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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스템(1) (5/283)
  • 2. 시스템(1)

    “들어가도 될까요?”

    문밖에서 들린 건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다. 지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곧장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들어온 사람은 노네임 소속의 헌터인 허소리였다.

    허소리는 올해 스물다섯 살, 지호보다 한 살 많은 평범한 C급의 전투계 헌터다.

    C급 헌터는 어느 길드를 가든 비교적 흔한 편이지만, 노네임에서 허소리의 가치는 남달랐다. 본인이 원래 해야 할 일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추가로 일한 만큼 보너스를 얹어 줬지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만큼 피로에 절어 있었으니까.

    다음번 재계약 때는 가능한 만큼 최대한 더 좋은 대우를 해 주려고 마음먹은 고마운 길드원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매번 조금 퀭한 낯이던 허소리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달리 밝았다. 평소에는 점심시간이나 퇴근 전에나 볼 수 있는 생기가 맴돌고 있었다.

    “길드장님, 주이원 헌터 여기 왔다 갔죠?”

    “아, 네. 방금 나갔는데 마주쳤나 봐요.”

    “네, 딱 마주쳐서 인사했어요!”

    허소리는 주이원을, 정확히는 주이원의 얼굴을 굉장히 좋아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팬클럽까지 가입한 모양이던데.

    원한다면 개인적인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했을 때 질색하며 거절한 걸 보면 정말 얼굴만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얼굴만 좋아해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라, 소리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굉장히 들떠 있었다.

    “와, 대박. 오늘 진짜… 착장 장난 아니던데. 원래도 잘생겼지만 오늘은 무슨 상견례 가는 것 같았어요. 어디 행사라도 갔다 왔대요?”

    “각성자 관련 행사 갔다 왔을걸요. 대한민국의 훌륭한 헌터상인가? 그거요.”

    1년에 한 번, 우수한 활약을 보여 준 헌터에게 주는 헌터상은 상패와 소정의 상금을 준다.

    상금이야 소소한 수준이지만 상의 권위는 대충 만든 듯한 이름에 비해 높아서, 헌터들 사이에서는 제법 뜨거운 이슈가 되는 상이다.

    당연하게도 이 상을 처음 탄 사람은 주이원이고, 그 후로도 매년 이의 없이 상을 꼬박꼬박 받고 있었다.

    지호의 별것 없는 시선에 소리가 뜨뜻미지근한 묘한 시선을 보냈다.

    “아, 그렇구나. 두 분은 여전히 사이좋으시네요.”

    “……대체 어디가요? 그리고 그 녀석, 여기 5분도 안 있다가 가 버렸거든요?”

    “바쁘니까 그렇죠. 이해하세요. 남친이 바쁘면 섭섭하시겠지만…….”

    “야.”

    지호의 농담 섞인 경고에 허소리가 깔깔 웃었다.

    “으하학. 아무리 부정해도 말이죠, 인터뷰 봤어요?”

    허소리가 활짝 웃었고 신지호는 그녀에게 미소를 빼앗긴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걔는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원래 천재 중에 기인이 많다잖아요.”

    “걔는 각성하기 전부터 좀 이상했어요.”

    “그러면 정말 반했나 보죠. 우리 길드장님도 얼굴은 진짜 끝내주니까.”

    “……그 정도는 아닌데요.”

    “아니긴요? 헌스 놈들 다 까도 우리 길드장님 얼굴은 못 까는데.”

    “…….”

    “저 처음에 봤을 때 완전 충격받았다니까요? 그리고 길드장실 나와서는 더 충격받았어. 아니, 다른 사람이 죄다 오징어로 보이는 거예요. 출근하고 한 한 달은 얼굴 볼 때마다 놀라웠는데, 그래도 매일 봐서 적응된 거지……. 지금도 봐. 와, 잘생겼다!”

    뜬금없는 얼굴 칭찬에 조금 부끄러워하는 지호에게, 소리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이건 백 퍼센트 놀리는 거다.

    만족스럽게 신지호를 놀린 허소리는 뒤늦게 점잖은 척했다. 그리고 비겁하게도 신지호가 불평하기 전에 공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음, 길드장님이 쓰러지시고 나서 부길드장님이 사태 수습 마치셨고, 헌협에 보고까지 작성해서 올렸고요. 언론은 크게 눈에 띄는 건 없네요. 크게 신경 쓰실 사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음, 고마워요.”

    “길드 들어가 보실 건가요?”

    “……네. 아직 퇴근 시간 아니니까.”

    “그러실 것 같아서 퇴원 수속도 해 뒀고요. 바로 가시면 돼요.”

    한두 번 뒤치다꺼리를 도와준 게 아닌지라 일 처리가 빠르다. 지호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미소 지었다.

    “네. 고생했어요.”

    “에이, 고생은요. 그런데 이 장미는 뭐예요? 설마 청람 길드장님이 준 거예요?”

    “네. 허소리 헌터가 가져가요.”

    “에이, 길드장님에게 드린 꽃을 제가 어떻게 가져요. 꽃 선물 정도는 받아도 좋지 않아요?”

    “그건 그런데, 둘 곳도 없고……. 전 꽃 같은 거 관리도 잘 못하고.”

    “그럼 제가 길드 로비에 꽂아 둘게요. 마침 봄이니까 싱그럽고 좋겠네요.”

    “그…….”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하려다가, 신지호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어도 남의 성의를 휴지통에 처박는 건 신지호의 성격상 좀 꺼려졌다. 게다가 꽃에는 죄가 없다.

    신지호는 처치 곤란인 선물을 길드 로비에 박아 두는 것으로, 그날의 고민을 마쳤다.

    * * *

    다음 날 출근하는 길, 신지호는 허소리에게 꽃을 건넸던 어제의 결정을 조금 후회했다.

    허소리는 거대한 장미 꽃다발을 해체해 길드 로비 곳곳에 장식해 두었다.

    그런데 주이원이 놓고 간 꽃다발이 어찌나 크고 풍성하던지, 로비 한가득 흐드러진 장미 향이 아찔하리만치 진했다. 꽃다발 하나가 아니라 장미 정원을 그대로 옮겨 온 것처럼.

    “이거 향이 너무 진한데…….”

    “좋지 않아요?”

    소리는 자신이 꾸며 둔 결과물이 퍽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확실히 예쁘기는 하지만…….

    “뭔가 수상쩍잖아요. 꺾어 둔 장미가 이렇게까지 향이 나나?”

    “뭐, 보통 장미라면 이 정도로 향이 진하진 않긴 하죠……. 던전산 장미인가?”

    “장미가 나는 던전도 있어요?”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지 않아요? 청람 길드장님이 다니는 던전이 몇 갠데.”

    “그건 그렇지만 처음 들어 봐서.”

    “랜덤하게 발생하는 식물일 수도 있고요.”

    “으음.”

    허소리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장미에 ‘메이드 인 던전’이라고 라벨이 붙은 것도 아니니 알 방법이 없었다.

    지호는 이원에게 이 장미 어디서 난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오늘 주이원은 던전 공략에 들어가 연락을 받지도 못할 테니까.

    흐드러지게 피어 존재감을 뿜어내는 장미는 분명 아름다웠다. 하지만 볼 때마다 괜히 주이원이 생각나서 심란했다.

    헌터로서의 주이원을 생각할 때면 늘 조금은 심란해진다. 더는 라이벌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감각은 그와 1등을 다투던 때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한참 앞질러 간 주이원을 더는 뒤쫓을 수 없게 될까 봐.

    다행히도 오늘은 사무실에서 종일 일하는 일정이 아니라 심란한 장미와 멀어질 수 있었다.

    그래도 오전에는 흐드러진 장미 향을 맡으며 서류 작업에 매진해야만 했다.

    지호는 오전 내내 서류 위의 숫자를 노려보았다.

    노네임은 시작부터 평판이 바닥을 찍었던 길드다.

    어지간한 조건을 제시해서는 아무도 노네임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괜찮은 헌터를 영입하기 위해서 지호는 가진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도 건재한 이 현대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돈이 급한 헌터들은 지호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노네임과 단기로 계약했다.

    단기로 계약한 기간인 1년이 거의 지나가고 이제 재계약을 할 때가 다가왔다. 그리고 1년 계약을 한 상당수의 헌터가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

    물론 지호는 당연히 인상해 줄 생각이었다.

    두 배에서 세 배에 가까운 인상 요구를 보기 전까지는.

    높은 연봉을 제시한 헌터들이 정말 그만큼 받을 만한 실력인가? 하면 절대 아니다. 이미 지호는 같은 등급 대비 최고의 연봉을 지불했다. 이들이 다른 길드에 찾아간다면 지금보다도 더 적은 연봉을 받을 것이다.

    다들 몰라서 이런 고액의 연봉을 요구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지호에게 배짱을 부리는 거다. 어차피 지호가 이들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

    그렇다고 재계약을 모두 포기하고 새 길드원을 모으자니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헌터에게 노네임 소속은 조롱의 대상이다. 지난 1년간 꾸준히 길드원을 추가 모집하려고 시도했지만 지원 자체가 거의 없었다.

    다소 과한 조건이라도 길드를 유지하려면 이들을 잡는 게 낫다.

    협상해 보면 어느 정도 조절할 수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호가 고민하는 건 단지 이들의 요구가 과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한 조건을 내건 헌터는 대부분 신지호를 싫어하는 이들이었다. 길드장인데도 은근히 무시하고, 피하고, 뒤에서 욕을 하는 부류. 지호가 대응하지 않으니 감추지도 않는다.

     오히려 허소리처럼 신지호에게 우호적인 길드원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요구를 해 왔다.

    악의를 품은 이들을 계속 붙잡아 두면 길드 내의 분위기는 악화된다.

    남의 일이라면 당연히 계약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일이 되니 우유부단해진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열심히 가꾸는 길드는 평판 최악의 누더기. 이걸 유지하기 위해 또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

    기운을 내 보려고 해도 자꾸만 회의감이 몰려왔다.

    지호는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허망하게 오전을 날려 버렸다.

    우울한 마음으로 점심을 배만 채우는 수준으로 간단하게 먹었다. 다 먹고 슬슬 외근할 준비를 시작하자 임승주가 그걸 보고 눈치를 주었다.

    “오늘도 외근 나가십니까?”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신지호는 거의 매일, 휴일 없이 외근을 나가고 있었으니까.

    “네, 그래야죠.”

    “그럼 힐러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언뜻 들으면 정중한 임승주의 말에 신지호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슬쩍 올라갔다.

    헌터의 외근은 부상을 동반할 위험성이 높다. 때문에 힐러를 대기시키는 게 기본 원칙이다.

    따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을 굳이 강조하는 건 약골 신지호에게 힐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빈정대는 뜻이다.

    임승주도 1년 계약이었으면 이번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을 것 같은데, 그는 3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2년은 더 볼 귀한 A급 헌터인데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길드 내의 많은 헌터가 임승주를 따른다.

    부길드장인 임승주가 신지호를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니, 다들 눈치도 보지 않는 것이다.

    전력으로서는 최고지만, 길드 운영 면에서는 최악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때려치우지.’

    지호는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물론 장래 유망한 A급 전투계 공격형 헌터인 데다가 청람 찬스로 간신히 영입한 임승주가 진짜로 그만둔다고 하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야 할 쪽은 지호였다.

    결국 갑의 위치에서 을처럼 조아리며 신지호는 어물어물 입을 다물었다.

    지호는 심신의 안정을 위해 단말기를 꺼냈다. 그리고 미튜브에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을 재생했다. 인터넷을 거의 하지 않는 지호가 유일하게 보는 게 동물 동영상이었다.

    임승주와 정반대로 순하고 착한 아기 고양이가 허접스럽게 바닥을 굴렀다. 낑낑대며 구르다가 맥락 없이 순식간에 잠에 빠진다.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다행히도 금세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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