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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6화 (6/102)
  • 6화

    이보시오. 나를 나가게 해 주시오. 나는 지은 죄가 없소이다! 율은 나무로 만들어진 창살에 얼굴은 들이밀고 울부짖었다. 뺨에는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으며 목소리는 쉰 지 오래였다. 다시 놓아 달라 소리를 지르는데 아무도 오질 않는다. 서러움에 훌쩍이는데 무언가 홱 하고 날아와 머리에 탁 맞고 떨어진다. 봤더니 짚신이다. 몸을 뉘어 자고 있던 덩치 큰 인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냅다 소리를 지른다.

    “씨벌, 잠 좀 자자! 여기 세냈어?! 엔간히 처 울어야지!”

    딸꾹. 죄, 죄송합니다. 겁에 질린 율은 흐느낌이 새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사내는 다시 잠이 들었으나 율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배에서는 눈치도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토끼를 따라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만 해도 결과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토끼 새끼… 나쁜 새끼….”

    서러움이 복받쳐 처음으로 누군가를 욕했다. 숨죽여 울던 율은 고개를 들어 외부로 통하는 작은 창을 올려다봤다. 커다란 보름달이 부끄러운 듯 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달님. 나는 어찌하오. 꼼짝없이 자라탕이 되게 생겼소….

    하소연하고 나자 불현듯 허탈함이 밀려왔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인과응보다.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가려 한 자신의 행동과 토끼의 행동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어쩌면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 옥황상제께서 벌을 내리신 건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훔치던 율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돌아가고 싶다. 용궁으로 가고 싶어. 눈을 감으니 어렴풋하게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선아….

    깜빡 잠이 들었고, 용궁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어머니는 병이 나아 환하게 웃고 계셨으며 아버지는 술을 끊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선이는 예쁜 비단옷을 입고 저를 반겼다.

    꿈인 줄 모르고 행복하게 웃던 율은 두런두런 말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현실은 차디찬 옥중 바닥이었다. 옆에서 고함을 치던 사내는 세상모르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푸르스름하게 바뀌어 있었다.

    멀찍이 들리던 소리가 가까워진다. 고개를 돌리니 자신을 체포했던 푸른 관복을 입은 사내와 나졸이 다가오고 있다. 율은 다급한 마음에 창살을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보세요, 나리.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저는 용궁에서 왔습니다. 아무리 교역이 끊겼다고는 하나 한 나라의 관리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법은 없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탕, 나졸이 조용히 하라며 들고 있던 몽둥이로 창살을 때린다. 율은 흠칫하여 문에서 한 발 멀어졌다. 율을 보는 관리의 표정이 어딘가 묘하다.

    “네 이름이 방율이라고 하였느냐.”

    “예… 제 이름이 방율입니다. 저는 죄가 없,”

    “서해에서 온 게 확실하고?”

    “예…. 그러니 제발 저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관리가 나졸에게 손짓하여 옥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더 물을 것도 없이 율의 얼굴에 보자기를 씌워 시야를 가린다. 율은 기함하여 소리쳤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저는 자라탕이 되기 싫습니다! 보시다시피 맛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졸지에 앞이 캄캄해지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묶인 손을 뻗어 앞을 더듬는 순간 누군가 율을 확 낚아채 어디론가 끌고간다. 힘이 어찌나 무지막지한지 버티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끌려가는 동안 율은 계속하여 울며 애원했다.

    “제발요…. 이대로 놓아주시면, 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입 다물어라. 그러지 않으면 진짜 자라탕을 만들어 버릴 테다.”

    끔찍한 엄포에 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어딘가로 옮겨 태워진다. 가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났고 히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앞으로 뻗어 더듬으니 작은 창살들이 만져진다.

    어딘가에 갇혀 옮겨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신경을 모조리 곤두세웠으나 다그닥, 다그닥, 외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포박당한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흔들림이 멈췄다. 다시 말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저를 끌어 내린다. 가지 않으려 엉덩이를 뒤로 빼며 반항하였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끌려간 곳에서 얼굴에 씌운 것을 벗기더니 무릎을 꿇렸다. 어느덧 어둠은 사라져 날이 밝아 있었다. 율을 데리고 온 관리는 보이지 않고 온통 낯선 이들뿐이었다.

    율은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갇혀 있던 곳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은 곳이다. 사방의 문마다 무장하고 지키는 이들이 있었고 가옥의 크기도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너희 왕에게 내가 올리는 진상품이라고 전해.]

    설마 이곳이 왕이 머문다는 궁인가. 군사와 가옥의 규모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정말 이곳까지 끌려왔구나…. 절망감에 눈앞이 아득해지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나타난다. 몹시 서두르는 느낌이었고, 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나를 요리하기 위해 나타난 소주방 나인들인가.

    “무엄하다, 고개를 숙여라.”

    율은 고개를 떨구고 도포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잠시 뒤 발소리와 함께 곱디고운 붉은 색의 치맛자락이 율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율은 고개를 들어라.”

    천천히 위를 보자 강한 빛이 쏟아져 눈을 시리게 만든다. 제대로 뜨지 못하고 찡그리는 순간 갑자기 시야로 얼굴 하나가 홱 하고 들어왔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자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귀에 감겼다.

    “정말 선비님이셨군요!”

    무척이나 반가운 투다. 누구지? 그때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 자리에 앉아 율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접니다. 저 몰라보시겠습니까? 당황한 율은 급히 손을 빼려다 말고 여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낯이 익다. 내가 이 여인을 어디서 봤더라….

    기억을 더듬던 율의 눈동자가 점점 커진다. 어…? 어어!

    “알아보시겠습니까?”

    “심 낭자!”

    그때 머리 위에서 우레와 같은 호통이 떨어진다. 이런 무엄한! 어디 감히 중전마마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느냐! 율은 놀라고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가만, 중전마마라니. 그럼 이 여인이….

    그러고 보니 비단옷을 입고 가채를 쓴 그녀의 등 뒤로 수많은 나인이 머리를 조아린 채 줄을 섰다.

    “용궁에서 온 자라가 잡혔다고 하여 설마설마하였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전하께 청을 드려 이곳으로 데려오라 하였는데, 이리 다시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낭자께서… 어찌하여 이곳에 계신 것입니까?”

    “선비님이 제 목숨을 건져 주신 덕분에 좋은 분을 만났고 혼인도 하였습니다.”

    율은 기쁜 마음에 활짝 웃었다.

    “잘됐네요. 감축드립니다. 그럼 아버님의 눈도 뜨셨습니까?”

    심 낭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실은… 아버님의 눈은 뜨이지 못하였습니다. 공양미 300석의 효험은 없었지 뭡니까. 그래도 전과 달리 정성으로 보살펴 드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것 또한 선비님 덕분입니다.”

    아… 그녀는 앞 못 보는 아비의 눈을 뜨이게 하려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목숨까지 바쳤어도 결국 눈은 뜨이지 못하였구나. 헛수고가 된 셈인가…. 아니면 이런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라 하여야 하는가….

    그러다 문득 토끼 생각이 난다.

    고환을 먹는다고 하여 용왕의 병이 정말 나을 수 있는 걸까.

    애꿎은 목숨을 거두는 건 아닐까.

    “우선 일어나십시오. 아직 날이 찹니다.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 전하께서도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선비님의 이야기를 많이 하였거든요.”

    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 낭자는 예전에 보았던 대로 여전히 성격이 명랑하였다. 그녀와 동행하여 걷는데 한쪽에 이제 막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커다란 꽃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잠시 넋을 놓고 쳐다보는데 꽃나무 가지 위에 흰색 적삼을 입은 어린아이가 앉았다.

    어어? 놀라서 그리 가까이 가려고 하자 심 낭자가 율을 부른다.

    “선비님, 왜 그러십니까?”

    “저, 저기 웬 아이가…!”

    율은 꽃나무를 가리켰다. 그런데 방금까지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손등으로 눈을 문지르고 다시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옥에 갇혀 있어 심신이 미약해졌나 보구나.

    심 낭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였고 율은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아무래도 피곤하여 잘못 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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