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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체불명의 무언가(1) (28/283)
  • 4. 정체불명의 무언가(1)

    바쁜 와중이지만 지호는 가족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본가를 방문했다.

    한두 달에 한 번 있는 모임에는 가족 대부분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가족 간에 사이가 좋은 편이라 연락은 자주 하지만, 아무래도 다들 바쁘다 보니 이렇게 날을 잡아 만나지 않으면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지호의 어머니인 이순희 여사가 양팔을 벌리며 반겼다.

    “엄마!”

    “우리 지호 왔니?”

    어릴 때처럼 달려가 곧장 품에 안기자, 어머니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지호 또한 익숙한 어머니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다.

    “우리 아들이 고생 많았지, 응?”

    “나는 뭐, 괜찮았지…….”

    지난 1년 중 가장 밝은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지호는 일부러 더 밝게 웃어 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이 사서 고생하며 욕을 먹는데 가장 속상한 사람은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가장 기쁜 사람도 부모님일 테고.

    지호는 어머니의 손을 꾹 잡고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중앙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평소 어머니보단 체면 차리기를 신경 쓰는 아버지다. 지호가 먼저 달려가 아버지를 끌어안자, 아버지는 어색한 듯 굴면서도 능숙하게 지호를 꽉 안아 주었다.

    “아빠, 잘 지내셨어요?”

    “그래, 나야 늘 잘 지냈지. 너도 고생 많았구나.”

    “저야 괜찮아요.”

    지호의 아버지인 신중호는 은근히 다정한 성격과 달리 표현을 썩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표정한 낯일 때가 많았지만 오늘은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입꼬리가 연신 씰룩거렸다.

    지호는 부모님의 기분을 고취시킬 겸 소파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좋은 일만 말해 주니 부모님은 몹시 기뻐하셨다.

    용돈을 찔러주는 걸 거절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은 지호는 형과 형수님에게 인사하고 편하게 쉴 겸 2층의 거실로 올라갔다.

    “어, 삼촌!”

    독립하기 전에 자주 쉬던 소파에 늘어져 쉴 생각이었는데 이미 신재운이 앉아 있었다.

    신재운은 큰형의 아들, 즉 지호에게는 조카였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여섯 살밖에 나지 않아서 사촌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그 비슷한 느낌으로 어울려 놀았고.

    사실 몇 년 전, 재운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는 아예 맞먹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때 재운은 큰형과 형수님에게 크게 혼났다. 친하게 지내는 건 좋지만 집안의 기강이 무너지는 건 안 된다며, 손주를 예뻐하던 아버지도 처음으로 재운을 혼냈었다.

    재운의 입장에서는 지호 때문에 혼난 게 화나고 자존심 상했는지 한때 데면데면하게 굴기도 했었는데…….

    지호가 쓰러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재운의 변화였다.

    지호가 의식불명이던 사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재운은 지호보다 작은 아이에서 청년에 가깝도록 변모해 있었다. 처음 딱 봤을 때는 남인 줄 알았다. 지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펑펑 우는 걸 보고 아, 조카 녀석 맞구나……. 했지만.

    어쨌든 조금은 커서 의젓해진 덕에 삐딱하던 태도가 다시 일직선의 궤도로 올라왔다. 꼬박꼬박 삼촌이라고 부르고, 철없는 소리는 종종 하지만 지호는 웃어른 취급해 주고.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던 지호가 죽을까 봐 마음 졸인 탓인지 이전보다 훨씬 살가워졌다.

    막 깨어나 정신없는 지호에게 바뀐 세상을 알려 준 사람이 재운과 친구들이었다.

    주이원은 뭐, 한창 바빠서 그렇게 관심을 두진 않았었지. 물론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잠깐 와서 농담 따먹기나 하고 갔다.

    재운은 지호를 보자마자 붙들고 열성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요즘 신재운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는 사람 대다수가 그러하듯 각성자와 헌터다.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대다수가 각성자 관련 직업을 원했다. 물론 각성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 그야말로 꿈같은 장래 희망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들 각성을 꿈꾼다.

    “삼촌, 삼촌.”

    “응.”

    “나 미튭에서 요즘 삼촌 새로 나오는 영상 다 봤다? 좋아요도 누르고 다른 애들한테도 누르라고 했어. 선생님들한테도 눌러 달라고 하고, 백 명쯤은 눌러 줬을걸?”

    “아, 그래. 고맙다.”

    “이번엔 신고 안 해도 클린하던데? 삼촌 맨날 까던 사이버 렉카들도 다 입 닥치고 있더라.”

    “어, 그래…….”

    고맙긴 한데, 상기하고 싶지 않은 걸 상기시켜 준다. 애초에 지호는 미튜브의 영상은 신경 쓰지 않는데……. 백 명이 좋아요를 누른다고 뭐가 달라지는지도 잘 모르겠고.

    주기적으로 지호를 루머로 까던 놈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건 그나마 언론이 반전된 증거니 기쁘긴 하다만…….

    깔 때 하던 온갖 헛소리들이 자동으로 떠올라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떨떠름한 지호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한 재운이 지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준다.

    “삼촌, 이거 봤어?”

    “뭔데.”

    미튜브 어플의 재생 화면이 보였다. 아래로는 참 자극적인 타이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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