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17)화 (17/96)

17화

숙소에서까지 들러붙어 작업을 방해할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이혜준은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는 내가 꺼지라고 하자, 두 번 묻지도 않고 눈앞에서 사라져 줬다. 후련해 보이는 그 태도에 내 존재는 그저 오는 길에 시간을 죽일 심심풀이 땅콩이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뻔했다.

갯벌에 차츰 물이 차오르자 조개잡이들이 숙소로 몰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기운이 빠져 발발 기다시피 앞마당으로 들어섰지만 수확한 조개를 내미는 눈빛만은 형형했다.

설탕을 첨가한 보리 냉차를 준비해 뒀는데 흥분이 가시지 않은 놈들에게 슈거 크래시를 선사해도 될지 고민스러웠다.

이 새끼들, 가만히 놔두면 펜션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갈 기센데?

“강지 형, 강지 형, 이것 봐요! 나 조개 백 킬로 캐 왔어요! 내가 결국은 해냈어!”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100kg은 아니었다.

“어, 그래. 우리 찬영이가 더위를 엄청 퍼먹었구나. 마셔.”

내가 조개가 담긴 통을 옮기는 동안 옆에 보조 역할로 서 있던 숙소지기 후배가 서찬영에게 냉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야, 나부터 마시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잖아.”

위 학번의 선배가 불쑥 끼어들었다.

“못생긴 순서대로 줄 세운 거니까 선배는 제일 뒤쪽으로 가세요.”

“진짜? 강지 니가 인물을 볼 줄 아네. 크크크.”

“얼른 뛰어가요. 1등 놓치겠다.”

“알았엉-.”

뒤에서부터 못생긴 순인데, 다들 더위를 먹어서 머리 회전이 원활하지 못했다.

“나도 뒤쪽으로 갈래요!”

다음 순서인 유시호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호빵처럼 부푼 얼굴을 보자 나도 빵 터질 뻔했다.

“못생긴 녀석이 가긴 어딜 가. 여기 너보다 못생긴 애 어디에 있다고. 얼른 마셔.”

호빵 캐릭터가 못생김을 우울해하면서 냉차가 맛있어서 행복해하는, 왔다 갔다 하는 표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먼저 마신 사람들에게 냉차 담당 역할을 주자, 냉차 담당이 열 명 스무 명으로 늘어나며 음료는 순식간에 전원에게 배급됐다.

“저희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조개는 수돗가에 두고 안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 쐬며 쉬세요. 수고하셨습니다!”

핵인싸 설정우가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너희 조개 해감해 본 적 있어?”

내가 숙소지기들에게 물었다.

“아니, 이제 인터넷으로 해감하는 방법 검색할 거야.”

“나 알아요. 조개에 소금 쳐서 물에 헹구면 되잖아요.”

해맑은 대답들이 돌아왔다.

응, 너는 모르는구나.

“그럼 그대로 둬. 애들 점심부터 차려 주고 내가 할 테니까. 너희도 점심 먹고 놀러 나가.”

본격적인 바비큐 파티는 해가 저문 뒤 열릴 예정이지만 고기를 구워 줄까 물어봤더니, 땡볕 아래 노동에 지친 이들은 너도나도 식욕이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벌겋게 익어 널브러진 일행에게 살얼음이 옅게 깔린 냉국으로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였다.

“우와, 강지 형 취사병이었어요? 어떻게 수십 명분을 순식간에 뚝딱뚝딱 요리해 낼 수가 있죠?”

“술 줄까?”

“여태 먹어 본 메밀국수 중에서 제일 시원하고 맛있어! 얘들아, 축제 때 우리 학부 주점 주방장은 강지로 하자! 강지로 당첨이다!”

“한잔하실래요?”

시끄러운 놈들은 낮술을 먹여서 재웠다.

“강지, 물 들어오는 거 보니까 시커멓던데 아직은 뻘 물 아니야? 수영해도 괜찮을까?”

“그러-엄. 들어갔다 나와도 안 죽어. 애들 데리고 후딱 다녀와.”

또, 숙소지기 당번 노릇을 한 설정우와 후배들은 바다로 내보냈다.

그래도 힘이 남아도는 인간들한테는 설거지와 청소를 맡기자, 지쳐서 곯아떨어졌다.

비로소 펜션 안팎이 적막에 휩싸이며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멀쩡한 술을 땅바닥에 쏟아부어도 지랄할 놈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호스를 끌어와 커다란 고무대야에다 물을 받고 소금을 푼 다음 해감할 조개를 수북하게 담갔다. 합숙 훈련, 수련회 등의 뒤치다꺼리에 익숙한 내게 이런 건 일도 아니었다. 혼자서 설렁설렁 식자재를 장만해 가며 개인 작업도 병행했다.

대문에다 특정한 신령을 불러들이는 호명부呼名符를 붙이기 전, 고용주의 염을 불어넣은 술과 소금으로 안전장치부터 마련할 작정이었다. 귀신을 부르는 동시에 귀신을 막아야 하는 역설적인 임무였다.

어째서 이곳이어야만 하느냐면 이 펜션에 머물던 숙박객 둘이 백중의 밤, 생전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올 것이므로.

홀로 손님맞이를 해야 하는 나는 해가 쨍한 대낮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고 무서워서 뒈질 것 같았다.

의뢰인은 그들의 가족이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데 시신을 건져 내지 못했다. 잠수부들이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점괘에 따르면 호령도 연안에서 멀리 떠내려간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해저에 못 박혀 선 채 저희 다음 차례에 올 제물만을 기다린다고.

그런 물귀신을 뭍으로 올리려면 특수한 장치가 필요했다. 단순히 부르기만 하는 호명부는 고용주 혼자 썼지만, 특수 장치에 해당하는 부적에는 총 여덟 도인과 종교인이 영력을 주집했다. 조상희가 모시는 큰 신의 힘을 누르려면 그 정도 인력이 모여서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혜준은 어떠했던가.

시선을 마주치는 단 한 단계만으로도 힘을 전이해 내가 조상희의 신령과 맞서게끔 조력했다. 아까 안동네 골목에서 미약했던 소금의 벽사 효과를 떠올리자면 이혜준은 내 주술이 실패했을 경우에 이 숙소 사람들을 지켜 줄 든든한 보험이었다.

물론 범죄에 가까운 사건에 공범으로 끌어들일 순 없기에 이혜준더러 대놓고는 도와 달라고 요청하기가 어려웠다. 서창경이라면 양심의 가책 없이 그를 이용할 테지만 그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그 개놈과 똑같은 인간이 되긴 싫었다.

‘부디 오늘 밤 이 결계 안의 모두가 무탈하기를 빕니다.’

무관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는 죄악감에 평소보다 더욱 간절히 기원했다. 소금을 꼼꼼히 뿌리고 술로 테두리를 그리며 탑돌이를 하듯 숙소 건물을 돌았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대문 쪽은 호명부를 붙인 후에도 재차 손보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머리에 새겼다.

테두리 안으로 들어서기 직전 고용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직 그의 근무 시간이었다.

“서창경 씨 일 안 해?”

―네 근처에 불길한 기운이 보이는데 누구 거야?

고용주가 내 질문을 무시하고 제 할 말만 꺼냈다.

“만신 거겠지?”

오늘 밤 윤 의원의 별장에 머물 조상희 아니면 이곳 토지신 얘기라고 여겼건만 잘못 짚은 거였다.

―신령 쪽이 아니고 생사람 기운이 전해지니까 하는 소리잖아. 작업 훼방 놓는 법사라도 만났어?

“……!”

아!

그제야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 고개를 뻗어 마당 안쪽을 둘러보다 1층에서 유일하게 열린 창문을 발견했다. 창틀에 올라앉은 기다란 다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굳이 얼굴까지 확인하려 시선을 위로 옮기는 만용은 부리지 못했고.

“어. 학교 선배 중에 신기한 사람 있는데 나중에 올라가면 소개해 줄게요. 방해꾼은 아니야. 착해.”

공평하게 이혜준도 올려쳐 줬다. 멀리서 지켜보던 것보다는 사회화되고 친절한 사람 같기도 해서 과거의 인상은 내 편견이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거리가 있어 제대로 들릴 리는 없겠지만, 본인에게 들키면 그러잖아도 바닥이라는 내 신용 점수가 더 떨어질까 봐 ‘천사 선배님’이라며 호들갑스럽게 부풀리진 않았다.

―……아니다. 그거 내 앞으로 절대 데려오지 마. 우리 일에 방해만 돼. 흉수가 끼었어.

잠시 머뭇거리던 서창경이 소개를 거부했다.

역시 이혜준은 나뿐만이 아니라 이 음충한 고용주에게도 상극이었던 거다. 그늘에 사는 존재인 나도, 내 안의 회충도, 저 눈부신 황금빛 눈을 마주하기 두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이미 검증된 방상시 눈깔의 힘을 포기할 순 없잖아? 지금 누가 누굴 흉수 취급이야. 악역 담당은 나하고 당신이지.

“직접 만나 보지도 않고서 댁이 어떻게 아시죠? 사이비 무당 주제에.”

―무당? 그런 질 낮은 것들하고는 비교도 하지 말라고 했지.

“내 눈엔 서창경 씨나 무당이나 거기서 거기거든? 만나 주기가 귀찮으면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참견이나 하지 마시죠.”

돕지도 않을 거면서 사사건건 간섭할 게 뻔해서 하는 소리였다.

―지헌아, 그 인간은 널 도울 수가 없어. 너한텐 아무 쓸모도 없는 능력이라고.

이렇듯 서창경은 내가 그의 계획된 노선 위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견제해 왔다. 하지만 그의 부림을 받고 학과 공부를 내팽개치고 시험 당일마저도 지방으로 뛰어다니던 사역견은 이제 없는 거지.

“아, 예. 그러세요? 무슨 능력인 줄은 알고 큰소리부터 치시나?”

알고 보니 당신들 영혼의 쌍둥이였구나.

도움 안 되는 무당 같은 거 찾아가지 말라던 이혜준의 충고가 떠올라 열없이 웃었다. 대면하기도 전에 서로에 대한 혐오가 끓어 넘쳤다.

둘이 한데 붙여 놓으면 보기에 얼마나 정다우려나. 얼른 소개팅을 주선해 주고 싶네.

―꼭 직접 만나 봐야 아는 줄 알아? 그 새끼 우리 일에 도움 하나도 안 돼. 귀신을 불러들여야 할 상황에서 신령이 꺼리는 걸 곁에 두면 어떡하려고 그래. 이번엔 너하고도 관련된 의뢰잖아. 우리 서로 물고 뜯더라도 비즈니스는 망치지 말아야지?

“그 말은 일리가 있네. 오늘 밤 작업엔 저 선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게요.”

―너도 자꾸 엇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하는 말 좀 새겨들어. 내가 다 널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

“네-? 댁이 누굴 위하신고요? 어린애도 속지 않을 사탕발림을 하시네. 나한테 인간 불신을 가르쳐 주신 게 사장님 본인이시잖아요?”

―…….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야.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얼만데 틈만 나면 다른 놈하고 붙어먹으려고 눈을 돌려? 저 불길한 것이 나만큼 네 인생 챙겨 줄 것 같아?

할 말이 궁해지니 또 은혜를 갚으라는 타령이다. 지난날의 앙금을 풀 방법을 찾지 못한 우리는 줄곧 이런 모양새로 엇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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