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미르 길드(1) (57/283)

6. 미르 길드(1)

길드장의 S급 승급.

길드 차원에서 굉장한 희소식이지만 노네임에서는 따로 크게 축하를 벌이진 않았다.

먼저, 지호는 길드 이전을 핑계로 대부분의 길드원에게 유급 휴가를 준 상태였다. 그렇게 쉬다가 휴가 기간이 종료되면 자연스럽게 계약 만료일.

즉 이전의 길드원들과 더는 얼굴 볼 필요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계약이 다 끝나 가는 마당에 괜히 불편하게 얼굴 마주하면서 시간 끌 필요 없으니 깔끔하게 정리했다.

너무 심했나, 싶기도 했지만.

‘출근하는데 마음이 편해.’

지호는 가벼운 걸음으로 길드장실로 들어가며 이전처럼 길드에 들어오기만 해도 느껴지던 압박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길드를 세운 초기에는 정말 너무 출근하기 싫었다.

집을 나설 때 그리고 길드에 들어설 때마다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었다.

허소리가 다가와 준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길드는 오기 싫은 장소였다.

하지만 오늘은 즐거움만이 가득하다.

새 출발의 시점이다.

지호와 달리 노네임에 남게 된 길드원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전의 길드원들이 모두 들어와도 남을 만큼 커진 사무실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사람들. 텅텅 빈 자리는 남은 이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이제 열심히 해야지.’

그들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노네임은 다르다. 아마 지금 지원한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합격할 확률은 낮을 것이다.

그나마 길드 분위기를 덜 망치던 몇몇만 남겼을 뿐. 자신들이 잘나서 남은 게 아니란 사실을 잘 아는 이상 바짝 군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하찮게만 보이던 길드장의 위상은 한 달 새 완전히 달라졌다.

S급 길드장이니 곧 길드 인원만 충족하면 자동으로 A급 길드로 승급될 테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추후 S급으로 승급될 수도 있다. 청람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노네임이 A급에만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년 멤버로서 운 좋게 남았으면 여기서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만 했다.

그들로서는 길드장과 가까워진 허소리와 양호진이 부러운 동시에 질투도 났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 일은 그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일이기에 결국 할 말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자고 의욕을 다질 뿐.

가라앉은 분위기와 달리, 신지호만큼이나 즐거워하는 사람은 노네임에 한 사람 더 있었다.

당연히 노네임을 함께 지탱하다시피 해 온 허소리다. 예전에는 가망 없는 길드에 붙어 있느니 그냥 졸업해서 일반 회사에 취직이나 하라느니, 각성해서 들어간 길드가 고작 노네임이라니 무능하다는 소리도 은근히 들었다.

명절 때마다 은근히 깔보던 친척이나 부모님의 지인들이 부모님께 괜히 안부 전화를 하고 선물을 보내는 것을 보는 건 썩 나쁘지 않았다. 조금 같잖긴 했지만.

허소리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사기급 스킬을 달고 온 길드장이 천사처럼 보였다. 아니, 천사였다. 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맞은 로또였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도 좋아했지만 더더욱 좋아진 길드장을 위해 허소리는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한 컬러감의 크림 위로 ‘노네임의 길드장 신지호의 S급 승급을 축하합니다♡’라고 레터링이 새겨진 앙증맞은 케이크였다.

추가적으로 준비한 고깔모자를 쓴 허소리는 위풍당당하게 길드장실로 쳐들어왔다.

“축하드려요, 길드장님!”

“축하드립니다.”

“추, 축하드려요…….”

허소리를 필두로 임승주와 양호진이 어색하게 덧붙인다. 누가 봐도 허소리의 강요로 고깔모자를 쓴 임승주와 양호진은 어색하게 굴었는데 그 모습에 지호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우, 웃지 마십시오.”

“아, 아니, 우리 부길드장님이 이런 모습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해서요.”

“길드장님.”

“흡……. 아, 알았어요. 참아 볼게요.”

간신히 웃음을 참은 지호는 화려한 토퍼 앞에 꽂힌 초를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옆에서 요란한 박수가 쏟아진다.

“자, 이제 자르세요, 길드장님.”

“네, 고마워요.”

지호는 얼결에 케이크 칼을 받아 케이크를 잘랐다. 일단 반지름만큼만 자른 지호는 이 작은 케이크를 몇 조각으로 잘라야 할지 몰라서 멈칫했다.

“그런데 이런 건 다 같이 나눠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호는 출근하는 길에 본 바짝 굳어 있던 다른 길드원들을 떠올렸다. 눈앞의 세 명과는 너무도 다른 경직된 분위기가 다소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이 셋이 팀으로 친해지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셋만 뭉치는 건 곤란하다.

소리가 그 말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급하게 주문하느라 큰 건 주문할 수 없었어요. 대신 다른 길드원들한테는 마들렌 하나씩 돌렸으니까 이건 우리끼리 먹자고요. 한 입 거린데.”

잠시 고민하던 지호는 케이크를 4등분 했다. 소리는 가져온 접시에 잘린 케이크를 착착 올려 배분했다.

느끼하기만 할 줄 알았던 케이크는 의외로 맛있었다. 어제 케이크를 먹었는데도 역시 당분은 인간에게 활력을 준다. 지호는 애매하게 남긴 임승주의 케이크까지 모두 뺏어 먹고는 크림이 묻은 포크를 빨았다. 역시 좋은 건 네 명만 먹기 아쉽다.

“케이크만으로는 아쉬운데 오늘 회식하죠.”

“와.”

“저녁 말고, 점심때 해요.”

“와아아!”

앞과 뒤의 목소리 톤이 명백히 다르다. 그야 저녁 회식보다는 점심 회식이 좋지. 지호는 행복이 피어난 허소리와 양호진의 얼굴을 보며 만족했다. 임승주도 티는 안 낼 뿐 입꼬리가 슬쩍 꿈틀거리고 있었고.

“다른 길드원들과 상의해서 어디가 좋을지 정하고 예약해 두세요. 가격대는 상관없으니까 평소 먹고 싶었던 거 먹어요.”

“네!”

밝게 대답한 허소리가 시키기도 전에 곧장 방을 나갔다.

굳이 허소리에게 시키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녀가 일을 도맡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작은 길드에서 그나마 편한 허소리에게 잡다한 일을 많이 부탁했더니 자연스럽게 떠맡는다.

‘계속 잡일을 시킬 순 없지.’

전투계 헌터가 이것저것 떠맡던 중구난방의 길드 운영은 어제부로 청산했다. 이제 등급이 확정됐으니 하루라도 빨리 길드원 모집 공고를 내야 했다.

길드의 규모도 단번에 커졌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비각성자 길드원도 충원하고, 일을 분배할 생각이었다.

흐뭇하게 생각하며 지호는 임승주를 바라보았다.

신지호가 S급이 되면서, 드디어 지금까지 궁금했던 임승주의 상태창이 보인다.

status

이름임승주
직업노네임의 부길드장
등급A
칭호고독한 검사, 노네임의 노예
체력845
마력418
근력1055
민첩782
스킬신체 강화(S), 속성 부여(A), 평타가 전체 공격이면 곤란한가요(A), 본능적 위험 감지(B), 아리아드네의 실(C)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