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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스템(10) (14/283)

2. 시스템(10)

안정화가 마력을 소모한다더니, 끄고 나니까 전체 마력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이해] 스킬을 사용해서 간호사나 의사, 누나의 마력을 확인한 결과 일반인은 1에서 3 정도. C급 보조계인 누나도 고작 67 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1402는 아주 높은 수치였다. 이 마력을 [별의 축언]을 써서 죄다 선태웅에게 마력으로 때려 박아 살아남았다.

스킬 목록 창을 닫는 신지호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이전 자신의 스킬을 설명할 때는 늘 자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하나만 떠도 좋을 스킬이 여러 개 생겨났다. 게다가 스킬간의 상성도 좋았다.

스킬도 스킬이지만, 시스템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당장 이 능력에 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믿어 줄 것 같지는 않다. 신지호 자신조차 이게 진짜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만약 믿어 주더라도 괜히 타인의 경계를 사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지호는 조용히, 혼자 시스템을 활용해 나가며 자신의 스킬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바뀐 스킬만 있으면 신지호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거든. 진짜 죽다 살아났지, 뭐.”

“…….”

“그런데 새로운 스킬이 생기더라. 새 스킬 덕분에 살았어. 이제 이것만 있으면…….”

“죽는 줄 알았다면서 뭐가 그렇게 신나.”

“안 죽었으면 된 거지.”

“되긴 뭐가 돼. 또 업혀서 겨우 나온 주제에.”

이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잔뜩 들뜬 지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어, 하고 올려다본 주이원의 얼굴빛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차디찬 온도로 내려가 있었다.

늘 시답잖은 장난만 해 대서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상대는 지구에서 유일무이한 SS급의 헌터다. 주이원이 날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마력이 팽팽하게 실체화해 피부가 따끔거렸다.

침대에 올라앉아 있던 주이원이 부담스러울 만큼 거리를 좁혔다. 과한 접근이 부담스러워서 뒤로 몸을 빼려던 순간, 이원이 지호의 팔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아차 하는 사이에 침대 위로 쓰러진 지호의 위로 이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래에 깔린 자세는 당하는 이에게 위압감을 선사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신지호의 속이 비틀렸다.

‘누가 쫄 줄 알고?’

겁을 주려는 거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지호는 진득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이원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신지호.”

“왜.”

“이제 헌터는 그만둬.”

“……뭐?”

“헌터 그만두라고. 먹고살 걱정 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무슨 상관이야? 헛소리하지 말고…….”

“그만두라면 그만둬. 당장.”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이원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났다. 스킬을 쓸 때 나타나는 주이원의 특징이었다.

SS급 헌터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압도적인 기운이 방을 가득 채운다.

피식자를 눈앞에 둔 포식자처럼.

혹은 필멸자를 눈앞에 둔 불멸자처럼.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위에서 지호에게로 떨어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응당 두려움을 느낄 만한 기세였다. 긴장해서 주저앉아 오줌을 싸지를지도 모를 만큼 사나운 기세와 공포.

하지만 지호는 그냥 빡쳤다.

화가 난 지호는 이원의 턱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머리에 닿는 건 단단한 턱뼈가 아니라 이원의 손이었다. 지호를 가볍게 막아 낸 이원이 코웃음 쳤다.

“괜히 고집부리면서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그만둬. 길드장 노릇 1년쯤 했으면 충분히 즐겼잖아?”

“넌 무슨 말을 그렇게 X같이 하냐?”

“발끈하지 말고 말 들어.”

“너, 지금 나한테 명령하냐?”

지호는 상대를 당장 물어뜯을 기세로 험악하게 물었다. 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이 충분한 답이었다. 지호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꺼져.”

“신지호.”

타이르는 이원의 목소리는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지호는 이원을 떨쳐 내려 발버둥 쳤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지호를 본 이원이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

결국 이원은 지호를 놓고 조금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나가지 않고 침대 위에 앉아 있다. 평소에는 가란 소리 안 해도 쏜살같이 나가던 놈이 왜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지라고! 당분간 찾아오지 마.”

“미안.”

“당장 나가라고 했어. 내가 나갈까?”

지호가 맞고 있던 수액을 당장이라도 빼 버릴 것처럼 시늉했다. 결국 이원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나갈게. 하지만… 헌터는 그만둬, 너랑 안 어울려.”

“닥쳐, 좀.”

“네가 열심히 해 봤자 욕만 더 먹어. 알면서 왜 쓸데없는 짓을 해? 정 헌터가 계속 하고 싶으면 내 아래로 들어오든가.”

이원은 지호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계속 제멋대로 말했다.

결국 화가 난 지호는 대답 대신 옆에 있던 베개를 던졌다. 베개는 주이원에게서 튕겨져 나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알았어, 갈 테니까 진정해.”

한숨을 쉬고 나가던 주이원이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무슨 일입니까.” 하는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곧 문이 닫혔다.

신지호는 이불을 홱 뒤집어쓴 채 머리끝까지 뻗친 열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드디어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기뻤는데, 누나고 주이원이고 죄다 찬물을 끼얹는다. 남의 설명은 제대로 들어 볼 생각도 안 하고.

둘 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지호가 원하는 건 보호가 아닌 지지와 응원이었다.

지호는 이불 속에서 계속 씩씩거렸다.

일단 진정하자. 진정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거다. 차근차근 증명해서 자신의 능력을 알려 나가면 이번에야말로 분명 성공할 수 있다.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그러나 진정하려던 노력이 효과를 보기도 전에 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지호는 이불 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불과 몇십 초 전 밖으로 나갔던 주이원이었다. 지호는 베개를 던졌지만 이원은 가볍게 받아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좀 나가라고!”

“잠깐만, 봐야 할 게 있어.”

“나가서 보면 되잖아.”

“너도 봐야 해.”

“뭘?”

대답 대신 이원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채널을 돌린 곳은 뉴스 채널이었다.

신지호 전용 VIP 병실의 커다란 TV 화면에 가득 찬 건 선태웅이었다.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선태웅이 제대로 요양을 하기도 전에 급하게 벌인 기자 회견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기자들은 엄청나게 흥분해 있었고, 선태웅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침착했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서 TV를 떨떠름하게 지켜보던 신지호의 얼굴이 차츰 경악으로 물들었다.

헌터 스페이스

제목: (속보)선태웅이 던전 깬 거 전적으로 신지호 덕분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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