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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64화 (64/102)

64화

율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후환이 두려워 그러지 못하였고, 하는 수없이 이락에게 끌려 온천으로 갔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락은 투호를 챙겨 왔다. 그는 온천 앞 빈터에 통을 세우고 화살을 뽑았다. 청색의 화살 열 개는 자신이 갖고 홍색은 율에게 건네었다.

진짜 투호를 하는 거였구나. 오는 내내 했던 걱정이 무색해지고 근심이 사라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용궁에서도 투호 놀이가 흔했고, 율은 동무들 사이에서도 꽤 실력이 좋은 편으로 누구에게 진 적이 거의 없었다.

“일단, 거리를 정하는 것이 좋겠지.”

이락은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쟀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열둘, 열셋, 열넷, 열여섯…. 율은 당황하여 황급히 이락의 소매를 붙들었다. 돌아보니 투호 통은 예상보다 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더… 가야 합니까?”

“왜. 자신이 없어?”

“이것은 너무 멉니다….”

풀이 죽어 말하니 이락이 기다란 천을 꺼내어 망설일 것도 없이 눈을 가리고 묶는다. 어떠냐. 이러면 할 만하지 않겠어? 그러나 율은 하도 당한 적이 많아 의심부터 들었다. 정말 가린 것이 맞나. 또 속이려는 건 아니고.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 심지어 혀를 쏙 내밀어 베에-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율은 안심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번갈아 할까요? 아님… 제가 먼저 할까요?”

“먼저 하거라.”

율은 가볍게 준비 운동을 한 뒤 자세를 잡고 화살을 힘껏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통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갔다. 아아, 안타까운 신음을 내니 이락이 웃는다. 들어가지 않았나 보군. 율은 두 번째 화살을 잡았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뒤 재차 시도하니 이번엔 통 안으로 쏙 들어간다.

와! 기쁜 나머지 방방 뜨자 이락이 참지 못하고 눈을 가리고 있던 것을 벗는다.

“잘하는구나.”

“이래 봬도 제가 잡기에 능합니다!”

“색사에도 능했으면 좋았을걸.”

율은 못 들은 척하고 화살을 또 던졌다. 깔끔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후로 하나의 화살 빼고는 모두 들어가 여덟 개를 넣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락이 나선다.

“내 차롄가.”

그는 눈을 가렸고 왼손에 있던 화살을 하나 오른손으로 옮겨 잡았다. 율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락은 평범한 이가 아니니 눈을 가리고도 잘 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는데 휙- 첫 번째 화살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큽. 율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느라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모두 엇나가고 두 개의 화살만이 겨우 들어갔다. 이락이 천을 벗고는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오랜만에 하려니 영 신통칠 않구나.”

율은 그런 이락의 편을 들었다.

“아닙니다. 눈을 가리고 두 개나 성공하였으니 대단하지요. 눈을 뜨고 하셨으면 모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럼 뜨고 할까?”

“아니요.”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이락은 웃었다. 그러다 이락은 은근슬쩍 다른 것을 제안했다.

“이번 판은 내기를 하는 게 어떻겠냐.”

“내기요…?”

“상대방 소원 들어주기.”

“…….”

“내키지 않아?”

“딱히…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

“혹시 알아? 네가 이겨 용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면 오늘이라도 당장 보내 줄지.”

율이 놀라 입을 벌렸다. 진심입니까? 이락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율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용궁으로 돌아간다? 용궁으로…. 짓궂긴 해도 약속을 어길 이락은 아니었다. 율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했다. 지금처럼 던지면 된다. 지금처럼만. 긴장할 것 없어. 그런데 만약 지면 어떻게 하지. 이락이 빌 소원에 대하여 추측을 해 봤으나 도무지 모르겠다.

“근데… 무슨 소원을 비실 겁니까?”

“하고 나면 알려 주지.”

후, 율은 결심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십시오.”

“그래.”

“어서 눈을 가리십시오.”

이락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가려야 해?”

“서로의 능력치가 다르지 않습니까. 가리셔야 저도 내기에 응할 것입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니 이락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그러니 너도 약속은 꼭 지켜라. 다소 기운 없어 보이는 모습에 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눈을 가리면 어려운가 보구나.

율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서서 화살을 던졌다. 집중했기 때문인지 처음보다 더 잘 들어간다. 열 개중 아홉 개를 넣자 율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팔짝팔짝 뛰다가 이락을 덥석 끌어안았다. 그러다 흠칫 놀라 얼른 떨어졌다.

“이락 님 차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을 가린 건 불공평하다.”

그답지 않게 불만을 토로했고 승리를 예감한 율은 재촉하였다. 어서 하십시오, 어서.

이락이 눈을 가린 채 화살을 쥐고서 준비도 없이 휙 던진다.

무심하게 날아간 화살이 퉁, 하고 통에 제대로 안착했고 율은 승부도 잊고 감탄했다.

“와!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날아간 화살도 다시 퉁, 소리를 내며 들어간다. 그때까지도 율은 우연이겠지 생각했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일곱 번째 여덟 번째, 결국 마지막 화살까지 깔끔하게 들어가자 율의 안색은 어둡다 못해 잿빛으로 변하였다.

이락이 눈을 가린 것을 풀고 통을 꽉 채운 화살을 보며 흡족하게 웃는다.

“오늘 운이 좋구나. 눈을 감고도 열 개를 다 넣다니.”

좌절하고 있던 율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이락의 손에서 천을 빼앗아 갔다. 솔직히 털어놓으십시오…. 이거 다 보이는 거 아닙니까…. 이락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눈을 가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럴 수가…. 정말 보지도 않고 던졌단 말인가. 절망하여 천을 아래로 내린 순간 율은 흠칫 몸이 굳었다. 이락이 바로 코앞에 얼굴을 디밀고 있었다.

“내 소원을 말할 차롄가.”

“…….”

잔뜩 굳어 있으니 이락이 뺨을 살짝 꼬집는다.

“쫄 거 없다. 그리 대단한 소원은 아니야.”

“뭡니까, 소원이…?”

“네 뒷구멍에 내 양물을 집어넣게 해 줘.”

뻔뻔하고 당당한 요구에 율은 할 말을 잃었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있는데 이락이 옷고름을 잡고 스윽 당긴다. 저고리가 벌어졌고 미처 잡을 틈도 없이 허리를 감싸며 아랫도리를 밀착했다.

“산신령이 말하길 양기를 채우는 덴 직접 넣고 쑤셔 주는 게 가장 좋다 하더라.”

떨어지라고 어깨를 밀며 낑낑댔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더 꽉 껴안아 당기는 바람에 아랫도리가 비벼졌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단전 아래로 열이 몰려 율은 이락의 팔을 붙들고 애원했다.

“잠… 잠시만요… 이락 님. 차라리 다른 소원을 비십시오! 그럼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락은 율의 뺨을 감싸고 지그시 내려다봤다.

“그럼 윗구멍에? 넌 입이 작아서 내 걸 물면 찢어질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율은 입을 꾹 다물고 도리질을 쳤다. 괜히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해서는…. 뒤늦게 후회가 몰려왔으나, 별다른 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어차피 육지에 머물기 위해선 양기가 필요하니 이번만 눈 딱 감고 받을까…. 하지만 거기에 양물을 넣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데….

갈등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락이 알아채고 옅게 웃는다.

“아플까 봐 그래?”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그거 알아?”

“무엇을요…?”

“토끼는 삽입한 뒤 지속 시간이 매우 짧다.”

“…….”

“너도 도감에서 봤으니 알 것 아니야.”

율은 머릿속에 저장된 도감을 펼쳤다. 분명 그리 적혀 있긴 하였다. 먹이 사슬 최하위에 있는 토끼는 포식자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고자 교미 시간이 짧게 진화됐다고. 그것이 얼마나 짧은지 손가락으로 셋을 세면 이미 끝나 있다고.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리 짧게 하는데도 여인들이 줄을 선다는 것 아닌가….

이락은 참으로 대단한 자다.

율은 두려움을 감추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약속 하나만 해 주십시오….”

“말해 봐.”

“제가 멈추라고 하면… 멈추셔야 합니다.”

“걱정 마. 그 전에 끝나 있을 거다.”

율은 쭈뼛거리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이락은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걸었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율을 데리고 정자 쪽으로 향한다. 정자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정자에 올라서자 이락은 율을 보고 다정하게 웃었다.

율은 차마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저고리가 벗겨져 어깨 뒤로 넘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이 옷깃을 스칠 때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내가 잘하는 짓일까. 과연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이제 와 도망치려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 얼굴로 있으니 내가 꼭 범하는 거 같잖아.”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지 않,”

읍, 이락이 입술을 훔치고 혀를 집어넣는다. 말캉한 혀가 입 안을 침범했고 율은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으니 혀가 뱀처럼 구석구석을 찔러 댄다. 으음…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자 이락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손이 아래로 내려와 바지 끈을 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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