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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리자(4) (46/283)

5. 관리자(4)

‘뭐지.’

한순간 오감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분명 게이트를 통과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서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지금 누워 있거나 거꾸로 매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결여된 현실 감각. 이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감각에 몸이 떨렸다.

보통 던전에 들어갈 때 이런 감각을 느끼진 않을 텐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이 지호를 잠식한다.

‘괜찮아.’

지호는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을 다스렸다. 두려울 건 없다. 이곳은 앞으로 지호가 나아갈 전장이다. 혼자 덜덜 떨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 순간, 공포가 멀어지고 시야가 밝아졌다.

환해진 시야로 흉흉한 던전 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숲이 보였다.

천장은 실제 하늘처럼 아주 높고 푸르렀다. 먼 곳에서 가짜 태양이 빛나고, 구름은 비교적 낮게 깔려 있다. 그 구름에 닿을 듯이 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주변을 가득 채웠다.

카펫처럼 깔린 풀숲 사이로 드문드문 선명한 색의 꽃이 피어나 있고, 덤불에는 새끼손톱만 한 빨간 열매부터 주먹만 한 보라색 열매까지 다채로운 열매가 맺혀 있다.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는 버섯 따위가 줄지어 자라났다.

미르 길드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인 채집용 던전이라더니…….

딱 봐도 사방이 재료 천지다. 숙달된 채집꾼이 와도 다 쓸어 가기 힘들 것 같은 양인데…….

슬그머니 이원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염려의 시선을 보내는 지호에게 걱정 말라는 듯 웃어 보인 이원이 인벤토리 포켓에서 마석을 꺼냈다.

선명한 녹색과 금색으로 빛나는 주먹만 한 마석이 머리 위 가짜 태양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아이템창을 불러오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급이 높은 마석이다.

지호가 그 마석의 등급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원은 그 마석을 그대로 손에 힘을 줘서 부숴 버렸다.

“헉.”

단번에 가루가 되어 날아간 마석 때문에 누군가가 신음을 삼킨다.

마석은 아무리 저렴한 F급이라도 최소 수십만 골드다. 하물며 저 이원이 F급 마석 따위를 인벤토리 포켓에 넣어 다닐 리 없으니 최소 A급 이상일 게 뻔하다.

하지만 최소 수천만 골드쯤을 날린 이원은 홀로 태연하게 부서진 마석 조각 위로 마력을 부여했다. 아지랑이처럼 뻗어 나간 마력이 크게 부서진 조각과 아주 작은 파편에까지 빠짐없이 깃든다.

이원의 마력과 닿은 마석 파편이 크게 부풀기 시작한다. 안에 바람을 불어 넣은 풍선처럼 동그랗게 부푼 파편은 곧 쭉 늘리는 것처럼 길어진다. 그리고 이내 생명체를 모방하듯 머리와 사지가 볼록하게 솟아난다.

“귀, 귀여워…….”

허소리가 입을 틀어막으며 감탄했다.

확실히 동글동글한 몸체에 붙은 짧고 뚱뚱한 팔다리며, 대충 점처럼 찍힌 눈, 오밀조밀한 모양새가 귀엽기는 했다. 어딘가의 관광지에서 마스코트로 활약할 듯한 생김새다.

그렇게 하나씩 사지를 갖춘 파편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것은 손가락만 하고 큰 것은 사람의 머리통만 하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귀엽지만 수백 개쯤 움직이니 좀 징그러웠다.

게다가 처음보단 커졌지만 저게 정말 뭔가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고.

하지만 놀랍게도 파편들의 재료 채집은 빠르고 정확했다. 마력이 깃든 작은 손이 스칠 때마다 약초며 버섯 따위가 뿌리까지 한 번에 잡힌다. 채집한 재료는 다른 파편에게 넘겨 착착 준비된 수레에 쌓았다.

“됐지?”

주이원이 별거 아니란 듯이 말했다. 김태용은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못한 채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는 슬쩍 파편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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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주이원의 꼭두각시_937호
직업미니 골렘
등급S
스킬주인님의 명령이 최우선!(S), 채집(S), 안전 배송(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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