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그래도 재차의의 기분이 아주 나쁘진 않아 보여 안심이다. 구겨졌던 미간도 본래의 반듯한 모양을 되찾았고, 좁게 뜬 두 눈으론 나를 흘기긴 하였으나 큰 분노는 없었다. 조금 전 용병들의 머리통을 쥐고 걸어 나가던 뒷모습은 괴수보다 더 괴수처럼 느껴졌는데, 내겐 화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뒷좌석 시트에 등을 슬며시 기대며 나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이상록 님은 파수꾼이 아니라 가이드신데요.”
“감히 누구 앞에서 누구를 높여?”
“…….”
화내지 않아서 다행이란 말, 취소….
날카롭게 돌아온 핀잔에 입이 딱 다물렸다. 재차의의 언성엔 힘이 있다. 그 목소리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괜히 심기 거스르지 않게, 얌전히 닥치는 게 상책이라 생각됐다.
습관적으로 침묵하는 내 어깨에, 재차의가 제 팔뚝을 툭 얹었다. 그 무게에 눌린 상체가 반쯤 기울어지고 얼굴 사이의 거리는 부쩍 좁아졌다. 블랙홀 같은 홍채는 물론이고 잘난 코끝에 고인 빛 방울까지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저 말해 봐.”
재차의가 명령했다.
이왕이면 이대로 조용히 귀환했으면 싶은데, 그에겐 나를 내버려 둘 의향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관심을 퍼붓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팽개치고 다른 파트너를 데려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월수금, 화목토…. 그따위 일정표를 들이밀어도 이번엔 당황하지 말아야지.
“저는….”
긴장을 풀기 위해 나는 기침하는 척 숨을 골랐다. 그리고 겨우겨우 목소리를 냈다.
“…아양 같은 건 떤 적도 없고, 만일 그랬다고 하더라도 왜 이렇게 신경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역시 그런 여자는 네 타입이 아니지?”
“…….”
나는 진지한데, 재차의의 대꾸는 편리해 보일 만큼 쉬웠다. 사실과 관계없는 결론을 멋대로 내리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만큼은 6년 뒤에도, 오늘날도 한결같다. 어쩌면 천성인가 보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함부로 말하시는 건….”
그의 잘못을 지적하려다가, 나는 급히 입을 닫았다. 뒷담화는 나쁜 것이라고 알려 준들 재차의가 ‘그렇구나’ 하며 따를까? 면전에 대고도 아무렇잖게 상대를 헐뜯고 깨뜨리는 사람인데…. 건방지게 누구더러 꾸중이냐고 성질을 부릴지도 몰랐다.
무기력한 말싸움을 벌이는 대신, 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오히려 그 말씀과 반대인데요. 이상록은 좋은 사람이라서 저랑은 안 어울립니다.”
“뭐?”
재차의가 아주 크게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튀어 오르도록 놀라고야 말았다.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고, 심장은 빠르게 벌렁거렸다.
내 팔뚝을 덥석 움켜쥐고서, 그는 언성을 더욱 튕겼다.
“송모래. 네 어디가 뭐 어때서?”
왈칵 성을 내며 재차의가 물었고,
“그분은…. 아, 아니, 아무튼 그 사람은 예쁘잖아요….”
나는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등받이 시트에 완전히 상체를 파묻은 채, 설설 기다시피 흘린 대꾸였다.
“헛소리하지 마! 네가 더 예뻐.”
재차의가 소리쳤다. 타박과 칭찬을 동시에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그뿐일 터였다. 그 바람에 나는 입술이 바싹 마르고 속이 간지러웠다. 무섭고 당황스러우면서도 겸연쩍고 낯 간지러워, 그 말에 무턱대고 반박하고 싶었다.
“…저보다야, 프로 가이드인 데다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이 훨씬 멋지고….”
“‘엘리트’는, 지랄. 타고난 능력이 모자라니 찔찔 기면서라도 배워야지.”
“…A+급이면 훌륭하게 타고난 거 같은데….”
“그래 봤자 애송이들이나 달래는 보모 신세지. 송모래, 넌 S급 가이드에 실세를 다루는 일을 하고.”
“…성격도 상냥하고 친구도 많은 것 같고요….”
줄줄이 대답을 이어 나가면서도 나는 혼미했다. 근래 며칠, 아니 몇 달에 걸쳐 나눈 대화 가운데 가장 길게, 오래 말했다. 어쩌면 몇 년간 나누어 본 대화 중 제일 긴 것도 같다. 그런데 왜 재차의와, 어쩌다 이상록을 두고 이런 이야길 하게 된 거지…?
탁구공 쳐 내듯 휙휙 오간 입씨름 끝에, 재차의는 내 두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리고 물었다.
“송모래. 그 여자가 좋아?”
“…네?”
“예쁘고 상냥하고 친구 많은 여자랑 뭘 그렇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야?”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던진 질문은 갑작스럽게 비아냥이었다. 이상록과 뭘 하고 싶으냐니… 나로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화두였다. 당연히 떠오르는 대답 또한 없었다. 그래도 침묵하며 고개를 내저었다간 혼이 날 것 같기에, 어리바리하며 말을 흘렸다.
“아뇨, 딱히 뭘 하고 싶으냐면…. 음…, 친구…?”
“…….”
엉성하게 내놓은, 절반짜리 진심이었다. 사실 친구 같은 거창한 자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상록처럼 말끔한 사람이 속한 무리에 함께 섞일 수만 있어도 나는 좋을 것 같다. 평생 그렇게 환하고 깨끗하고, 성실한 집단엔 속해 본 적이 없었다. 어둡고 추잡하고, 양심 없는 놈들조차 받아 주질 않던 나였다. 그래도 이번 생에는, 카페테리아의 치아바타 빵이 되어 보고 싶다. 설탕을 넣지 않은 기본 커피도 좋다….
곰곰이 눈 끔벅이는 나를 노려보길 몇 초, 재차의의 입술이 활짝 열렸다. 흰 이를 보이며 피식 실소하는가 싶더니 이내 큰소리로 ‘하하’ 웃는다.
“아, ‘친구’.”
그러더니 한 손으로 제 눈가를 문지르며 마른세수했다. 도통 그의 심리를 알 수가 없어, 나는 그를 따라 괜스레 내 얼굴을 닦는 시늉했다.
그리고 재차의가 딴소리했다.
“송모래. 그럼 문어는 좋아해?”
이상록 옆에 왜… 문어가 붙지? 도통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그래도 성실하게 반응해야 하기에,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뭘 좋아하는데.”
재차의가 투덜거리듯 목소리를 낮췄다. 조금 전까진 크게 웃더니, 몇 초 만에 지루하다는 듯 인상을 구긴다. 이러다 곧 내게 싫증을 내며 돌아설 것만 같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초조하게 골몰했다.
‘문어 말고…, 문어 말고 뭐 좋아하냐고?’
굳이 동물 중의 하나를 꼽자면 나는 개가 좋다. 열 살 무렵인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 적도 있다. 막내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한 번도 키워 보진 못했지만…. 달동네에 살던 시절엔 산길을 쏘다니는 똥개를 한 마리 알았는데, 하굣길마다 그 개가 보이기만을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슈퍼에서 소시지를 하나 사다가 까 주면 넙죽 받아먹고는, 다시금 멀리 도망치곤 했었는데….
“개요.”
그래서 그렇게 대답하자, 재차의가 고개를 쭉 뻗으며 눈살을 좁혔다. 내 말이 제대로 안 들렸나 싶어 나는 다시 목소리를 냈다.
“문어보다는 개가 더 좋아요.”
“…….”
그리고 아주 긴 침묵이 시작됐다. 재차의는 윗입술을 작게 꿈질거리는가 싶다가, 다시 다물고는 두 눈을 실처럼 좁게 떴다.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눈썹을 구기기도, 내 표정을 확인하려는 듯 빤히 살피기도, 한숨 쉬며 창문 밖을 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말은 없었다.
이내 릴리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그리고 가벼운 클랙슨 소리를 내며 대슈망 센터에 도착하였음을 알렸다. 우리의 대화도 그와 함께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먼저 하차한 이는 물론 재차의였다. 뒷좌석 문을 열어 둔 채 나를 기다리는 그의 태도는 집에 왔다는 듯 여유로웠다. 반면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점퍼 지퍼를 괜스레 매만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인파 때문이었다.
본관 정문 앞으로 줄지어 선 대열이 군인처럼 정갈했다. 방송국 기자나 외부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순수하게 재차의의 귀환을 반기고자 마중 나온 직원들이었다. 유니폼을 차려입고 미소 짓는 그들 틈바구니로, 재차의의 파트너랍시고 걸어 나갈 생각을 하니 목이 말랐다.
“재차의 님!”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흰 재킷을 걸친 직원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릴리를 향해 다가왔다. 안후이 대리였다. 그와 동시에 재차의가 내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잠시 기다리라는 수신호를 알아들어, 나는 슬쩍 들었던 엉덩이를 도로 좌석에 앉혔다.
그리고 안후이가 말했다.
“지난번에 맡기셨던, 피 검사 결과예요.”
내 몸은 석화된 듯 굳어 버렸다.
“…….”
안후이 대리가 보라색 파일을 넘기자, 재차의는 그 자리에서 즉시 결과지를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기까진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내 안후이 대리가 발뒤꿈치를 높이 들며 제 하관을 가렸다. 그리고 내게는 들리지 않게끔, 재차의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닥거렸다. 짧은 순간 그녀의 눈길이 차량 안에 처박힌 나에게로 내려와 꽂혔다. 재차의의 검은 눈짓도 잠시간 내 얼굴에 박혔다가, 다시 안후이에게로 옮겨 갔다.
이내 그는 완전히 차량을 등지고 섰다. 나로부터 완전히 돌아선 채, 그는 안후이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똑바로 설명해.”
그러자 안후이가 내겐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무어라 속삭인다. 아무리 귀 기울여 들으려 해도 내겐 한 음절조차 흘러 들어오질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와중에 나는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재차의의 등이 유독 크고 지독해 보였다. 파일을 움켜쥔 손이 서서히 주먹으로 말렸다. 빳빳한 플라스틱 커버가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려지더니, 파편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아.’
들켰다. 삼촌이 내게 주사한 약물이 뭐였는지. 마취제, 마약, 발정제… 전부 들켰다. 재차의가 이젠, 알았다. 알아 버렸다.
강제로 하는 건 싫다고, 뭐든지…. 그가 내게 한 약속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 약속이 지금도 지켜질까? 혼란하고 초조한 순간, 재차의의 손등에 돋은 성난 핏줄을 보며 나는 낙담했다. 나와의 약속을 그가 들어줄 리 없다. 그는 벌써 깨달았다, 내게 속아 넘어갔다는 걸. 이상록처럼 말끔한 사람과 어울릴 수 있을 만큼 멀쩡한 남자인 줄 알았던 송모래가 사실 버러지였단 걸. 공들여 가며 친절을 베풀고 상냥한 말로 어르고 달랠 가치가 없는… 약쟁이, 걸레…, 섹스토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