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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신부 (1)화 (1/96)

1화

<보이지 않는 신부>

고3 때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점집을 가 봤다. 미신을 믿는 가풍은 아니다 보니 그저 기분 전환 삼아 한번 방문해 본 거였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의 합격 여부를 물었더니, 엉뚱한 소리만이 돌아왔다.

“학생 사주에 혼인 운이 세 번 끼어 있어.”

용하다고 소개받았다는 무속인이 사기꾼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예? 결혼에 환장한 것도 아니고 그걸 뭐 하러 세 번씩이나 해요.”

어이가 없으려니 헛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성 정체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의 장래 계획에는 결혼의 ‘결’ 자도 들어가 있지 않았으니까.

“벌써 한 번은 했는데, 뭘. 사주 도용당한 거 아닌지 한번 알아봐요. 산 사람하고 한 게 아니야. 간혹 제 죽은 자식 영혼결혼식 시켜 주려고 살아 있는 사람 사주 갖다 쓰는 못된 작자들이 있거든. 어쨌거나 거기 사주도 알아내야 붙은 걸 떨어뜨리든가 하지.”

무속인이 말했다.

재수 없는 소리에 기분 상한 어머니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 뒤로 다른 점집을 두 군데 더 찾아가 봤고, 비슷비슷하게 불길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세 번의 혼사까지 알아맞히진 못했지만 하나같이 내 몸에 배우자 귀신이 들러붙어 있다는 점괘를 냈다.

“너 솔직히 말해 봐! 운세 봐 달라며 인터넷에다 네 사주 함부로 올렸지?”

“아니야. 나 태어난 정확한 시각 이번에 처음 알았거든? 전부 미신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어디 무병에 걸리거나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고 멀쩡하잖아요. 그냥 잊어버려요.”

속상해하는 어머니를 위로했다. 나까지 허둥댔다간 온 가족이 새로운 신앙의 길로 접어들 것 같은 무서운 예감에 냉정을 가장하면서.

다행히 어머니의 대처는 구마로 유명하다는 어느 사찰에서 부적을 한 장 받아 오는 데에 그쳤다. 나 역시 황당하고 찜찜한 해프닝이라고 치부하며 잊으려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아버지가 당신의 고향 집과 의절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로써 누군가에게 내 사주를 넘긴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에 담길 바라지 않았는지 부모님은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어렴풋이 알아가게 되었다.

∞ ∞ ∞

한동안 병원을 들락거릴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남자를 만났다.

당시 아버지가 아끼는 동문 후배가 무릎 전·후방 십자 인대가 동시에 파열되는 바람에 수술을 했다. 겨루기로 다치게 한 상대편 선수가 내 동생 놈인 까닭에 우리 형제는 책임지고 사범 대타를 뛰었다. 관장님이 입원했다고 도장 문을 닫게 할 수는 없으니까.

우린 둘 다 태권도 4단이지만 연령 제한에 걸려 사범 자격증은 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태권도장 어린이의 보호자들에게 이실직고했을 때 들은 말은 도장을 그만두겠다거나 사범을 바꿔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주된 반응은 ‘자격증은 대수로운 문제가 아닌데, 운전은 잘하세요? 우리 애 방과 후 등·하원 때 안전 운행해 주시고, 줄넘기나 잘 가르쳐 주세요. 훌라후프 특훈도 신경 써 주시고요.’였다. 태권도 정신 따위.

다행스럽게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련생 사이에서는 동생 놈의 이름이 제법 알려져 이 연령대 역시 이탈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수련생이 더 들어와 통학 차량 증차며 사범 구인이며 일거리가 늘어나는 바람에 보고를 겸한 문병을 매일같이 하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병원과 도장이 걸어서 5분 거리라 관장님을 직접 만나 의논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학생이에요?”

그러던 중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 왔다.

“어…… 예.”

“올해 신입생?”

“그……런데요? 환자 보호자한테 따로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학생은 보호자 아닌 것 같은데?”

“예, 저는 아니고 환자 가족분이 계십니다.”

“요즘 자주 보이는데 환자와는 무슨 관계예요?”

기억에 없는 인물이건만 나를 여러 차례 보아 온 사람처럼 말했다.

“아는 형님입니다.”

“내 말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그냥 아는 형님한테 이렇게 빈번히 문병 올 정도로 한가하면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 하나 해 볼래요? 내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서 하는 제안이에요.”

“……?”

의료진 복장을 하고 있기에 내 딴에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화에 임했는데,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 심지어 정형 외과의도 아니었고 재활 치료와도 아무 상관 없는 작자였다.

사기꾼 새낀가? ‘도를 아십니까.’의 그 종교? 요즘은 아르바이트 알선으로도 접근을 하나 보다.

진위를 알 수 없지만 흰 가운에는 일단 ‘내과 서창경’이란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관심 없습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데 관심을 가지셔야 할걸요? 너 귀신 붙었잖아.”

“…….”

뭐?

시선을 옮기며 뇌리에서 지운 남자의 이름이 다시금 뚜렷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서창경이랬지.

이번엔 진지하게 그를 마주했다. 방금은 허를 찔렸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일반인 중에서도 무당 체질을 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법했다. 놀랄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

“…….”

알았지만 어떤 징조도 느끼지 못했기에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지냈다.

내 몸에 붙었다는 귀신의 존재보다는 조부모가 손주인 내게 왜 그랬는지, 어째서 내 사주를 남에게 넘겨줬는지, 그 이유가 더 신경 쓰일 뿐이었다.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봐 줄곧 모르는 척하는 중이지만, 이번 여름방학에는 시간을 내어 나 혼자서 아버지 고향 집에 찾아가 볼 계획을 세워 두었다. 조부모를 직접 만나 사정을 캐물어 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방치하다간 생기 모조리 빨리고 몇 년 못 가서 너 죽어. 내가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야.”

가탈스러운 인상의 젊은 남자는 그때부터 완전히 말을 낮추었다. 친절한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전혀 걱정하지 않는 눈빛을 대하자 싸한 기운만이 감지되었다.

“그런 것치고는 이 상황을 굉장히 반기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새 장난감을 발견한 변태 새끼처럼 말이다.

“그럴 리가. 나는 너처럼 귀신 씐 사람들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무당 놀이 한다고 님 직장에 까발리기 전에 개지랄 집어치우시죠.”

“하-. 보기보다 성질 있네, 이거.”

내 협박에 움츠러들기는커녕 더욱 흥미가 돋는지 남자가 키들키들 웃었다.

“…….”

“나이 비슷해 보이는데 학교 친구였나 봐? 하얀 얼굴에 이마 넓고 콧날 우뚝하고 쌍꺼풀 없이 눈매 가늘고, 제법 귀골이잖아. 옷도 시계도 좋은 거 걸쳤네. 네가 죽였어?”

남자가 살인을 저질렀느냐고 태연자약하게 물었다.

“……!”

사기꾼을 무시하고 지나치려던 나는 머릿속으로 차곡차곡 그려지는 인상착의에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인물화가 완성되었을 땐 정신이 멍해졌다.

‘윤상현…… 너였다고? 왜?’

죽은 줄도 몰랐던 녀석이다. 어떡하다 죽었을까. 그 녀석의 혼백이 내게 달라붙은 이유조차 가늠되지 않았다.

진작에 무속인을 찾아가 귀신의 생김새를 물어볼 것을 그랬다.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친인척이나 주변 인물 중에 돌아가신 분도 없었고 그만큼 죽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이 녀석, 내가 안 죽였고요. 선생님은 이거 떼어 주실 수 있어요?”

사주를 알아내 오면 해결해 주겠다던 첫 번째 무속인의 말을 되새기며 남자의 마음을 떠봤다.

“당연하지. 흔해 빠진 잡귀라서 어렵지 않아. 그런데 조건이 있어. 내 심부름 몇 개만 하자. 간단한 충성 테스트야.”

상대방 사주가 필요하단 얘길 꺼낼 줄 알았더니 제 요구가 먼저다.

충성? 이 새끼, 왕 노릇이 하고 싶은 건가?

내 안에서 불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을 듯한 남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마지못해서 응하는 척 대꾸했다.

“……그래요,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볼게요.”

끝까지 경계심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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