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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스템(9) (13/283)
  • 2. 시스템(9)

    사방에서 난리가 난 그때, 신지호는…….

    “헌터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와, 당장!”

    누나의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지호의 누나인 신지혜는 보조계 C급의 헌터이자 청람의 부길드장이다.

    헌터로서 신지혜의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헌터 업계에서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신지혜는 청람에 재직 중이었다. 그러다가 2년 반 전에 우연한 계기로 각성했다.

    각성 후 C급 헌터의 자격증을 얻자마자 신지혜는 빠르게 원래의 일을 그만두고 청람 길드를 설립했다.

    현재 많은 길드의 운영 방식은 신지혜의 방식에 기반을 두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헌터 협회의 설립에 크게 관여했고, 헌터 업계의 수많은 불문율 또한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주이원을 향한 견제를 막고, 수많은 반대를 꺾고 SS급으로 승급하도록 조율하기도 했다. 그렇게 SS급 헌터가 된 주이원을 신지혜는 완벽하게 활용했다.

    청람이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된 데에는 주이원만큼이나 신지혜의 공도 컸다.

    덕분에 신지혜는 C급 헌터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많은 사람의 우상이었고, 낮은 등급 헌터의 이상이다.

    신지혜는 자신의 인지도 또한 충분히 이용했다. 결단력 있고 냉철한 보스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했다. 실제 성격도 냉정하단 소리를 들을 만큼 차갑고 이성적인 편이라 어려운 것도 없었다.

    실제로도 청람 길드 신지혜의 산하에서 일하는 길드원들은 그녀가 이성을 잃은 모습을 거의 본 적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신지혜였다.

    하지만 지금의 신지혜에게서는 평소의 냉철한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이지만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툭하면 이유 모르게 아팠던 신지호는 신씨 일가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늦둥이인지라 나이 차이도 많이 나서 반쯤은 자식 같기도 했다.

    신지호가 3년 전 원인 불명의 이유로 쓰러져 2년이나 의식이 없던 동안, 집안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호가 깨어났을 때는 난생 처음으로 감동의 눈물마저 흘렸다.

    여린 아이이니만큼 곱게 키우고 싶은 것이 누나의 마음이다. 헌터 일도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 어쩔 수 없이 허락했을 뿐이었다.

    지호의 생존이 확인되기 전까지 신지혜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는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버럭 소리치다가 기어이 눈물 맺힌 눈가를 닦는 그녀를 보며, 지호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가 모르셔서 다행이지, 아셨으면 쓰러지셨을 거야. 너 무사히 나온 거 알고도 놀라시더라. 게다가 지금 여론이 아주… 하, 이제 어머니 속 안 썩이겠다며?”

    “미안해, 누나. 그런데…….”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야!”

    “아니, 근데 나 진짜 스킬 센 거 생겼거든?”

    “시끄럽고, 얘만큼 센 거 아니면 그냥 들어와!”

    발끈해서 소리친 신지혜는 급격히 어두워진 신지호의 얼굴을 보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지혜의 기억 속에서 이원과 지호는 늘 세트처럼 붙어 다녔다. 그 나이 또래 애들답게 싸우기도 잘 싸웠지만 금방 화해하고, 또 싸우고, 같이 노는 걸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성적 경쟁이 붙으며 둘 사이에 묘한 불꽃이 튀기도 했다. 연신 성적으로 진 지호가 한창 예민한 시기에 이원을 피하기도 했었다. 뭐, 1년쯤 지나니 다시 투닥거리며 붙어 다녔지만.

    예전의 경쟁이야 어차피 애들 싸움이고, 둘 다 좋은 결과를 낳았으니 훈훈하게 지켜보았지만…….

    지금은 지호가 불쌍한 상황이 되었으니 말을 조심할 수밖에.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얘’, 주이원이 그제야 신지혜를 말렸다.

    “신지혜 헌터, 일단 물러나서…….”

    “지금 나 지호 누나로 와 있는 거지 청람 부길드장으로 있는 거 아니다, 주이원.”

    “……지혜 누나, 제가 지호한테 말 잘해 볼게요. 길드 쪽 바쁜 거 아시잖아요?”

    굴하지 않고 나서는 주이원의 말투는 정중하지만, 그녀를 보는 눈빛은 다분히 명령을 내리는 것에 가깝다.

    잠시 자신의 길드장을 쏘아보던 신지혜가 사납게 얼굴을 문질렀다.

    어렸을 적의 주이원은 장난스럽지만 다정한 애였다. 얹혀산다는 자각이 있어서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다가도 결정적일 때 한 걸음 물러서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헌터로 각성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주이원은 자신 외의 인간을 하찮게 본다.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타인을 얕잡아 보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기업의 총수를 상대할 때처럼 이미 오랜 시간 위에 군림한 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올해 스물네 살인 주이원이 갑자기 그런 관록을 갖게 됐을 리는 없다.

    신지혜는 SS급 헌터의 위압감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리라고 추측했다.

    어쨌든, 이원의 말이 맞다. 여기서 느긋하게 있을 시간은 없었다.

    도심 한복판에 발생한 던전은 현대의 가장 큰 재앙이다.

    한 번 발생한 던전은 곧장 사라지지 않고 게이트는 계속 같은 자리에 남는다.

    공략만 주기적으로 해 준다면 문제가 없다지만, 당장 안전하다고 해서 폭발할지도 모르는 폭탄을 옆에 끼고 사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이번 일에 제대로 얽힌 노네임은 소형 길드라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웠다.

    평소에 동생이 원치 않아 길드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지호가 먼저 도움을 청해 왔다. 물론 신지혜는 기꺼이 도와줄 예정이었다.

    “하아, 그래……. 가 봐야지. 바쁘긴 하니까.”

    결국 신지혜가 두 손 들었다. 심란한 눈빛의 지혜는 위협적인 기세를 가라앉히고 지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누나가 왜 그러는지 몰라 눈만 깜박거리는 동생을 가볍게 안아 주었다.

    “어쨌든… 첫 던전 공략하느라 고생했어.”

    “어, 응……. 고마워.”

    “지금은 푹 쉬고, 잘 생각해서 헌터 그만두고 집에 들어와.”

    “일단 쉬기만 할게.”

    “어휴…….”

    마지막까지 으름장을 놓던 신지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곧, 바쁘게 걷는 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둘만 남게 되자 이원은 지호가 누운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지호가 슬그머니 물러서자 이원은 더욱 가까이 바싹 붙는다. 그리고 지호가 피할 새도 없이 꽉 끌어안았다.

    “뭐, 뭐야.”

    “누나랑도 안았잖아. 나랑도 안아.”

    “너랑 누나랑 같냐? 저리…….”

    질색하며 저리 가라고 말하며 밀치던 지호의 손이 멈췄다.

    멀쩡하게만 보이던 이원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한복판에 갑작스레 던져진 사람처럼, 나약하게.

    정작 가족인 누나조차 지호의 생존을 확인하고는 이렇게까지 떨지 않았었는데…….

    지호가 쭈뼛거리며 손을 든 채 제대로 밀어내지 못하자 이원이 허공에 뜬 손을 낚아챘다. 낚아챈 손을 이원이 멋대로 제 허리에 두른다. 그리고 자신은 지호를 다시 끌어안는다.

    지호는 엉겁결에 한 손으로 이원의 허리를 잡았다가 살짝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그러자 이원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 새끼 힘 더럽게 세네…….’

    누가 보면 죽은 연인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줄 알겠다. 지호는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칠게 뛰는 이원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얌전히 몸을 기댔다.

    연인은 아니지만 형제 같은 존재니까.

    이렇게 꽉 끌어안은 적은 없어도 어깨동무 정도야 숱하게 했다. 죽다 살아났으니 그걸 감안하면 이 정도 접촉은 참아 줄 만했다.

    두 사람은 제법 오랜 시간을 끌어안고 있었다.

    5분, 아니 10분쯤…….

    인내심이 떨어진 데다 이원이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힘들어진 지호가 이원을 두드렸다.

    “야, 이제 그만…….”

    “…….”

    “숨 막힌다고.”

    “후우…….”

    이원은 지호의 목덜미에 한숨을 내뱉으며 느릿하게 떨어졌다.

    이원의 숨이 닿은 곳에 소름이 돋았다. 지호가 소름이 돋아난 목을 문지르는 동안, 이원은 평소 바른 자세로 다니는 놈답지 않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지호를 향한 뜨거운 눈빛이 낯설었다. 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야, 내가 죽은 것도 아닌데…….”

    “죽을 뻔했잖아.”

    “안 죽었으면 됐지……. 괜히 오버하지 말고 이제 내려가.”

    “지호야.”

    “왜.”

    뚱하게 대꾸하는 지호에게 이원은 달래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스킬이 생겼다며.”

    “응.”

    “무슨 스킬이 생겼는데? 선태웅이 한 말로는 네가 쓴 스킬로 본인이 몇 배나 강해졌다던데.”

    “……말 그대로야.”

    “그렇게 말하면 어떤 스킬인지 모르겠잖아.”

    낮게 부르며 응시하는 눈빛이 집요하다. 목소리만 다정할 뿐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에 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까지 말해도 될까?

    자신의 스킬에 관해 다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 원래 헌터끼리 서로 밑천 다 까는 것보단 적당히 숨기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물론 이원은 지호와 경쟁할 만한 사이는 아니다. 어디 가서 가볍게 입을 털어 댈 놈도 아니고.

    하지만 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고민한 지호는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날 강화하는 게 아니라 남을 강화하는 스킬이 생겼어.”

    “던전은 네 스킬 덕에 탈출한 거야?”

    “뭐, 그렇지……. 이건 꽤 쓸 만할 것 같아.”

    사실 지호에게 생긴 스킬은 하나가 아니었다. 지호는 괜히 시선을 돌리는 척, 옆쪽을 바라보며 시스템을 불러 보았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네모난 창이 허공에 주르륵 떠오른다. 지호는 그중 자신의 스킬이 적힌 목록을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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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화(Lv.1)

    등급EX
    설명현재, 조건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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