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스캔들(5) (69/283)
  • 7. 스캔들(5)

    말문이 막혔다.

    “야, 이건… 위급 상황에 잠깐 도와준 거지.”

    “고작 C급 균열인데 위급 상황?”

    이원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게시글의 사진을 한 번, 지호를 한 번 번갈아 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기 너무 약하다……. 진짜, 밖에 내보내는 내가 용하네.”

    “…….”

    거의 보름 넘어서 나타나자마자 곧장 시비부터 걸다니. 제일 짜증 나는 건 저 시비가 지호를 긁으려는 목적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한탄이라는 점이다.

    발끈한 지호는 이원을 걷어찼다. 그냥 맞아 준 이원은 냉큼 지호의 몸 위로 올라왔다.

    몸이 닿지는 않았지만 덮치듯 내리누른 자세에 지호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진다. 이원의 새까만 눈동자에 언뜻 금빛이 어린다.

    “지호야. 김태용이랑 둘이 무슨 사이야?”

    저거, 내가 할 대사였는데.

    본인의 스캔들은 온갖 일간지며 뉴스에 대서특필된 주제에. 지호는 시답잖은 게시글을 보고 추궁하는 이원을 어처구니가 없어 노려보았다.

    “야, 정신 차려.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스캔들 났잖아.”

    “그게 무슨 스캔들이야, 그냥 커뮤에 사진 좀 올라온 건데. 내가 스캔들 났냐? 스캔들은 네가 났지! 너야말로 이하연 씨랑 둘이 무슨 사이인데?”

    화가 나서 쏘아붙이는 지호를 빤히 보던 이원이 씩 웃었다.

    “자기, 지금 질투해?”

    괜히 찔린 지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 사이에 연애한다고 질투할 리가 있겠냐? 라고 쏘아붙이기엔… 지호도 자신의 반응이 평범하지 않다는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형제이자 친구인 녀석에게 애인이 생기는데 질투할 이유가 뭐 있나.

    부러운 건가? 아니면 지기 싫은 건가?

    하지만 연애가 상대와의 경쟁도 아닌데.

    물론 자신의 연애 경력이나 연애해 본 상대를 마치 트로피처럼 자랑하는 부류도 있지만, 평소 지호는 그런 사람을 싫어했다.

    물론 자신이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질투는 아니야.”

    “그래?”

    “어. 절대 아니야.”

    지호는 자신의 상태를 단언했다. 잘 모르겠지만 질투는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확고한 지호의 반응을 본 이원이 한숨 쉬었다.

    “질투해 주면 좋을 텐데. 지금보다 더.”

    “지금은 질투 안 했다니까.”

    “난 지호가 질투만 해 준다면 뭐든 할 수 있어. 나중에 SSS급 던전이 나타나서 혼자 들어간다고 해도 들어갈게.”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무리 주이원이라지만 SSS급 던전에 혼자 들어간다니, 자살행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정색하며 말리자 이원이 서운한 듯 꼬리 내린 개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 업보긴 한데 아직 갈 길이 멀었네.”

    “무슨 업보?”

    “네가 지금은 날 안 좋아하는 거.”

    지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지금은 안 좋아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예전에는 좋아했다는 거 아닌가? 과거에도 이원을 그런 의미로 좋아해 본 적은 없는데.

    하지만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이원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 불쌍하게 여길 거 하나도 없는 녀석인데.

    “야……. 나도 너 좋아하거든? 사귄다거나 그런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내가 너보다 친한 사람이 어딨다고…….”

    “정말?”

    되물으며, 이원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둡게 가라앉았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초롱하다.

    빈말로라도 귀엽게 생긴 외모라고는 못 할 주이원이지만, 그래서인지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니 좀 귀여운 것도 같다.

    “어, 정말.”

    이원이 얄밉긴 해도 꽤 좋아한다.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니까.

    생각해 보면 그래, 질투일 수도 있겠지. 원래 우리 집 개가 날 무시한 채 남한테 가서 꼬리 치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지호는 스스로 납득하며 이원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정말로 개 쓰다듬듯 살살 쓰다듬었다. 워낙 육체가 강건한 놈이라 뻣뻣할 것 같은데 손에 닿는 머릿결은 부드럽다.

    가만히 만지고 있자니 이원이 눈을 가늘게 접어 미소 지은 채 지호의 머리에 제 손을 가져다가 슬쩍, 비볐다.

    분명 만지고 있던 머리통인데도 지호는 감전이라도 당한 듯이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그리고 자신이 엉겁결에 무슨 짓을 했는지 기겁했다.

    ‘애를 개 취급하면 어떡해. 기분 나쁘게.’

    다행히 이원은 기분 나쁘긴커녕 꽤 즐거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계속 만져도 되는데. 나 만지니까 좋지? 더 만지고 싶지 않아?”

    “아니, 그런 건 아니거든?”

    “그래, 그래. 원하면 벗어 줄게.”

    “벗긴 뭘 벗어…….”

    몹시 무성의한 대답에 지호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저놈의 착각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면 해명이라도 할 텐데. 자세한 설명을 안 하니 손쓸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이하연이랑은 진짜 아무 관계 아니야. 알겠어?”

    얼렁뚱땅 넘어간 화제를 이원이 다시 끌어와 못을 박았다. 그러자 몽실몽실하게 녹아내렸던 지호의 마음도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지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원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럼 왜 만났냐고.”

    “일에 필요하니까.”

    “그럼 청람을 통해서 연락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이야. 어쨌든 연애 감정은 절대 아니야. 만난다고 다 연애하는 거면 넌 허소리와 사귀는 거겠지. 늘 붙어 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너랑 허소리가 붙어 있는 사진 찾아줘?”

    “아니…….”

    필요 없다는데도 이원은 부득불 단말기를 꺼내 검색하더니 사진을 내밀었다. 전투 중에 단지 필요로 의해서 붙잡은 게 찍힌 사진이 몇 장 있지만…….

    “봐, 그럴싸해 보이지.”

    “……그건 그런데. 너는 남한테 안 잡힐 수 있잖아.”

    “나라고 항상 경계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딴생각 좀 하다 보면 잡힐 수도 있지. 절대 아니야.”

    “…….”

    “이하연 씨도 부정했잖아. 나랑 엮이면 별로 안 좋아할걸?”

    “너랑 엮이는 걸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딨냐?”

    툴툴거리며 짜증을 내면서도 지호는 몇 번이나 못 박아 부정하는 이원의 태도에 내심 안심했다.

    하긴, 이성끼리 만나서 접촉 좀 있다고 다 사귀는 거면……. 지호는 노네임의 길드원들과 화려한 양다리, 아니 서너 다리쯤 걸친다고 할 수 있었다.

    주이원이 하는 말이 다 진실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기를 써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드디어 믿어 주는 거야?”

    “일단은. 사실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섭섭한 말 하지 말고 신경 써 줘. 질투도 하고, 계속 생각하고, 또…….”

    이원이 투정 부리며 몸을 숙였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흘려 내 버린 느낌이지만 차마 섣불리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냥, 왠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서.

    침묵하는 지호의 위로 거대한 몸이 실리자 묵직한 체중이 느껴진다.

    “야……. 나 압사시켜 죽일 생각이냐.”

    “짜증 나…….”

    이원이 한숨처럼 내뱉는 투정에 커다란 몸을 밀어내려던 지호의 손이 멈칫했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것투성이인데 이딴 스캔들이나 나고……. 진짜 짜증 나 죽겠어. 기자 머리통 터트리고 싶어.”

    중얼거리는 이원을 보며 지호는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닌 것 같아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하긴, 이성을 만날 때마다 스캔들이 터지니 이원의 입장에서도 짜증 나겠지. 지호는 밀어내려던 걸 멈추고 너그러이 이원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힘들었겠지. 너무 압박받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럼 터트려도 돼?”

    “뭘?”

    “기자 머리통.”

    “되겠냐?”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지나치다. 한심하단 듯 받아치자 이원이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호의 품에 머리를 비볐다.

    “그냥 내가 이 세상을 정복해 버리는 게 편할 텐데, 그러면 지호가 곤란하겠지…….”

    “참 나. 정복하면 뭐, 독재라도 하려고? 그것도 쉬운 일 아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 지으며 한 말에 이원이 고개만 들었다. 두 눈이 오랜만에 열의에 휩싸여 있었다. 몹시 불온한 동기라는 게 문제지만.

    “독재 정도로는 부족해. 빅브라더가 되어야지.”

    “미친 새끼……. 그게 더 힘들어.”

    “속은 편할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원이 대답했다.

    확실히 주이원이라면 용어가 유래된 소설 『1984』 속 빅브라더처럼 완벽한 통제를 이뤄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각성자와 그들이 지닌 마법 같은 힘은 종종 인류가 몇천 년 동안 이루어 낸 업적을 뛰어넘고는 했으니까.

    진짜로 할 리는 없겠지만 저런 소리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거다. 지호는 이원의 머리를 도로 꾹 눌러 제게 기대게 만들고는 불온한 열의를 억지로 진화했다.

    “너 피곤한가 보다. 집에도 안 들어오고 싸돌아다니니까 그렇지.”

    “응. 피곤해…….”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노느라 안 들어온 건 아닌 모양이다.

    스캔들도 부정하고, 노느라 집에 안 들어온 게 아니라 바빴다고 하고.

    화났던 지호의 마음은 아주 간단하게 풀어졌다.

    좀 간지럽지만 지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친구 녀석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분명 2주 넘게 잠수 탄 녀석에게 화를 낼 말이 많았는데. 막상 마주하니 지치고 힘든 모습을 보며 모진 말을 내뱉기가 쉽지 않아서…….

    매번 이런 식으로 넘어가니 주이원이 신지호를 우습게 보고 고약한 장난을 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집에 잘 좀 들어와.”

    “알았어.”

    “응.”

    “지호야.”

    “왜.”

    “신지호…….”

    조심스러운 손길로 지호를 끌어안으며 심장이 제대로 뛰는지 확인하는 녀석을 외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지호는 그대로 이원을 계속 도닥여 주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헌터 스페이스

    제목: 오늘 울 길마 썸남 울 길드 방문함

    주어: 21(울길마)랑 신죠(길마 썸남)

    길마는 자리에 없어서 부길마 만나고 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