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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evel Up!(6) (76/283)
  • 8. Level Up!(6)

    의왕 제6 던전.

    청람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한 번 다녀올 때마다 하루는 앓아누울 정도로 악명 높은 던전으로 유명하다.

    생명의 위기가 찾아올 만큼 위험한 던전은 아니었으나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다 보면 몇 시간이고 쉼 없이 싸워야 했다. 아무리 각성자라지만 체력의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레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떠한가.

    [그리고 승리하라].

    유경우가 지금껏 수천 번은 써 온 이 스킬은 본래 강력한 무형의 힘으로 적을 짓누르거나 밀쳐 내는 효과를 지녔다.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해서 의왕 제6 던전에서는 특히 자주 써 왔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이 스킬은 한 번에 십수 마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위력이었다…….

    아니, 강력한 위력인 줄 알았다.

    오늘 유경우는 자신의 오만을 정정했다.

    진짜 강력하다는 건 눈앞의 광경을 말하는 거다.

    유경우가 외운 주문과 함께 마력이 얽히고 스킬이 발동한다. 아무런 형태가 없어서 스킬을 쓴 직후에는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없지만…….

    ─ 콰아아앙!

    스킬은 몬스터는 물론이고 던전의 벽과 바닥에까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물론 소리만 요란한 건 아니다.

    지금 눈앞을 가득 메운 몬스터는 크기 2m의 거대 개미를 닮은 곤충이다. 스킬은 보잘것없지만 단단한 몸으로 육탄 돌격을 해 오며 어지간한 공격은 튕겨 내기에 절대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다.

    그런 몬스터가 최소 100마리 이상 힘에 밀려 날아갔다.

    평소라면 다른 몬스터와 부딪치며 상처를 입는 데 그치겠지만, 지금은 후열의 몬스터와 함께 한 번에 납작하게 짓눌렸다.

    날아간 몬스터에 더해 뒤에서 돌진하던 몬스터까지 수백 마리를 한 번에 죽인 셈이다.

    “미쳤군…….”

    유경우는 경악할 만한 화력을 보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제힘이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강했다.

    다시 몬스터가 몰린 곳을 공격하려던 경우의 신경에 무언가가 거슬렸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유경우의 스킬, [전우여]. 이 스킬은 같이 싸우는 사람들의 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보통은 절체절명의 위기만을 강렬하게 감지한다.

    하지만 지금 느껴진 감각은 평소보다 훨씬 약하다. 칼에 베이는 것과 종이에 베이는 것의 차이 정도?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본 그곳에는, 청람의 길드원인 서정완이 몬스터의 공격을 쉴드 스킬로 막아 내는 모습이 보였다.

    [전우여] 스킬로 감지할 만큼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서정완은 원거리 공격을 주로 하는 마법사라 몬스터와 얽힌 대치 상황은 불리했다.

    [쟁취하라].

    염력 계통의 스킬을 외운 유경우가 서정완을 들어 제 옆으로 끌어왔다. 위기에서 구해 준 유경우에게 서정완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부길드장님.”

    “넌 마법 쓴다는 놈이 왜 그렇게 앞으로 나가 있어? 조심 좀 해라.”

    “아니, 이게……. 오늘은 뭔가 제가 무적이 된 것 같으니까. 좀 들떴네요.”

    서정완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직 스물세 살의 어린 녀석이라 평소에도 가끔 급발진할 때가 있었는데, 오늘 [별의 축언]을 받고 완전히 흥분한 모양이었다.

    “조심해.”

    주의하라고 경고하긴 했지만 유경우도 서정완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유경우는 주이원이 평소에 왜 그렇게 건방진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압도적으로 강한 힘.

    지금까지 끙끙거리며 깬 게 우스워질 정도로 현재 손에 넣은 힘은 어마어마하다.

    지금 유경우보다 최소 십수 배는 강한 주이원이니, 평소에 다른 길드원들이 얼마나 약해 보였겠는가?

    그 성질 더러운 놈을 이해하게 될 만큼 강해지는 스킬이라니, 헌터라면 누구든 흥분할 수밖에.

    게다가…….

    ‘이거, 단순히 스테이터스만 늘려 주는 게 아닌 것 같은데.’

    헌터 협회에서는 A급 이상 헌터의 행적을 주시하며 그들의 전투력을 분석한다. 현대의 중화기가 무용지물이 되는 던전의 존재로 헌터의 수와 질은 그대로 안전과 직결되기에.

    청람 길드에서는 모종의 루트로 헌터 협회의 자료를 받아 보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임승주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뚜렷했다.

    스테이터스나 스킬의 위력이 급상승한 건 아니다. 딱히 눈에 띄는 아이템을 착용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확연히 나아진 실력의 이유는 임승주의 움직임, 즉 검술 그 자체였다.

    물리계 헌터는 따로 무술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스테이터스와 스킬에 헌터의 공격력이 좌지우지된다 해도, 사소한 차이를 가르는 건 결국 헌터 본인의 육체와 실력이다.

    임승주 또한 검을 쓰는 법을 배웠었고, 원래 운동하는 녀석이라 그런지 움직임이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이제는 숙련된 달인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지금의 임승주에게서 스테이터스와 스킬을 모두 빼앗더라도 검 한 자루로 E급의 몬스터는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임승주에게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오늘 오지 않은 허소리나, 최근 노네임에 영입된 헌터들에게서도 전투 방식이 여러 방향으로 개선되는 게 확인됐다.

    즉, 신지호의 스킬인 [별의 축언]은 각성자를 순간적으로 강화시킬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 자체를 발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히 진화라고 불릴 만한 성장을 끌어내는 스킬.

    분명 엄청나게 좋은 스킬이지만…….

    ‘위험해.’

    균열 사태 이후, 유용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를 인신매매하는 범죄는 암암리에 횡행했다. 계속해서 구출 작전이 벌어지지만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유용한 스킬을 지닌 각성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

    신지호의 능력이 알려진다면 탐을 낼 범죄 조직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급한 위기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원이 놈이 있는데…….’

    주이원과 척지고 싶은 놈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신지호를 납치하겠는가? 신지호가 납치되면 주이원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 납치범을 죽여 버릴 것이다. 아니, 죽이지도 않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꼴로 만들어 주겠지.

    게다가 애초에 신지호가 해외로 나가지 않는 한 납치 자체를 당할 위험성이 낮다.

    한국에는 제대로 뿌리 내린 각성자 범죄 조직이 없다. 주이원이 싹이 보일 때마다 곧장 짓밟고 작은 이파리마저 죄다 불태웠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헌터계는 주이원 덕분에 부정부패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투명하다.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안이 완전히 떨쳐지지는 않는다.

    ‘최근 지호는 던전에 휘말리고, 습격도 당했었지.’

    근래 신지호에게는 불행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게다가 최근 균열 예측기의 정확성이 떨어지며 사회 전반적으로 위험이 늘어났다.

    ‘김태용도 수상해…….’

    원래 미르 길드는 청람의 경계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지호에게 자꾸 수상쩍은 관심을 보이는 이후부터 주의할 대상이 되었다.

    김태용 자체는 꽤 선한 인물이고 미르 또한 공익을 위해 움직이는 길드지만, 속내를 모르는 이상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흠.”

    복잡한 머릿속으로 유경우는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는 어느새 죄다 소탕했다.

    아직 [별의 축언]의 효과가 남아 있으니 조금 더 이동할까 생각하는데, 신지호가 그에게 다가왔다.

    “조금 쉬죠.”

    “어, 쉰다고?”

    “네. 슬슬 스킬 효과가 다시 끝나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유경우는 아직 거뜬한 자신의 상태를 느끼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경우는 던전에 들어올 때 한 번 받고도 아직 [별의 축언]의 효과가 지속되고 있었지만, 대다수 길드원은 스킬 효과가 중간에 끝나 최소 한 번씩은 더 걸어 주었다. 아무래도 어떤 조건하에 스킬 지속 시간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자, 잠깐 주목. 여기서 잠시 쉬다 갈까 하는데.”

    “아, 벌써요?”

    “벌써는 아니지. 게다가 신지호 헌터 말로는 슬슬 몇 명이 [별의 축언] 효과가 끝날 거라던데.”

    “아, 저 끝났습니다.”

    “저도요.”

    “좋아, 그럼 여기서 쉬다 가는 걸로 합시다. 식사하고, 눈 붙일 사람은 잠깐 눈 좀 붙이고, 세 시간 휴식합니다.”

    벌써 일곱 시간 가까이 전투와 이동을 반복한 강행군이지만 헌터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그래도 육체의 피로가 전혀 없는 건 아닌지 다들 잠깐의 휴식을 환영했다.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캠프와 결계를 설치하자, 평소라면 지쳐서 침낭이든 맨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뻗었을 길드원들이 한곳에 모인다.

    신지호의 옆자리로.

    청람이고 노네임이고 가리지 않고 몰려든 길드원들은 신지호가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와, 신 길드장님 진짜 장난 아니네요. 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굉장해요.”

    “이 상태로 승급 시험 보고 싶을 정도예요.”

    “그건 도핑이지.”

    “와, 어떻게 이러지? 평소 같았으면 이거 반의반도 못 왔어요.”

    “진짜 기록 갱신하겠는데?”

    “저, 사인 좀 해 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요청에 지호가 어설프게 이름을 정자로 적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지호의 눈이 가만히 서 있던 길드원 쪽으로 향했다.

    검은 피부에 검은 머리를 지닌 여자는 이 소동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묘하게 탐색하는 시선에 지호는 여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스템창을 열어 보았다.

    “어?”

    그리고 뜻하지 못한 정보에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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