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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스템(8) (12/283)

2. 시스템(8)

보스 몬스터는 태웅의 등장에 당황하여 발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이 뭔가를 하기 전에 지져 버려서 차단할 수 있었다.

선태웅은 순식간에 압도당하는 적, 눈앞의 스킬이 만들어 낸 불길 그리고 간신히 서 있는 신지호를 차례로 보았다.

여기저기 피를 묻히고 창백한 낯빛의 신지호 주변으로 계속해서 마력이 일렁인다. 일렁이는 마력은 선태웅의 마력이 바닥날 때마다 그쪽으로 흘러와 다시 채워 준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서 선태웅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신지호.

고작 B급에 불과한 신지호가 기적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 가던 녀석이…….

‘아니, 이제 무능한 게 아니지.’

신지호의 마력을 받은 지금의 선태웅은 S급 헌터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타인을 이만큼이나 강화해 줄 수 있다면 신지호는 더 이상 무능한 B급 헌터가 아니다.

전 세계 최초의 각성자인 신지호가 등급 판정을 받기 전, 언론이 얼마나 과열되어 떠들어 댔는가?

사람들의 수많은 기대가 신지호에게 쏟아졌다. 기대가 박살 난 순간 대중은 더더욱 매섭게 신지호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이제, 던전을 나간다면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저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던전을 빠져나가야겠지만…….

‘할 수 있다.’

죽는 게 시간문제였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죽이는 게 시간문제다.

그토록 모두가 무시하던 B급 헌터 덕분에.

선태웅은 조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 들던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태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던 존재가 이제는 하찮은 존재로 보였다.

선태웅은 온 힘을 다해 화염을 폭발시켰다.

* * *

일반 시민이 모두 대피한 방배역 인근에는 기자들이 바글바글했다.

던전이 출현하고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면 민간인 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되기에, 주변의 기자는 F급이라도 모두 각성자다.

물론 그들도 게이트에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한다.

게이트에 바짝 붙어 대기 중인 사람은 청람 길드의 길드장인 주이원과 부길드장인 유경우, 두 사람뿐이었다.

만에 하나 채집형 던전이 들어간 사람의 죽음으로 열리게 된다면, 가장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이 바로 진입하게 된다.

유경우는 주이원의 옆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지만 태연해 보이는 건 겉모습뿐. 사실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혜야, 어쩌자고 이 미친놈을 나한테만 던져뒀냐!’

유경우는 자신과 같은 청람의 부길드장이자 이혼한 전처에게 속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원망하고 있는 대상인 신지혜야말로 지금쯤 속이 바짝 타들어 가고 있으리란 건 잘 안다. 하지만 살기등등한 청람의 길드장 옆에 서 있으면 누구든 탓할 수밖에 없다.

주이원의 주변으로 억누른 마력이 시각화되어 주변을 일렁인다. 심해처럼 짙푸른 마력이 주이원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마다 유경우는 예전에 보았던 공포 영화 속 살기등등한 귀신을 떠올렸다.

아니, 차라리 귀신이 낫다. 귀신은 대량 학살을 하거나 테러를 저지를 수 없으니까.

물론 주이원이 지난 3년간 해 온 업적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최초의 던전 공략자, 주이원.

게이트 너머를 미지의 공간으로 여기며 모두가 두려워만 하던 때에 주이원은 단신으로 던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죽어서 나오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혼자 던전을 공략하고 공략법을 발견했다.

아직 각성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던 오합지졸 시절에, 주이원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던전을 공략했다. 여전히 수많은 나라에서 그는 영웅이었다.

방치된 던전에서 발생하던 문제를 해결하고, 던전과 관련된 정보나 아이템을 독식하는 게 아니라 아낌없이 풀었다. 현재 던전과 관련된 지침 대부분은 주이원과 청람 길드가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던전 사태 초반에 도시 문명이 파괴되기 전에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이원의 덕이 컸다.

주이원이 해 온 일들은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주이원을 영웅으로 부른다.

사람들은 저 녀석의 멀쩡한 낯짝에 속아 그 실체를 모른다.

유경우가 몇 년간 봐 온 주이원은 ‘선량한 청람 길드장’과는 정반대의 인간이었다.

차라리 주이원은 쿠데타를 일으켜서 독재 국가를 세워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헌터들을 갈아 넣는 쪽이 어울린다.

명령받는 건 죽어도 싫어하고, 명령하는 건 좋아하고, 모든 걸 자신의 통제하에 두는 걸 좋아하니까.

대체 멀쩡하게 사랑받고 자란 놈이 뭐가 그리 삐뚤어져서 이딴 성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이원 개인만 두고 보면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주이원이 남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부지런히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가 된 것도, 얌전히 청람의 길드장이 된 것도, 모두 신지호 때문이었다.

정작 그 애정을 받는 당사자는 ‘쟨 맨날 저래’라며 실없는 장난 취급하지만.

유경우가 볼 때 주이원이 진지하게 다가가지 않는 건, 주이원 본인도 자신이 미친놈인 줄 알아서 자제하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신지호는 주이원이라는 맹수, 아니 괴수를 얌전히 길들이는 목줄이다. 

신지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주이원은 인류의 구원자 겸 영웅에서 세계 최악의 재앙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지호야, 제발 멀쩡히 나와라.’

유경우는 옛 처남이자 아끼는 동생, 세계 최강의 재앙을 온순하게 길들이는 목줄인 신지호의 무사를 진심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지호가 무사히 나올 가능성은 낮다. 사실상 없다고 봐야 했다.

감정 능력이 있는 헌터가 판정한 이 던전의 등급은 S급. 최소 S급 헌터 두 명은 끼워 넣어야 공략할 수 있었다.

신지호와 함께 갇힌 선태웅은 분명 A급 중에서도 유능한 헌터지만 S급에는 못 미친다. 던전이 A급만 되어도 희망을 걸어 보련만. 이 던전에서 시체 두 구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실 최악의 상황임을 생각하면 주이원은 생각보다 멀쩡한 편이었다. 지금쯤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지호는 안 죽습니다.”

유경우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주이원이 사람 하나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유경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그래. 무사히 나오면 좋겠다.”

“무사히 나오면 좋은 게 아니라, 아직은 안 죽을 거라고요.”

“…….”

“좀 다칠 수는 있겠지만 무사히 나올 겁니다.”

“음, 그래.”

유경우는 어색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가끔, 주이원은 맥락 없는 소리를 아주 당당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들 말린 던전 최초 공략에 뛰어들 때도, 도시를 버리고 대피하자는 말을 일축하며 균열의 예측이 가능하리라고 호언장담할 때도.

그 외의 여러 사태에서 매번, 주이원은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굴었고 정말 그의 말이 그대로 맞아 들었다.

그런 선구안이 있는 주이원이니 청람 길드는 길드장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랐다. 주이원의 말을 들어 손해 볼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번만은 유경우도 주이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다.

실제로 주이원도 말만 확신하고 있을 뿐, 조금 전부터 지나치게 주먹을 세게 쥔 탓에 몇 번이나 까진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재생하길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주이원의 말대로 신지호가 무사히 살아 나왔으면 좋겠지만…….

침묵하던 주이원이 손끝을 움직였다. 유경우는 옆에 있는 미친놈이 날뛰면 바로 막기 위해 무기를 꺼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주이원은 날뛰기 위해 움직인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을 삼켰던 던전이 다시 개방되고 있었다.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던전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가두기 위해 흡입한다. 그러니 처음 나타났을 때 목격됐던 것처럼, 게이트의 입구가 한순간에 확장되어 벌어져야 하는데…….

허공에서 일직선으로 쭉 찢어진 입구 겸 출구는 무척이나 안정적으로 서서히 벌어졌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점점 벌어지고 확장되는 입구를 본 주변 헌터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던전, 정상 개방됩니다!”

정상 개방.

놀란 유경우의 눈은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확장됐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

정말로, A급인 선태웅과 B급인 신지호가 안의 보스 몬스터를 공략했단 말인가?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새로운 걱정이 동시에 피어오른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 해도 두 사람이 멀쩡한 꼴일 리 없을 테니까.

완전히 확장된 문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절뚝이며 걸어 나왔다.

쓰러져 축 늘어진 신지호를 선태웅이 업고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은 선태웅와 달리 신지호는 등 쪽의 옷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이번에도 피를 토했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하지만 분명, 선태웅은 물론이고 신지호도 살아 있다. 헌터인 유경우는 살아 있는 두 사람의 기척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호야!”

유경우가 안도와 환희의 비명을 지르는 그 순간, 주이원은 불쾌하단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성큼성큼 다가간 주이원이 선태웅에게서 신지호를 빼앗아 자신이 안아 들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선태웅은 잠시 반항했다. 하지만 반쯤 의식 없이 했던 행동이었는지,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그대로 픽 쓰러진다.

쓰러진 태웅을 무시한 채 이원은 쓰러진 지호의 상처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그를 꽉 끌어안았다. 답지 않게 떨리는 손으로 지호를 매만지던 이원이 고개를 숙인다.

이원과 지호의 이마가 조심스럽게 맞닿는다. 가느다란 지호의 숨결이 이원의 입술을 간지럽히고 나서야 이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호야…….”

SS급의 헌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약하게 떨리는 목소리.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을 멍하니 보고 있던 유경우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30초만 더 내버려 두면 키스라도 퍼부을 것 같은 각도와 거리다.

“히, 힐러, 어서!”

여러 가지 의미로 서둘러서 힐러를 부르자, 부정적인 상황을 점치며 멀찍이서 대기하던 힐러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믿기지 않는 사태에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흰빛이 노을이 지는 주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대사건이었다.

A급 헌터와 B급 헌터 단둘이, 무려 S급 던전을 공략한 것이다.

헌터 스페이스

제목: 선태웅 진짜 대박

등급 재측정해야 하는거 아니냐 어케 둘이서 스급 던전을 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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