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운의 신데렐라 (10/141)

 비운의 신데렐라 <9>   

“푸하하하! 너네 너무 웃긴다! 그거 코메디 아냐? 코메디?”

“하하! 하하하하! 지, 진이형. 어떡해. 나 막 배아프려고 그래. 어쩜….!”

“웃지 마! 남은 지금 심각해 죽겠는데 그 얘길 듣고 웃음이 나와?”

나는 과도로 식탁을 탕탕 치며 배를 잡고 낄낄거리며 웃어대는 진이형과 아예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윤아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그치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봤자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둘한테는 소용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얘기를 듣던 도중 바닥으로 미끄러진 윤아는 웃느라 허리도 펴지 못

하고 사과를 먹던 진이형은 하도 웃어서 사과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결국 나는 진이형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입을 열

 때까지 원망스런 눈초리로 두 사람을 째려볼 수 밖에 없었다. 

“아아. 미안, 미안. 그치만 보경아, 너무 웃기쟎냐.”

“그러게. 괜한 거짓말을 해서 멀쩡한 손은 따고….하하…하하하하….”

진이형의 말에 윤아도 간신히 진정되었던 웃음이 다시 터졌는지 의자에 기대앉아 큭큭거렸다. 

아아, 내가 진짜 이 둘에게 이런 얘길 하는게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진이형은 나를 이 집에 밀어넣은 장본인이고 윤아는 내가 그 한식집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만든 원흉이지 않은가.

내가 원망스러운 얼굴로 진이형을 쳐다보자 형은 아직도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식탁 위의 크리넥스를 뽑아 눈가를 닦더니 조금 미안한듯 웃어보였다.

“ ….화났냐?”

“그럼! 형 같으면 화가 안 나겠어?”

“야아. 왜 그래. 보경아. 우린 그냥 너무 웃겨서….”

내가 딱딱거리자 윤아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려고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내 얼굴을 보더

니 다시 풋, 하고 고개를 돌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야! 한윤아!”

“하하….너, 그때…소, 손을….하하, 하하하!”

“너 진짜 ㅡㅡㅡㅡ!”

“그래. 윤아야. 그만해라. 그러다 보경이 진짜 화낸다.”

진이형의 말에 윤아는 웃다말고 힐긋 나를 보더니 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알

았어, 알았어, 하면서 간신히 의자 위로 기어올라가 앉았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웃겨서 못 견

디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그게 끝이지!”

“쳇, 시시하게.”

내가 짐짓 앙칼지게 쏘아붙였지만 윤아는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대꾸한 뒤 눈앞

의 오렌지 주스를 컵채로 들어 홀짝였다.

크흑…친구란 것도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데…..

“야, 보경아. 그래도 성욱이 걔가 너 데리러 와줬쟎아. 그게 어디냐.”

내가 비탄에 잠겨있는 사이 진이형이 내가 잘라놓은 사과를 집어들고 애써 놈을 두둔하려 했지

만…..그 뒤에 내가 당한 걸 생각해봐.

정말 절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구! 

“맞아. 게다가 그 비싼 데서 밥까지 사줬는데.” 

그때 윤아가 눈치도 없이 또 끼어들었다.

“너까지 맞장구치지 마! 내가 그 밥을 사달라고 했어? 사달라고 했냐고!”

“야, 야. 알았어! 알았어! 그만하자. 그만해.”

내가 과도를 마구 흔들면서 흥분하자 진이형이 알았다면서 손을 내저으며 나를 달랬다. 윤아는 뭔

가 더 나를 놀리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여기서 더했다가는 내가 진짜로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평소에는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꽤나 성깔이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다.

사각사각.

한동안 식당 안에는 사과씹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나저나 보경아. 저번에 왔을 때랑은 집안 분위기가 많이 틀려진 것 같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진이형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내 눈치를 슬슬 살피며 말을 걸어왔다.

그 질문에는 다분히 주위를 환기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었지만 그

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나는 깎아놓은 사과를 조각내며 무심히 대꾸했다.

“뭐가?”

“글쎄 뭐랄까….”

내 말에 진이형은 이마를 조금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적당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정적….이라고나 할까.”

“가정적?”

“그래. 저런 걸 봐도 말야.”  

나와 윤아는 동시에 진이형의 말에 동시에 의자 위에서 몸을 돌려 등 뒤의 거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이형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던 거실에는 여느 때처럼 값비싼 소파세트와 크리스탈 

장식품, 잎이 잘 닦인 난초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거실에 뭐?”

내가 멀뚱한 얼굴로 묻자 진이형이 답답하다는듯 기대고 있던 의자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저기 바닥에 널어놓은 거 말야.”

“으응. 저거? 난 또 뭐라고.”

나는 그제서야 진이형이 무얼 얘기하는지 알아채고 피식 웃었다. 오전에 빨래를 했는데 날씨가 별

로 좋지 않아 거실 바닥에 죽 펴서 늘어놓았는데 아마 그걸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호피무늬 카펫이 깔린 으리으리한 거실에 왠 빨래는 저렇게 죽죽 널어놨냐?”

“맞아. 나도 첨 봤을 땐 깜짝 놀랐다니깐. 왠 색색타올이랑 티셔츠 같은게 거실 바닥에 발 디딜 틈

도 없이 깔려 있길래.”

“그치만 요즘은 날씨가 추워서 일광욕실에 널면 언단 말야. 저렇게 거실바닥에 잘 펴서 널어놓으

면 오후에 뽀송뽀송한게 얼마나 기분좋게 마르는데.” 

왠지 두 사람 다 값비싼 가구가 있는 화려한 거실에는 빨래를 널면 안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있

는 것 같아 나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들어가며 반박했다. 사실 이 집에 중앙난방이 얼마나 좋은지

 요즘같은 한겨울에 반팔 티셔츠 하나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이런 에너지를 그냥 낭비한다면 너무

 가슴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다못해 빨래라도 말리겠다는 건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그러나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도 두 사람은 내내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럼 저건?”

윤아의 턱짓에 나는 반사적으로 연노랑색 미니 커튼이 쳐진 식당 창가를 바라보았다. 제법 넓은 

창틀 위에는 깨끗하게 삶아 널어놓은 세장의 행주가 겨울 오후의 햇살에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 옆에 기대놓은 나무 도마와 칼도 제법 배경이 좋은게 꼭 TV에 나오는 식물성 세제 선전의 한 장

면같았다. 

“아아. 그거? 원래 저렇게 볕을 쬐야 세균이 죽는다쟎아. 뭐니뭐니해도 주방 기구는 청결해야지.”

“휴우…..”

내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포옥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표정들이 뭔가 상당히 꺼림직했다.

“뭐야, 그 눈빛들은?”

“….보경아.”

윤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에 한쪽 손을 얹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왜?” 

“….난 갑자기 무지하게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무슨 불길한 예감?”

“너 보나마자 냉장고에 밑반찬도 꽉꽉 채워놨지?”

“에…그거야, 뭐….”

난데없는 윤아의 질문에 나는 조금 말끝을 흐렸지만…. 듣고보니 정말 그렇쟎아? 

지난번 그 한식집에 다녀온 후 나는 아무래도 놈이 미국식 아침식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란 생각에 모든 식단을 한식으로 바꾸고 아침마다 국을 곁들인 상을

 차려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놈은 가타부타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아

침에 밥을 먹고 나가는 횟수가 많은 걸로 봐서 나의 예상이 반쯤은 들어맞은 것 같다

. 물론 그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을 만드느라 더 바빠지긴 했지만. 

그런데 그걸 윤아가 어떻게 알았지?

“게다가 저 싱크대를 열어보면 가나다라 순으로 조미료도 싹 정리해 놨을거고.”

어라? 진이형까지? 둘 다 쪽집게네? 

“형. 어떻게 알았어? 엄청 신기하다. ”

내 말에 진이형과 윤아는 서로 마주보더니 흐음…하면서 동시에 이마를 짚었다.

“너 아직도 모르겠냐?”

“뭐가? 뭘 몰라?” 

윤아의 말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러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진이형이 사과를 찍어먹던 포크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니가 입으로는 싫다 싫다 하면서도 꽤나 성욱이를 신경쓰고 있다 이 말이지.” 

“뭐라구?”

아니 도대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무나 소름끼치는 발언에 나름대로 경악하고 있는데 옆에서 윤아가 한술 더 떴다. 

“내 생각엔 너 이 집에 영영 눌러 앉을 것 같애.”

“야! 내가 이십일이나 더 이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그렇쟎아도 밤마다 잠이 안 오는데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얏! ”

그러나 그 문제의 발언에 엄청나게 흥분한 나를 보면서도 두 사람은 요지부동.   

“생각해봐. 너 입으로는 싫다싫다 하지만, 하는 걸 보면 완전히 이 집에 적응한듯한 생활패턴!”

“맞아! 맞아!”

“무슨 소리야! 나는 절대 절대 그런 놈 따위 신경쓰고 있지 않다구! 나는 그냥 내 본분에 최선을 다할 뿐이야!”

“정말?”

“그렇다니까!”

딩동 ㅡ 

바로 그때였다. 현관에서 성급한 벨소리가 들린 것은. 단 한 번의 초인종 소리에 나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다 말고 <핫!> 하면서 반사적으로 현관으로 튀어나갔다. 아직 오후 다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설마 놈이 벌써 들어온 건가? 

“누, 누구세요?”

나는 인터폰을 들 생각도 하지 않고 현관문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나오는데는 0.1 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 

이런!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오는 것은 흰 셔츠에 검은 노타이 정장을 입은 놈이었다. 여느때처럼 나

를 지나쳐 안쪽의 자기방으로 가려다가 놈은 현관에 놓여있는 신발을 보고 멈칫했다.

“어, 성욱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보경이 친구 한윤아 입니다.”

진이형과 윤아도 언제 나왔는지 재빠르게 거실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놈은 언제나

처럼 무뚝뚝하게 둘에게 고개를 잠깐 숙여보이고는 복도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얼른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저, 저녁은?”

“됐어.”

“그,그럼 과일이라도,”

“생각없어.”

“그럼 목욕물이라도 받을까요?”

“싫어.”

그 말만 남기고는 쾅 하고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제기랄. 하여튼 냉정하기는.

한 번이라도 대답 좀 길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나는 입을 삐죽이며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

었던 진이형과 윤아가 식당 의자위에서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왜?”

“…보경아.”

“응?”  

“….너 항상 그렇게 하냐?”

“뭘?”

“그 네가 지금…아얏!”

내 말에 윤아가 뭐라 말하려는데 갑자기 진이형이 팔꿈치로 윤아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형! 아프쟎아!”

“시끄러. 야, 보경아. 성욱이도 왔고하니 우리 이만 집으로 가야겠다.”

“벌써?”

“그래. 불편하쟎냐. 우리가 다음에 다시 놀러올께.”

말을 하면서도 진이형은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의 윤아를 잡아끌고 서둘러 현관으로 갔다. 뭔가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시간도 그렇고 하니 진이형이 가게문을 열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둘을 배웅하러 현관으로 갔다. (하여튼 ....ㅡㅡ;;) 

“잘있어. 보경아. 다음에 전화할께.”

“야, 황보경! 너 내가 아까 한 말 잘 생각해봐!”

“너 빨리 나와!”

아야야야, 하고 버둥거리며 끌려가는 윤아의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문밖이 조용해졌다.

하여튼….소란스럽다니깐…..

나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다 놈의 방 쪽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워낙 방음이 잘되어있는지

라 그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샤워라도 하는 걸까….?

“…..에이. 내일 아침 국거리나 다듬어야겠다.”

나는 어제 사온 북어가 냉장실에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향하다 문득 식탁 위에서

 두 사람이 먹다 남기고 간 사과를 바라보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런데 아까 윤아가 뭐라고 그랬지?”

뭔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기분 나쁜 말을 한 것 같은데…그래서 내가 엄청나게 흥분을 한 것도 같은데….

“에이, 모르겠다.”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는 이내 포기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뭐 중요한 거면 얼마 있다 생각이 나겠지. 

지금의 나에게는 국거리용 북어를 찾는게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윤아가 말한 그 불길한 예언이 얼마 안 가 현실로 찾아오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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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주신 분들...제가 정말 감사히 고이고이....읽고있답니다. 생긋 ^^

그런데 수정을 해가면서 올리는 거라...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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