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관리자(7) (49/283)
  • 5. 관리자(7)

    [일상의 기쁨!]

    호진이 때맞춰 소리에게 알맞은 스킬을 걸어 주었다.

    부상은 회복할 수 없지만 대상을 5초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주는 스킬.

    부상은 없지만 마구 흔들린 탓에 어지러워서 움직이지 못하던 소리에게 딱 좋은 스킬이었다.

    “고마워요!”

    바쁜 와중에도 큰 소리로 인사하면서 소리가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임승주는 그런 소리의 앞으로 나선다.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시죠. 차라리 나가떨어지는 게 낫습니다. 부상은 방어막이 흡수해 줄 거고, 잡히지 않아야 짐이라도 되지 않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임승주의 저 주둥아리는 마음에 안 들었던 신지호만을 향한 게 아니라, 만인에게 공통으로 재앙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서 허소리는 순순히 수긍하고 임승주의 뒤로 물러섰다.

    사실 전투 방식을 보면 앞장서야 하는 쪽은 허소리다. 소리의 무기는 맨주먹. 임승주는 검. 당연히 소리 쪽은 리치에 한계가 있으니 광삼일에게 바싹 붙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소리가 앞장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부족함은 본인이 가장 실감하고 있을 터.

    다소 주눅 든 목소리와 달리 소리는 곧장 이를 악물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다시 임승주와 허소리가 반격을 시작했다.

    불과 며칠 손발을 맞춰 봤을 뿐이지만 두 사람의 합은 꽤 잘 맞았다. 상대적으로 힘이 세고 스킬의 위력도 큰 임승주가 큰 공격을 날려 몬스터를 멈추면 허소리가 다가가 상처 부위 위주로 추가적인 공격을 날린다.

    한 번 잡히고 나서는 소리도 패턴을 파악했는지 가까스로 잡히는 것만은 피하고 있었다. 잡히면 끝난다는 걸 몸으로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백한 한계가 드러났다. 두 사람은 간신히 버티기만 할 뿐, 쓰러질 정도로 강력한 데미지를 입히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광삼일은 땅에 박혀 있는 동안 조금씩 체력을 회복한다. 어설픈 부상을 입혀 봤자 금세 회복해서 멀쩡해지니 도저히 죽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압도적인 마력으로 밀어붙여 죽여야 하는 적이다. 광주 제3 던전이 다른 S급 던전에 비해 쉽다고는 해도 이곳 역시 S급이다. S급 공격계 헌터가 있거나 보조계 헌터가 최소 A급의 헌터에게 버프 스킬을 걸어야만 죽일 수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임승주도, 허소리도 몸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승주는 적을 죽이지 못해 무척 분해하고 있을 뿐 상태는 꽤 멀쩡하다. 하지만 소리의 움직임은 확연히 느려져 아슬아슬하게 잡힐 뻔하는 순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드디어 협회의 헌터가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뗐다.

    “슬슬 신지호 헌터께서 나서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지호 역시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호는 아까부터 세게 쥐고 있던 스태프를 들었다. 그리고 곧장,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 외운 시동어를 읊었다.

    [별의 축언.]

    지호가 지닌 마력이 신성한 축복으로 변화한다. 스킬의 이름 그대로 별빛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는 마력이 마치 선택받은 용사에게 축복을 내리듯 서서히 지친 노네임 길드원 세 사람에게 깃든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효과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며 지호는 머릿속으로 바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소리와 양호진에게 400 그리고 임승주에게는 1600의 마력을 분배했다. 그간 실험한 결과에 따른 분배였다.

    A급인 임승주는 허소리나 양호진보다 훨씬 많은 양의 마력을 받아 갈 수 있다.

    길드 내의 다른 헌터나 오늘 테스트실에서 실험해 본 결과, D급 헌터는 200, C급 헌터는 400, B급 헌터는 800, A급 헌터는 1600의 마력을 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허용량이 배로 늘어나니, 아마 S급 헌터는 3200까지의 마력을 분배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차차 확인해 봐야 할 문제였다.

    그리고 허소리에게 건 별의 축언은 열세 시간, 임승주와 양호진은 아홉 시간 동안 지속된다.

    세 명 다 지속 시간이 늘어났다. 한 시간쯤 늘어난 허소리나 양호진도 눈에 띄는 변화지만, 원래 네 시간 남짓 지속되던 임승주가 아홉 시간으로 훌쩍 뛴 건 의외의 성과였다.

    ‘역시 지속 시간은 호감도와 관련된 것 같은데.’

    근래 지호에게 사과하고 응어리를 털어 낸 임승주의 지속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걸 보고 거의 확신했다.

    최근 승주의 지속 시간은 매일매일 지호의 스킬을 받을 때마다 늘어났다. 지속 시간 증가와 함께 임승주의 갈수록 정성스러운 태도도 함께 따라왔다.

    ‘하지만 셋 다 길드장으로서의 호감이지.’

    물론 인간적인 호감이나 친숙함 따위가 있겠지만, 아주 깊은 호감으로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시스템창에 호감도가 표시되면 좋을 텐데.

    가족이나 친구처럼 더 가까운 사람이라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 온 주이원이라면 더 오래 지속될 수도…….

    힐끗 주이원을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이원의 눈이 둥글게 휜다.

    “왜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봐? 내가 아무리 좋아도 지금은 좀 자제해야지, 자기야.”

    ……쓸데없는 장난이나 치는 저 새끼도 한 열두 시간쯤 지속되지 않을까?

    실없는 생각이나 하는 지호와 달리 [별의 축언]으로 강화된 길드원들은 지금 완전히 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 죽어 나가는 걸 볼 생각이냐? 협회 이 개새끼야!’ 따위의 욕을 속으로 실컷 하던 허소리는 한순간에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간신히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던 움직임에 여유가 생긴다. 동시에 광삼일의 움직임이 완전히 다시 보였다.

    ‘뭐지?’

    이전에는 단순히 자신의 스탯이 강해졌다고만 느꼈던 소리가 다른 변화를 느꼈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이거야 신체 능력이 올라갔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뭔가 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은 아니지만, 패턴을 읽어 내 간신히 예측만 하던 때와는 다르다.

    소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다음에 어떤 공격이 올지, 어떻게 피하면서 어떤 식으로 공격해야 할지.

    단순히 감으로 여기기엔 훨씬 더 강력한 확신이 소리의 사고를 지배했다.

    머릿속을 잠식한 사고에 홀린 채 잠시 멍하니 선 소리를 보고 광삼일이 곧장 긴 줄기를 뻗는다. 소리는 굵은 줄기의 어느 한 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선…….’

    원래대로라면 피해야 한다. 저 줄기에 잡히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직접 몸으로 체험했으니까.

    “뭐하는 거야, 허소리. 피해!”

    하지만 소리는 승주의 외침에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강력한 일격!]

    C급 헌터인 허소리에게는 자신만의 그럴싸한 스킬이 없다. 높은 등급의 헌터일수록 자신만의 고유 스킬을 가진 경우가 많지만, [강력한 일격]은 국내에서도 수백 명은 넘게 갖고 있을 만한 흔해 빠진 스킬이다.

    스킬의 효과 또한 더없이 단순하다.

    지금의 일격에 모든 힘을 담는다. 한 번에 한해 공격력이 50% 증가하지만, 한 번 공격하고 나면 페널티로 10분간 공격력 전체가 50% 감소한다.

    즉, 공격이 성공하리라는 완벽한 확신이 있을 때나 쓸 수 있는 스킬이다.

    하지만 소리는 주저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소리를 단단히 움켜쥐기 위해 다가온 광삼일의 줄기가 격렬한 각도로 꺾인다. 삽시간에 광삼일이 소리를 휘감는다. 두꺼운 나무껍질은 그 움직임을 견뎌 내지 못하고 파스스 떨어져 내렸다. 물론 이 몬스터의 회복력이라면 머지않아 회복되겠지만…….

    퍼어억!

    광삼일이 소리를 휘어 감은 채 힘을 줘 들기 전에, 소리의 주먹과 광삼일의 몸체가 격돌해 묵직한 소리가 던전을 울린다.

    소리의 주먹은 거친 움직임에 못 이겨 나무껍질이 떨어진 자리를 가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리가 가격한 줄기의 중간 부분은 정확히 광삼일의 핵이 자리한 부분이었다.

    조금 전에는 작은 상처도 내기 힘들었던 주먹이 이번에는 광삼일의 껍질 안의 줄기를 반 이상 날려 버렸다. 소리의 주먹이 닿은 자리에 정확하게 몬스터의 핵이 자리 잡고 있다.

    쩌적.

    소리의 주먹에 핵이 닿았다. 진한 녹색의 광채를 띈 핵이 던전 아래서 찬란하게 빛난다. 심장이나 다름없는 핵이 드러나자 광삼일은 힘없이 아래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비켜, 허소리!”

    뒤에서 들린 승주의 목소리에 허소리가 뒤로 훌쩍 뛰었다. 힘을 다 조절하지 못해 한 번의 점프로 천장에 머리를 박은 소리는 대단한 활약을 보여 준 헌터답지 않게 머리를 감싸 쥐고 착지했다.

    “허, 허소리 헌터.”

    방어막은 [별의 축언]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기에 충격으로 눈물이 맺힌 소리에게 호진이 잽싸게 다가와 [힐]을 걸어 준다.

    그리고 오직 광삼일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임승주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시동어를 읊는 임승주.

    그리고 임승주의 검은 다시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콰과과과광!

    물론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C급인 허소리가 단번에 핵이 보일 만큼 격파할 정도다. 소리보다 훨씬 많은 마력을 부여받은 임승주가 훨씬 더 강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

    두꺼운 광삼일의 몸체가 마치 반으로 잘라 손질한 오이처럼 깔끔하게 갈라졌다. 아슬아슬하게 핵을 피해 공격했지만, 몸이 반으로 쪼개졌으니 광삼일은 당연히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쿠웅!

    오래 고전한 게 무색하게도, 단 두 번의 공격으로 거머쥔 승리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