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약한 악역에 빙의한 건에 대해 (1)화 (1/92)

1화

조용한 병실, 한낮인데도 커튼을 치지 않아 따사로운 햇볕이 창문을 여지없이 통과해 내리비추고 있었다.

침대 위로는 볼록 올라온 이불과 끝자락에 살짝 걸쳐진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한참 동안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진겸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졸음이 가득한 눈만 빼꼼히 내밀었다.

촉촉이 젖은 눈망울이 천장을 멍하니 응시했다. 야광 별이 가득한 천장이 아니라 이상한 얼룩이 있는 정사각형 패턴이 보이자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변하지 않는 풍경에 손등으로 눈을 거칠게 비볐으나 그대로였다.

“흠…….”

콧바람을 길게 내뿜으며 상체를 세웠다.

비몽사몽이라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제 방은 아니라는 거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링거가 보였다. 쭉 이어진 줄은 제 손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한국병원.

입고 있는 옷도 잠옷이 아니라 한국병원 로고가 반복적으로 새겨진 환자복이었다.

어제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웹 소설을 보다가 잠든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병원이라니.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아 멍하니 있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유달리 새까만 머리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잘생긴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반소매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도 빛이 나서 어디 유명 패션모델인가 싶었다. 그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외모였다.

이 정도 거리에서 봐도 키가 컸고, 운동을 한 건지 드러난 얇은 천 너머로도 탄탄한 근육이 티가 났다. 더구나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잘 모인 이목구비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처음 본 진겸은 입술을 닭똥집처럼 모은 채 그를 응시했다.

진우는 자신을 빤히 보는 시선에 멈칫거리다가 문을 닫았다.

“왜 그러고 있어?”

진겸이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 안 좋아?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그랬는데…….”

걱정이 가득한 어조로 묻는 진우의 눈썹이 아래로 떨어졌다.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진우는 차마 만지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살폈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아니고, 미간에 주름이 생기지도 않았다. 아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봤을 때였다.

“아프면 간호사 부르지. 지금이라도 부를까?”

“누구세요?”

열심히 움직이던 눈동자와 호출 벨을 누르려던 손이 순간 멈췄다.

기계가 각 맞추듯 고개가 움직이더니 진겸의 눈과 마주쳤다. 황금빛이 나는 옅은 갈색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 누구냐고 묻는 듯했다.

진우는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늦게 와서 그래?”

“저기…… 방 잘못 찾아오신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는 것도 잠깐이었다.

진우는 아까부터 제게서 눈을 떼지 않는 진겸을 물끄러미 보다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심술이 난 거였나 보다.

틈만 나면 툴툴거리며 시비 거는 게 백진겸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순간이지만 진짜인 줄 알았다. 나날이 그의 연기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안심한 진우가 손에 쥔 봉투를 위로 올려 살짝 흔들었다.

“볶음밥 사 왔는데. 이럴 거야?”

그는 능숙하게 침대에 붙은 테이블을 세워 그 위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진겸은 여전히 진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곳까지 와서 끼니까지 챙기는 걸까? 혹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지인이라도 되는 건가 싶었다.

고소한 냄새가 병실에 퍼지자 기억을 되짚어 보던 진겸의 시선이 음식 포장을 뜯는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걸 본 진우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외식은 좋지 않지만, 병원 밥 먹기 싫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 온 거였다.

“맛있겠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진겸이 슬쩍 눈을 흘겼다. 대놓고 빤히 보고 있자 진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그쪽 되게 잘생겼어요.”

“이번엔 뭐가 필요하길래 이럴까?”

“필요한 거 없는데…….”

진우를 보던 눈이 음식으로 옮겨졌다.

“이거 제 거예요?”

“계속 그렇게 말할 거야?”

그의 장난이 끝나지 않은 건지, 자꾸만 존댓말을 하는 게 어색했다.

“예?”

“늦은 건 미안해. 사람이 좀 많았어.”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어지지는 않았다.

진우는 그가 짜증을 내건, 투정을 부리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것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백진겸도 그걸 알기에 이런 장난은 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해서 낯선 사람처럼 대하니 괜스레 불안해졌다.

그런 진우의 마음을 모르는 진겸은 고개를 쭉 내밀고 음식을 구경하다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이거 그럼…… 주인이 있는 음식이었네요. 난 또! 저 주는 줄 알았잖아요. 더 먹고 싶어지기 전에 얼른 가지고 가세요!”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너무 맛있어 보였다.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였지만 꾹 참고 뚜껑을 닫았다. 그래도 병실 안에 퍼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아서 먹고 싶긴 했다.

음식을 다시 봉투에 담자 진우가 그 손을 막았다.

“아까도 밥 안 먹었잖아. 이거 먹기 싫어? 다른 거 사 올까?”

“아니, 그게 아니라…….”

“형 요새 제대로 안 먹어서 기운도 없잖아. 나한테 왜 화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먹자. 응?”

어쩐지 간절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진겸이 눈동자를 굴렸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혹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병실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너무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이상했다.

상황이 더 이상해지기 전에 해결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저는 백진겸이에요. 백진겸.”

“…….”

“혹시 병실을 착각한 건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형…….”

진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해맑게 말하는 진겸의 모습에 순간 심장 한구석이 뻐근하게 조여들었다.

“형이란 분이 저랑 되게 닮았나 보다.”

진겸은 잡힌 손을 빼더니 봉투 끈을 한 번 묶었다.

“그래도 형을 못 알아보면 어떡해요. 자, 가지고 가세요.”

잘 묶인 걸 확인하는 진겸을 보던 진우가 제 눈을 손으로 덮더니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런 식으로 밀어내려는 행동을 보일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자신이 이런 걸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한다는 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테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진우는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진겸과 시선을 맞췄다.

“화난 이유…… 말 안 해 줘도 되니까. 밥은 먹자. 이거 식으면 맛없어.”

최대한 차분히 말하려 했는데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진겸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분명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말을 거는 게 혹시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혹시 형도 병원에 입원한 거예요? 나 말고 그쪽 형이요.”

“……형?”

“에이. 그쪽 형 아니라니까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진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평소의 그라면 이쯤에서 짜증이 난 이유를 말하며 신발이나 옷을 사 달라고 해야 했다. 툴툴거리면서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면 상황은 깔끔하게 해결되었을 거다.

게다가 해맑게 웃는 것도 제게는 보여 주지 않는 표정 중 하나였다. 자신을 볼 땐 항상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폴폴 풍겼으니까.

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진겸을 응시했다.

“백진겸.”

“어? 혹시 그쪽 형 이름도 백진겸이에요?”

진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 들어와 진겸이 말하는 순간부터 들었던 위화감이 삽시간에 온몸을 잠식해 오는 듯했다.

동명이인이 신기한지 진겸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이름도 같고 얼굴도 비슷하면 착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래도 본래 주인에게 가져다주라며 봉투를 진우 쪽으로 밀었다.

“…….”

장난이 아님을 눈치챈 진우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서 최근 통화 목록에 있는 훈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고 했으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형. 진겸이가 이상해. ……날 못 알아봐.”

진우의 행동에 진겸도 덩달아 불안을 느꼈다. 단순히 착각했다고 생각하기에는 그의 행동이 너무 수상쩍었다. 지금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린 건가 싶었다.

“저기…….”

“응. 빨리 와.”

슬쩍 진우의 눈치를 보며 병실 안을 살폈다.

큰 눈을 데구루루 굴리다가 침대 밖으로 두 다리를 조심스레 내렸다.

“……저 화장실 좀.”

침대에서 내려가자 진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겸이 겁먹은 얼굴로 올려다보자 숨을 짧게 내쉬고는 링거 폴대를 잡았다. 링거가 꽂혀 있었기에 이대로 몸만 움직이면 다칠 수도 있었다.

“안까지만 옮겨 줄게.”

“제가 가지고 갈게요!”

양손으로 폴대를 꽉 쥔 진겸이 아까 진우가 들어온 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화장실은 그 옆이야.”

문을 열려던 진겸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 옆의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황급히 안으로 들어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았다.

등에 문이 느껴지자 안도의 숨이 훅 튀어나왔다.

‘따라 들어오진 않겠지?’

자리를 피하려고 들어온 건데 진짜로 소변이 마려웠다.

시원하게 볼일을 해결하고 손을 닦기 위해 세면대 앞에 섰다.

“……응?”

거울에 비치는 형상이 이상했다. 그간 봐 왔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웬 낯선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머리를 왼쪽으로 움직이자 거울 속에 있는 남자도 따라 움직였다. 반대쪽으로 움직이자 이번엔 그쪽으로 따라온다. 입을 쫙 벌리니 같이 벌린다. 입 모양도 같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다면 이건 어디에 가서 물어봐야 하는 걸까?

여기서 미친 사람은 밖에 있는 남자가 아니라 나였나?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모르는 사이에 사고를 당해서 전신 성형이라도 당한 걸까?

도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와중에도 거울 속 남자의 생김새가 너무 황홀해서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봤다.

“와……. 예쁘다.”

진짜 세상 혼자 사는 외모다. 길 가다 마주치면 다시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릴 만한 얼굴이었다.

눈이 큰 사람은 많이 봤지만 거울 속 남자처럼 운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촉촉한 눈은 처음이었다.

사슴 눈, 아니 소 눈 같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