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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리자(3) (45/283)
  • 5. 관리자(3)

    서울에 자리한 헌터 협회에서 광주 던전으로 가기 위해 지호는 이원과 함께 차에 올랐다.

    미르의 길드장인 태용과도 친분을 만들어 볼까 싶어서 다른 차를 타고 싶었는데…….

    이원이 자연스럽게 제 차의 옆좌석에 지호를 앉혔다. 협회 직원들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라 지호는 얼결에 이원의 차에 타 안전벨트까지 제 손으로 매 버렸다.

    지호는 기왕 탄 김에 처음 보는 이원의 차 내부를 구경했다.

    원래 차가 몇 대 있는 이원이지만 이 차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차의 표면에서는 평범한 차에서 볼 수 없는 광택이 돌았는데, 분명 마력 반응이었다.

    “이거 자동 주행도 돼.”

    “……안전한 거야?”

    “제작자의 상위 골렘과 현대 AI가 합쳐졌으니 똑똑할 거야. 혹시 모르니 운전석에 앉아서 대비하는 게 낫겠지만.”

    덧붙인 걱정스러운 말과 달리 차는 몹시 매끄럽게 도로 위를 달렸다.

    혼자 달리는 차에 감탄하며 내부를 꼼꼼히 뜯어보니 차체뿐만 아니라 내부 역시 모두 던전산 재료로 만든 차였다. 시스템창을 띄우는 족족 A급, S급 방어 스킬이 튀어나왔다. 안전에 대한 편집증적인 설계에 지호는 혀를 내둘렀다.

    “넌 스킬 한 방쯤 맞아도 타격 없는 놈이 뭐 이렇게 결계를 겹겹이 쌓아 놓는 거야?”

    “이거 네 차야.”

    태연한 대꾸에 절로 지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난 이런 차가 없는데?”

    “받아야지, 누구한테 습격당할지 모르니까.”

    반박하려던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습격자의 추적 방법이나 목적 따위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이상, 확실히 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눈에 띄는 차는 과하다.

    “안 받아.”

    “지호야.”

    “당분간만 빌릴게. 빌려줘서 고마워, 이원아.”

    더 고집부리기 전에 지호가 잽싸게 못 박았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닌지 이원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잠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던 이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잠깐 빌려 가는 걸로 해. 대신 꼭 이거 타고 다녀야 해.”

    “알겠어, 나도 내 목숨 소중한 건 아니까 타고는 다닐게. 은근슬쩍 소유 이전하면 안 탈 거야.”

    “알겠어. 고집하고는.”

    이원이 혀를 찼지만 대충 납득하는 듯 보였다.

    지호도 이 금액 추정 불가의 부담스러운 물건을 받는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타고 다닐 의향이 있었다.

    당시에는 의연하게 죽음을 각오했지만, 역시 죽고 싶지는 않다.

    당분간은 신세 지더라도 최대한 안전을 추구하는 게 좋겠지. S급 헌터로 승급한다면 견제도 많이 들어올 테고 말이다.

    지호는 너무 잘난 소꿉친구를 힐끗 살폈다. 그러자 진작부터 지호를 바라보고 있던 이원과 눈이 마주쳤다. 지호와 마주한 이원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었다.

    “긴장돼?”

    아니, 라고 대답하려던 말은 입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했다. 지호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이 조금 떨리는 걸 보며 쓰게 웃었다.

    “조금?”

    작은 목소리로 한 대답에 이원이 손을 뻗어 지호의 떨리는 손을 꽉 붙잡았다. 이원이 지호 쪽으로 몸을 숙였다. 가까워진 목소리가 살갗 위를 간질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고맙… 아니, 오늘은 네가 지켜 주면 안 되지.”

    승급 테스트인데 다른 헌터의 도움을 받아서야 아무 소용도 없지 않나. 게다가 그 헌터가 세계 유일한 SS급이라면 더더욱.

    정색하는 지호의 말에 이원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더니 지호의 손을 깍지 껴서 꽉 붙잡았다. 낯간지러워서 서둘러 빼기 전에 이원은 지호에게 낮게 속삭였다.

    “맞아. 사실 오늘은 내가 널 지켜 줄 일도 없을 거야. 넌 잘 해낼 테니까.”

    지호는 손을 빼려고 하던 것을 멈추고 이원을 바라보았다. 새카만 눈이 침착하게 지호를 응시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평소와 같은 장난기라곤 조금도 스며 있지 않은 진중한 눈이 진실을 고한다.

    어느샌가 이원의 손에 잡혀 있던 손의 떨림이 완전히 멎었다.

    “응.”

    짧게 대답한 지호는 입술을 달싹였다. 고맙다는 말에 인색한 편이 아닌데도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귀 끝이 붉게 물든 지호를 보며 이원은 손을 거뒀다.

    평일의 이른 오후, 막히지 않는 길을 통해 광주의 S급 던전까지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호와 이원 그리고 다른 차로 온 협회 직원들과 태용이 내리자 미리 대기 중이던 노네임의 길드원들이 맞아 주었다.

    “와, 제가 S급 던전을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허소리는 던전 앞에 와서까지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허소리의 등급은 C. 보통 A급 던전의 공략에도 참가하기 힘든 등급이니까.

    언제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허소리나 매번 긴장하는 양호진은 물론이고 늘 여유롭고 삐딱하던 임승주도 다소 경직되어 있다.

    허소리는 던전 공략 자체가 처음이고, 양호진은 헌터로서의 경력 자체가 짧고, 임승주는 던전 공략 경험이 있지만 최근에 균열 처리만 했다.

    바로 S급 던전에 도전하기에는 아무리 지호의 스킬이 있어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 힘내 보자고요. 이번 일 잘 끝나면 회식이라도 쏠 테니까.”

    “회식만요?”

    “당연히 추가 근무 수당과 위험 수당, 보너스도 드려야죠.”

    “그럼 해야죠.”

    “기대하겠습니다.”

    소리와 승주가 능청맞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잔뜩 긴장한 호진에게는 회식이든 돈이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힘내는 수밖에.

    소리가 얼어붙은 호진에게 다가가 뭐라 속삭이는 사이, 협회원 대신 김태용이 앞서 나와 설명했다.

    “광주 제3 던전은 폐쇄형 던전으로 규모는 소형, 제한 인원은 여덟 명으로 미르 길드는 통상 대여섯 시간 안에 공략하는 편입니다. 공략 후 여유 시간은 768시간, 게이지가 약 40% 이하로 떨어졌을 때부터 재진입이 가능합니다.”

    게이트 앞의 던전 시계에는 짙은 녹색으로 일렁이는 마력이 약 30% 정도만 남아 있었다.

    “현재 던전 침식까지 남은 시간은 250시간으로 매우 넉넉하니 여유롭게 공략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지나치게 부담 가지실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실패하시더라도 저와 주이원 헌터가 있으니 공략은 여유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실패하면 S급으로 승급하더라도 논란이 꺼지지 않는다. 최대한 성공하는 게 유리했다.

    “오늘은 노네임 길드의 네 분과 저, 주이원 헌터, 헌터 협회의 동행 두 분이 들어갈 겁니다.”

    지호는 던전에 진입할 준비를 하는 헌터 협회의 직원을 살폈다. 한 명은 지호보다 등급이 높은지 보이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B급인데 전투계가 아닌 보조계였다. 보조계 헌터는 공략을 증거로 남기기 위해 던전용 촬영 장비를 들고 있었다.

    던전 안에서는 현대 문물이 대부분 무효가 된다. 그래서 헌터들은 대부분 던전산 재료를 써서 만든 기계를 사용한다. 게다가 던전산 재료로 만들면 아이템으로 취급되어, 청람에서 개발한 인벤토리 포켓에도 들어가니 몹시 유용했다.

    촬영 장비의 경우 화질이 떨어지긴 하지만 장비를 만들기가 어렵고 저장하는 데도 마석이 소모되는데, 확실히 이번에 투자를 좀 하려는 모양이었다.

    설명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본 김태용이 한숨을 쉬었다.

    “참고로 광주 제3 던전은 포션 제조에 필요한 재료가 많이 나오는 던전입니다. 원래는 저희 길드의 채집꾼이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주이원 헌터께서 그 자리를 차지하신다고 하시니…….”

    손해 보니까 이제라도 빨리 빠지라는 노골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태용이 노골적으로 눈치를 줘도 이원은 여전히 당당했다.

    “내가 해 주면 되잖아요? 채집.”

    “주이원 헌터가 채집을 한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채집 스킬이…….”

    “제 스킬이 뭔지 잊은 건 아니겠죠.”

    주이원의 능력은 카피.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간단한 채집을 못 도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김태용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정말 가능합니까?”

    “네, 까짓거 뭐가 어렵다고.”

    “예전에는 분명…….”

    “예전 일은 예전 일이고.”

    이원이 단호하게 태용의 말을 잘랐다. 태용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이원은 천연덕스러웠다.

    “미르 길드장이 과거의 소소한 일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니겠지요?”

    “소소한…….”

    누가 봐도 과거에 관련해서 뭔가 일이 있었던 분위기다. 음울하게 중얼거리는 태용의 모습을 보니 결코 소소한 일은 아니었으리란 확신이 든다.

    하지만 이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빛을 뻔뻔하게 받아들였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건가?

    대중이 생각하는 주이원은 그야말로 영웅적이면서도 친근한 헌터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하여 기꺼이 남을 도와줄 법한 이미지.

    하지만 헌터 상대로는 갑자기 싸가지가 심하게 없어지는데…….

    ……뭐, 많은 일이 있었겠지. 유일한 SS급 헌터라는 건 그만큼 견제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다.

    지호는 신경을 거스르는 일을 일단 접어 둔 채 눈앞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이것만 공략하면, 이제 S급이다.

    [흡인의 천구]로 안정적으로 모을 수 있는 마력은 1480……. 테스트할 때 끌어모았던 마력은 이동 중에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지호는 다시 마력을 끌어모았다.

    흡수한 마력의 수치가 1480을 가볍게 넘겼지만 지호는 멈추지 않았다. 희미하게 머리를 찌르는 두통을 무시한 채.

    “지호야, 잠깐만.”

    이원이 급히 지호를 붙들었다. 덕분에 집중이 깨져 모으던 마력이 일부 흩어졌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니, 이원은 싱겁게도 지호의 머리를 짓궂게 쓰다듬었다.

    “무슨 짓이야?”

    “너무 무리하지 마.”

    “알아서 해. 여기서부턴 조언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조언이라기보단 그냥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야.”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남 앞에서까지 이러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지호가 벽을 세우자 이원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순순히 물러났다.

    조금 더 마력을 모아 볼까 했지만… 모은 마력은 이미 2400. 이 정도도 꽤 충분하다. 확실히 이원의 말대로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가죠.”

    지호의 준비가 끝나자 해당 던전의 관리자인 태용이 나섰다.

    게이트 자체는 누구든 들어갈 수 있지만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해 그 앞에 결계를 쳐 둔다. 태용은 결계를 거두고 가장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전신에 기묘한 감각이 맴돌았다. 세상과 유리되는 듯한 느낌. 아무도 없는 우주에 혼자만 남아 버리는 듯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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