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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전과는 다릅니다(2) (16/283)
  • 3. 이전과는 다릅니다(2)

    추정가 12억 골드.

    전 세계적으로 던전 아이템의 거래에는 기존의 통화가 아니라 몬스터에게서 나온 마석을 가공한 ‘골드’를 화폐로 사용한다.

    12억 골드를 원화로 환산하면 12억 원 정도.

    높다면 높은 금액이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금액이었다.

    S급 던전에서 나온 마석의 평균가는 10억.

    하지만 그건 보통 마석이 한 가지 속성만 지녔을 경우지, 무려 세 가지 속성을 지녔다면 훨씬 높게 책정되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이걸 제대로 감정할 능력이 안 돼서 낮게 책정된 것 같은데…….

    어쨌거나 10억으로 생각했어도 거저 줄 만한 마석은 아니다.

    S급 마석으로 오인했다고 해도 통째로 넘기기엔 너무 큰 선물이다.

    “이걸 나한테 준다고요? 통째로 다?”

    “네. 목숨값이니 받아 두라던데요.”

    목숨값을 따로 받을 게 있나. 결국 지호도 선태웅 덕에 살아남았는데. 지호는 마석을 쥔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걸 주고 보상을 또 준다고요.”

    떨떠름한 지호의 반응에 소리가 득달같이 반응했다.

    “진짜 수상하죠? 그럴 놈이 아닌데 뭘 잘못 먹었나. 그렇다고 돌려보내지는 마시고요.”

    “그럴 생각은 없어요.”

    지호는 웃으며 상자를 챙겼다.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 인간 때문에 고생 좀 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조금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선태웅이 보내 준 이 선물 덕분에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됐다.

    “오늘 퇴원 후에는 뭘 하실 건가요?”

    소리의 질문에 지호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오늘은 일단… 개인적인 용무를 좀 보려고요. 스킬 관련해서 시험해 볼 것도 있고. 바쁜데 쉬게 되어서 미안해요.”

    “아, 네. 괜찮습니다. 큰일 겪었는데 쉬셔야죠. 그리고 어차피 언론 대응은 청람에서 알아서 해 주고 있으니까요.”

    “으음……. 그렇죠.”

    지금이야 청람에게 맡기고 있지만, 나중에 길드 규모가 더 커지게 된다면 노네임도 전담팀을 설립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직 꿈같은 이야기지만.

    과하게 김칫국부터 마신다 싶어서 신지호는 자신을 욕하던 말들을 잠시 떠올렸다.

    ‘인생 난이도 밸런스 알아서 맞추는 멍청한 금수저’, ‘헌터계의 개적폐 신지호 뒤져라’ 따위의 욕설을 생각하자 놀라울 정도로 생각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지호는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물었다.

    “그 외의 다른 일은 없어요?”

    “음, 조금 전에 헌터 협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등급 재측정을 받아 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아… 재측정이요.”

    “네. 일단 답변 보류했고요, 거절하셔도 되고요. 강제하지는 못할 테니까…….”

    재측정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받아 봤다.

    허소리는 한때 신지호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아는 만큼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지호는 답을 망설였다.

    헌터 협회가 헌터의 등급을 측정하는 방법에는 협회의 주관이 들어간다.

    등급과 상관없이 감정 스킬을 지닌 각성자들이 있다. 감정사라고 불리는 이 헌터들은 상대의 스테이터스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테이터스가 헌터의 전부가 아니니 심사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1차로 스테이터스를 검증하고, 스킬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자체적인 테스트를 진행한다. 충분한 시험을 거친 후에는 내부 심사를 거쳐 최종적인 헌터 등급을 확정 짓는다.

    현재 신지호의 마력은 1402. 유용한 스킬도 여럿 늘어났다. 모두 검증이 가능하다면 분명 등급은 지금보다 높게 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걱정되는 건 예전처럼 또 B가 나오느냐가 아니다.

    헌터 등급은 말 그대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지’에 맞춰져 있어서 보조계 헌터들은 대부분 A급을 받는 게 한계였다.

    고작 A급으로 올라가서야 별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의 여론을 확실히 반전시키려면 목표는 하나.

    S급이다.

    그것도 지난한 논의 끝에 S급을 받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확실한 결과를 내서 S급으로 판정받아야만 했다.

    “재측정은 받을 건데, 당장은 아니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 주세요.”

    “네. 그쪽에서 최대한 빨리 해 달라더라고요. 진짜 거절하셔도 괜찮지만…….”

    “알겠어요. 어차피 저도 오래 끌 생각은 없어요.”

    협회 측에서도 한때 등급 책정으로 몸살을 앓은 만큼, 그때 이야기가 재점화되기 전에 빠르게 잠식시키고 싶을 거다.

    “괜찮으시겠어요?”

    “정말 괜찮아요.”

    지호는 걱정하는 소리에게 씩 웃어 보였다.

    선태웅의 인터뷰를 진실이라고 믿는 소리조차 썩 믿음직한 반응이 아니니, 다른 사람이야 오죽할까. 확실히 만반의 대비가 필요하다.

    조금 빨리 움직여야겠다.

    지호는 길드로 돌아가 봐야 한다는 소리와 헤어져 아래로 내려왔다.

    병원 밖에서 뭐라도 주워 먹으려고 대기하는 기자들이 몇몇 보였다. 하지만 청람 병원의 전면적인 협조 아래 지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지호가 차를 몰아 부지런히 달려 도착한 곳은 강남에 위치한 청람 백화점의 헌터 전용관이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지호는 까만 캡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수상쩍은 차림새였지만 자신의 안 좋은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가리는 게 더 나았다.

    지호를 알아보는 사람은 꽤 많다. 특히 헌터가 많은 곳에 가면 적의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모르는 사람의 시선에 일일이 상처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종 발생하는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어서 어지간하면 가리고 다녔다.

    이곳 청람 백화점은 워낙 사람이 많았기에 지호는 무난하게 인파에 섞여 들어갔다.

    균열 사태 이후, 무시무시하게 영향력을 뻗쳐 나가는 청람 길드를 기반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하던 청람은 망해 가던 백화점을 인수했다. 그리고 기존의 구조를 개편해 본관 옆의 2관을 헌터 아이템만을 판매하는 헌터 전용 구역으로 나누었다.

    헌터관의 1층부터 4층까지는 일반인도 제한 없이 드나들었다.

    연금술사가 만든 포션이나 협회의 판매 허가를 받은 일부 아이템은 누구나 돈만 있으면 구매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던전 아이템을 파는 5층 이상부터는 헌터만이 출입 가능했다.

    “신지호 헌터님, 신분 확인했습니다.”

    입구에서 지호를 알아본 가드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지호는 그러지 말라고 손짓하고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백화점이 영업을 끝낸 시간에 왔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때 온 건 처음이었다. 지호는 매장을 둘러보는 대신 곧장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헌터관의 최상층에서는 주기적으로 던전 아이템의 경매가 열린다.

    이곳 청람 백화점의 헌터 경매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많이 거래되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SS급 헌터인 주이원과 청람 길드가 이 경매장에 독점으로 아이템을 거래해 주고 있었으니까.

    특히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거래되는 특별 경매는 보름에 한 번씩 이루어진다.

    오늘이 마침 그 특별 경매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호는 경매장에 마석을 출품하고 지정받은 자리로 향했다.

    경매장에서 내준 자리는 구석에 자리한 VIP 대상의 테이블석이었다.

    경매장 측에서는 지호의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도록 배려해 줬다. 누군가와 마주쳐 소란을 끌고 싶진 않았기에 지호는 배려를 마다하는 대신 조용히 앉았다.

    주변의 자리를 채운 건 모두 높은 등급의 헌터다. 얼핏 봐도 하나같이 귀한 아이템을 주렁주렁 걸쳤다.

    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가장 처음으로 나온 아이템은 C급의 장비 아이템이다. 특별 경매라고 해서 무조건 고등급의 아이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여기 참석한 헌터는 길드장이거나, 최소한 자신의 팀을 꾸려 둔 경우가 많다. 길드원이나 팀원에게 줄 만한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입찰했다.

    지호는 그들과 달리 한동안 얌전히 앉아서 구경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보리색의 짧은 천 방어구가 올라온 순간 지호의 눈이 반짝였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지호는 허리를 똑바로 세워 앉았다.

    “속초 제2 공(空)속성 던전의 비행 몬스터가 드랍한 C급 방어구로 민첩 10의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사이즈 조절이 되지 않는 아이템이라 신장 170cm 이하의 각성자분께 잘 맞을 것 같습니다.”

    “C급의 민첩 상승 방어구가 250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가격이 소소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지호는 아이템창을 읽어 내렸다.

    information

    볼루레스의 염원

    등급A
    설명볼루레스의 깃으로 만든 가벼운 겉옷. 착용자의 몸을 가볍게 해 준다. 민첩 10 상승. 착용 시 두 시간마다 사용자의 피로를 50% 경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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