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하하. 세상에는 매저가 참 많아요.”
이혜준이 코웃음을 치며 계단을 올랐다.
“구마를 마치면 김석화 씨를 수련원으로 데려가실 거라고 하던데요. 교화시켜서 인간 만드는 덴 노동이 최고라면서요.”
뒤따르던 하성조가 고자질하듯 보고했다.
김석화는 강지헌이 ‘지리교육’이라고 부르는 아마추어 무당의 이름이었다. 먹어도 되는지 간 보다가 되레 윤상현에게 집어삼켜진 새끼.
안에 든 것이 흉신이라 구해 주긴 해야겠지만 숙주가 된 놈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순전히 운이 나빠서 걸려들어 망가져 가던 강지헌을 떠올리면 김석화 같은 놈에게 쓰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 놈이 인간이 되든가 말든가.
“쯧쯧. 그래요, 벼농사 수확기가 다가오지.”
꼰대 눈엔 모든 인간이 공짜 노동력으로 보이나 보다. 교단에서 식량을 조달하라는 임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이것저것 농사에 손을 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 저 혼자서만 수행을 핑계로 개고생하는 거라면 눈살을 찌푸릴 이유가 없지.
“다음엔 너희도 일 거들라며 쌀 포대나 농작물을 서울 교구로 보내올 때마다 진짜 부담스러워요. 끌려 내려갈까 봐 겁납니다.”
“하 비서님은 내가 절대 못 보내죠.”
이혜준은 지금 강지헌을 살리는 데에 모든 행동력을 퍼붓고 있었다. 옆에서 HP 회복을 위한 포션을 퍼부어 줄 동료─시중꾼─가 없으면 기력이 달려서 죽을지도 몰랐다.
‘우와, 절대 못 보낸대. 우리 교구장님, 게을러터진 와중에도 아랫사람은 꼬박꼬박 잘 챙겨 주신다니까.’
동상이몽에 빠져 감동한 하성조가 말을 이었다.
“또, 거기 수료자 대부분이 막판에 가선 과거를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겠다며 하루에 울먹울먹 반성문을 스무 장씩이나 써낸다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뭘 그렇게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는 걸까요?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범종 스님 탓에 고통받던 그 사람들이 그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신자로 돌변하는 거잖아요. 하여간에 그분도 한 카리스마 합니다.”
하성조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수련원 사람들을 어떻게 갈아서 도출해 낸 수확물인지 알다 보니 공짜 농산물이라도 달갑지가 않은 거였다.
“광신도 키움이.”
이혜준이 한마디 툭 던졌다.
“……. ……. 어, 저기…… 웃어 드릴까요?”
한참 있다가 하 비서가 미안한 기색으로 묻는다. 그러면서도 어느 지점에서 웃어 줘야 할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됐습니다. 그저 우리 지헌이가 그립네요.”
강지헌이라면 지금쯤 계단을 굴러떨어질세라 배를 움켜잡고 킬킬거려 줄 텐데.
“그분은 좀 웃음이 헤프…… 아니, 개그에 대한 역치가 평균 이상으로 낮은 것 같더라고요. 첫인상은 남의 이목 신경 안 쓰고 굉장히 무신경할 것처럼 보이시는데, 아니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막상 겪어 보면 의외로 털털하고 친절하시더라고요. 교무관들이 집에 들를 때마다 밥 먹고 가라고 하시기도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은 ‘너처럼 예쁘고 다정한 애를 만난 적이 없다.’라는 이혜준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믿지 않았지만.
실질적 주거지인 2층의 현관문을 열자, 그제야 유리를 낀 중문을 뚫고 바깥으로 범종의 고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윤상현이 이놈아, 당장 거기서 나오너라!”
지금 지내는 욕실 네 개 딸린 자췻집하고 구조가 일치하는 건물이지만 가구를 들이지 않아서인지 목소리가 쩌렁쩌렁 빈 공간을 울렸다.
“…….”
‘아, 이분 지금 김석화 씨 목소리가 안 들리는구나.’
이혜준이 무반응으로 있자, 하성조는 귀신 앞에서 눈이 멀고 귀가 머는 그의 특성을 떠올렸다.
오래전 초대 대종사가 내는 소리도 이혜준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종사를 속에서부터 파먹고 그 안에 귀신이 둥지를 틀고 있었으니까.
“……. ‘니가 뭔데!’라면서 대드는데요? 신발은 그대로 신고 올라가시면 됩니다.”
귀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이혜준을 위해서 하 비서가 말을 옮겨 주었다.
‘저건 윤상현한테 완전히 잡아먹혔나?’
그제야 지리교육 김석화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혜준이 생각했다.
공숙선이 챤 발름 요팟과 했던 계약과는 또 달라서, 저건 귀신에게 목소리마저 집어삼켜진 모양이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 챤 발름 요팟이 가끔씩 빙의를 하긴 해도 저 귀신처럼 숙주의 의식을 완전히 장악하거나 몸을 조종하는 일은 없었다. 정화된 신령이다 보니 몸주가 될 생각도 없었고, 공숙선더러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유리문에 붙어 서서 잠시 실내의 동향을 들여다봤다. 눈에 들어오고 손에 잡히는 유물이나 만질 줄 아는 이혜준이 나설 단계는 아니었다.
강지헌이 쓸모없는 공간이라고 부르는, 외부 거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예닐곱 명의 아는 얼굴들이 서거나 앉아 있었다. 직사각형의 통로 면적만 76제곱미터로, 일반적인 교실 하나가 거뜬히 들어가는 크기였다. 안쪽으로 두 명, 나머지는 유리문이 있는 입구 쪽에 몰려 있었다.
“도망가 봤자 소용없어. 내가 매를 들기 전에 얌전히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거다.”
맨 안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중년의 남자가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사람을 엄하게 꾸짖었다. 유일하게 장삼과 가사를 걸치고 삭발을 한 그는 한눈에 불교 계통의 승려로 보였다.
사사사삭. 사사사삭.
한편, 지리교육 김석화는 밧줄로 양손과 양다리를 묶인 채로 대리석 바닥을 기고 있었다. 굼뜸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과 방향 전환이 무슨 뱀이나 미꾸라지를 연상하게 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서도 기괴하게 뒤틀린 몸짓 탓에 인간처럼은 여겨지지 않았다.
강지헌이 말하길 윤상현의 조상신은 네발짐승 같았다는데, 그 후손은 새로운 경지의 생물과 접목한 듯이 보였다. 저 집안은 도대체 뭐 하는 혈족이기에 죽어서는 인간이 아닌 꼴이 되는 것일까.
“저놈, 강지헌 씨 어디에 있느냐며 줄기차게 찾고 있는데요.”
이혜준의 옆에 서서 지켜보던 하 비서가 김석화의 수상한 동작을 설명했다.
“뭐…… 지헌이 소지품으로 낚으셨어요?”
저걸 106호 건물로 끌어들이는 데 강지헌의 옷가지나 장신구를 가지고 유인했느냐고 묻는 거였다.
“아닙니다. 여기도 일할 사람이 넘치는데 굳이 귀신 얘기만 나와도 질겁하는 분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잖아요.”
강호의 도의를 아는 하 비서 덕분에 불쾌해지려던 기분이 도로 나아졌다.
이혜준은 여섯 살이 되도록 말문이 트이지 않아 자폐를 의심받기도 했는데, 실은 그저 대꾸하기가 성가셔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 버릇은 자라서도 그대로 유지돼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일방적인 혼잣말을 하든가 말든가 흘러가는 구름과 구름 사이의 두 점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함수를 찾고, 그 연결선을 3차 다항식으로 만드는 수학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하 비서도 여러 해 동안 그 혼잣말 군단의 일원이었다가 겨우 신임을 얻어 사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의 관계로 발전했다. 이혜준은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었다. 그가 낯을 가리며 조개처럼 한번 다문 입을 열지 않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는 획득하는 정보량의 차이도 엄청났다.
경영지원실 직원들은 이혜준을 두고 ‘혹세무민의 달인’이라고 뒷말을 했다.
혹세: 세상을 어지럽게 함.
그는 세상 대신에 정보를 교란했고, 백성―경영지원실 직원―들을 미혹하게 하여 진실을 덮었다. 백성들은 윗선에 보고하려고 이혜준을 밀착 감시했을 때조차 그가 실제로 뭐 하는 사람인 줄을 몰랐다. 시도 때도 없이 드러눕고, 자고, 멍 때리고, 이 놈팡이의 나태함이 회장님을 그토록 노하게 한다고 여겼지.
두 사람이 반목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초대 대종사의 사망에 있었지만.
자연사라고 판가름 났음에도 회장님은 그 일을 타살 사건이라고 칭했다. 막내 손주가 집안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보살펴 주시던 버팀목을 뽑고 훼손했다고 말이다.
모시던 신령이 재질이 훌륭한 그릇 안으로 스며들었을 때에 이미 인간 대종사의 삶은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숙주를 제물로 제공한 사람도 회장님 본인이건만 사건 발생 당시 어린애였던 손주를 살인범이라고 지목했다.
회장님에게는 인간 대종사를 죽인 건 대업을 위한 당연한 수순에 불과했지만, 모시던 신령을 소멸시킨 건 용서하기 어려운 대죄였던 것이다.
그의 신이 사멸한 후로는 악재가 겹칠 때마다 그 상황이 이혜준의 탓이라고 몰아갔다. 정신적 지주가 사라졌으므로 이제 세경은 내리막만 남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현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식도 가물가물하는 그룹 총수의 자리를 부회장이 대신하고 있었다. 회장님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남몰래 수양회를 정리하는 일 이외에도 조카에게 바라는 바가 많은 인물이었다. 기업의 이미지 쇄신 작업보다는 실제 돈이 되는 사업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자율 주행 기술이라든지, 방산 산업과 관련한 기술이라든지, 조카가 개발한 모든 것이 세경의 소유 자산이라고 여겼다. 즉, 날로 먹고 싶어 했다.
조카의 회사가 외국계 사업체인 까닭에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어렵고, 국내 법망으로도 옭아맬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대한민국에선 장손이 잘돼야 집안 전체가 균형 있게 번성하는 거다. 다 함께 잘 먹고 잘살자는 거지.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전부 내 손 안으로 들어오게 돼 있으니까 다른 삼촌하고 이모들이 제 회사 힘들다며 징징거린다고 그쪽으로 도움을 주면 곤란해. 걔들은 고생을 해 봐야 기업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 줄을 깨닫는다고. 너 이번에 물류 센터에 초 단위로 주소 식별해서 컨베이어로 정렬하는 로봇 하나 보냈다며. 그거 아마존 거보다 성능 더 좋다며! 아무리 테스트용이라지만 그걸 덥석 갖다 바치냐? 그 자식들도 말이야, 능력이 안 되면 회사를 포기하고 일찌감치 맏형에게 맡겨야지. 어차피 다 내 건데! 어딜 조카에게 구걸을 해.」
「…….」
「야, 혜준아? 큰삼촌 말 듣고 있는 거지?」
그때 이혜준은 초점 잃은 눈으로 먼 산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