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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리자(6) (48/283)
  • 5. 관리자(6)

    “지호야. 잠깐만.”

    이원이 몸을 숙여 제 입을 지호의 귓가에 댔다. 움찔하며 피하려던 지호는 이원이 무언가 조심스러운 화제를 꺼내려는 것을 눈치채고 멈춰 섰다.

    동시에 자연스레 두 사람의 주변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결계가 생성된다.

    “미안. 근데 내가 조사한 거 아니야.”

    “너 아니면 누가 하는데.”

    “네가 더 잘 아는 우리 부길드장.”

    지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청람 길드 두 명의 부길드장 중에 신지호가 더 잘 알고, 거기에 조사 같은 일을 맡을 사람은 하나뿐이다.

    신지호의 누나, 신지혜.

    “누나가 왜?”

    “너 습격받은 거. 혹시 혼자 남아 있는 거 아는 길드원의 제보 아니냐고 의심하더라. 허소리 헌터만 조사한 것도 아니고 노네임 소속 길드원 싹 다 조사했어.”

    “허소리 헌터가 그럴 리가 없잖아. 의심이 과해.”

    “그렇게까지 믿는 거야, 저 여자를?”

    이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호는 이상한 쪽으로 의심하는 이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찍었다. S급 몬스터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놈이 과장스럽게 아픈 척을 했다.

    “작작 해라. 너도 너희 부길드장 믿을 거 아냐.”

    “허소리 헌터는 부길드장이 아니잖아.”

    “뭐, 그야 그렇지……. 그래도 제일 의지할 만하니까.”

    “흐음.”

    이원이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곱게 접어 미소 지었다.

    “대학도 졸업 안 한 C급 헌터에게 의지해야 할 만큼 임승주가 일을 안 하나 봐. 반항이 심해?”

    “어……. 아, 아니.”

    지호는 모호하게 대답하다가 화급히 부정했다. 순간적으로 이원의 눈빛에서 몹시 불온한 살의 같은 것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임승주가 그간 했던 행동을 알게 되면 그를 죽여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물론 지나치게 과장된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지호가 그렇다면야 믿어야지.”

    전혀 믿지 않는 투다.

    “말 안 들으면 말해. 내가 말 잘 듣게 해 줄 테니까.”

    “으응…….”

    저건 분명 주먹으로 다스리려는 거다.

    지호의 마음속에서는 절대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진작 물어보지 그랬냐는 생각이 공존했다.

    지금이야 임승주가 말을 잘 듣지만, 두 달쯤 전에 물어봤으면 살짝만 손봐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하긴 두어 달쯤 전에는 이원이 매번 지호를 잠깐만 보고 가 버렸다. 이원이 보내는 구질구질한 메시지는 지호가 대부분 씹었고, 통화도 가끔 했지만 대부분 안부를 물을 뿐이라 길드에 관한 이야기까지 할 틈이 없었다.

    하긴 주이원은 바쁘다. 그가 굳이 허소리를 비롯한 노네임의 일원을 조사할 이유는 없다.

    누나라면 또 모를까.

    “길드에서 나가게 된 길드원들이 내게 앙심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맞아. 그럴 만한 상황인 건 알고 있지?”

    “그래. 난 좀 억울하지만.”

    계약 종료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도 꽤 있었다. 물론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재계약을 안 했을 뿐이지만 도의적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다.

    게다가 평소 지호의 험담을 하며 해 대던 말의 수위를 생각하면 상당한 악의를 품었을 확률도 높다.

    실제로 이번 일을 빌미 삼아 여기저기 찔러보고 다니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고. 이쪽도 욕에 대한 녹음본 따위가 있으니 최악의 경우가 와도 아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소문을 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습격을 사주했다고 가정하면 살인 미수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뒷조사를…….”

    “걱정되니까 그런 거야.”

    “그래서 결과는?”

    “딱히 의심스러운 점은 없어. 애초에 그 수준 낮은 떨거지 집단이 그렇게 고위급 몬스터를 부리거나 유도할 수는 없겠지.”

    얼마 전까지 그 수준 낮은 떨거지 집단의 길드장이던 지호는 괜히 욕을 먹은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됐고…….”

    “앞으로 잘나갈 거니까 괜찮아. 솔직히 그건 떨거지들 맞았잖아. 그딴 거 이끄느라 괜히 우리 지호만 고생했지.”

    이원은 다정하게 말했지만 그다지 다정하게 들리지 않았다. 지호가 더 말하기도 전에 이원이 소리를 차단하는 결계를 거뒀다.

    결계 없이 길드원을 의심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곤란하다. 입을 다문 지호에게 이원이 다시금 속삭였다.

    “어쨌든. 사귀는 거 아냐?”

    “아냐. 그리고 헤어졌다고 해도 최근 같은데, 그사이에 사귀기 시작할 만큼 난 지금 한가하지 않거든?”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

    “……네 연애관이 왜 그렇게 삐딱해졌는지 모르겠는데, 난 양다리 같은 거 안 한다.”

    “나도 양다리 같은 건 안 해.”

    “당연히 그래야지.”

    “난 지호뿐인걸.”

    옆에서 쿨럭,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잔뜩 긴장하다가 침이라도 잘못 삼켰는지 촬영 중이던 협회원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막고 있었다.

    지호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돌렸다.

    “난 연애할 생각 없어. 됐고, 곧 나온다잖아. 집중 좀 하자.”

    “그래.”

    이원이 웃음을 억누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드문드문 앞에 선 허소리와 임승주, 양호진이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분위기는 조용했다. 다들 잔뜩 긴장한 채 A급과 C급이 몬스터를 상대할 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슈슛!

    던전의 바닥 아래에서 굵직한 무언가가 갑작스럽게 솟아올랐다.

    김태용이 경고했던 광주 제3 던전의 첫 번째 몬스터, 광삼일이었다.

    광삼일의 생김새는 거대한 나무의 굵은 가지를 닮았지만, 움직임은 여타의 가느다란 덩굴 식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흐느적거렸다.

    하지만 공격의 위력만은 결코 쉽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큭!”

    가까스로 반응해 피한 건 임승주 한 사람뿐.

    허소리와 양호진은 광삼일이 2m 이상 지상으로 솟구친 후에야 반응했다. 그리고 한발 늦게 발견한 결과는 처참했다.

    “으악!”

    광삼일이 먼저 노린 사람은 소리였다. 굵은 덩굴은 피하지 못한 소리의 몸을 꽉 감았다.

    미리 경고했던 상황을 피하지 못한 소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게다가 예습을 하고 온 게 소리에게 더 좋지 않게 작용했다. 광삼일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내리쳤는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이원이 지켜보다가 깜짝 놀란 지호에게 속삭였다.

    정말… 괜찮기는 했다.

    이원의 방어 스킬은 무형의 마력으로 된 막이 소리의 몸 전체를 10cm 정도의 두께로 감싸는 형태였다. 부딪치는 충격 또한 흡수해서 방어막이 벽면에 닿을 때마다 슬라임처럼 요동쳤지만 소리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래, 몸이야 괜찮다.

    하지만 광삼일의 움직임은 지나치게 인정사정없었다. 김태용이 뭘 걱정했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되는 광경이었다.

    광삼일은 소리가 망치의 머리라도 되는 것처럼, 승주와 호진을 향해 소리를 인정사정없이 휘둘러 댔다.

    소리의 몸은 광삼일이 흔드는 대로 마구 흔들렸다. 때로는 천장이나 바닥 쪽에 머리를 박고, 다리 쪽이 승주의 몸통을 직격하기도 했다.

    이원이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진작 목이 꺾이고 온몸이 으깨질 정도의 충격이 쉴 새 없이 소리에게 가해졌다.

    피하지 못한 호진은 진작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다.

    그나마 버티는 건 승주뿐이지만 그 역시 제대로 된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다. 공격하려고 하면 광삼일이 소리를 방패처럼 앞세웠다.

    “그냥 치면 안 되는 거예요? 어차피 방어 걸려 있는데!”

    아무리 방어막이 있어도 정신없이 흔들리는 상황이 버티기 힘든지 소리가 낯이 하얗게 질린 채 힘겹게 소리쳤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못 치니까. 정석적으로 공략해 봐야겠지.”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달리 승주는 전투 시뮬레이션이라도 치르는 듯 침착했다.

    “저 어지럽다고요!”

    “알았으니까 조용히.”

    “아, 정말!”

    그간 함께 훈련하며 가까워진 덕에 소리는 가감 없이 불평을 내뱉었다. 헌터니까 저만큼 버티는 거지 일반인이었다면 어지러워서 진작 기절하고도 남았다.

    지호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광삼일의 등급을 확인해 보려 했지만, A급 이상의 몬스터인지 이해 스킬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임승주 헌터, 이러다 허소리 헌터가 기절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예전이라면 코웃음 치며 무시했을 지호의 말에 승주가 곧장 대답했다. 그리고 탐색을 멈춘 채 날카로운 마력을 검에 실었다.

    가만히 선 승주를 향해서 광삼일이 달려들었다. 집중하고 있던 승주는 제게 광삼일이 닿기 직전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스각!

    마력이 실린 승주의 검이 광삼일을 베어 낸다. 하지만 공격이 명중했음에도 승주의 표정은 어두웠다.

    “얕아.”

    광삼일은 초반에 나타나는 몬스터가 약하다는 기존의 패턴과 달리, 이 던전 전체에서도 강한 축에 속했다. 특히 빠른 움직임과 기동성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다.

    하지만 승주가 절망만 하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얕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잠시 기세가 꺾인 광삼일에게 다시 스킬을 날린다.

    입술만 달싹이는 작은 시동어와 함께 발동되는, 임승주의 가장 강력한 광역 범위 스킬.

    콰가가각!

    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생겨난 거대한 충격파가 몬스터에게 직격했다.

    「그우우우…….」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를 비명을 내지르며 광삼일은 꽉 쥐고 있던 허소리를 떨어트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소리는 간신히 낙법을 취했지만 꽤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양손을 기도하듯 꽉 맞잡았다. 조마조마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지원하고 싶은데 협회의 헌터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방어하는 거 맞아?”

    “제대로 하고 있어. 어지럼증까진 내가 해결해 줄 수 없지.”

    반쯤 혼자 중얼거린 말에 고저 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힐끗 돌아보니 전투를 지켜보다가 대답한 이원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졸린 다큐멘터리를 봐도 저것보단 긴장하겠다.’

    방어 스킬 덕분에 데미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해지는데. 이 자리에서 이원이 가장 태연했다.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하긴, 파티를 이끌려면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을 유지하는 게 좋긴 하지.’

    파티원의 부상 하나하나에 동요하는 것보다는 평정심을 지킨 채 지휘하는 게 훨씬 낫다.

    지호는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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