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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evel Up!(4) (74/283)

8. Level Up!(4)

지호는 멋대로 남의 길드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남의 길드 길드장을 보고 기함했다.

“뭐야, 너 왜 맘대로 남의 길드에 들어와?”

“우리가 남이야?”

“남… 은 아니지만.”

아쉬워하는 얼굴에 홀랑 넘어간 지호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리고 이내 정신 차렸다.

“야, 공적으로는 남이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설마 무단 침입했냐?”

“아니, 너 보러 왔다니까 들여보내 주던데.”

“…….”

들여보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보안 체계지. 한 번 더 점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지호의 허리를 이원이 끌어안았다.

“쉰다며……. 왜 여기 있어, 거짓말쟁이.”

“일은 안 했어. 그냥 좋은 게 생겨서…….”

길드의 보안은 다소 걱정되지만 마침 잘됐다. 지호는 저를 끌어안은 이원을 밀어내고, 얼마 남지 않은 이남윤의 비약을 비어 있는 새 그릇에 담아 이원에게 내밀었다.

“야, 이거나 먹어.”

“뭔데, 이게?”

“보양식.”

조금 전에 몬스터 고기에 투자 운운한 주제에 이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독처럼 생겼는데…….”

“안 먹을 거야?”

“아니……. 우리 자기가 주는 거면 독이라도 마셔야지.”

“독은 마시지 마라.”

누가 위장해서 먹이려는 거면 어쩌려고? 물론 주이원이 그런 허접한 수에 당할 리는 없지만……. 가슴팍에 구멍 뚫린 걸 봐 버렸더니 이전처럼 안심이 되질 않는다.

“으응, 알았어.”

순순히 대답한 이원은 지호가 건넨 비약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어때, 괜찮지?”

“음, 좋긴 한데……. 길드원들이랑 나눠 마시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모처럼 전력 보강의 기회인데.”

시스템창이 없는데도 어떤 효과인지 얼추 아는 듯한 이원에게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뭐, 네 수준이면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오르겠지만……. 그 정도로도 괜찮아. 먹어 둬.”

이원의 스테이터스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티끌만큼이라도 오른다면야 지호는 만족했다.

그러자 이원이 눈을 가늘게 휘어 접으며 지호의 허리를 도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지호의 귓가에 이원이 작게 속삭였다.

“먹고 이따 밤에 힘쓰라는 거야?”

지호가 정색하며 밀어내자 이원은 순순히 물러났다.

“길드에서는 이러지 마.”

“어차피 다 안 듣고 있어.”

“…….”

뒤를 돌아보니 이원이 던진 한마디에 난리가 난 길드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이원이 오른다고 장담한 몬스터 고기 관련 회사의 주식에 대해 진지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제 다 꼬라박으면 되는 거예요?”

“근데 몬스터 고기 회사 어디?”

“좀 유명한 데 몇 군데 있을걸요? 그건 우리가 좀 알아보고…….”

“내가 알기로 지금 청람 식품도 몬스터 고기 연구 중일 텐데.”

“아, 그래? 그럼 무조건 청람이지.”

“길게 보면 10년이라…….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겠는데요. 분석도 좀 해 보고…….”

“아니, 그냥 다 넣어요. 이보다 확실한 정보가 어디 있어요? 헌터 관련 사업으로는 승률 100%이신 분인데.”

“100%까진 아닐걸요. 한 95%…….”

“그거면 거의 100이지. 나는 반도 안 되는데.”

“하……. 난 결혼 자금 모아 둔 것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지금 결혼이 중요합니까? 영끌해야죠.”

“맞습니다. 생활비는 앞으로 벌어도 안 늦어요. 모아 둔 거 다 갑시다.”

“전 돈 없는데…….”

“저랑 빚투 함 가죠.”

“미치셨나요? 빚내서 투자하지 말고 있는 돈으로만 하세요.”

“하지만 이건 두 번은 안 올 고급 정보야…….”

“틀릴 가능성도 있잖아요?”

“거의 없어요.”

“그 소수가 되면 어쩌려고요? 감당 가능?”

다들 이미 거대한 수익률을 목전에 앞둔 것처럼 열을 올리고 있다. 허소리도 대화에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관심 없는 척하지만 임승주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딱히 모아 둔 돈이 없을 박건호조차 빚을 내니 어쩌니 헛소리를 했다.

아마 주이원이 주식 얘기를 더 하지 않는 이상은 이쪽에 신경 쓸 일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전문가 중에는 몬스터 고기를 미래 식량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꽤 많다. 하지만 사람 죽이는 몬스터 고기를 어떻게 먹냐는 거부감과 실제 독성 있는 고기를 먹고 이상 증상을 보인 사례 때문에 일반인의 거부감은 높았다.

이러다가 잘못되면 길드원들이 다 거덜 나게 생겼는데. 잘못했다가는 죄다 한강의 수온을 잰다느니 난리 치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지호는 걱정스럽게 이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 진짜 투자했어? 확실한 정보야?”

“응. 사육이 필요 없는, 육식의 좋은 대체재잖아? 게다가 이거 봐.”

이원은 반짝이는 금빛 펄이 희미하게 남은 냄비를 가리켰다.

“무엇보다 몸에 좋잖아? 지금이야 거부감도 있고 독이 있느니 뭐니, 연구가 다 안 이뤄져서 그렇지……. 조리법도 일반 고기와는 달라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도 하고. 2, 30년만 지나면 다들 흔하게 먹을걸. 사실 좀 늦된 편이지.”

“늦되다니?”

“사육할 여력이 있으니 아직 안 먹은 거야. 나 없었으면 진작 폐허에서 몬스터 고기 뜯어 먹고 있을걸.”

자신만만한 말이지만 사실이었다.

균열 사태 초기에는 이원이 활약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기에 도시 곳곳이 붕괴했다. 이원이 없었더라면 1년 안에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절반 이상이 파괴됐으리란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시스템창의 안내에 따르면 생존 안정권에 들어선 세계는 고작 9.8%.

생존이 불안정한 세계의 주민이라면 몬스터를 사냥해 먹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구는 여력이 있지만, 재료 하나만으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면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분명 인기 있을 것이다.

몬스터 고기에 부정적인 측은 섭취 그 자체에 의구심을 제기했으나……. 이원이 장담하는 것도 그렇고, 지호가 시스템창으로 살펴봐도 그런 부작용은 없어 보인다. 독이 있는 종만 잘 구별해서 먹으면 될 테니 확실히 투자해 볼 만하다.

“나도 투자해야 하나.”

“넌 가만히 있어도 돼. 내가 해 뒀으니까.”

“네가 투자한 게 뭔 상관이야.”

“내 재산이 자기 재산이지.”

“……그럼 내 재산도 네 재산이야?”

“아니, 자기 재산은 자기 가져. 푼돈 뜯어먹을 정도로 급하진 않아.”

이 얄미운 자식.

“게다가 때 되면 청람 식품 주식 알아서 오를 텐데, 그냥 지호 지분 잘 챙겨서 갖고 있어. 그럼 쭉쭉 오를 거야.”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미 청람 길드와 청람 식품이 손을 잡고 개발 중인 모양이다.

몬스터 고기는 헌터 관련 사업에 가깝지만, 일반 시장에게 시판된다면 청람 식품이 맡는 게 나을 것이다. 지금도 청람 길드는 독점에 관한 문제로 말이 꽤 나오고 있으니까.

“자. 그럼 돌아가자, 지호야.”

이원이 지호의 어깨를 감싸며 단호하게 속삭였다. ‘설마 온 김에 일하고 가겠단 소리는 안 하겠지?’라고 속삭이는 듯한 눈빛에 지호는 코웃음 쳤다.

쉬는 게 급한 건 신지호가 아니라 주이원이다. 그리고 지호는 이원이 쉴 주체인 이상, 무리해서 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직 해가 쨍쨍하게 뜬 대낮이다. 지금부터 쉬면 매일 바쁘게 일하는 주이원에게 좋은 휴식이 되겠지.

“아, 그래. 너 오늘은 침대 못 벗어날 줄 알아라.”

어디 못 가도록 꼼짝없이 붙들고 쉬게 할 테다. 비장한 지호의 선언에 이원이 활짝 웃었다.

“으응, 기대할게. 자기야.”

뭘 기대한다는 건지. 지호는 실없는 소리나 하는 이원에게 코웃음 치고, 길드원에게 인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 * *

일주일간 지호는 이원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이원의 사정을 모르는 듯한 신지혜에게 연락해 청람 길드장에게 일주일의 휴가를 달라고 하니 선뜻 승낙해서 얌전히 집에 앉혀 두었다.

아침에 출근하지 말라고 매달리거나, 5분에 한 번씩 메시지가 온다거나, 집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몸으로 끌어안고 숨도 못 쉬게 달라붙어 있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성가시게 구는 이원 때문에 지호도 반쯤 휴가처럼 지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할 일만 처리하고, 점심은 건너뛰고 일을 처리하다가 이른 오후에 퇴근해 이원과 함께 식사한다.

밤에는 한 침대 위에서 같이 잠들며 중간중간 이원의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이제 이원에게서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나은 거겠지?’

주이원이 계속 그런 상처를 달고 살 리 없으니까.

침묵하는 주이원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건 포기했지만 아무래도 궁금해서, 지호는 단서가 될 만한 인물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반응은 오지 않았지만.

그리고 일주일의 휴가가 끝나자마자, 이원은 다시 바쁘게 던전 공략을 위해 출국했다.

그 즈음해서 갑작스러운 변화로 혼란스럽던 노네임의 길드 체계도 어느 정도 자리 잡혔다.

새로 들어온 길드원들도 일에 적응하고, 여론 역시 지나치게 시끄럽지 않은 정도로 소강되었다.

즉, 지호를 필두로 한 노네임 길드가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설 때였다.

“가능하면 다른 길드의 공략에도 한 번쯤은 참여해 보면 좋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입사 이후 쉼 없이 노네임 길드를 담금질하며 기반을 잡은 장효주 헌터, 길드 내에서는 장효주 전무로 불리는 그녀의 제안에 지호도 동의했다.

아직 노네임이 관리하는 던전도 없는 데다가, 새 길드원들이 실전에서 합을 맞춰 본 적도 없는 상황이다. 한 번쯤 안전한 실전을 거치려면 다른 길드의 길드 공략에 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한번 발생한 던전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새로 생겨나는 속도가 더 빠른 데다가, 최근 들어 던전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어서 지원을 요청하는 길드는 넘쳐났다.

“청람 길드의 공략부터 가 보시죠.”

“청람이요…….”

“길드장님께서 내키지 않으시는 것도 이해하지만, 청람은 신규 길드나 각성자를 상대로 던전 공략 교육을 가장 앞장서서 해 온 길드입니다. 그 어떤 길드보다 체계적인 편이고요.”

“아뇨, 그게 아니라 언제가 좋을지 생각 중이었어요.”

이원을 피해서 가야 한다. 그 녀석이 있으면 도움이 안 될 테니까.

거부감 없는 지호의 말에 효주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청람은 되는 시간에 참여하기로 하고……. 음, 그 외에도 한 군데쯤 더 가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청람의 방식을 그대로 베껴 올 건 아니니까 여러 길드를 살펴보는 게 좋았다.

“안 그래도 미르 길드 쪽에서 제안을 해 왔습니다.”

“으음, 미르요.”

승급 시험 때도 도와준 미르 길드가 이번에도 손을 내밀었다. 요청하기도 전에 제시한 호의. 분명 쉬운 길이지만……. 영 수상쩍어서.

게다가 이원의 뜬금없는 부상이 그보다 강할지도 모를 헌터, 김태용의 소행일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은 그다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 김태용이 이원에게 직접 손을 썼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가능성만으로도 꺼려졌다.

“미르 쪽은 일단 생각해 보고 결정할게요. 청람에는… 제가 연락해 보고요.”

“네, 알겠습니다.”

효주가 방을 나가고, 지호는 신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오늘 출근하는 날인가? 주이원 없으니까 있으려나.’

길드장이 일주일 내내 놀았으니 길드에 있을 법도 한데…….

곧 지혜가 전화를 받았다.

“누나, 지금 시간 괜찮아?”

─ 응. 왜, 우리 길드 공략에 참여하고 싶어서?

“맞아. 눈치챌 줄은 알았는데 바로 말할 줄은 몰랐네.”

─ 이원이 해외 갔으니까. 네 성격에 지금쯤 연락할 거라고 생각했지.

“걔랑 같이 가면 걔가 너무 세서 경험은 못 쌓으니까.”

─ 변명할 필요는 없는데. 어쨌거나 알았어. 안 그래도 내일 들어가는 던전 있거든? 유경우 헌터가 공략팀 팀장이니까 너도 같이 가기 편할 거야.

“응.”

전남편을 유경우 헌터로 칭하는 누나는 언제 봐도 쿨했다. 지호는 누나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어릴 적에 봤던 두 사람은 엄청 사이좋았는데……. 좋아해서 결혼했으면서 지금은 직장 동료라기에도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지.

게다가 유경우는 미련이 있는 것 같지만 누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지호는 이상적인 연인 관계를 보면서 자랐다. 바로 부모님이다. 두 분은 언제나 서로를 사랑했다. 때때로 싸울 때가 있었지만 늘 오래가지 않았고, 싸우더라도 상대를 상처 입힐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이상처럼 굴러가지는 않는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면 함께 끝나면 좋은데, 일방적으로 한쪽만 끝날 수도 있다. 그러면 남은 한쪽은 가망 없는 사랑에 붙잡혀 끌려가게 된다.

그런 건 너무 슬프다. 지호도 부모님처럼 완벽한, 이상적인 사랑을 하고 싶은데.

‘역시 난 연애는 못 할 거야…….’

지호도 자신의 연애관이 이상론에 가깝다는 건 알고 있다. 제 또래 친구들은 만났다가 헤어졌다가를 반복하는데, 첫 연애부터 영원을 바라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1년 전의 맹비난 이후, 지호는 두 번 다시 실패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생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해도 한참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해야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불화나 이별은 겪고 싶지 않으니까.

‘사랑해, 지호야.’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지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너를… 사랑해. 나는 널 사랑할 자격이 없지만……. 미안해.’

‘…….’

‘지호야, 나랑 같이 도망갈래?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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