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65)화 (65/96)

65화

이혜준을 아버지 대학 동문의 극기 훈련에 데려갔다간 절교 선언을 들을지도 몰랐다. 낯가리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그 성격에 현역으로 군대 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빅 데이터 분석병’이었다고 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어만 들어도 사람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도 일하는 데엔 별 지장이 없을 듯한 업무 종사자처럼 들렸다.

이혜준의 회사만 해도 전 사원 출퇴근 자유였고, 대부분이 재택근무 위주로 근무했다. 그 회사 대표님은 “피차 얼굴 보지 않을 때에 일의 능률이 가장 올랐어.”라고 주장하셨다.

“강지 씨, 그래서 어디로 가신다고요? 후문 쪽으로 가는 길이면 태워 줄게요. 유시호랑 나는 나가서 먹으려고.”

이번엔 김재원이 물었다. 캠퍼스 내에서 이동할 땐 늘 처박아 두는 자동차를 운용하는 이유는 뻔했다. 호빵이를 머나먼 경영대에서 모셔 오고 모셔다 주기 위해서겠지. 날 상대론 한 번도 없었던 서비스다.

와, 나도 같은 경영학부 학생인데 이런 차별을 당하네?

감탄이 나올 뿐 섭섭한 마음은 일지 않았다. 상대 평가의 깔판이 돼 줄 학과 후배가 한 학기 동안 몸이라도 안락하게 수업을 들었으면 했다.

“됐어. 너희끼리 가라. 시호, 점심 맛있게 먹어~.”

목적지를 밝힐 생각도, 호빵이를 인문대까지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 발각되면 같은 자동차에 탔다는 사실만으로도 파르르 지랄을 떨 누군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으니까. 눈치 보는 나도 웃겼지만 그분의 오해를 풀어 주는 과정이 더 피곤했다.

그냥 배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 쓰지를 말아야지.

사귀는 사이도 아니면서 왜 야단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일부러 화를 돋우거나 상처 줄 필요는 없다고 봤다. 이제는 선을 조금 넘더라도 용납되고, 상대방의 감정을 신경 써 줘야 할 만큼 가까워진 사이라고도 여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허기가 지면 어지럽고 빈혈이 일어난다는 허약한 그분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호빵이를 뒤로한 채 재빨리 강의동을 빠져나왔다.

알람까지 맞춰 가며 끼니와 간식을 챙기는 그분이시다. 서두르자.

공과대에서 개설된 교양 강의라 인문대까진 제법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평소라면 아무 고민 없이 걷거나 뛰었을 텐데 오늘은 고작 몇 분 더 일찍 도착하겠다고 교내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인골 고고학자의 연구실이 있는 제2 인문관에 도착해서는 어느 배달원의 뒤를 이어 승강기에 탔다. 누르려던 층의 버튼이 눌러져 있기에 새삼 배달원에게 눈길이 갔다. 개코가 발동해 그가 운반하는 철가방 속 음식을 차례차례 짚어 냈다. 짜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깐풍새우.

그분께서는 이삿짐을 날랐으므로 오늘 점심은 중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

∞ ∞ ∞

내가 간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동안 이혜준이 그릇을 감싼 랩을 벗기며 오전 중에 내 짐을 전부 빼낼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하 비서님이 따로 화물차와 사람들을 보내 주셨어.”

음식을 앞에 두고 신이 난 얼굴엔 고생한 흔적 한 톨 엿보이지 않았다.

이혜준이 있으므로 무슨 수로 테이블을 한가득 메운 이 요리들을 다 먹어 치우나, 음식 낭비가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염려는 접었다. 그의 꾸준한 사육 덕택에 내 위장 크기도 전보다 늘어난 상태였고.

“근데 아깐 왜 우는소릴 했어요? 나는 미안해서 혼났잖아요.”

짐 나르는 도중에 배고파서 날 찾은 줄 알고 걱정돼서 허겁지겁 달려왔잖아.

“건물 바깥까진 나 혼자 전부 날랐지! 힘들었어!”

퍽이나.

“운송업 종사자라면 책 수레로 쓸 운반 기구도 가져왔을 텐데? 승강기 버튼 누르는 손가락이 힘드셨어요?”

“우리 강지, 생긴 건 싸가진데 말은 참 예쁘게 해. 응?”

의역하자면 말도 참 싸가지 없게 한다는 뜻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이혜준이 내 말씨를 칭찬해 주는 바람에 요즘 내 입에선 ‘시발’ 소리가 쏙 기어들어 갔다. 욕설을 꺼내기만 하면 우리 시발왕 말씨 겁나 예쁘다고 부둥부둥해 주는 탓에 쪽팔려서.

나 설마 이 인간한테 길들여지는 중인 거?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싸가지의 날개를 접고 인사를 건넸다.

“짐 옮겨 주고 책 놓아둘 장소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말끔히 정리할게요.”

이혜준이 자췻집 소유권을 쥐고 있을 동안의 임시 보관소 개념이었다.

이틀 전 돌칼 정령이 부모님 집을 방문하고 돌연히 결정된 이동이라 미처 짐 둘 곳을 정하지 못했다. 부모님 집엔 새로 책장을 들일 공간이 부족했고.

“나한테 전부 처분해도 돼. 대신에 무신에 관련한 책은 이 기회에 싹 치워 버리자. 앞으로의 강지헌 인생에서 지워 가야 할 내용들이잖아.”

이혜준이 제안했다.

출판된 책을 되는대로 끌어모아 정보를 수집해 봤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독서와 인터넷 검색을 한다고 해서 없던 신기가 생겨나고 저주가 풀릴 리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서창경은 나더러 무신에 매달리라고 했다. 내가 살 길은 그 길밖에 없다며, 내 모든 사고가 무신으로 귀결되게끔 하라고 했다. 누군가가 길가에 쌓아 올린 돌무더기조차 염이 깃들어 있으므로 허투루 대하지 말라고, 1년 365일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근데 나 이제 그거 안 하기로 했으니까.

“예. 그럴게요. 그래야죠. ……그나저나 이 방엔 귀신 없어요? 선배 예전부터 여기 쭉 머물렀다면 해골에서도 뭐 빠져나왔을 거 아니야. 코판 강 유역에서 출토된 거랬나? 그럼 챤 발름 씨 출신 지역 인근 아니에요?”

이혜준의 등 뒤로 늘어선 인골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중남미에서는 구멍이 뚫려서 훼손된 두개골이 상당수 발견된다더니 저들이 딱 그랬다. 사람 머리에다 무슨 짓을 한 건지 상상하기도 끔찍했다.

“너는 귀신 생각 안 할 거라면서 단 10초를 못 가네.”

이혜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적했다.

“눈앞에 대놓고 보이는데 어떡해요, 그럼. 혹시 다 같은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거예요? 이 중에서 챤 발름 씨 본체 있는 거 아니야?”

원래는 인간이었다던 돌칼 정령이 자기 본 그릇은 이곳에다 두고 돌칼에 스며들었던 건 아닌지 궁금했다.

‘남의 죽은 사체 비슷한 걸 왜 개인 연구실에다 두려 할까. 이해할 수가 없네.’

고대 유물이나 문화재는 당연히 국가 소유일 거라고 여겼는데, 이처럼 개인이 소장하는 유물도 상당하다고 해서 놀라웠다.

‘무슨 이유로 저딴 걸 갖고 싶을까.’

이건 내 개인적 견해일 뿐이고, 어째서 인골을 소장하고 싶은지 인골 학자에게 물어봤자 답은 나와 있었다.

“이 방에 있는 인골은 피라미드 안에서 출토된 유물도 아니고 챤 씨 정도 되는 신분도 없을걸? 그것보다 강지헌 사사건건 영향을 받아서 큰일이다, 진짜. 뼛조각을 앞에 두고 너처럼 귀신 생각에만 골몰하면 누가 고고학을 연구하겠어. 안 되겠다. 너 이쪽으로 건너와서 등지고 앉아.”

“선배도 마찬가지잖아요. 언제는 이 해골들이 독서실 친구 같다며.”

“그땐 친구 없어서 외로워서 그랬어. 지금은 강지헌이 같이 밥 먹고 놀아 주고 아싸 탈출하게 도와줘서 나 완전히 극복했잖아.”

말이라도 못하면.

결국 내 사고의 흐름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리를 옮겼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망상도 덜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전원 차단하는 김에 지하실에 가서 자가 발전기도 손보고 왔거든. 그래서 지금 개천사 상태가 영 별로일 거야. 그러라고 한 일이지만 화 많이 났을걸?”

“예? 위험하니까 거긴 내려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예 작정하고 일을 저지른 듯한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 이처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인간 옆에선 내가 내 명에 못 살지 싶었다.

“특별한 건 없었어. 공숙선한테 들은 대로 신줏단지 놓는 장소더라고.”

공숙선도 지하실엔 별거 없다고 얼버무렸지만, 별거 없는데 서창경이 출입 금지 구역으로 정해 뒀을까.

“위패 있었어요?”

“응. 그것도 있고.”

이혜준 역시 공숙선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서창경 씨 짓이라면 산 사람 위패는 아니었을 텐데 누구 거였어요?”

“그 건물 터주의 위패이지 싶어. 적힌 날짜를 보니까 죽은 지 그렇게 오래된 신령은 아니었거든.”

서창경 취미가 제사 지내기인 건 알지만, 특정한 신주를 모셨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간에 그는 누굴 섬길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요.”

“공숙선 말이 거기 터주는 지박령이라며. 오는 길에 그 지박령의 위패를 들고나와서 개천사 부모 집에다 배달했어. 내가 강제 이주시켜 줬어. 잘했지?”

“모, 모르겠어요. 그래도 되나?”

터주를 옮기는 일은 신령의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며 이동 전후로 특별한 의식도 치러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처럼 무식하게 행동해도 될 일일까.

걱정이 되는 한편으로 와락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근데 그 집에 이미 다른 터주가 자리를 잡고 있으면 어떡해요?”

“나하고 무슨 상관?”

“……. 큽-.”

사실은 이혜준도 순한 맛 인간은 아니었던 거다. 공숙선과 붙어 지내며 그 악질에게 시달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오히려 공숙선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쓰레기가 고분고분한 매력이 있지.」

공숙선더러 말 잘 듣고 얌전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 나타날 줄이야.

뭐, 서창경의 본가는 아드님이 그쪽 전문가이신데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하리라고 여겼다.

“하여간 너 탈주한 거 눈치채면 개천사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해코지하는 시기는 두 번째 영결 이후일 테지만. 이제 우리도 대열을 정비해야 해. 너는 돌칼을 받아 두는 게 좋겠다.”

이혜준이 내게 돌칼 정령과 혼례식을 올리라고 권했다. 미신이라며 자기는 흑요석 돌칼의 효력이나 저승혼사굿 따위는 믿지도 않는 주제에.

그래도 내게 지푸라기 한 줌이라도 쥐여 주며 안심시키려는 그의 정성이 고마웠다. 그 지푸라기라도 신령의 힘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에겐 큰 위안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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