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수술실로 들어온 진겸은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천천히 호흡했다.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수술 준비를 끝마치고 주변을 둘러싼 의료진들을 보니 그제야 실감이 확 났다.
청록색 수술복을 입은 훈일이 따스한 눈빛으로 진겸과 시선을 맞추었다.
“자고 일어나면 끝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자.”
훈일의 상냥한 말에 진겸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마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겸의 호흡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 * *
진겸은 무거운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정신이 몽롱해서 수술이 잘 끝난 게 맞긴 한 건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뿌연 시야는 금세 깨끗해졌다.
‘병실이네.’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눈을 뜬데다가 몸을 일으킨 적이 없으니 당연히 천장이 보여야 하는데 병실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지금까지 지내던 병실도 아니었다.
‘뭐지?’
주변을 살펴보고 싶은데 몸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혹시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 건가 싶어 몸에 힘을 주려 했지만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도 낯설었다.
‘……꿈인가?’
진겸이 할 수 있는 건 꿈에서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숨죽이고 있는데 천천히 고개가 돌아가더니 새하얀 의사 가운이 시야에 들어왔다.
얼굴이 흐릿한 의사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들리진 않았다. 단지 입술이 움직이기에 말을 하고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무슨 꿈이 이래?’
이내 아래로 떨궈진 고개는 천천히 다시 옆으로 움직였다. 의사의 다리와 병원 바닥을 지나 이불 위에 힘없이 놓인 너무도 앙상한 손이 시야에 담겼다. 뼈대가 선명히 보이는 손등과 손목,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손가락까지.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꿈에서 언제 깨어나나 싶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눈을 감지도 못한 채 그 소용돌이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이리저리 흔들린 탓에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 내고 싶었다.
차라리 정신을 놓아 버리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이대로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하나 싶던 찰나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대로 뚝 아래로 떨어졌다.
속도가 빠른 것 같은데 보이는 게 없어서인지 무감각했다. 그러다가 몸이 들썩이는 느낌에 퍼뜩 눈을 떴다.
큰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진겸은 익숙한 천장이 보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보다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정수리 하나를 발견했다.
익숙한 모양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호흡기에 막혀 제대로 소리가 나질 않았다. 움직이는 게 힘들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고는 잠든 와중에도 제 손을 놓지 않은 진우의 손등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선잠을 자고 있던 진우의 몸이 고요한 닭장에 들이닥친 늑대를 마주한 닭처럼 푸드덕 튀어 올랐다. 그 움직임에 진겸이 더 놀랐다.
몸을 일으킨 진우는 눈을 뜬 진겸을 보더니 바로 기계에 표시된 심박수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정상이다. 거친 숨을 내뱉은 진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느리게 눈을 깜빡이는 진겸과 시선을 맞추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는 진겸을 살피며 호출 벨을 눌렀다.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오래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진우의 눈꺼풀과 손은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었다. 계속 꿈꾸던 순간인지라 진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어났어?”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진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물었다. 잠긴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어났다. 진겸이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한 게 아니건만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진겸은 대답하고 싶었도 힘이 없어 최대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찝찝했던 꿈 때문에 진우를 보며 이곳이 현실임을 느끼고 싶었으나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눈꺼풀을 닫아 버렸다.
“형?”
바로 고개를 돌려 기계를 봤다. 다행히도 모든 수치는 정상이다. 호출을 받고 바로 들어온 간호사와 훈일이 진겸을 살폈다.
“진겸이랑 대화 한번 하기 힘드네.”
기력이 없으니 당연한 일임에도 훈일은 괜스레 한마디 했다. 사실 지금 일어난 것도 훈일의 예상보다 빠른 거였다. 워낙 진겸의 몸이 약해서 최대 일주일은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게.”
그 사실을 진우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도 이제 여기서 자지 말고 침대 가서 누워.”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하염없이 진겸만 바라보는 진우의 모습에 훈일이 혀를 짧게 찼다.
진우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진겸의 손을 꼭 잡아 제 이마에 붙였다. 그제야 놀라서 쿵쿵 뛰던 심장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 * *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하루 동안 중환자실에서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이틀 만에 깨어났다. 더구나 진겸의 회복 속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다. 본인도 많이 노력했고 옆에서 알뜰히 챙기는 진우의 도움도 컸다.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과한 움직임은 자제했고 입맛이 없어도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혀에 닿을 때마다 쓴맛이 느껴지는 약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보통 수술 부위 소독은 간호사가 하는데 진겸의 소독은 훈일이 짬을 내 직접 했다. 누군가에게는 흉측해 보일지도 모르는 수술 자국은 잘 아물어 갔다.
진겸은 침대에 기대앉아 소독하는 손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훈일은 그런 진겸을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봐?”
“……신기해서요.”
“뭐가?”
“생각했던 것보다 안 아프기도 했고…… 전보다 건강해진 기분이 들어요.”
진겸은 미소를 지었다가 천천히 지웠다.
건강. 어쩌면 백진겸이 그토록 바라던 일일지도 모른다.
소독을 끝내고 새 드레싱 밴드를 붙인 훈일이 손을 뻗어 진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안 아픈 건 진통제 먹어서 그런 거야. 그거 끊는 순간 아프다고 제발 달라고 할걸?”
훈일이 판단하기에 진겸의 몸과 정신 상태는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계속 진통제를 처방하고 있었다.
이유를 알게 된 진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건강해진 건 맞아요?”
훈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옅은 갈색 눈동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 박자 쉬었다.
“아니, 전이랑 같아.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해.”
“다치지 않는 거요?”
“어. 넌 원래 몸이 약하다고 했잖아.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거. 너한텐 되게 심각한 거거든.”
이번 수술로 인해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이 생겼다.
항응고제, 와파린.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약이다. 그러다 보니 한번 피가 나기 시작하면 잘 멎질 않는다. 더구나 진겸은 빈혈까지 있어서 더 위험한 쪽에 속한다.
훈일의 말에 진겸이 이번에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겸아.”
“네?”
“조심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움츠리고 살지는 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병원으로 오면 돼. 여기가 멀면 다른 병원에 가면 되고. 네 몸 상태 말하고 치료받아. 심각한 거 아니야. 알겠지?”
“……방금 심각하게 말한 건 선생님인데요?”
“난 의사잖아. 내 환자한테 현실을 말해 준 거지.”
괜히 진겸의 어깨가 처진 것 같아 훈일이 더 활짝 웃으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그러다가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에 입매를 일그러트리면서 빠르게 손을 떼어 냈다.
“어우…… 너 머리 언제 감았어?”
“어제요.”
“어제 감은 머리가 아닌데?”
“……그젠가?”
진겸이 말을 늘어트렸다. 확실히 머리가 간지럽긴 했다. 계속 병원에서 생활하는 데다가 회사에 일이 많아진 모양인지 진우가 피곤해하는 것 같아 이틀을 미뤘더니 떡 진 모양이다.
수술하고 아플까 봐 걱정은 했어도 씻는 게 불편할 거라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 해 봤다. 수술하고 나서야 이것도 나름 큰 문제라는 걸 알았다. 수술 부위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니 샤워를 할 수 없어서 물을 묻힌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머리만 감으려 해도 허리를 숙여야 하다 보니 혼자선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우가 퇴근하면 도와주고 있다. 욕조에 기대앉아 머리를 뒤로 젖히면 조심스러운 손길로 감겨 준다. 간병인에게 부탁하면 되지만 씻는 걸 맡기기엔 아직은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전적으로 진우에게 의존하고 있다.
원래는 간병인을 두는 것도 불편해서 거절하려 했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한 거였다. 그렇다고 종일 있는 건 아니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있다가 간다.
진우는 자신이 퇴근하고 병실에 도착할 때까지 간병인이 근무하길 바랐지만, 진겸이 잠깐 정도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고집을 부려서 결정한 근무 시간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진우가 출근하기 전에 간병인이 왔고 퇴근하고 서로 얼굴을 보고 나서야 돌아갔다.
지금까지 병실에 혼자 있다가 간병인과 같이 있으려니 어색했지만, 곧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 정도 친해지긴 했다.
수술하고 일주일이 지나고선 조금씩 걸어 다니며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개흉 수술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삐걱거렸다. 특히 상체 통증은 때때로 예고 없이 찾아와 혼자서는 거동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는 간병인의 극진한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감겨 줄까?”
“예? 아니에요. 쌤 바쁘잖아요.”
“안 바빠. 바빴으면 여기 있겠어? 아니면 간병인한테 부탁하든지.”
“아직 그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