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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evel Up!(16) (86/283)
  • 8. Level Up!(16)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이었기에 무시했다. 하지만 희림은 집요했다. 발이 늪에 푹푹 빠져서 도망갈 길도 없는 가운데, 희림은 유유히 공중에 떠오른 채 지호를 쫓아다녔다.

    “잘해 줄게. 나랑 사귀자.”

    “싫어요.”

    “왜 싫어? 나 잘생겼잖아.”

    당당하게 말하는 희림의 얼굴을 흘깃 본 지호가 한숨을 내뱉었다. 잘생기긴 잘생겼다. 정말 잘생긴 녀석을 매일 보고 살아서 감흥이 없지만.

    주이원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남자에게 굳이 할 말은 아니라 지호는 본심을 숨긴 채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네, 잘생기셨어요. 잘생기셨는데 제 취향 아니에요. 일단 천희림 헌터는 남자잖아요.”

    “주이원은 뭔데? 그놈도 남자잖아.”

    주이원이 왜 튀어나와? 순간 발끈할 뻔한 지호는 애써 심호흡하며 참아냈다.

    “……저 주이원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

    “그럼 나 한번 만나 보기만 해 봐. 나 애인한테 잘하는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희림에게 지호가 코웃음쳤다.

    “잘하기는 무슨, 그쪽 바람둥이잖아요. 유명하던데.”

    “아, 들었어? 근데 소문을 반 토막만 들었나 봐? 내가 사귈 때 여러 가지를 잘한다는 것도 소문났을 텐데.”

    희림이 기분 나쁠 정도로 능글맞게 속삭였다. 분명 그런 소문도 분명 듣긴 했다. 화를 내며 헤어진 희림의 애인이 나중에 다시 희림을 찾아간다고 하던데…….

    하지만 도무지 저 남자에게 다시 찾아가는 심리가 이해되지 않아서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지호의 뺨을 희림이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믿어 봐. 그리고 바람둥이라고 불릴 만한 짓은 한 적 없어. 한 번에 두 사람씩 만난 적은 없으니까. 넌 다른 녀석들과 다르니까 특별히 잘해 줄게.”

    “됐어요. 난 과거에 만났던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과는 교제하고 싶지 않거든요.”

    “에이, 내 과거는 너무 신경 쓰지 마. 바람둥이가 한 사람에게 정착하는 건 만인이 좋아하는 이야기잖아?”

    “전 안 좋아하거든요. 아니, 그보다 왜 저랑 사귀려고 하는데요?”

    그냥 개소리로 넘기기에는 천희림의 태도가 몹시 집요했다. 순간 돌아보는 지호와 희림의 눈이 마주치자, 희림은 이 순간만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너 같은 타입은 한 번 마음 주면 몸도 주고 다 줄 것 같아서.”

    “…….”

    그러니까 즉, 지호와 사귀어서 몸도 갖고 이것저것 지호가 가진 것도 다 홀랑 먹어 버리겠다는 소리 아닌가?

    지호는 스태프를 움켜쥔 채 이걸로 희림을 때릴지 말지 고민했다.

    “근데 이렇게 말하면 절대 안 사귀어 주겠지?”

    “……아신다니 다행이네요.”

    다행히 저 집요함 역시 장난에 가까웠는지, 희림은 지호의 단호한 거절에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그래, 실없는 장난에 너무 열 내지 말자. 중요한 던전 관리권을 내기 대상으로 거는 놈한테 진지함을 바라는 게 사치다.

    지호는 희림을 내버려 두고 묵묵히 앞서 걸었다. 만족할 만큼 웃은 희림은 순식간에 지호에게 가까이 날아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하지만 정착하면 잘하겠다는 건 진짜야. 가족을 갖는 건 내 오랜 꿈이거든.”

    “…….”

    다른 사람이라면 실없는 농담처럼 여겼을 말이지만 지호는 순간 당황해서 가볍게 받아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저 말이 천희림의 진심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천희림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아마도 천희림이 앞으로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하며 죽은 것 같았다. 그걸 지호가 어떻게 알았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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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궁의 파편(Lv.7)

    등급A
    설명4월 17일에 태어난 당신의 아버지는 양자리의 상징이자 화성의 힘과 연관된 자이다. 죽은 아버지의 의지가 당신에게 힘을 내리고 있다. 불을 조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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