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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리자(5) (47/283)

5. 관리자(5)

이원이 지호를 홱 낚아챘다. 방심하고 있던 지호는 얼결에 이원의 품으로 쏙 끌려 들어갔다. 이원은 자신을 노려보는 지호를 무시한 채, 지호의 눈을 가려 승주와의 시선 교환을 막았다.

지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원을 밀어내며 승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이 녀석이 좀 장난이 심해서…….”

저거, 장난 아닌 것 같은데.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크흠, 그럼 신지호 헌터……. 제가 제안한 대로 진행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다들 기꺼이 도와준다니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얌전히 수긍하다가 아차 싶었던 지호가 촬영 중인 협회원에게 다가갔다.

“저기, 조금 전의 영상 편집되나요?”

협회 직원은 지호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뭐라고 말했는지 입 모양은 안 보이게 할 수 있지만……. 던전 입구로 들어와서부터 편집하지 않은 전체 영상을 공개해야 이걸 찍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 슬퍼졌다.

꼴사납게 이원의 손에 홱 끌려가 안기는 모습이 영구 박제된다니…….

안 그래도 괴상한 장난을 치는 주이원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사귄다느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데.

그 헛소리들이 오늘 자로 더 심해지리란 예감, 아니 확신이 든다.

아니다. 그래도 잡아당긴 정도니까……. 어차피 소꿉친구 사이고, 다들 친한 친구려니 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최대한 행복 회로를 돌리는 지호 옆으로 이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쓱 옆으로 다가와 섰다.

“자, 그럼 일단 가시죠. 제가 뒤에서 방어 결계를 치고 있다가, 몬스터가 나오면 그에 맞는 방어 스킬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상처 하나 나지 않도록요.”

지호와 같은 종류의 걱정은 한 톨도 하지 않는지, 이원은 평소 매스컴에서 보여 주는 이미지 그대로의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지호는 제 어깨에 올라온 이원의 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가자. 가…….”

맥없이 말하는 지호에게 이원은 기쁜 듯 미소 짓고 성큼성큼 앞서서 걸어 나갔다. 길드원과 협회원들도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그의 뒤를 따라간다.

역시 뒤를 따라가려던 지호는 일행을 따라오지 않고 홀로 멈춰 선 태용을 살폈다.

김태용은 주이원의 미니 골렘들이 재료를 죄다 뜯어 간 나무 옆에 서서, 나무를 쓰다듬듯 매만지고 있었다.

“당신들의 소중한 자원을 앗아 가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가져가는 것들은 모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퍽 진지한 목소리로… 김태용은 던전 안의 식물에게 사죄하고 있었다.

지호는 잠시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응시했다.

주변은 지구와 닮은 듯 다른 묘하게 판타지적인 자연 풍경. 현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생김새와 움직임의 미니 골렘.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에 선 고풍스러운 한복을 입은 미남.

조선 시대풍 퓨전 판타지 사극의 한 장면 같다.

문제는 저게 다 사극이 아닌 현실이라는 거지만.

‘소문보다 더하네.’

일반인에게까지 알음알음 퍼져 있는 소문이다. 김태용은 특유의 정중한 말투로 개나 고양이, 새, 하다못해 풀이나 꽃에게도 자주 말을 건다고.

은근히 괴짜로 알려진 김태용이다 보니 과장된 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가끔은 소문이 진실인 경우도 있다.

김태용이 우울하게 사죄하는 동안에도 주이원의 미니 골렘들은 부지런히 열매와 잎을 따고 줄기를 꺾고 바닥을 파헤치며 재료를 채집하고 있다.

“…….”

그 모습을 잠시 쓸쓸한 듯 지켜보던 태용이 이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가시죠.”

“아, 네…….”

미련 넘치는 목소리로 사과하던 주제에 망설임 없이 앞장서는 태용의 도포 자락이 흩날린다.

저런 걸 기인이라고 하는 거겠지.

‘아니면 오타쿠…….’

지호는 작은 사각 액정 속 게임 캐릭터에게 말을 걸던 옛 반 친구를 떠올렸다.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니 왜인지 기겁하기에 더 물어보지 않았었는데.

지호는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속으로만 감탄하며, 어느새 멀어진 일행을 쫓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 제3 던전은 그리 큰 규모의 던전이 아니다. 이미 수십 차례 공략되어 자주 와 본 사람이라면 패턴을 충분히 숙지할 만했다.

즉, 미르의 길드장으로서 이 던전에 가장 많이 들어온 김태용이라면 눈을 감고도 공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슬슬 첫 번째 몬스터가 나올 겁니다.”

“저기, 조언은…….”

“물론 테스트 중에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C급 헌터 둘이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당장 본인이 S급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신적 충격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태용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의 말에 순간 채집형 던전에 선태웅과 갇혔을 때를 떠올린 지호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나가고 자시고를 떠나 그 순간에 느껴지던 강렬한 공포.

이후 화끈하게 몬스터를 날려 버리며 안 좋은 기억 따위 순식간에 잊었지만, 그렇게 극복할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특히 저기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양호진은 충격에 앓아누울 수도 있다. 임승주와 허소리가 훈련실에서 합을 맞추려 대련하는 것만 보고서도 놀라던 사람인데.

“하긴, 그도 그렇군요. 광주 제3 던전의 첫 번째 몬스터는 A급과 C급만으로 사냥하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니까요.”

다행히 협회원도 김태용의 말에 동의했다.

다만 임승주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하긴 S급 던전을 공략한 적 있는 임승주이니만큼 꽤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승주의 두 눈이 호승심으로 불타올랐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고 묵묵히 검만 만지작거린다. 아무래도 첫 전투는 꽤 의욕적으로 나설 기세다.

그와 달리 소리는 태용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죠, 제가 이런 던전 몬스터를 어떻게 상대하겠어요? 하지만 대충은 알고 있어요. 처음으로 나오는 몬스터는 광삼일이잖아요.”

“어떤 몬스터인지도 알고 계십니까?”

이름만 아는 게 아니냐는 물음.

사실 미르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의 몬스터 이름은 누구든 찍어 맞히는 게 가능하다.

광삼일. 광주 제3 던전에서 나온 첫 번째 몬스터라 광주 3의 1, 줄여서 광31, 그걸 문자로 풀어써서 광삼일이다.

몬스터에게도 나름 고유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전투에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감정사가 따라갈 일은 거의 없어서, 대부분 처음 발견해서 공략한 길드가 보고서를 제출할 때 작명도 함께 한다.

미르 길드는 죄다 이런 식으로 지명과 숫자로 성의 없이 이름을 짓기로 유명했다. 이게 그럴싸하거나 편해 보였는지 요즘에는 따라 하는 길드도 좀 있었고.

그냥 때려 맞춘 건 아닌지 소리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기 전에 자료 학습 좀 했죠. 덩굴 몬스터잖아요. 바닥에서 팟, 하고 올라와서 땅으로 끌고 가는 거.”

“네, 미리 예습을 해 두셨다니 훌륭하십니다. 광삼일은 사실 방어 스킬이 있어도 완벽하게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대입니다. 때문에 저희 길드에서도 광삼일은 이곳 던전의 경험이 있는 헌터가 앞장서서 처리하는 편입니다. 그런 까닭에 무척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별걸 다 걱정하네.”

김태용은 뚱하게 끼어든 주이원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주이원 헌터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후려치는 수준이라면 스킬이 방어해 줄 겁니다. 다만 몬스터에게 잡히면 다소 괴로운 일을 겪으실 수 있습니다.”

“괴, 괴로운 일이라뇨?”

예습을 하지 않은 게 분명한 양호진이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잡아서 그대로 흔듭니다. 미숫가루 같은 걸 섞을 때처럼 마구잡이로 흔드는데, 그 과정에서 몸이 던전 벽면에 여기저기 부딪히게 됩니다. 보통은 부딪치면서 사지가 꺾여 사망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박지는 않을 거야. 몸 전체에 방어막을 두껍게 두를 거니까.”

“네, 주이원 헌터의 말대로 방어해 주신다니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는 괜찮다 하더라도 상당한 어지럼증을 동반할 겁니다. 잡혔던 헌터들에 따르면 썩 유쾌한 기억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잡히는 것만은 피하십시오.”

“잡, 잡히는 거…….”

끔찍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호진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럴 만했다. 몬스터가 사정 봐 가며 흔들지는 않을 테고 그야말로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부딪치게 되겠지.

조금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호는 아까 전보다 더 긴장한 일행의 뒤를 따랐다.

가장 앞장서서 걸어가는 허소리를 보는 심정이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부모처럼 조마조마했다.

소리는 씩씩한 성격에 유능한 전투계 헌터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동급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의 이야기다.

물론 호진도 걱정됐지만, 몸으로 직접 S급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소리 쪽이 조금 더 걱정됐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지호의 어깨에 이원의 팔이 떡하니 올라왔다. 이원은 잔뜩 목소리를 낮춘 채 지호에게 속삭였다.

“왜 그렇게 걱정해. 설마 저 여자 좋아해?”

“뭔 소리야, 갑자기?”

지호는 애먼 사람을 엮는 이원을 흘겨보았다. 아무 근거도 없이 걱정 좀 한다고 사람을 남과 엮다니…….

……아니, 자신도 비슷한 짓을 하긴 했었나?

역지사지해 보라는 뜻에서 건 시비인가 싶어서, 지호는 바싹 세우려던 날을 다시 얌전히 가라앉혔다.

“아냐. 허소리 헌터는 그냥 동료야. 물론 길드 일을 도와줘서 고마운 동료라 좀 각별하긴 한데……. 허소리 헌터는 남친도 있다고.”

“하지만 허소리 헌터는 최근에 남친과 헤어졌어.”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호가 화들짝 놀라 이원을 돌아보았다. 이원은 “그냥.” 하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소리의 상태 메시지가 조금 묘했던 것 같기도 하고. 끝 어쩌고 하는 게, 연인과의 이별 후에 충동적으로 바꿨다고 생각하면 딱 맞았다.

그런데 주이원이 대체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설마 주이원이 허소리를 마음에 담고 있었나? 노네임의 길드 사무실에 자주 온 것도 그런 이유로? 생각해 보면 지호를 만나러 온 척 허소리를 만나러 왔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사실이라면 허소리에게 무척 위험한 일이다. 이원이 소리를 좋아할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신변을 멋대로 조사하다니 엄연한 범죄다. 이 새끼 스토커인가…….

조금 전 아무하고나 엮는다고 반성했던 게 무색하게도 지호의 눈이 의심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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