킬에 막혀 몸에 닿기 전에 튕겨 나가 먼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지호 씨, 이 꽉 악무세요!”
지호는 대건의 말에 따라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이를 악문 채 대건의 목을 꽉 끌어안고 있자, 대건은 양손을 모두 아래로 뻗어 갖고 있던 마력을 전부 쏟아부었다.
이내 대건의 손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방패가 완전히 실체화되어 벽을 파고들었다.
카가각!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던 방패는 천천히 균형을 잡고 중간에 멈춰 섰다.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고 버텼을 뿐이지만, 일단 까마득한 추락이 멈춰 안심한 것도 잠시…….
후욱!
사막처럼 뜨거운 열기 섞인 바람이 아래에서부터 불어와 방패를 흔드는가 싶더니,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거대한 어둠이 두 사람을 덮쳤다.
“으…….”
시야가 돌아왔을 때 장소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여긴 대체.”
지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대건을 끌어안았던 손을 놓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잔뜩 녹슨 굵은 철사로 만든 키 큰 울타리였다. 위협적으로 솟은 울타리의 한쪽에는 주인 없는 낡은 개집이 쓸쓸하게 버려져 있다. 그 뒤로 보이는 건 창문이 모두 깨지고 철문은 반쯤 떨어져 나간 폐건물이다.
시선을 멀리 던지니 보이는 건 지평선을 대신하는 낮은 야산과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밭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사람 많은 강남 한복판에 있었는데……. 이 폐건물 주변은 적어도 서울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박.
조심성 없는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호는 바짝 긴장하며 어둠 속의 인영을 노려보았다. 금방 어둠에 적응한 눈은 상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착각할 수 없는 자.
미국 델타 길드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도주한 헌터 살인마, 제임스 휘태커였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희롱하는 듯한 시선으로 지호를 훑어보았다.
「네가 신지호인가? 생각보다 평범한데.」
분명 미국에서도 저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며 추격하고 있었을 텐데. 무슨 수로 나흘 만에 이곳에 온 걸까.
아니, 대체 왜 여기에 온 거지?
긴장한 류대건과 눈짓한 신지호는 일단 앞으로 나섰다. 상대에게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캐낼 수 있다면 최대한 캐내는 게 좋으니까.
「그래, 맞아. 내가 신지호야. 무슨 용건으로 우릴 여기에 부른 거지?」
지호는 마찬가지로 영어로 응수하면서 상대의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status
이름 | 제임스 휘태커 |
직업 | 지명수배자 |
등급 | A |
칭호 | 하이에나의 본성, 비밀을 엿본 자, 델타의 배신자, 미국 정부의 적, 암살자 |
체력 | 608 |
마력 | 498 |
근력 | 892 |
민첩 | 744 |
스킬 | 핏빛 금요일(A), 폐허의 맹수(A), 바람의 칼날(A), 그림자 꿰매기(A), 암습(B), 어둠 동화(B), 더 어둡고 깊은(B), 양아치의 패기(C), 약쟁이로 만들어 주지(C), 외상(D) |
스킬 사용에 따른 스테이터스의 변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