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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40)화 (40/96)

40화

어김없이 부적이 붙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정면에 부적으로 가장자리가 도배된 창문이 보였다. 매일같이 보아 온 풍경인데도 오늘따라 색달라 보였다. 어째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어쩌면 기괴한 것도 같은…….

와. 이혜준 선배님이 내 고용주하고 상극은 상극인 모양이네. 별게 다 신경 쓰여.

산공김재원: [나는 카페 전화해]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전화를 걸자 김재원이 곧바로 받았다.

―어.

“너 거기서 자고 갈 것처럼 굴더니?”

―호빵이한테 장단 맞춰 준 거지 내가 남의 기숙사에서 밤새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냐. 매니저님이 부르셔서 카페에 와 있어.

유시호의 실물을 접한 김재원 역시 애칭을 호빵이로 결착 지은 모양이다.

“인테리어 마감은 끝났나 봐?”

김재원의 양친은 중남미 파나마 지역에서 커피 원두 농장을 경영하며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의 대도시에는 카페를 운영했다. 오로지 직영점으로만.

그동안 서울 지점은 미루어 뒀다가 국내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식의 전역을 기점으로 오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산공 김재원은 전공과는 무관하게 카페의 지점장으로 취직됐고.

본사에서 파견된 매장 매니저와 커피 전문가를 따로 둔 바지사장이지만 그의 부모님은 김재원이 가족 사업에 관심을 보이길 원하셨다.

―응. 공사 문제하고 알바 면접 때문에 불려 왔지. 지금 막 세 차례 면접 끝냈거든. 흡연실에서 한숨 돌리는 중이야.

연기를 뱉어 내는 숨소리가 평소보다 깊었다.

“뭐가 잘 안됐나 봐?”

―조금. 매니저님이 사람 뽑는 데에 무지 까다로우셔. 심사 기준이 내 얼굴이고 이 이하로는 안 된다며 모두 떨어뜨리더라. 그러려고 날 부른 거래.

김재원은 출신 고교며 그의 단대에서 가장 준수하다고 평가받던 놈이다. 발랑 까져서는 제대 전부터 머리카락을 제법 길러 나와 저보다 몇 달 앞서 전역한 내 머리보다 더 길었다. 밝은색으로 염색까지 하자 바로 며칠 전만 해도 군인이었던 티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군대 간 적 없었던 인간처럼 피부도 그을림 없이 관리가 잘돼 있었다.

“이야, 너희 매니저님은 눈이 정수리에 달리신 분인가 보다. 되게 높네. 카페에서 일한 적 있다는 호빵이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바리스타를 뽑는 척도가 희한했다. 커피만 맛있으면 됐지 알바의 용모가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저러는 걸까. 경영 대표 미남이 건넨 음료수도 한 입만 마시고 갖다 버리라며 되돌려 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업계였다.

―오픈할 때까지 사람 못 구하면 힘센 우리 강지 임시 알바 한번 뛰어 볼까요?

“그래. 내가 인물은 너보다 한 수 위라서 무조건 면접 합격이겠지?”

―눼, 눼. 언뜻 3초 미남자 강지헌. 큭.

‘눈깔 삐면 일순 미남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잘생긴 구석이 없는 자식’이라는 비웃음이었다.

“피부 상태는 너보다 45년은 더 젊으니까 거기에서 3초 빼면 나의 완승이네.”

―강지 씨의 미남 계산법이 특이하네요. 그나저나 이혜준 선배님은 그 얼굴, 그 피지컬로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연애 고자한테 반했대? 아까 죄 많은 새끼란 말은 호빵이가 아니라 그 선배하고 관련한 얘기였다고.

“으. 역시 그렇게 보였어? 나 좀 그 선배님 태도가 헷갈려서 너한테 물어볼 참이었거든.”

―거봐. 너 같은 둔치도 느낄 정도지. 너 쳐다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 어떻게 꼬셨어?

내가 귀신에 씌어서.

귀신 하나 소개해 주고.

귀신 덕분에?

이유를 늘어놓고 보니 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이혜준의 취향이 무서워지려 했다. 하물며 인골과 말 없는 우정을 나누는 분이시다. 취향이 괴팍하다 보니 나 같은 놈한테도 이끌리는 거겠지?

“그 선배님도 이쪽이야?”

감이 좋은 김재원에게 이혜준 게이냐고 물어봤다.

비밀을 공유하는 단짝이 된 계기도 이 녀석이 내 성향을 눈치채고 먼저 접근한 데 있었다. 잘 감추며 지낸다고 여겼는데 “대번에 알아봤어.”라는 설명이 돌아와서 신기했다.

그 말을 듣고 언젠가 만나게 될 내 운명의 상대도 날 바로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소원했다. 물론 그 운명의 상대가 귀신인 줄 몰랐을 때의 얘기다.

―그건 모르겠고 대만 귀신 얘기 나올 때도 대놓고 네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우리 강지 씨한테서 완전 눈을 못 떼.

“내가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란 거네. 혹시 이혜준 선배님이 고백하면 어떡하지, 김재원아? 사랑하는 네 핑계 대고 거절해도 될까? 우리, 루머 속의 공식 커플이잖슴.”

―…….

수화기 너머에서 할 말을 잃고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뜸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랄 마, 새끼야! 자체 제작 여친 놔두고 왜 하필 날 끌어들여?

“여친 없는 거 들켰다고요.”

―그래도 내 앞길은 가로막지 마라. 나도 연애란 걸 좀 경험해 보자?

날라리처럼 잘 놀게 생긴 김재원은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모태 솔로였다.

“자기도 거절할 땐 내 이름 팔아먹는 주제에.”

굳이 클럽에 가지 않더라도 성향을 알아본 게이들이 김재원에게 접근하는 일이 잦단다. 그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그만큼 집적거림을 당해 왔다고 한다.

나는 그랬던 기억이 전혀 없어서 무슨 황당한 소린가 했다. 휴대폰에 얻어맞고 두 줄기 코피를 흘리던 우리 과 핵인싸 설정우가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 새끼는 그저 술 처먹고 개 된 거지.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와서 사과받고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그럼 뭐 해. 그 자리에 있던 애들이 기억할 텐데.

어쨌거나 내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니까 되게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런 오징어들과는 경우가 달라. 너희 선배는 내 이상형이 아닌데도 홀린 듯이 자꾸만 고개가 돌아가더라니까. 그런 남잘 만날 기회가 어디 흔해? 만약에 경영 남신이 나한테 고백하면 난 두말 않고 영광입니다, 해야지. 넙죽 큰절부터 올릴 거야.

“새끼 너 알바 필요해서 그러지.”

―어, 그렇지. 잘 아네. 혹시 그 선배님이 사귀자고 하면, 우리 카페에서 6개월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서 쓰고 강지헌 씨 남친 시켜 준다고 하자?

양심이 망가진 놈이 지가 사귈 것도 아니면서 친구를 팔아먹었다. 게다가 그 친구가 팔릴 거라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내 주제에 이혜준 선배님 상대로 그런 불공정 계약을 성사시킬 것 같냐. 나더러 언뜻 3초 미남이라며.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돼 있거든요?”

게다가 내 쪽이 아쉬운 입장에서 그가 아무리 한심한 태도를 보이며 수그리더라도 마음껏 등쳐 먹긴 어려웠다. 뒤탈도 고려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너희 선배 눈에 꿀물 마르기 전에 노예… 아니, 근로 계약서 쓰자고.

“야.”

선배님의 대외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그 인간은 지가 차린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는 인간인데 남의 사업장에서 알바를 할 리가 없잖아.’라고 게으른 본색을 밝힐 순 없었다.

―너도 마음이 있으니까 내 의견을 구한 거 아냐?

“아니야. 진짜 중요한 사람이라서 내가 뭣도 모르고 실수할까 봐 물어본 거야. 우린 절대로 사귀면 안 되거든?”

두 번째, 세 번째 귀신이 언제 붙을지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사귀어 버린다면 위험 부담률이 높아진다. 그때까지 이혜준이 내 남자 친구일 거라는 보장도 없고, 내 성질머리에 헤어질 때 좋게 헤어지기도 어려울 듯싶었다.

역시 길게 친분을 유지하기에는 단순 선후배 관계만 한 것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연애 감정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내 눈에 이혜준이 연애 대상으로 보인다면 고려해 볼 모험이겠지만, 인간적인 호감만으로 그를 이용하고자 만나는 건 정말 큰 실례니까.

이혜준에게 고마우면 다른 방식으로 보답하는 게 옳았다.

―쫄지 말고 기회 닿으면 한번 사귀어 봐. 사람 헤프지 않고 괜찮아 보이던데.

대인 관계가 피곤해서 입을 다문 아웃사이더의 행동을 과묵함으로 넘겨짚고 하는 소리였다.

김재원이 겁먹지 말라고 선수를 치니 ‘그 사람이 나한테 빨리 정떨어질까 봐 겁나서.’라고 변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래, 나 쫄보다.

“내가 알아서 할게. 김재원아, 너도 애인 없는 처지에 상담해 줘서 정말 고맙고, 상담 비용 청구해라.”

―새끼가 말을 해도 꼭 형님 가슴을 후벼파고 있어. 고마우면 호빵이처럼 귀여운 게이를 소개해 주든가.

유시호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점이 김재원다웠다. 그래, 뭐 좋은 거라고 어린 후배 인생 힘들어지게 손을 뻗치겠어.

“야. 그런 귀여운 애 있으면 내가 먼저 만나지!”

―헤헤. 그래 봤자 강지 씬 연애 고자에다 눈치 존나 없고 무뚝뚝하고 애인 기분 맞춰 줄 줄도 몰라서 나한테 순식간에 애인을 가로채일걸요?

김재원이 약 올리듯 실패로 거듭날 나의 미래 연애 조감도를 그려 줬다.

씻고 통화를 마쳐도 서창경은 나를 찾지 않았다. 그의 낯짝을 보면 어째서 윤상현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숨겼느냐며 따지고 싶어질 게 뻔했다. 부딪히기 전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평소보다 저녁밥을 두세 배는 더 먹은 까닭에 여태 포만감이 들었다. 한 시간쯤 운동하고 누울까 하다가 오늘 밤은 이혜준을 본받기로 하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과식 분위기에 휩쓸리게 한 그가 떠올라 한참 피식피식했다. 웃고 있으려니 아래턱이 아픈 느낌도 들었다. 그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참 많이도 웃었는데. 이혜준은 나더러 의식하지 않는 순간조차 줄곧 웃는다 했고.

헤픈 건 강지헌이었네. 뭐가 그리도 좋았을까.

자괴감에 빠져드는 찰나 공교롭게도 이혜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경영이혜준선배님: [내일 도착하면 연락할게]

그를 생각 중이던 사실이 뜨끔해서 미리보기만 읽고 씹었다. 그런데 그다음 메시지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경영이혜준선배님: [지헌아 자기 전에 형 사진 한번 들여다보고 자]

뭔데? 악몽을 쫓아 주는 부적 효과라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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