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47/141)

 비운의 신데렐라 <11>   

“급성 위경련입니다.”

하아……?

어딘지 근엄한 인상을 풍기는 오십대 후반의 의사는 차트를 주욱 훑어보더

니 안경을 밀어올리며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위…경련이요?”

“네. 식사가 불규칙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 것 같군요. 환자가 상당히 예민한 편

인 것 같은데 보호자분이 평소에 좀 더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일단 필요한 조치는 취해

놨으니 오늘밤은 병원에서 보내고 사나흘 경과를 봐서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저…그럼 생명엔 지장이 없나요?”   

갑작스런 내 질문에 의사는 조금 놀란듯 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웃, 너무 멍청한 질문이었나?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한심한 질문을 하고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달

아오른 얼굴로 의사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목례를 하고는 얼른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고작 위경련인데 무슨 생명에 지장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 광경을 한 

번 직접 목격해봐.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식은땀이 쫙 나고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지.   

내 길지도 않은 이십여년 생애에 그런 머리털 쭈뼛 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구. (

말로는 밑바닥 인생 운운 하면서 사실은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던 우리의 황보경양….ㅡㅡ;;)

그런데 뭐? 고작 위경련이라구!

나는 입원실까지의 긴 복도를 걷다말고 성질이 나 양손을 허리에 척 걸친 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것도 모르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119에 전화를 하고 구급차 속에서 손목을 꽉 움

켜쥐고 내가 잘못했어, 제발 죽지 마! 따위의 세리프를 읊게 만들다니!  

아니 너같은 놈이 대체 무슨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위경련이야, 위경련이?

그런 병이 생기려면 너한테 매일매일 후라이팬에 멸치볶듯 들볶이는 나한테 생기는게 

여러모로 지당하지, 너한테 스트레스성 위경련이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놈의 목을 부여잡고 통곡했던게 너무 억울하다. 제기랄, 그때 당시

에 놈이 정신을 잃고 있었던게 천만다행이지 만에 하나 놈이 깨어있었다면….!

“우우…쪽팔려!”

나는 혼자서 얼굴이 하얘졌다 빨개졌다 카멜레온처럼 온갖 쇼를 하면서 복도 끝에 있는 

놈의 병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일단 치료를 받고 두시간 전 병실로 옮긴 후부터 놈은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일단 급한 김에 4인용 병실에 넣긴 했지만 깨어나면 아마 화를 내지 않을

까 하는…생각이 들어 나는 병실을 특실로 옮겨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뭐 내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작 하룻밤 있을 건데 옮기기도 뭐하고…. 

놈이 그나마 생활비를 넉넉하게 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단 죽지는 않는 병이라니 수술까지는 필요없겠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연

락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난 놈과 관련된 전화번호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고민을 하며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병실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는데 뜻밖에도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분홍색 간호사

복을 입고 똑같이 발그스레한 얼굴을 한 여자 둘이었다. 

…..아까 체온이랑 심박수는 체크를 했는데?

나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며 두 사람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끼리 걸어가며 꺄아, 꺄아 하트를 날리고 난리법석이었다.

“봤지, 봤지? 저 환자 얼굴 진짜 예술이지 않니? ”

“너무 너무 근사하더라! 완전 나의 이상형이야아~” 

“정신차려! 너보다 한참 연하다,야.”

“요즘은 연하가 더 끗발 날린다는 거 몰라? 아아 ㅡ 어떻게 대쉬하지?”

이봐요, 언니들. 설마 지금 저 안에 누워있는 냉혈한을 두고 그렇게 야단을 떠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철이 없다지만 그렇게까지 사람볼 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란 내 일말의

 기대를 무참히 날려버리려는듯 4인용 병실의 문앞에 붙어있는 명찰은 분명 < 강 성 욱 23 세/ M >  하나뿐이었다.

저, 저런….! 겁도 없지. 감히 어디를!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했나?

“….쯧쯧.”

나는 외모에 혹하는 여자들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며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놈이

 잠들어있는 침대 맡에 섰다. 세시간 전 응급실로 실려온 놈은 응급처치를 받고 진정제를

 맞은 후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새하얀 베게 위에 곱게 머리를 대

고 누운 놈을 가만히 바라보니 방금 전 여자들이 그렇게 호들갑을 떤 이유도 알 것 같은 것

이…. 평소의 날카로운 모습과는 다르게 내 눈앞에서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놈은 정말로

 핸섬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이게 바로 그 강성욱이 맞나….싶을 정도로. 

……흥. 자는 얼굴만 이렇게 천사지, 이게 깨어나면 죠스같은 놈이라구.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놈이 자는데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침대 아래서 간이 철

제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가끔씩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릴 뿐 병실 안은 

조용했다. 나는 흐트러진 시트를 조금 바로해서 덮어준 다음 링겔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확인하

며 진이형한테 연락을 해야 할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놈의 얼굴을 내려

다 보았다. 생각해보니 놈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렇

게 자주 눈썹을 찌푸리는 데도 불구하고 놈의 미간은 놀랄만큼 깨끗했다. 그 뿐 아니라 반듯한 

이마에 곧은 콧날, 약간 긴 듯한 감은 눈매. 그리고 왠지 자존심이 무척 셀 것 같은 입술과 턱의

 선까지. 

“…..얼굴만은 딱 내 타입인데 말야.”

헉.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튕기듯 몸을 세우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4인용 병실이었지만 다행히 다른 입원환자가 없어 병실 안은 조용했다.

아,아무도 들은 사람은 없겠지?

잠들어 있는 놈의 얼굴 위에서 잠시 손바닥을 휘휘 흔들어본 다음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

하고 나서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빠져나왔다.  

뭐, 노,놈의 얼굴이 반반한 건 사실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

그치만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왜 갑자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복도를 지나다 나는 문득 복도 앞에 붙은 대형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의 내가

 당황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내,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기껏해야 놈의 자는 얼굴 한 번 본 것 뿐인데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서 이 난리야?

스스로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어 나는 얼른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손이 시리도록 찬물을 틀어 

달아오른 얼굴을 씻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열은 식지 않고 심장만 계속 두근거려 나는 

어쩔 수 없이 울상을 하고 삼십분 넘게 비상구 계단 창가에 서서 찬 바람을 맞으며 서있을 수 밖

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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