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괜찮아?”
“응. 난 괜찮은데…….”
남자는 안 괜찮아 보였다. 진우가 잡은 손목을 붙잡은 채 노려보는 모양새가 왠지 상황이 쉽게 정리될 것 같지 않았다.
진겸은 당황스럽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갑작스레 남자가 테이블을 내려치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조개구이집 테이블은 원형에 철판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이곳도 그랬다. 네모난 나무 테이블도 있지만 안에 숯을 넣느라 원형 테이블도 썼다. 그러니 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진겸은 오늘 카페에서도 놀랐던 데다, 바이킹을 타느라 또 심박수가 올라갔었다. 그런데 조금 전 일로 또 놀라 버렸다.
“아……!”
진겸은 조여 오는 심장에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처참하게 구겨질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감당하기 힘든 통증에 절로 허리도 굽어졌다.
진우가 놀라 황급히 진겸을 품에 안았다. 진겸은 자신을 지탱하는 팔을 힘껏 쥐었다. 힘이 들어간 손가락은 금방 하얗게 변했다.
“형, 왜 그래? 어, 어디 아파? 심장이 아픈 거야? 어?”
떨리는 진겸의 몸에 전염이라도 된 듯 진우의 몸도 잘게 떨렸다.
진겸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악문 이에 힘을 풀자마자 앓는 소리가 새어 나갈 것 같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뭐, 뭐야?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나 팔밖에 안 잡았어!”
남자가 당황해 소리치면서 자기 일행들에게 그렇지 않냐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소리쳤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양 비서였다.
남자들이 시비 거는 걸 다 같이 보긴 했다. 진우가 바로 가길래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진겸은 진우가 걱정할 게 뻔해 최대한 참으려 했다.
“아으……!”
분명 다리에 힘을 주고 있는데 점차 꺾이는 게 느껴졌다. 진우가 잡아 주지 않았다면 이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을 거다.
카페 화장실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진짜 이건 느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다. 심장의 위치를 새삼스레 깨닫게 될 정도로 통증이 거셌다.
‘너무 아프잖아……!’
그냥 심장과 몸이 약하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아파 본 적이 없어서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아파 봤어야 ‘조심해야지’라는 생각도 들지 않겠느냐 말이다.
진겸은 숨 쉬는 것도 점차 힘들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운 게 아니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아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균형을 잡는 모든 기관이 마비된 듯했다.
그 모습을 내부에 있던 사람 모두가 보고 있었다.
양 비서도 당황해서는 다급히 말했다.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야, 양 비서님 핸드폰 좀…….”
진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겸을 더 강하게 안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가지러 갈 수가 없어 양 비서에게 부탁했다.
“119 불렀어.”
수혁이 귀에 붙였던 핸드폰을 떼면서 다가왔다.
진겸은 지금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목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반쯤 뜬 눈으로 진우를 보려 노력했다.
선명했던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진우가 두 명이 되더니, 세 명으로 늘어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점차 목소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위험한데.’
멀어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빙그르르 돌던 머리가 힘없이 뒤로 확 꺾였다. 서둘러 진우가 뒤통수를 잡지 않았다면 목이 다칠 수도 있었다.
아예 정신을 잃은 진겸의 몸이 축 늘어졌다.
“형!”
힘을 준 진우의 두 팔이 사정없이 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들리는 구급차 소리에 양 비서가 진겸을 안아 드는 걸 도왔다.
“내가 같이 갈게. 여기 해결하고 따라와.”
수혁은 어느새 뒤에 선 원범을 향해 말하곤 덩달아 정신이 없어진 진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졸지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 남자 일행은 사람을 쓰러지게 만든 나쁜 놈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원범이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미간을 모았다. 원래도 날카로운 인상이 한층 더 험상궂은 얼굴로 변했다.
그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남자들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덩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손인가?”
진겸을 잡았던 팔로 원범의 시선이 향했다.
양 비서는 빠르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핸드폰을 들어 촬영하려는 손님들을 전부 내보냈다.
“잠시만!”
“…….”
“잠시만요!”
양 비서의 절규 섞인 외침에 원범이 덜덜 떠는 남자들을 응시했다.
“양 비서, 빨리 움직여.”
“예!”
그들이 한 거라곤 진겸의 팔을 잡았고, 테이블을 손으로 내려쳐 큰 소리를 낸 것뿐이다. 그리고 그건 원범이 응징을 가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이 손은 당분간 쓰지 마.”
처절한 비명이 울리는 가게엔 CCTV도 목격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진겸은 쓰러진 직후 바로 근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진겸의 몸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는 훈일이 병원 의사와 통화한 후 간단한 검사만 진행 후 바로 병원을 옮겼다.
그리고 쓰러진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우는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무단결근이었지만 전부 출장으로 처리되었다. 지시를 내린 건 원범이었고 서류를 처리한 건 양 비서였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세 사람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진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강제로 알게 됐다.
그나마 원범과 양 비서는 백진겸에 대한 서류를 봤지만, 심장이 좋지 않다고만 들었던 수혁은 꽤 충격을 받았다.
수혁은 이제 산소 호흡기를 떼 온전한 얼굴이 보이는 진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처음 병원에 실려 왔을 땐 바로 중환자실로 들어갔었다.
오래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상태가 금방 호전되어 이틀 전에 일반 병실로 이동했다. 이제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미동도 없었다.
“너무 오래 자는 거 아니야?”
“…….”
“지 동생이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옆에 있는 거 알면 이제 좀 일어나야지.”
수혁의 타박 섞인 말에도 진겸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백 비서, 적당히 하고 좀 쉬어.”
“…….”
“훈일이 형이 밥 좀 먹이라더라. 내가 백 비서 밥을 챙길 이유는 없는데, 백진겸이 일어나서 그 얼굴 보고 다시 쓰러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먹고 있습니다.”
진우는 수척해진 얼굴로 진겸의 손을 조심스레 만지며 겨우 입을 열었다.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수분기가 하나도 없이 메마른 목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부드러운 손바닥을 손끝으로 천천히 그어 내렸다. 간지럽다고 하지 말라는 맑은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역시나 조용하다.
쓰러진 적이 몇 번 있기는 했는데 이번처럼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꼭 과거로 내던져진 듯했다.
“……왜 또 오셨어요?”
“백 비서 보러온 거 아니야. 백진겸 보러 온 거지.”
“……왜요?”
진겸의 손바닥을 바라보던 진우의 눈동자가 어느새 맞은편에 서 있는 수혁을 향했다.
며칠째 잠을 못 잔 진우의 눈 밑은 퀭했고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핼쑥해진 얼굴과 푸석해 말라 버린 입술까지 확실히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수혁은 습관적으로 올리고 있던 입꼬리를 내렸다.
“보러 오는데 이유가 필요해?”
“예. 필요합니다. ……궁금하기도 하고요.”
“내가 백진겸한테 무슨 감정을 품었는지가 그렇게 궁금해?”
왜 수혁이 자꾸만 병실을 찾아오는지 이유가 알고 싶었다. 단순히 재미로 접근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수혁만이 아니다. 원범도 그랬다.
퇴근하는 길에 병실에 들른다. 매일매일. 일주일 동안 단 하루도 안 온 날이 없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땐 면회도 안 되었는데 밖에 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진우는 자신을 향하던 관심이 한순간에 진겸에게 옮겨졌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궁금하기는 했다. 어떤 이유에서 다들 이러는 건지.
“전에는 관심 없으셨잖아요. ……왜, 왜 이제 와서 이러시는지 이해가 안 돼서요.”
“내가 이해까지 시켜 줘야 해?”
“아니요. 그러실 필욘 없죠. ……그냥 제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진우는 솔직히 말했다. 정말 궁금했으니까.
왜 갑자기 진겸에게 관심을 둔 건지. 단순히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궁금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나 확 바뀌어 버린 진겸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건지.
그저 명확한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얼굴로 말하니까 대답해 줘야 할 것 같네.”
수혁은 짧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바뀐 모습이 재밌더라고. 탁 이사한테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하더니 갑자기 무서워서 벌벌 떠는 꼴이 재밌었거든.”
“…….”
“백 비서도 알고 있었으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말지? 내가 나쁜 놈 된 것 같잖아.”
수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픽 웃으며 침대 아래에 있는 의자에 발끝을 걸어 빼냈다. 바닥에 끌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찾아보니까.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고 해서 사람이 무조건 변하는 건 아니더라고. 근데 백진겸은 완전히 변했잖아. 그건 백 비서가 제일 잘 느끼고 있을 거고. 아니야?”
의자에 앉은 수혁의 시선은 진겸에게 가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겼다고 해서 수혁이 병실에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퇴근길에 들러 오늘은 깨어났는지 확인만 하고 가는 정도였다.
길어야 10분이었다.
“솔직히 나도 신기해. 내가 한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단시간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너무 오랜만에 느꼈거든.”
“……예? 그게 무슨.”
진우가 인상을 쓰며 묻자 수혁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 보였다.
“내가 그동안 백 비서한테 관심 있었던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왜 그랬던 것 같아?”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사님 마음이니, 이사님이 아시겠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혁의 관심 따위 귀찮기만 했다. 관심이 있었다고 해 봤자 옆에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거나 툭툭 건드리는 게 다였다. 항상 옆에 원범이 있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선을 넘은 적은 없었다.
진겸의 볼을 손끝으로 쿡 누른 수혁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게.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네. 그래서 당분간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계속 오시겠다는 말을 너무 돌려서 하시네요.”
“눈치챘어?”
수혁은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내일 또 올게.”
이 말은 진우가 아닌, 진겸에게 전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