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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리자(2) (44/283)
  • 5. 관리자(2)

    물에 빠져 정신없는 와중에도 김태용이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거대한 마력이 김태용에게서부터 넘실거린다.

    넓은 수조처럼 변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마력은 늘 날카롭고 위압적인 이원의 것과 달리 부드럽고 어딘지 포근한 느낌이다. 하지만 결코 허술하지는 않게 마력이 촘촘히 짜여진다.

    김태용의 손 안쪽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테스트실을 가득 채웠던 물이 사라졌다.

    “아.”

    본인도 예상 못 한 결과에 놀란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닥으로 착지했다.

    원래대로라면 지호 역시 물에 정통으로 맞아 푹 젖었어야 했지만…….

    “괜찮아?”

    대체 언제 다가왔는지 느끼지도 못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이원이 지호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원이 뭔가 스킬을 쓴 건지 지호와 이원의 몸은 뽀송뽀송했다.

    고맙다고 말하려던 지호는 주변을 둘러보고 입을 다물었다.

    주이원이 방어한 건 자기 자신과 신지호, 둘뿐.

    나머지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형편없이 젖어 있었다. 눈치 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지호를 힐끗 본 이원이 흠뻑 젖은 협회 직원을 보며 웃었다.

    “죄송합니다, 급해서 거기까지 스킬을 쓰진 못했네요.”

    “……아닙니다.”

    협회 직원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래, 누가 봐도 여유가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둔 거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이원에게 뻗대느니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넘길 수밖에 없다.

    지호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릴 적의 이원은 좀 더 배려심이 넘치는 성격이었는데. 아무래도 3년간 고생하면서 속이 꼬인 거겠지? 좀 안쓰럽기도 하다.

    배려가 다소 부족한 이원 대신 태용이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젖어 있던 직원들의 몸과 옷에서 물기가 단번에 모두 사라졌다.

    “오…….”

    직원이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간단해 보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하게 피부 위와 옷이 머금은 물기를 제거하는 건 무척이나 정교한 스킬 제어였다.

    순식간에 테스트실 전체가 물에 휩쓸렸기 때문에 당장 뒷수습이 필요했다.

    몇몇 직원이 방으로 들어와 정리하는 사이, 조금 전 다른 직원들을 나 몰라라 했던 이원이 이번에는 손을 보탰다. 염력에 의해 엉망으로 엎어졌던 물건들이 단번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등급 재심사를 지켜보던 협회 직원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지호는 원상 복구되는 모습을 보며 협회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테스트가 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데 가서 확인해야…….”

    지호의 걱정 어린 말에 협회 직원은 무척 호의가 넘치는 미소로 안심시켰다.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테스트실이 다 찰 만큼 물을 채운 건 김태용 헌터 이후 처음인데……. 이 정도면 S급 보조 스킬이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를 건네는 직원에게 지호는 멋쩍게 웃었다.

    사실 SSS급 스킬이니 판정이 다운된 결과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성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성능만 보면 EX급일 법한 주이원의 카피 스킬도 일단 S급 판정이니까.

    지호는 정리된 테스트실에서 마저 스킬을 선보였다.

    [별의 축언]과 [흡인의 천구]는 이전에 사람들의 앞에서 선보인 적이 있어서 예상대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흡인의 천구]는 최대 흡수 가능 수치인 1480만큼만을 흡수했다. 원래의 1402와 더하면 거의 3000. 국내외의 공격계 마법형 S급 헌터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채워 둔 마력으로는 바로 다른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협조를 위해 대기 중이던 각각의 등급의 헌터가 [별의 축언]을 받았다. 강화된 헌터들을 감정사가 감정하고, 직접 그 위력을 선보이는 모습 또한 똑똑히 고화질 카메라에 담겼다.

    마지막으로 바닥난 마력을 채워 주는 [최초의 세례]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테스트가 끝났다.

    지호는 테스트실을 나와 대기실로 이동했다. 지호의 뒤를 따라올 줄 알았던 이원은 협회의 직원들과 함께 사라졌다.

    제출했던 장비와 단말기를 돌려받았지만 딱히 손이 가진 않았다. 애초에 멀쩡하게 쥐고 있기도 힘들었다. 계속해서 손이 떨리고 있었으니까.

    조금 전 직원들의 놀라고 기쁜 반응, 테스트의 결과, 모든 게 수월했다는 걸 알면서도 도무지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무언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잘도 얼굴 들고 다니네, 뻔뻔하게.’

    ‘각성자도 결국 수저빨이라는 거지. 부모 잘 만나서 좋겠어.’

    ‘비실거리기만 하고 왜 안 죽어? 죽을 거면 확실히 죽지.’

    예전에 들었던 말들이 지호의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저 지호를 비난하고 싶어서 지껄인 말일 뿐이다.

    이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잡스러운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그렇게 말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내게 있잖아.

    이상한 루머도 많지만 지호가 B급치고 자주 쓰러진 건 사실이다. 저들이 멋대로 가지치기를 했지만 결국 땅을 갈고 의심의 씨앗을 심은 건 지호 자신이었다.

    소문은 진실을 먹으며 크게 자라났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대다수 대중은 지호의 승급을 환영하겠지만, 믿지 못하는 소수의 여론은 끝까지 건재할 것이다.

    내가 옳음을 증명해 내야만 해.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믿지 않을 거야.

    두 가지 생각은 지호의 안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그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이런 식으로 혼자 남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생각나 버려서…….

    다행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듣기 전부터 결과를 알 수 있을 만큼 환하게 밝은 얼굴에 스멀스멀 지호의 속을 채우던 불안이 밀려났다.

    “신지호 헌터의 테스트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등록한 스킬 중 별의 축언, 최초의 세례, 수속성 강화, 흡인의 천구는 S급. 마법 저항은 D급입니다. 닻별의 인도 스킬의 경우는 아직 확인할 수 없으니 일단 미확인 스킬로 등록만 해 두겠습니다. 스테이터스가 다소 극단적이지만 스킬의 효율성이 높고, 전투계 보조형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S급을 받을 만합니다.”

    협회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용건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다만 S급 헌터가 되려면 S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어야겠죠. 그래서 저희는 신지호 헌터의 힘으로 S급 던전 공략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통보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협회 쪽에서 슬쩍 귀띔해 둔 부분이다.

    보통 S급 헌터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스테이터스와 스킬만 검증받을 뿐, 따로 던전 클리어라는 검증 과정을 거치진 않는다.

    S급 헌터는 A급 헌터와 확연히 다른 압도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누가 봐도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진다.

    하지만 신지호의 경우에는 그간의 논란이 지나치게 많았다. 이번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리란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확실하게 S급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고 협회 측에서 미리 제안했다. 조심스러운 제안을 지호는 냉큼 받아들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호 또한 이번 기회에 의혹을 확실히 뿌리 뽑고 싶었으니까.

    “마침 경기도 광주의 S급 던전이 공략 일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주 제3 던전은 S급 던전은 S급 중에서도 난도가 낮은 편이니 테스트로 적합할 겁니다. 안전을 위해 미르 길드장님께서 동행해 주기로 하셨는데, 음……. 오늘 갑자기 청람 길드장님이 거들어 주신다고 하셔서…….”

    말이 ‘거들어 주신다고 하셔서’지, 협회 직원의 눈치를 보아하니 어지간히 고집을 부린 것 같았다.

    직원들을 따라 들어왔던 이원과 태용이 서로를 쳐다본다. 둘 사이에서 불꽃 튀듯 강렬한 시선이 오고 갔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김태용이었다.

    “저 혼자 동행해도 괜찮습니다, 청람 길드장님. 광주 던전은 저희 길드의 관할이고, 저도 수십 번 넘게 공략한 곳입니다. 굳이 SS급의 헌터가 더 들어와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순한 인상의 김태용이지만 단호한 목소리에는 끼어들지 말라는 의지가 확고하게 깃들어 있다. 김태용 특유의 딱딱한 말투나 S급 특유의 위압감이 어우러져 쉽사리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상대는 SS급인 주이원이다. 이원은 아무런 타격 없이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지호 일인데, 내가 가야죠.”

    “말씀드렸다시피 광주의 던전은 저희 미르 길드가 관리 중인 곳입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매번 가는 곳인데 지겹지 않으십니까? 쉬시죠. 이번 기회에 무상으로 서비스해 드릴 테니.”

    “필요 없습니다.”

    “부탁하고 있는 거 아닌데.”

    주이원이 오만하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김태용이 입을 꾹 다물었다. 동글동글한 순한 눈매가 제법 매섭게 이원을 쏘아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위협적인 마력이 쉼 없이 넘실거린다.

    물론 타격을 받는 건 당사자들이 아닌 그 사이에 낀 낮은 등급의 협회 직원들이었다. 처음 말을 꺼냈던 직원이 속이 쓰리단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냥 두 분 다 가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김태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주이원의 고집을 꺾기란 거의 불가능하단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이원. 지구의 영웅,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업적을 쌓은 자. 그리고 그 업적에 반비례하는 인성을 가진 통제 불능의 헌터…….

    물론, 대중들에게는 기가 막히게 이미지 메이킹을 해 둬서 국민 사윗감이니, 만인의 우상 소리를 듣고 있지만.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태용은 평소와는 전혀 딴판으로 구는 이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응시했다.

    신지호.

    이름 세 글자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김태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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