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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18화 (18/102)
  • 18화

    “길을 잃었소. 하룻밤 신세를 질까 하는데, 괜찮겠소?”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생각보다 키가 꽤 컸다. 남자는 마루로 나와 섰다. 그를 보며 이락이 말을 이어갔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소.”

    선비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방이 하나 빕니다. 외딴곳에 혼자 살아 사람 냄새가 그립던 참인데 잘되었습니다. 날이 포근하니 불은 따로 넣지 않아도 되겠지요?”

    “고맙소.”

    이락이 율을 보며 들어가자고 눈짓을 했다. 율은 이락을 따라 선비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방에 불을 밝히고 나서 선비가 이불을 내어 줬고 둘은 방에 어정쩡한 자세로 마주 보고 섰다.

    율은 방을 반으로 나누었다.

    “이락 님은 여기. 저는 여기. 이렇게 나누어 자면 되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냉기를 없애기 위해 이불을 펴고 율은 봇짐을 정리했다. 등껍질은 어디에 둔담. 방에 두기엔 비좁은 감이 있어 밖에 둘 생각으로 그것을 들고 일어서는데 문 앞에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의아하여 쳐다보는데 선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을 열어 주자 선비가 쟁반에 무언가를 받쳐 가져왔다.

    “어머님께서 담가 놓고 가신 수정괍니다.”

    “어머님과 함께 사셨습니까?”

    “아닙니다. 따로 사는데 못난 아들 수발을 드느라 자주 찾아오십니다. 오늘은 근처 이모님 댁에 잔치가 있어 그리로 가셨는데 내일 아침이면 돌아오실 겁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쉬셔도 됩니다.”

    율은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과를 받아 들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선비가 문을 닫고 사라지자 율은 그것을 들고서 이락의 곁으로 가서 내려놨다.

    “이락 님. 선비님이 이것을 주셨습니다. 향이 아주 좋으니 한잔 드셔 보시지요.”

    율이 그릇을 들자 이락이 손끝으로 탁 막는다.

    “뭔지 알고 먹어?”

    “아까 수정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학습력이 떨어져서야. 내가 한 말을 까먹었지.”

    “무슨….”

    율은 뒤늦게 그가 저잣거리에서 제게 한 짓을 떠올렸다.

    “아… 눈 감으면 코를 베어 간다 하셨지요.”

    “그렇지.”

    율이 헤헤 웃었다.

    “그때 이락 님께 코를 베여서 전 이제 남은 코도 없습니다.”

    하. 이락이 어이없이 쳐다봤으나 율은 수정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이락의 말이 아예 틀리진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저잣거리면 몰라도 이곳은 외딴곳이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선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육지의 속담도 있지 아니한가.

    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전 목이 마르니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고 오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율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 이락은 방을 한번 둘러본 뒤 이불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용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시간이 지나도 방율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락은 자리에서 일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책을 읽던 선비의 방에 불이 꺼졌다. 잠이 든 것인지 조용하다. 어딜 간 것이야. 이 밤중에. 마루 아래로 내려와 율을 찾는데 저 멀리서 율이 천천히 걸어온다.

    “물을 마시러 어디까지 다녀온 것이냐.”

    “우물을 사용할 수 없기에 도랑에서 목을 축였습니다.”

    이락이 우물로 가서 보니 율의 말대로 우물 뚜껑은 닫혀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새끼줄로 묶어 사용할 수 없게 막아 놨다. 우물을 보던 시선이 율에게로 넘어갔다. 율은 싱긋 웃으며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방으로 들어온 율은 갓과 도포를 서슴없이 벗어 옆에다 접어 놨다. 속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속적삼을 입은 채 이불 위에 눕더니 이락을 쳐다본다.

    “먼 길을 오느라 몸이 고단합니다. 이만 자야겠습니다.”

    이락은 대답 대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방율이 손을 뻗어 이락의 이불을 건든다.

    “낯선 곳에서 자려니 무섭습니다. 손을 잡아 주세요.”

    이락은 웃었다.

    “별일이구나. 네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다니.”

    “춥지 않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저는 춥습니다.”

    “내 이불을 주랴?”

    “아닙니다. 추울 땐 타인의 온기가 최고라 하던데….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락은 거리낌 없이 이불을 들췄고 율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이락의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춥다는 말을 증명하듯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하아, 끈적하게 숨을 내쉬더니 이락의 품 안으로 파고든다.

    “이렇게 붙어도 되겠습니까.”

    “나쁘지 않다.”

    그러자 율이 이번엔 조금 더 아랫도리를 마찰해 온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시옵소서.”

    “아니다. 괜찮다.”

    그러더니 손끝으로 이락의 몸 위를 더듬는다. 이락은 율이 하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손길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여 아래로 내려가 이락의 중심부를 슥 하고 건드렸다. 역시나 이락은 모른 척 놔두었다. 이번에도 만질 듯 말 듯 스치기만 하길래 이락은 율의 손목을 덥석 그러쥐고는 자신의 양물 위에 대고 누르며 속삭였다.

    “네가 만지고 싶은 것이 이건가 보구나.”

    어둠 속에서 율이 고개를 들어 이락을 본다. 말간 눈동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는 달큼한 숨이 흘러나왔다. 이락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아니야?”

    율이 대답 대신 수줍게 웃으며 손을 움직여 이락의 양물을 끈적하게 주무른다. 이락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고 율은 이번엔 몸을 일으켜 이락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속적삼을 푸니 가슴이 드러난다. 체모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에 유두가 색이 연하여 잘 익은 복숭앗빛을 띠었다. 깨물면 과즙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율이 양물을 깔고 앉은 채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이렇게 하면 만지는 것보다 기분이 더 좋으실 겁니다.”

    그러더니 제 젖꼭지를 엄지와 검지로 쥐고는 이락을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슬그머니 깨문다. 평온함을 유지하던 이락의 미간에 빗금이 생겼다.

    율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비벼 댔다.

    “넣고 싶으시면 넣어 보십시오.”

    “정말?”

    이락은 손을 뻗어 율의 얼굴을 만졌다. 커다란 손에 뺨을 비비며 율은 축축한 목소리를 냈다. 나리… 나리…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이락이 손을 미끄러트려 율의 목을 그러쥔다. 거기에 장단을 맞추듯 율이 허리를 더 격하게 흔들었다.

    “어쩜 이리 양물이 크고 단단하십니까. 제 구멍에 넣을 생각을 하니 황홀하여 벌써 물이 줄줄 흐릅니다.”

    “그래?”

    “예. 그러니 빨리, 아!”

    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율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해졌다. 이락은 그대로 눈 깜짝할 새 율을 바닥에 눕히고 촛불을 가져와 율의 눈동자에 비췄다. 인상을 확 쓰며 고개를 돌리려 하기에 강제로 턱을 쥐고는 눈동자를 확인했다.

    이락의 입꼬리가 슥 올라간다.

    “이런. 어쩐지….”

    율이 뻔뻔하게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까지 즐겨 놓고서는.”

    율이 손을 아래로 내려 이락의 양물을 쥐고 문지르자 이락이 웃으며 자신의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순식간에 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율의 이마에 글자를 적어 넣는다. 멸. 이라는 글자를 적은 순간 율의 동공이 커지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허윽, 허윽, 숨이 꼴딱 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더니 허리를 크게 한번 들썩이고는 검은 형체가 쑥 하고 빠져나와 밖으로 사라진다. 이락은 그것을 쫓을까 하다가 관두고 대신 방율을 내려다봤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길래 뺨을 툭툭 가볍게 쳤다.

    “이봐.”

    방율이 푸스스 눈을 뜬다.

    “정신이 들어?”

    “어? 이락 님…? 어째서….”

    이락을 보던 혼미한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이동하다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손이 이락의 양물 위에 걸쳐 있는 것을 본 율은 기겁하여 이락을 떠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뒤늦게야 자신이 상의를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귀신을 봤을 때보다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저한테 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말은 바로 해. 무슨 짓은 네가 나한테 했지.”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더 상세히 말해 주랴? 내 양물을 깔고 앉아 요분질을 치더구나. 더 솔직히 말해 주랴. 어찌나 허리를 잘 흔들던지 살짝 동했다. 하마터면 바지에 지릴 뻔했지 뭐냐.”

    “악. 그만하십시오. 귀를 막겠습니다!”

    꽥 소리를 지른 뒤 귀를 막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옷을 보더니 울상을 짓는다.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짓을…!”

    이락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파렴치? 파렴치이? 귀신한테 홀린 것을 구해 줬더니 나를 아주 몹쓸 놈 취급을 하는구나. 아예 미쳐서 옷을 벗고 동네방네 뛰어다니게 둘 것 그랬다. 볼 만했을 텐데.”

    귀신이란 말에 율이 한 대 맞은 표정을 했다. 그러고 보니 물이 없어서 대문 밖으로 나갔었지…. 그러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돌아봤고, 검은 형체를 본 것 같은데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상에 그럼 내가 귀신에 씌었단 말인가.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씌기까지 하는구나.

    율은 좌절하여 털썩 주저앉았다.

    “생색내는 것 같지만 넌 나한테 또 신세를 진 거야.”

    율은 좌절했다. 귀신에 씐 것도 충격이지만 조금 전 자신이 이락의 것을 만지던 것도 충격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뒤 상황을 따져 봐도 이락이 제게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정황보단 귀신에 씌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어떻게 갚을래?”

    “예…?”

    “신세를 졌으면 갚는 게 도리지. 금은보화는 됐다. 어차피 너희 왕에게 받으면 그만이니. 차라리 내 몸종이 되는 건 어떠냐. 너는 움직임은 빠릿빠릿하니 내 옆에 딱 붙어 수발을 들면 되겠구나.”

    이락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수발이라…. 의뭉스러운 얼굴로 웃는데 율은 그를 보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섭습니다….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셨습니까?”

    “방금 떠올랐거든.”

    “어떤 것을요…?”

    “내게 신세를 갚을 방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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