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벌써 찾아낸 거예요? 아르망 씨, 이 정도 속도라면 경찰보다 더 유능한 거 아니야?”
“경찰청에서 깔아 둔 인프라로 검색하는 거니까 따지자면 그쪽 자산이고 그쪽 능력이지. 이동 범위가 좁아서 굳이 이런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더라도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모니터 보고 금세 발견할걸.”
그래. 범죄 드라마 보면 아직까지 형사가 수동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저기 있네요!’라고 외치더라.
전 같으면 ‘도둑놈이 국가 기반 시설을 허락 없이 빌려 쓰면서 양심은 있네.’라고 코웃음 치며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을 텐데, 당장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람을 찾는 게 먼저다.
“어. 나 여기 알아요. 그런데 저쪽 분은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거지?”
한 사람은 동네 놀이터에서 멈추었고, 다른 사람은 계속 걸어가는 중이었다. 눈에 익은 동네 풍경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지헌아, 저분 진로 예상하면 아차산 방향이야.”
“그쪽 등산로에 CCTV 잔뜩 깔려 있는데, 아르망 씨는 산속에 있는 기기론 접속이 어려운가요?”
약수를 뜨러 다니던 길이라 잘 알았다.
“야간이라서 CCTV 가지고는 별 도움이 안 돼. 지장물이 잔뜩인데다 가로등도 없거든. 열화상 드론 띄울게?”
“…….”
이혜준이 불법에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라고 나는 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적발되면 전부 내가 한 짓이라고 해야지.
증거가 남는다고 여기니 자꾸만 서창경의 방식이, 무신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쉬워지려고 했다.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도와주는 이혜준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잠시 후 AI가 아닌 진짜 사람 아르망 씨에게서 확인차 연락이 왔다. 손이 바쁜 이혜준이 스피커 모드로 통화했다.
―이혜준, 너희 집 옥상에 있던 드론 열 대가 일제히 날아가던데?
“어. 지금 내가 조종하고 있어. 그 동네 산에 들어간 사람 한 명 수색하려고.”
―나 작업 중이라 그것까지는 못 챙겨 준다. ……납치? 혹시 자살하러 산에 간 건 아니겠지? 많이 중요한 일이면 가까이에 있는 김에 내가 지켜보고.
심각함을 느꼈는지 박양우가 도중에 말을 바꾸었다.
“괜찮아. 네가 맡은 일도 중요해. 우리 도착하기 전에 그거나 제대로 설치해 둬.”
―양심 없네. 내 작품에다 자기 촌스런 이름 갖다 붙이라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하지?
회사 자산을 사유 재산처럼 굴리는 미친 직원 대 양심 없는 직원의 피장파장 대결이었다. 사심으로 창업해 사심으로 경영하는 콩가루 회사를 보는 듯했다.
“네 이름이 더 촌스러워.”
―웃기지 마. ‘Sebastian’보단 ‘Armand’이지!
“한국 이름으로 하라니까.”
―내수용도 아닌데 이혜준을 얻다 써먹어. 차라리 ‘세바’가 더 그럴싸하지 않아?
“상품화할 거 아니야. 귀신이 인식하지 못하게끔 잠시 이름을 바꾸어 두려는 거지.”
지금 이혜준은 자기 사업 파트너가 아닌 강지헌에게 설명하는 거다. 아무래도 자췻집에다 아르망 씨 같은 복제 AI를 설치할 모양이었다. 방상시의 이름과 목소리를 가진 인공 지능이라고 여기자, 좀 더 마음이 놓이며 기대 심리가 부풀어 올랐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응용 과학이지!
방상시가 들어가자 비로소 과학적 접근법에 대한 신뢰가 싹트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변명도 되게 같잖게 한다, 너?
전화기에서 박양우의 코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밴 앞자리의, 귀신에 씐 놈의 뒤통수와 귀신에 씌었던 놈의 뒤통수를 번갈아 훑으며 나도 쓴웃음을 지었다.
“귀신이 어디 있긴. 새끼가, 만나면 우리 신령님의 자태를 한번 보여 줘야겠네.”
운전석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껄이는 꼴을 보아하니 공숙선 본체다.
귀신 쫓고 사람 찾는 걸 도와 달라고 할 땐 의식이 없는 척하더니 저주할 거리가 생기자 쏜살같이 튀어나온 거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인성이 쓰레기인지.
공숙선이 개놈하고 갈라서 줘서 진심으로 안심이 됐다. 쓰레기 더미보다는 쓰레기 하나를 치우는 게 그나마 수월하니까. 쓰레기의 신력에 대한 기대보다는 서창경의 전력을 약화시켰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찍힌 좌표와 예상 진로가 나왔기에 드론은 산속에서도 금세 목표한 인물을 따라잡았다. 이혜준이 관리인의 얼굴을 확인하고, 세 대만 남긴 채 나머지 드론을 충전소인 자췻집 옥상으로 돌려보냈다. 산에 남은 드론 중 두 대는 정찰을 하고자 주변으로 흩어졌다.
관리인이 쫓기듯 허둥거리며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이상하네. 프로펠러가 없는 기종이라서 저 위치에선 드론 소음이 거의 안 들릴 텐데 왜 자꾸 뒤를 돌아보시지?”
“…….”
뭐가 따라오니까요.
언뜻 사족 보행을 하는 듯이 보여서 처음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인가 했다. 상반신을 구붓하게 해서 걷는 사람이었다. 산 사람이 아니어서 탈이지.
‘혜준 선배 눈엔 들어가지 않는 걸 보니 죽은 게 맞네.’
이쪽에도 귀신이 따라붙었고, 놀이터 쪽도 마찬가지라 실은 아까부터 이혜준 몰래 ‘시발 무서워.’를 몇 번이고 우물거리는 중이었다. 귀신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이제는 그만 무서워할 때도 됐건만 여전히 심장이 바짝 졸아들었다.
산 위가 공포 영화라면, 놀이터 쪽은 유원지에 놀러 온 분위기였다. 관리실 직원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옆자리 그네를 돌아보는데 그가 무엇을 눈에 담는지는 몰라도 몹시 즐거워 보였다.
내 눈엔 눈알이 시뻘겋고 양팔이 기형적으로 꺾인 남자가 혀를 길게 빼물고서 직원의 그넷줄을 낚아채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잡혔다. 저 줄을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걸까.
됐다. 깊이 생각하지 말자. 한 사람이라도 좋은 꿈을 꾸면 된 거지. 아니다. 저걸 보고 기꺼워할 인간이 한 명 더 있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당 귀신 하나 붙이기, 1인 1귀신 체제로 만들고 싶다는 공숙선에게 보여도 ‘딱 됐네!’ 하며 반길 장면이었다. 공숙선은 저 장면을 보며 좋은 그림이라고 박수를 칠지언정 사람 살리는 데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뻗진 않을 거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즉, 모두가 신령이 될 준비 활동 중인 거지.」
공숙선은 사람은 결국 귀신이 되고자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쓰레기의 쓸모를 기대하지 말라던 이혜준의 말이 옳았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교차로와 횡단보도에서 만난 모든 신호를 청신호로 바꾸면서 빠르게 북상했다. 이 방면 도로에 익숙한 나도 도달해 보지 못한 경이적인 시간대가 나왔다.
“도로가 이렇게 한산한 이유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겠죠? 아르망 씨가 뭐 했어요?”
신호등 조종하는 것처럼 뭐를 했을 거야, 그치?
“교통 센터하고 다른 차량 내비에 간섭했어. 한국 도로에서 정보 내려받는 곳이야 뻔하잖아. 가짜 정보를 흘리는 거지.”
“…….”
범죄는 범죄인지라 근심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짓을 시키려고 이 선배를 끌어들였나 싶고, 역시 인간이 가진 수단보다는 무신으로 해결하는 편이 더 합법적이 아닌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갈등에 시달렸다.
“구급차나 소방차는 건드리지 않아. 평소에는 이러고 다니지 않으니까 얼굴 좀 펴자?”
“나 때문에 선배가 이런 일 하게 돼서 죄송해서 그러죠.”
“뭘 자꾸만 네 탓을 해. 누구 탓을 해서 뭐 하려고 무슨 일만 생기면 강지헌 탓이래. 그거 버릇 든다. 정신 갉아먹는 원인이야. 그리고 우리 집을 관리해 주시는 분이 산을 헤매고 계시는데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 당연히 모셔 와야지. 너 때문이 아니라니깐.”
그는 일반인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움직이지만 그 행위의 중심에는 늘 선한 의지가 존재했다. 내겐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바라보고 매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강성이고 기가 세고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무엇보다 서창경에게 기대어 살 때처럼 강지헌이란 존재가 깎여 나가는 느낌이 없었다.
“역시 달팽이는 모두 구해 주시네요.”
내 마음이 그의 온기 곁으로 한층 더 다가섰다.
“무슨 달팽이? 헛소리 늘어놓는 거 보니까 우리 강지가 지금 힘들구나. 그래, 지칠 만도 하지. 형 앞에 힘든 거 다 내려놓고, 아까 그 향주머니도 내려놓고, 형이 다녀올 동안 차 안에서 가만히 쉬고 있자?”
미쳤나, 이 인간이.
“느려 터져선 가긴 어딜 가요! 산 잘 타냐고!”
그놈의 향낭은 잊지도 않네. 잃어버렸다고 해야지. 연못에다 빠뜨렸다고 할까?
“깜짝이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너야말로 겁도 많은 애가 가긴 어딜 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겁 없어졌어.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요. 내가 다녀오는 게 더 빠르다고요.”
“겁 없다는 녀석이 어째서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해.”
“…….”
“우리 제일 먼저 뭐 하기로 했어. 네 눈부터 정상으로 돌리자고 했잖아. 왜 여태까지 들인 수고를 허사로 만들려고 해. 향주머니 어서 꺼내 놔.”
와 씨, 끈질긴 인간. 포기를 모르네.
이혜준도 내가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았던 거다. 내가 보는 환각이 순전히 서창경의 주술 탓이라고 여기게끔 유도한 것은 그러잖아도 멘탈 나간 놈에게 근심거리를 더 끼얹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중독을 증명할 때 서창경의 정체가 탄로 날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굳이 환각을 보게 한 이유에 서창경의 비밀이 담겨 있으니까.
나는 여태 내 정신만 망가진 줄 알았지. 몸까지 정상이 아닌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LSD 중독 말이에요. 나도 모르는 새에 치료할 작정이었어요?”
그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