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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르 길드(8) (64/283)

6. 미르 길드(8)

원래대로라면 지호와 승주가 바쁘게 균열의 뒤처리를 준비해야 할 타이밍이다.

하지만 청람의 길드원들이 내려온 것과 거의 비슷하게 내려온 듯한 노네임의 길드원들이, 결계가 거둬지자 안쪽으로 다가왔다.

노네임의 길드원 중에는 헌터도 있지만 F급의 각성자나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사무직 직원까지 포함됐다. 거의 노네임 길드의 총출동이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몬스터가 죽어 나간 참사가 끔찍한지 입을 틀어막거나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기도 했다.

노네임 길드원 사이에서 장효주가 세 사람 근처로 다가왔다. 효주가 청람에 재직했던 만큼, 경우와도 잘 아는 사이인지 그가 활짝 웃었다.

“오, 효주 씨. 오랜만인데요?”

효주는 인사 대신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명함을 받아 든 경우가 씩 웃었다.

“장 전무. 음, 잘 옮겼네요?”

“네, 덕분에요.”

“사무직 직원을 다 끌고 나온 겁니까?”

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네임 길드는 아직 제대로 굴러가기 전이다. 길드 자체가 처음인 직원도 있고, 다른 길드에서 온 사람도 있다. 아직 노네임만의 방식이 자리 잡히지 않은 상황.

“때마침 잘됐죠. 현장은 더 나가 봐야겠지만 일단 여기서 견학 좀 하라고 데려왔습니다.”

균열에서의 전투가 완전히 끝나면 뒤처리는 헌터 한 명을 대동한 일반 사무직 직원의 몫이다. 죽인 몬스터의 수, 도시의 피해, 사상자의 여부 등을 조사하고 헌터 협회에 보고한다. 그리고 이후 필요한 처리를 마무리한다.

완전히 사무실에만 있는 직원도 있지만 현장에는 한 번쯤 와 보는 게 좋다. 길드 사무실 앞에서 발생한 균열은 청람이 함께 관리한다는 점에서 첫 견학으로는 딱 알맞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저희도 도와 드리죠. 한 가족 같은 사이인데.”

경우가 씩 웃었다. 잠깐 고민하던 효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요.”

다른 길드가 도와준다고 끼어든다면 그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며 공로를 가로챌 확률도 높다. 하지만 청람을 상대로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효주는 세 사람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열심히 뒤처리 중인 무리로 다가갔다. 처리에 능숙한 청람 길드의 사람들이나 김태용보다는 어설프지만, 노네임의 길드원 또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태가 정리되고, 지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인 승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승주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왜 긴장해요?”

“아뇨, 그냥 가까워서…….”

분명 스테이터스가 강화됐는데 왜 이렇게 소심해졌지. 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요즘의 임승주야 예전의 임승주와 워낙 다른 사람이라 그냥 사람이 바뀌었구나, 하면 편하다.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원래대로라면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끝까지 사냥했을 임승주가 돌아온 이유가 있을 터.

임승주는 여기서 말하긴 곤란하다는 듯이 눈짓했다. 현장을 보며 고민하던 지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임승주를 따라갔다. 예전처럼 지호나 승주가 현장의 일을 모두 처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두 사람은 사람이 없는 비상계단으로 들어왔다. 예리한 헌터의 감각으로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도 임승주는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김태용이 양호진과 밀회를 나누고 있더군요.”

“밀회요?”

“둘이 이곳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굳이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길드의 길드장과 저희 길드원이요.”

지호는 눈을 깜박이다가 승주를 빤히 응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임승주 헌터도 전에 다른 길드장들과 자주 만났잖아요?”

지호의 가벼운 질문에 승주의 동공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네. 그래서 붙잡을 방법을 생각하던 때도 있었네요. 지금은 원한다면 보내 드리겠지만.”

무심한 지호의 말에 승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은 아닙니다…….”

“네, 저도 알아요.”

일단 지호에게 [별의 축언]이 있는 한은 당분간 임승주가 다른 길드로 가진 않을 것이다. 임승주에게 신지호를 따를 마음이 적더라도, [별의 축언]은 무척 매혹적인 스킬이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요. 김태용은 길드원 빼내기 같은 건 안 할 성격인데.”

본래 미르의 길드장은 욕심이 없기로도 유명했다. 미르 길드 자체는 부길드장인 이라희의 수완인지, 유능한 각성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영향력을 늘리는 청람이나 하늘에 비해 미르는 욕심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도 닦는 신선이나 무욕의 불자 수준이다.

“그래서 양호진 헌터는 어디 간 거예요?”

“진작 아니라고 얼버무리면서 도망갔죠. 퇴근했을 겁니다.”

그러면 도망간 양호진 대신 김태용을 추궁하다가 나오게 된 건가.

잠시 생각하던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았어요.”

“따로 조치를 취하지는 않으실 겁니까?”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렇게까지 수상한 건 아니잖아요? 물론 두고 볼 것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임승주 헌터도 주시해 주세요. 너무 수상쩍은 인물 대하듯이 하지는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승주에게 충고한 지호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일을 잘하고 있는지 확인차 나왔지만 장효주의 훌륭한 지휘 아래 노네임의 길드원들은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만족스럽다.

지호는 잠시 지켜보다가 슬쩍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앞 골목에서 균열이 발생했으니 상가들은 모두 일찍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호는 그중 태용이 호진과 대화를 나눴다는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역시 한창 매장을 닫을 준비 중이었으나, 매장을 정리하던 매니저는 지호를 보자마자 사교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이 카페의 사장은 신지호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인사를 나누며 지호는 카페 안쪽 테이블로 가 앉았다. 그러자 사장의 기호를 잘 아는 매니저가 시럽을 추가한 에이드를 들고 다가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맞은편에 앉았다.

“김태용 헌터와 양호진 헌터가 함께 왔다고 들었어요.”

“네.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호에게 인사를 나누는 매니저는 F급의 각성자였다. 전투에는 쓸 수 없지만, 이런 곳에서 쓰기에 유용한 스킬을 하나 지닌.

바로 청각을 강화하는 스킬이다. F급이니만큼 능력의 범위는 좁지만 카페 하나쯤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들렸나요?”

“네. 끊김 없이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카페에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는 뜻.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스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너무 전문적이라 내용은 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괜찮아요. 대충만 말해 주세요.”

“네, 양호진 헌터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다음에는… 길드장님 얘기로 넘어갔습니다.”

“제 얘기요?”

“네.”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매니저가 조금 망설이다가 작게 속삭였다.

“길드장님 예쁘다고 하시던데요.”

“…….”

지호는 에이드를 조금 뿜었다. 매니저가 곧장 건네준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지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진짜야? 묻는 지호의 눈빛에 매니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냥 칭찬하시던데요. 예쁘고, 성격 좋고, 착하고, 유능하고, 성실하고, 또 뭐라더라…….”

“아니, 그만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지호는 얼굴이 벌게진 채 매니저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매장을 나왔다.

대단한 이야기를 건질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안 했지만 설마하니 남을 금칠하고 있었을 줄이야. 설마 엿듣는 사람이 있는 걸 알고 그런 이야기를 나눈 건가?

고민하면서 지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뿐인 텅 빈 집을 맥없이 바라보던 지호는 터벅터벅 걸어 소파 위에 풀썩 누워 버렸다.

잠시 그대로 기절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지호는 단말기가 울리는 소리에 설레서 몸을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단말기에 뜨는 이름은 주이원이 아닌 박건호였다.

지호는 실망을 꾹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 아뇨. 죄송합니다. 오늘은 성과가 없지만 보고차 연락드렸습니다. 죄송하지만 생각보다 단서 잡기가 어려워서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명령한 지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뭔가 대단히 늦은 것처럼 사죄부터 한다.

쩔쩔매는 박건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호는 힐끗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밤이다.

“그보다 지금은 일할 시간 아니지 않아요? 쉬시고 내일 출근해서 스킬 받고 다시 하세요.”

생각도 못 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박건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되묻는다.

─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당연하죠. 서두르지 말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 음, 알겠습니다.

딱히 못 미더운 목소리였다. ‘그래 놓고 나중에 일 안 했다고 구박할 거지?’라는 의심이 기본적으로 깔린 목소리.

악덕 길드에서 굴렀다더니 야근은 기본이었나 보다. 노네임에는 야근에 앙심을 품고 길드장을 구박하는 부길드장까지 존재하는데.

차마 체면상 거기까진 말해 주지 못하고 지호는 본론을 꺼냈다.

“기왕 전화하신 김에 말씀드릴게요. 다른 게 아니라, 이플리스 길드를 조사하면서 몇 가지 더 조사해 줬으면 해서요. 오늘 말고 내일부터요.”

─ 네. 어떤 걸 조사할까요.

“일단 고양이 한 마리를 찾고 싶은데…….”

─ 고양이요?

몬스터를 일격에 날려 버리고 도망친 그 고양이를 찾아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헌터 협회에 신고해서 찾는 게 옳지만…….

‘안 내켜.’

포획 과정에서 험하게 굴 수도 있고, 헌터 협회가 잡으면 꼼짝없이 국가에 소속된다. 높은 등급의 각성자가 적은 협회가 말 못 하는 고양이를 어떻게 대우할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찾아 보호하는 게 낫지.

“네.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고……. 음, 내일 출근하면 자세히 말할게요. 일단 생긴 건 알고, 마력 패턴도 알고 있어요.”

─ 그런 거라면 금방 찾을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박건호는 퍽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조만간 찾을 것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 그러면 더 조사하고 싶으신 건 어떤 겁니까?

“음, 혹시 김태용 헌터를 조사하는 건 힘들겠죠?”

전화 너머에서 잠시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 김태용 헌터라는 게……. 설마 미르의 길드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미르의 길드장인 김태용이요.”

─ 제, 제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박건호는 그야말로 큰 죄를 지은 대역 죄인처럼 침통하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 앞으로는 가능하도록 힘내겠습니다.

“괜찮다니까요. 국내에 몇 없는 S급인데, 당연히 힘들죠.”

게다가 사실은 SS급 이상이다. 아무리 박건호가 유능하다지만 들킬 확률이 너무 높다. 못할 걸 예상하고 물은 건데……. 앞으로 박건호에게는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호는 진짜 타깃을 말했다.

“그럼 양호진 헌터를 조사해 주세요.”

─ 저희 길드의 양호진 헌터를요?

김태용과 양호진의 밀회가 수상하다면 상대적으로 만만한 양호진을 조사하면 된다.

“네. 너무 자세히 조사할 필요는 없어요. 자세한 건 내일 말할 테니까, 오늘은 퇴근하고 내일 길드 출근하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요. 조심하시고,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이다음에 일하지 말고 꼭 퇴근하시고요.”

오랫동안 함께 일해야 하는데 빠르게 달리다가 지치면 쓰나. 유용한 헌터인 만큼 3년간 함께 열심히 일하고, 곱게 쓰다가 재계약을 하는 게 지호의 목표였다.

─ 예. 좋은 결과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건호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뚝 끊어진다.

마지막에 울음이 섞인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니겠지. 그냥 별거 아닌 인사말인데도 퍽 감동한 기색이 느껴졌다.

‘이 사람, 대체 얼마나 전 길드에서 구른 거람.’

이력을 보아하니 구르기도 구른 데다, 좀 외롭게 살아온 사람 같긴 했다.

“그런 사람을 너무 바깥으로만 돌리나……. 이플리스만 조사하면 길드에 좀 둬야겠다.”

조폭과 관련된 길드에서 조폭 출신 각성자나 만나 왔던 것 같은데. 사실상 고립되어 계속 혼자 지내던 사람이다.

“그건 외롭지…….”

지호는 단말기를 밀어 놓고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지호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자신의 가정 환경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지호 본인도 잘 알았다.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만큼 부유한 집. 그러나 여느 재벌가처럼 살벌하지 않고 오히려 손꼽히게 단란한 가정. 그 가정에서 어린 막내로 태어나 그저 사랑만 받고 자랐던 자신.

각성하기 전까지 지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있었으니까. 특히 주이원과는 매번 붙어 있었으니까.

“성격 더러운 놈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이 주이원의 성격을 조금 망쳐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녀석이다.

“그런데 대체 왜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지호의 원망에 답해 줄 이원은 그날도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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