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정체불명의 무언가(10) (37/283)

4. 정체불명의 무언가(10)

차디찬 핀잔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상처 입었던 부위를 누르는 아픔 때문인지, 기껏 살려 주고 남을 괴롭히는 주이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혀를 찬 이원이 스킬을 썼다. 누구의 스킬인지 모를 회복 스킬이 카피 능력이 있는 이원의 손 아래에서 구현된다.

충격이 조금 가시자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처음 보는 방을 배경으로 이원이 여전히 지호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금빛으로 빛났다. 마치 짐승의 안광처럼.

울컥,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그렇게 짜증 나냐? 사람 아픈 곳을 누르고, 뭐라도 살에 박아 버리고 싶을 만큼?”

지호의 말에 잠시 눈만 동그랗게 뜨고 깜박이던 이원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멍청하네, 신지호.”

“뭐?”

“널 다치게 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끈하기도 전에 이원이 무겁게 내뱉은 말이 지호의 말문을 막았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어. 기껏 돌아왔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할걸.”

“…….”

“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필이면…….”

자책 어린 이원의 말이 흐려지고 작아지다가 멈췄다. 턱 막힌 말은 한숨이 되어 이원의 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원은 아무것도 토해 내지 않은 채 지호를 가만히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한때는 지호보다 조금 더 작았던, 그러나 이제는 훨씬 커다래진 손이 지호의 다리를 툭 건드렸다. 뭐 하냐고 묻기도 전에 발목이 손에 잡혔다. 볼썽사납게 마른 발목이 이원의 손에 어지간한 무기들보다 가볍게 들렸다.

“뭐, 뭐야?”

당황한 지호가 뿌리치려 했지만 이원의 힘은 억셌다. 이원은 한동안 발목만 만지작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손을 놓는다.

그러나 여전히 시선은 발목이며, 지호의 팔이나 다리 따위를 훑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기분 나쁘게 떠들어 댈 때보다 침묵이 더 부담스러웠다. 평소 이원의 괴상한 말과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며 밀어내던 지호조차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이원의 얼굴에는 걱정과 자책이 가득했다.

‘왜 저렇게 자책하지. 나 혼자 다친 건데.’

하지만 어쩐지, 그렇게 말하면 이원이 더 상처받을 것 같아서. 지호는 침묵하다가 슬그머니 이원의 옷을 잡아당겼다.

“야……. 주이원.”

이원은 말없이 지호를 빤히 응시했다.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금빛 눈이 번뜩였다. 어딘지 사람을 겁먹게 하는 눈이었다. 지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무서워? 주이원이?

지호는 곧장 자신의 생각을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부정했다.

아니, 이런 녀석이 뭐가 무섭다고. SS급 헌터든, 청람의 길드장이든… 주이원은 주이원일 뿐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 온, 쉽게 정들기 힘든 성격 더러운 소꿉친구.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히 자각하는 순간 두려움도 함께 밀려났다. 지호는 막혔던 숨을 크게 내뱉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이원의 눈이 슬쩍 커졌다. 이 타이밍에 고맙다는 말을 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한 얼굴이다. 잠시 놀란 채 굳어 있던 이원이 곧 눈을 가늘게 접으며 미소 지었다.

“……그래.”

이원이 희미하게 웃고 나서야, 지호는 이원이 내뿜는 마력의 존재감이 사방을 짓누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사람 하나 죽일 것처럼 굴던 이원도 이전처럼 돌아왔다.

“오늘 우리 지호 큰일 날 뻔했다, 그치.”

“응, 그렇지…….”

“이제 무리하지 마?”

“알았어. 무리 절대 안 할게. 그러니까…….”

이 타이밍에 할 말인가 싶어서 조금 망설이자, 이원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뭔가 오해하고 있나 싶어서 지호는 곧장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아니, 다른 말 하려는 게 아니라. 너 이제라도 빨리 호주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난 또 뭐라고.”

분명 중요한 일인데, 이원은 김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됐어.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중요한 게 아니긴……!”

“지호야.”

지호의 말을 냉큼 자르며 이원이 미소 지었다. 평소에는 무감정하던 눈이 즐거운 듯 가느다랗게 접히고, 입꼬리를 잔뜩 끌어 올린 미소는 딱 봐도 굉장히 불길했다.

움찔, 뒤로 물러나는 지호를 이원이 덥석 붙잡았다.

“우리 지호가 몬스터한테 습격당했다는 걸 회장님이나 사모님이 아시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네. 일단 우리 부길드장에겐 알려야겠지?”

이원의 말에 지호는 얼어붙었다.

이제 간신히 가족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는데 몬스터에게 습격받아 죽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고?

절대 안 된다.

아들이 원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허락한 아버지나 어머니도 더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헌터를 계속하게 된다 해도 원래 계획대로 던전 레이드에 참여하는 건 막을 게 뻔했다.

물론 계속 고집부린다면 그 또한 들어주실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걱정 끼친 상황에서 이 이상은 가족에게 고집부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 지호야? 역시 알고 계셔야겠지?”

“마, 말하지 마.”

애원하는 지호를 향해 이원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쩔까, 중얼거리며 지호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이원이 몸을 숙였다.

지호와 이원이 얼굴이 가까워진다.

“너, 나한테 목숨값도 빚졌지.”

“그, 렇지…….”

“목숨값에, 입막음 비용까지. 다 해서 그 대가로 내 소원 들어줘.”

“싫어.”

뭔지 모르지만 불길하다. 지호는 일단 안 된다고 반대부터 하고 봤다. 그러나 여전히 주도권을 잡은 건 주이원이었다.

‘이런 치사한 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지호를 내려다보는 이원에게, 지호는 1파운드의 살을 샤일록에게 내어 줘야 하는 안토니오의 심정이 되어 조마조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 보고…….”

“나 안 와서 죽었으면 무슨 부탁인지 들어 보지도 못했어.”

“안 죽었으니까 됐지.”

“그래. 그러니까 그게 누구 덕이지?”

“스킬로 살았을…….”

“조건도 어렵고 쿨타임도 길다며. 그런 스킬이 두 번 발동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

“누구 덕일까, 지호야?”

그야 잘나신 주이원 님 덕분이죠…….

“알았어, 들어주면 되잖아…….”

지호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런 지호를 향해 이원은 모든 것을 쥔 사람처럼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우리 같이 살자.”

“미쳤냐?”

그건 진짜 절대 싫다.

헌터 스페이스

제목: 주이원 어디 갔냐?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