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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체불명의 무언가(11) (38/283)

4. 정체불명의 무언가(11)

결과적으로 신지호는 주이원과 한집에 살게 되었다.

이사는 신지호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주이원의 과잉 방어로 반파된 노네임의 길드 사무실 또한 이사가 필요했다.

이사하게 된 곳의 위치는… 청람 길드가 자리한 빌딩 바로 뒷골목의 건물이었다.

그것도 주이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15층짜리 빌딩.

물론 지호는 이원과 한집에 살기 싫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하지만 꺾일 수밖에 없었던 건…….

치사하게도 이원이 아버지에게 모두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호가 다친 건 언급 안 하고, 길드 사무실까지 몬스터가 들어왔다는 것까지만 일렀다. 덕분에 둘이 같이 사는 정도로 마무리됐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집으로 잡혀 들어갈 뻔했다.

결국, 이원의 입을 막기 위해 지호는 소꿉친구 놈의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계속 혼자 사는 것을 주장하기에는…….

신지호도 몬스터의 습격에 쫄리긴 했다.

조사 결과는 아직 확실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CCTV를 추적해 몬스터의 대략적인 동선 파악은 끝냈다.

그 몬스터는 은평구와 인접한 북한산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리고 발견 시점부터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쭉 방배역을 향해 여섯 시간 정도를 걸어서 왔다. 방배역 부근까지 와서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걷다가, 노네임 길드의 위쪽을 확인하고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올라왔다.

게다가 지호를 보자마자 했던 말.

‘찾, 았, 다.’

몬스터는 신지호를 보자마자 인간의 형태를 버리고 달려들었다.

몬스터의 타깃은 신지호였던 것이다.

노네임의 다른 길드원을 노렸을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인간으로 위장한 상태는 기습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신지호가 아닌 다른 사람을 노렸다면 미리 위장을 풀 이유가 없었다.

물론 다른 누군가를 노렸을 확률 또한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가장 위험한 건 신지호였다.

해당 몬스터가 왜 신지호를 타깃으로 삼았는지, 신지호가 타깃인 게 정확히 신지호라는 개인을 노린 건지 아니면 신지호의 특징 중 무언가를 노린 건지, 노렸다면 어떤 방식으로 신지호를 찾았는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떤 방법으로 인간을 위장한 건지 모든 게 불분명한 상태다.

최소한 시체를 남겨 살펴볼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현재, 시민의 동요를 고려하여 인간형 몬스터의 존재는 아직 극비에 부쳐져 있다.

이제 와서 노네임 길드에 대대적인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너무 수상쩍어 보이니 자제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청람 길드 주변으로 이사 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지호는 심란한 얼굴로 신축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작 반년 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는 상가, 8층까지는 청람 길드의 사무실, 9층부터 13층까지는 창고로 쓰던 곳인데…….

노네임의 임시 사무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원이 지혜와 이야기를 꺼내 멋대로 착착 이전을 진행시켰다.

덕분에 노네임은 청람 길드 바로 뒤의 빌딩, 9층부터 13층을 새로운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주변 시세만 맞춰도 기존 방배역의 길드 건물보다는 훨씬 임대료가 세다. 위치도 위치고, 이전보다 임대하는 면적 자체도 훨씬 커졌다.

게다가 새로 건설하면서 던전산 자재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결계를 적용한 건물이다. 당연하지만 던전산 자재로 지어진 건물은 평범한 건물보다 훨씬 비싸다.

물론 주이원은 일반 건물과 비슷한 임대료를 받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하니, 이미 아래층의 상가들도 주변 건물과 비슷한 임대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지호는 새 사무실로 착착 옮겨지는 가구로 보내던 심란한 눈빛을 거둬들였다.

솔직히 새 길드의 위치가 좋긴 하다.

예전 건물은 오래되어서 가끔 벌레도 나왔고, 선태웅네 길드와 가까워서 쓸데없는 시비가 잦았다.

물론 이제 선태웅이 지호에게 이전처럼 시비를 걸 일은 없겠지만 하루아침에 불편한 상대가 편해지는 건 아니다.

지호는 건물을 한참 노려보다가 찝찝하던 것을 물었다.

“너 그런데… 건물 올릴 때부터 우리 길드 이사시킬 생각이었냐?”

“응. 안 그러면 뭐 하러 거길 창고로만 쓰고 있었겠어?”

“…….”

건물 절반을 창고로 쓰며 놀려 둔 게 반년쯤 됐는데. 진짜 돈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다…….

물론 주이원은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을 만큼 돈이 많지만.

착착 올라가는 가구를 보며 지호도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이원이 그를 붙잡았다.

“지호야, 이쪽으로 와.”

“뭔데?”

“사무실은 나중에 출근해서 봐도 되잖아? 아직 정리 중이고. 우리 집부터 봐야지.”

“아니, 길드는 내가 가 봐야지…….”

“너네 부길드장이 보고 있잖아. 그런 자질구레한 일은 부길드장에게 맡겨.”

“…….”

우리 부길드장님은 추가 근무가 싫다고 하셨어…….

하긴, 임승주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요 며칠, 사무실이 반파된 것과 무관하게 지호는 꼬박꼬박 훈련소로 출근했다. 그리고 임승주, 허소리, 양호진 세 사람과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진행했다.

매사 삐딱하고 건들거리던 임승주의 180도 달라진 태도에 허소리가 ‘약이라도 먹이셨나요? 아니면 세뇌?’라고 슬쩍 물어볼 정도로, 승주는 지호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사과하는 것을 보고서도 말만 저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임승주는 충직한 경비견처럼 굴었다.

그러니 하루 정도 떠넘긴다고 승주가 투덜거리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길드장이 잡일하는 데 기웃거리면 일반 길드원만 불편하지.”

“그건 청람 얘기고, 노네임은…….”

“쭉 B급 길드로 남아 있고 싶으면 계속 가족적인 분위기 지향해도 되고.”

“…….”

틀린 말은 아니라서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길드를 과하게 수직적인 분위기로 만들 생각은 없지만, 완전히 수평적인 분위기로 만들 수는 없다. 목숨이 걸린 던전을 진행하려면 최소한 명령에 확고하게 따를 만큼의 기강은 잡혀야 한다.

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원은 더 말하지 않고 웃으며 지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어 하는 사이에 지호는 이원에게 맥없이 끌려갔다.

지호가 향한 곳은 일반적인 엘리베이터가 아니었다.

고유의 마력 패턴을 인식시키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전용 엘리베이터. 슬쩍 엘리베이터를 시스템 창으로 확인해 보니 수십 가지의 방어 결계 목록이 튀어나왔다.

이 엘리베이터도 던전산 기술이 섞여 들어간 것으로, 거대한 마력관 안을 캡슐이 아래위로 오가는 형태라 외부 충격으로부터 위험할 일이 없었다.

“이거 타고 다녀. 참고로 이건 1층이랑 14층에서만 열려.”

“뭐 이런 돈지랄을……. 자재가 아깝다.”

“자재야 던전 들어가면 또 나오는 거고, 안전한 게 좋으니까.”

이 새끼가 이렇게 안전에 집착하는 인간일 줄은…….

그리고 그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도착한 최상층이 바로 지호가 이사 오게 된 새집이었다.

즉, 노네임 사무실의 위층이 지호와 이원의 집이었다.

‘출퇴근길 하나는 가깝네.’

전에도 멀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 가까워져 버렸다.

좋다기보다는 좀 찝찝하다. 잠깐 집 앞으로 나가도 길드원과 마주칠 수 있는 위치 아닌가?

게다가 혼자 사는 거면 모를까, 남의 길드장과 한집에서 살게 된다니……. 지호는 굳이 이 집을 고집한 이원을 흘겨보았다.

“야, 너는 S급 길드장이 남의 소규모 사업장 위에서 살고 싶냐?”

“소규모 사업장 위니까 사는 거지. 하늘 길드 사무실 위층이면 살겠어?”

라이벌 길드 ─ 라기보단 하늘 쪽에서 일방적으로 도전 중인 길드 ─ 를 가볍게 입에 올린 주이원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리고 이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것도 재밌긴 하겠네. 그럼 내가 뭐 하나, 아래층에서 나 도청하려고 애를 쓸 거 아니야.”

“별게 다 재밌다…….”

“겸사겸사 나도 듣는 거지. 내 소리 하나도 안 들려주고 남의 소리 엿듣기. 재밌겠지?”

“도청은 범죄야.”

“할 가치도 없어.”

같은 S급 길드를 가볍게 깔아뭉개는 이원의 태도는 자신만만했다. 저 당당함이 괜한 과욕이 아니라는 게 주이원의 대단한 점이긴 하다. 좀 꼴 보기 싫어서 문제지.

이원이 자기도취하도록 내버려 둔 채 지호는 아직 눈에 익지 않은 새집을 둘러보았다.

최상층, 정확히는 14층과 15층을 모두 사용하는 이 집은 꽤 호화로웠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 중앙에는 돌로 만든 연못과 수로가 있었다. 연못의 물은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수로를 따라 끊임없이 흐른다. 수로는 통행을 크게 방해하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었다.

이원이 단순히 인테리어를 위해 이런 장치를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호는 슬쩍 상태 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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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파도의 장막

등급SS
설명순도 높여 정제한 마력과 물을 섞어 만든 결계. 마력을 보유한 물이 막힘없이 흐르는 동안 외부의 침입자를 막고, 장막 안의 존재를 보호하며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킨다.
현재
마력량
1,89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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