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신부 (6)화 (6/96)

6화

<제1장>
망혼일_3년 후, 여름

“서해안 호령도, 펜션 1박 2일 숙식 교통편 제공. 갈 사람 있을까?”

복학 전, 친하던 놈들은 모두 나라의 부름을 받는 중이고 마땅한 동행이 떠오르지 않아 인맥 넓은 동기에게 도움을 구했다. 설정우는 학교 근방에서 근무하는 공익 요원으로, 복무 기간 동안 학교를 제 놀이터로 삼으며 꾸준히 학우들과 어울려 왔다고 한다.

“호령도면 멀긴 하네. 가까운 데도 유원지로 개발된 섬이 여럿 있는데 굳이 거기까지 놀러 가겠다는 애들이 있으려나 몰라. 일단 물어는 볼게. 몇 명쯤 모으면 된다고?”

“아버지 승합차 빌려 갈 건데 너랑 나 빼고 열세 명 더 태울 수 있어. 인원수는 다 채우지 않아도 되지만 어느 정도는 북적였으면 좋겠다.”

고용주 말이 그곳에서는 떠들썩하게 지낼수록 안전하다고 했으니까.

“이 기회에 갈고 닦은 나의 핵인싸력을 보여 주마. 기대해!”

그리하여 핵인싸 놈은 ‘다음 주말에 당구 칠 사람 모여! 내가 쏜다!’라는 거짓부렁으로 다섯 명의 순진한 후배를 끌어모았다. 두어 시간 당구 치러 왔다가 1박 2일 납치당할 애들이었다.

“야. 우리, 선배가 돼서 애기들 상대로 사기는 치지 말자? 졸업할 때까지 계속 얼굴 보며 지낼 사인데.”

내가 고개를 내젓자, 설정우는 모집 내용을 변경했다.

‘이번 주말 ‘전라도’에 당구 치러 갈 사람?’

그러자 신청자가 우수수 빠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열다섯 명이나 더 모여 총 스무 명이 됐다.

뭐지, 이 녀석들? 다른 지방에 당구 치러 가고 싶을 정도로 MT가 고팠나? 나 없는 동안에 과 분위기가 단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나 보네.

예전엔 조별 과제 할 때나 잠깐씩 모이고, 철저히 각자도생하는 분위기였다.

아쉽지만 태권도 학원 통학 차량의 자리가 모자라 인원을 떨어뜨려야만 했다. 이번엔 내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조개 캐기를 통해 식량 조달해야 함.’

하지만 그 시도는 노동의 민족을 얕본 안일한 발상이었다. 인간들은 갯벌 체험까지 시켜 주느냐며 손뼉을 쳤고, 완전 잔칫집 분위기가 됐다.

“우와아, 직접 조개도 캘 수 있는 거예요? 재밌겠다!”

“나는 조개 백 킬로그램을 캐 올 것이다!”

“울 엄마가 집에 있는 마대자루 열 개에다 꽉꽉 채워서 돌아오래요. 히히.”

“모래 삽이랑 목욕탕 의자도 가져가야지! 아니다. 본격적으로 작업하려면 삽으로 캘 게 아냐. 조개잡이 전용 호미를 주문해야겠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우리 언니도 같이 데려가도 돼요? 회비 두 배로 낼 거래요!”

예기치 못한 관심과 호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아, 몰라. 나도 이제 늙었는지 요즘 애들 적응이 안 되네. 시장에 널린 게 조갠데 먹고 싶으면 한 소쿠리 사 오면 되지 왜 삽질이 하고 싶어서 저 난리일까.

삽질 노역에 시달리다 갓 전역한 스물셋 청년은 부쩍 나이 든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신청자가 훌쩍 늘어 관광버스를 빌리기로 했다. 단체 여행의 규모가 예상 밖으로 커지자 나는 인솔을 설정우에게 맡겼고, 복학 후 과 대표를 넘겨받을 거라는 그는 기꺼이 수락했다.

덕분에 나는 내 방문을 의심받지 않을 일정, 내 알리바이가 돼 줄 동행들 사이에서 고용주가 맡긴 임무에만 치중할 수 있게 됐다.

“섬에 들어가려면 물때를 맞춰야 해서 새벽같이 와도 소용이 없었던 거구나. 느지막이 집합한 이유가 있었네. 그나저나 저 다리는 왜 짓다가 말았대. 흉물스럽게.”

입학 동기인 차서영이 물었다.

“아, 저거?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짓는 시늉만 하다가 선거 끝나서 볼일 없어졌다는 얘길 들었어. 도중에 건설 비용도 전부 증발했다 하고. 처음부터 돈 떼먹을 작정으로 설계된 사업이었던 거지. 그건 그렇고 4학년인 너희들까지 무더기로 올 줄은 몰랐다? 구직 활동은 잘되시고?”

“묻지 마, 이 자식아! 취준생도 하루 이틀 정도는 숨통을 틔워 줘야 살지!”

반가운 기색이 사라진 차서영의 얼굴에 살기가 드리워졌다.

“누가 뭐래? 자, 사탕 한 알 드시고 진정하세요.”

슬링 백 앞주머니에서 캐러멜 과자를 꺼내 내밀었다.

“와. 강지, 넌 여전히 군것질거리 좋아하나 봐. 흐흐. 역시 네 근처에서 어정거리면 사탕이든 쿠키든 뭐라도 간식 하나씩은 튀어나온다니까.”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차서영이 키득거리며 내 손에서 캐러멜을 거둬 갔다.

군것질 좋아하기는. 음식 보시가 선업 포인트 쌓기에 제일 무난한 방법이라 이딴 거 준비해서 다니는 거지.

포인트를 적립해 두지 않으면 들러붙은 것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고용주의 말로는 타고난 복덕이 있기에 내가 아직까진 별 탈 없이 멀쩡한 거지 이 이후의 인생은 전부 나 행동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고용주는 조언이랍시고 하늘을 감동케 할 만큼 착하게, 호구의 삶을 살면 해결된다며 시시때때로 약을 올렸다. 자기 일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시부렁거렸다.

그럼 나는 여태 잘못 살아와서 벌을 받는 중인 거야? 내가 착하지 못해서 귀신이 붙은 거냐고.

“나도 오늘 이혜준 선배님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 학교 바깥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원래 저 선배님 MT 같은 덴 참석하지 않았잖아?”

차서영이 흘끔 뒤쪽을 돌아봤다. 덩달아 쳐다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이혜준이라면 우리 학부에서 워낙 유명했던 인물이라 나도 바로 떠올랐다.

뭐야. 그 인간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었어? 재수 없어.

“벌써 졸업하신 줄 알았는데 학점 구멍 났나 봐?”

1학년 2학기 처음 내 인생에 등장했던 그 선배는 당시에도 이미 예비역이었다.

“저 선배님도 휴학하고 한참 안 보였어. 이번에 너하고 같이 복학하려고 워밍업 하러 왔나 보다.”

“뭘 또 나하고 엮어. 저 선배님은 내 이름도 모를 텐데.”

워낙에 학생 수가 많은 학부라 같은 강의를 듣지 않는 이상 모든 학생을 알고 지내긴 어려웠다. 인원이 백 명이 넘어가는 대규모 강의에선 조별 과제로 만나지 않으면 이름과 얼굴을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아니, 너는 아실걸? 강지헌 너도 우리 학부에서 나름은 유명인이야.”

“뭘로?”

“음…… 밥 잘 사 주는 주제에 철벽은 오지게 치는 인간으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올려다보던 차서영이 툭 내뱉었다. 저도 표현이 웃겼는지 끅끅 웃는다.

“주제에?”

나도 피식하고 말았다.

“하여간 강지헌 몸 사리는 걸로 유명하지. 소개팅도 요리조리 다 피해 다니고 말이야. 너 다른 학교에 여자 친구 있다는 거 순 거짓말이지?”

“진짜 나 다른 데 좋아하는 사람 있어. 진심 우리 학교 여학우들한테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으니까, 혹시나 밥 사고 커피 사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나오면 내가 작업 거는 거 아니라고 전해 주라.”

전자도, 후자도 진실이기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다른 학교, 봄빛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가 좋아하는 이단정 씨, 울 엄마. 그리고 여자애는 안구 안쪽으로 일절 들어오지 않는 나의 확고한 연애 성향.

“그래, 지금 네가 치고 있는 그 철벽 말하는 거라고! 별 사심 없다는 인간이 애들한테 먹을 건 왜 끊임없이 사 주냐? 수상하잖아?”

“차서영, 저기 봐 봐! 드디어 바닷물이 빠지려나 보다.”

철조망 너머를 가리키며 동기의 관심사를 돌렸다. 물에 잠겼던 도로가 서서히 드러나자, 자동차에서 내려 통로 입구 쪽에 모여든 구경꾼들의 술렁거림이 고조됐다.

“우와아, 노아의 방주다!”

“와! 노아의 방ㅈ……? 미친. 순간적으로 넘어갈 뻔했네. 방주가 여기서 왜 튀어나와?”

“유시호야, 모세의 기적이겠지?”

뒤쪽 어디선가 내 후배일 성싶은 녀석의 말실수에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틈에 유시호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척 슬그머니 주변을 둘러봤다. 목적한 인물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훌쩍 솟아 있는 까닭에 쉽사리 찾았다.

이혜준, 정말로 왔네?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학교 선배가 몇 미터 근방에 있었다. 접점을 피하고자 그토록 도망 다녔건만 원위치로 되돌아온 듯한 현실에 무섬증마저 일었다.

다른 동기들은 인류의 유산 같은 미남이라며 그를 찬양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항상 부정적인 감상만을 받았다. 불길한 정도가 아니고 소름이 끼쳐서 다가가기조차 끔찍하다고 내 본능이 외쳤다.

‘혹시 저 인간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닐까? 그래서 내 생존 본능이 위험하니까 말도 섞지 말라며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걸 수도 있겠다.’라고 가정해 봤자 내가 원래 육감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혜준에게는 나와 대척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싸한 경계심을 늘 품어 왔다.

차량 통행을 가로막았던 철조망 문이 서서히 움직이자, 짝퉁 모세의 기적을 구경하던 관객들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대절한 버스에 오르는 내 눈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이혜준의 모습이 잡혔다. 저 선배 말고도 따로 승용차를 가지고 온 사람이 여럿 있다고 들었다.

학부 분위기는 여전했다. 깔아 준 판에 참가는 하되 끼리끼리 어울릴 뿐이었다. 게다가 이번 행사는 가족이나 다른 단대 친구를 데려온 사람마저 있어 과 MT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오늘내일은 모두의 무사 귀가를 위해서라도 여행사 직원이 된 마음가짐으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겨 줘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전원 내 손바닥 위에다 두고 감시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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