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26/141)

 비운의 신데렐라 <25>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콜록!

"어머 보경씨 기침 너무 심하게 한다. 감기 걸린 거 아니에요?"

"아, 예에....조금..."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나는 다시 엣치 - 하고 재채기를 하며 뒤

돌아섰다. 그러자 작은 누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챦아요?"

"네. 좀 있으면 괜챦아 지겠죠.뭐..."

나는 기침 때문에 생리적인 눈물이 조금 고인 눈가를 닦으며 작은 누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슬쩍 식탁 끝 쪽에 앉아있는 놈을 보았더

니 놈은 비할데없이 고급스러운 연회색 정장차림으로 앉아 아침에 배달되어 온 

영자신문을 보며 이따금 생각난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ㅡ 내가 아프다는데 신경도 안 쓴다 이거지.

분명히 우리 둘의 대화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 무심함

이 얄미워 나는 놈이 반쯤 먹다남긴 토스트가 담긴 접시를 휙 들어 싱크대로 치웠다.

평소와는 다른 내 행동에 작은 누나가 의아한듯 내 뒷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태도로 초지일관 태연자약한 태

도로 신문에만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저게 혹시 말로만 듣던 활자중독증아냐? 

쳇, 날이면 날마다 죽어라고 보는게 책인데 집에서까지 저래야 하냐구.

나는 치잇, 하고 볼을 부풀린 채 싱크대 앞에 서서 방금 헹궈낸 접시들을 마른 행주

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세 개도 닦기 전에 목이 간질간질하고 또다시 기

침이 올라오려고 하는 게 정말로 감기에 걸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따 시장 가는 길

에 약국에 들러서 아스피린이라도 사야 하나...고민하고 있는데 작은 누나가 다 먹고난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다 나르며 놈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두사람 어디 다른 데 갔다왔어?"

"아니."

"그런데 보경씨가 왜 감기에 걸렸지?"

"글쎄."

글쎄는 무슨 글쎄야! 니가 그렇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 싫다는 나를 질질 

끌고 집까지 걸어왔으니까 그런 거쟎아!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나는 애꿎은 접시를 움켜쥐고 마른 행주로 북북 문질러댔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 할 수록 정말 내가 너무 바보같다.

놈의 전화 한 통에 입이 헤 벌어져서 택시까지 타고 달려갔더니 한 마디 말도 없이 

무작정 나를 끌고 자그만치 두시간 반을 걸었다고!

그나마 손이라도 꼬옥 붙잡았으면 낭만이라도 있지. 이건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개

 끌고가듯 질질질. 날씨는 너무너무 추워서 얼굴은 찬바람에 쩍 얼어버렸는데 나 한발

짝 갈 때 세발짝씩 가는 놈을 쫓아가다 힘들어서 헉헉대던 나는 오가는 사람도 없는 길

거리에서 하마터면 기절할 뻔 했다구. 바보같이 놈이랑 같이 집에 간다는 사실만 기뻐하

다 어이없이 그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냐구.

어떻게 겨우겨우 주차장까지 도착은 했는데 갑자기 하는 말이.

갑자기 차가 안 움직여서 걸어가야겠다구?

정비를 했어야지! 정비를!

우우...흥분하니까 속도 막 울렁거리는 것 같아... 

  

시야가 어질어질해 얼른 끝내고 이층에 올라가서 쉬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나는 마

지막 남은 접시를 닦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 사이 아침식사를 다 끝마친 놈은 

신문을 식탁 위에 던져놓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지금 갈거야?"

"응."

작은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니 나도 마지못해 배웅은 해야겠다는 생각

이 들어 작은 누나의 뒤를 따라 현관으로 향했다. 뭐 아침에 놈이 나갈 때마다 꼭 

배웅은 했었지만...오늘은 정말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어쩔 수 없지.

"나 너한테 할 얘기있는데 이따 갔다오면 해야겠지?"

현관 앞에서 놈의 어깨부근을 털어 주며 작은 누나가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중요한 거야?"

"별로. 그런 건 아니고."

"알았어. 그럼 갔다올께."

"그래. 다녀와."

놈은 현관에 선 작은 누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그 뒤에 선 나한테 힐긋 짧은 시선

을 던졌다. 그 순간 작은 동요가 그 눈속에 스쳐 지나갔다. 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

을까. 곧 쾅하고 금속제의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작은 누나는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거실로 올라왔다.

"날마다 무슨 공부를 저렇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갑입니다. 저도.

중얼거리던 작은 누나는 다음 순간 나를 보더니 생각났다는듯 다시 물었다.

"괜챦아요? 정말 약 안 먹어도?"

"예...괜챦아요."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이 바로 놈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좀 올라가서 쉬어요. 나도 어제 잠을 설쳤더니 피곤해서 조금 쉬어야겠어요."

"에, 하지만..."

"다른 말 말고 올라가서 세시간만 푹 자요. 세련이 일어나면 식사는 내가 챙겨줄

께요.설마 하루 일 안한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청소도...콜록!"

"거봐요! 얼른 들어가요!"

뭐라고 반박할 겨를도 없이 나는 작은 누나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 방으로 들어왔다. 

청소라도 할까 하고 둘러봤지만 깨끗한 방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침대를 보니 피로한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다. 나도.

이대로 다시 나가기도 귀챦은 생각이 들어 나는 시트를 걷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100% 순면의 포근한 시트가 기분좋았지만 조금 누워있으려니 미열 때문인지 천장의 꽃무

늬가 가까와졌다 멀어졌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아파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작년여름이었나.

비가 엄청나게 내리던 날 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오는 성도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결국

 못 만나고 돌아와서 다음날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다. 저녁 때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도 못갈

만큼 아파서 사흘내내 누워 있었는데 성도자식 약 한 봉지 안 사주고 밥 안해놨다고 화만 버럭 내고 나가버렸지.

그것 뿐인가. 한달분 급료를 포커판에서 잃고 돌아와서 내가 제일 아끼는 찻잔도 벽에 집어던져 박살냈었는 걸.

나쁜 자식.

생각하니까 더 화나네.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너 때문이야."

머리로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콜록 콜록

,하고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그다지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콜록거리며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방 안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점점 더 괴로와져 의식적으로 잠

들기 위해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점점 더 괴로와지기만 할 뿐. 잠든 것도 아닌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아닌 반쯤 무의식 상태에서 나는 이럴 땐 누군가 옆에서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생각했다.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저 다정히 대해줄 사람을 원한 것 뿐인데.

어째서 그런 작은 소원 하나를 이루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미열로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깊게 잠들어 버렸다.

끼이익 ㅡ 

<어때? 잠들었어?>

<응. 그런 것 같은데. 그런데 너무 아파 보인다.>

<그럼 전화할까? 성욱이한테?>

<뭐하러 그래. 네가 운전할 줄 아니까 근처 병원에, 아얏! 뭐야, 너!>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러다가 나중에 성욱이가 화내면 어떡할 거야? 

지금 당장 전화하자.보경씨 다 죽어가기 일보직전이니까 얼른 오라고>

<다 죽어가긴 뭘? 그리고 성욱이가 병원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글쎄. 넌 가만히 있어.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니까.>

어지러운 꿈 속에서 문득 잠을 깬 것은 아주 조금 열린 방밖에서 들여오는 웅성거

림 때문이었다. 말소리에 뒤섞인 발소리와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한 목소리, 그리고....

<그래서?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

곧이어 끼이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쨍그랑 하고 뭔가가 유리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 공기에는 바깥의 신선한 대기와 바람, 눈, 그리고

 라임향 스킨이 뒤섞여 있었다. 예고도 없이 뺨 위로 차가운 손이 와 닿자 열이 오르는 얼굴에

 비해 훨씬 차가운 온도에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 하며 부르르 떨었다.

"얘. 그렇게 차가운 손으로 만지면 놀라쟎아."

작은 귓가에서 어렴풋하게 웅웅거리는 작은 누나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 하

지만 그 손은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고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내 머리칼을 넘겨주고 있었다.

"일어나. 병원 갈테니까."

이전과 똑같은 명령조였지만 어딘가 망설이는듯한 걱정하는듯한 느낌에 나는 천천히 힘겹게 눈을 떴다.

"괜챦아?"

어두운 갈색,벨벳처럼 짙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놈의 눈빛에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당황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놈이 그렇게 똑바로 나만을 쳐다본 건 처음이었다. 놈의 눈동자가 사실은

 검은 색이 아니고 어두운 갈색이라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다. 

고개를 젓다가 기침이 콜록, 하고 나오자 내 머리칼에 닿아있던 손이 떨어졌다. 

"걸을 수 있겠어?"

놈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놈은 커피 

테이블 위에 던져둔 차키를 집어들고 붙박이장을 뒤졌다.

"입어."

아직은 좀 어지러웠지만 기다리게 하면 안될 것 같아 나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놈이 던져준 두꺼운 모직 코트를 팔에 끼웠다. 하지만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더딘 손

놀림이 신경이 쓰였는지 놈은 자기가 직접 단추를 채워주었다. 길이도 품도 엄청나게 컸지

만 놈이나 나나 둘 다 그런 것엔 신경쓰지 않았다.

"누나 나 갔다올께."

"그래. 조심하고."

"성욱아. 빨리 와. 응?"

아얏! 하고 작은 누나에게 팔꿈치로 공격당하는 강세련의 모습을 뒤로 하고 쿵 하

고 현관문이 닫혔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다리가 풀려 어지러웠지만 내 팔을 잡고 있는 놈의

 손에 안심해 나는 기운없이 놈에게로 몸을 기댔다.

잡은 팔에 무게가 느껴지자 놈은 다시 한 번 이마를 짚어보았다. 이마가 뜨거워서

였는지 놈의 손은 차갑게 느껴졌지만 무척 좋은 냄새가 났다.

“……좋은 냄새가 나.”

엘리베이터 안을 희미하게 떠도는 놈의 셰이빙 로션의 잔향을 느끼며 나는 들릴듯

말 듯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뭐?”

놈이 내 쪽으로 조금 고개를 숙였다.

좋은 냄새가 난다구.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감각

에 속이 울렁거려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너…!”

병원은, 정말 싫다.

특히 내가 아파서 와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차분한 베이지색 소파에 기대앉아 맞은편 TV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드라마를 한 귀로 흘려 들

으며 나는 접수계 간호사와 뭔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놈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들로 붐비는 병원 대기실에서 놈은 이십 여분째 간호사

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접수를 저렇게 오래 하는 거야….

찬물에 적신 손수건을 입가에 댄 채 나는 약간은 신경질적인 표정의 놈과 뺨에 미약

한 홍조를 띄운 채 뭔가를 받아 적고 있는 간호사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설마 무슨 큰 검사라도 받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말을 하다말고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놈은 망설이

지도 않고 곧장 저벅저벅 내 쪽으로 걸어온다.

“참을 수 있어?”

기운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놈은 말없이 옆자리에 널려진 잡지책을 치우고 그 자리

에 앉아 내 어깨에 팔을 둘러 자신쪽으로 가볍게 끌어당겼다.

에…

그 뜻밖의 행동에 놀라 멍하니 놈을 올려다보았지만 놈의 시선은 접수계 옆 30초 

단위로 바뀌는 대기번호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저기…다들 쳐다본다구.

아픈 와중에도 주위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다음순간 놈이 안은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나는 놈의 품 안에에 얼굴을 묻은 셈이 되어버렸다.

…..두근두근.

이렇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건 아마 아파서 그런 거겠지.

애써 두근거리는 자신을 변명하며 나는 눈을 감은 채 조금 더 깊이 얼굴을 파묻었다.

셔츠를 통해 뺨에 와 닿는 놈의 온기와 부드러운 체온이 곁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황보경님. 황보경님 들어오세요.”

그때 접수를 하던 예쁘장한 간호사가 복도 맞은편의 진료실 문을 열고 내 이름을 불렀다. 

차례가 된 것일까. 놈을 따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나는 놈의 코

트 한 자락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간호사가 <보호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세요.>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나는 혼자서 진료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조금 더 그렇게 있고 싶었는데.

“자 거기 앉으세요.”

아쉬워하는 나에게 책상 옆의 의자를 권한 것은 아주 동안의 의사였다. 과연 제대로

 진찰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젊어보이는 의사는 내 옷을 걷게 해 가슴

팍에 청진기를 대보고 라이트펜으로 눈과 혀를 관찰하더니 책상 위의 챠트에 뭔가

를 어지러운 글씨로 써넣었다.

“가벼운 폐렴증세가 좀 있습니다. 원래 기관지가 좀 약한 편인데 무리하면 발열하기

 쉬우니 당분간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 원외 처방전을 써드릴 테니 약국에서

 약은 따로 구입하시고 자, 오늘은 링겔 한 병 맞고 가세요. 김간호사?”

“네. 선생님. 이리 오세요. 황보경씨.”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간호사에게 한 팔을 붙잡혀 진료실 옆에 작

은 베드가 여러 개 놓여진 주사실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 팔 좀 걷으세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 채워진 주사기의 공기를 빼기 위해 허공에서 

주사기 끝을 밀어올리며 간호사가 한 말에 나는 겁먹은 얼굴로 물러섰다.

“저….주사는 싫은데…”

“아프지 않을 테니까 빨리 걷으세요.”

“그래도 저….”

내가 계속 버티자 그녀는 아이 참 하면서 희미하게 짜증을 냈다.

그치만…주사는 정말 싫다구요.  아파서 맞기 싫어….

“정말 안 맞으실 거예요?”

자신의 말에 내가 겁먹은듯 눈을 굴리자 간호사는 갑자기 주사실 문을 벌컥 열더니 대기실에다 대고 소리쳤다.

“황보경님 보호자분! 이리 들어오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이 문가에 나타났다. 놈을 보자마자 나는 안심한 얼굴로 얼른 놈의 곁에 붙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환자분이 주사를 안 맞으시겠다쟎아요.”

짜증스런 간호사의 말에 놈은 트레이 위에 놓여진 커다란 링겔병과 내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더니 말했다.

“맞기 싫어?”

끄덕끄덕.

“정말안 맞을래?”

끄덕….끄덕…이긴 한데 조금 전보다는 겁먹은 분위기.

그러자 놈은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위협했다.

“이거 안 맞으면 영양제 세 병 맞힐 거야.”

그, 그런 게 어딨어!

“거기 누워서 팔 걷어.”

히잉….정말 맞기 싫은데….

나는 눈물을 참으며 베드에 누워 팔을 걷고 눈을 꼭 감았다. 차가운 

알코올 솜으로 스슥 문질러지는 감촉이 나더니 곧 팔 부분이 따끔해졌다.

“아야!”

“자아…다 들어갔어요. 하나도 안 아프죠? 혹시 갑자기 열이 막 나면 말씀하세요. ”

안 아프긴 뭐가 하나도 안 아파….ㅠㅠ   

뭔가가 팔 부분으로 흘러 들어오는 이상한 느낌에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놈은 어딘가에서 접이식 철제의자를 가져오더니 내 옆에 앉아 주사바늘이 꽂힌 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여기 있을 테니까 아프면 말해.”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여기 있을 테니까. 

여기 있을 테니까…

여기….

그리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넌 사랑에 빠진 거야>

불현듯 윤아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어떡해.

정말 이게 사랑이면.

그래서 너의 말 한 마디에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거라면.

나는 어떡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