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72)화 (72/76)

72.

그와 동시에 ‘헉’ 하는 헛숨 소리가 크게 울렸다. 우리에게로 막 다가오려 한 듯, 걷던 자세 그대로 멈춰선 직원이 보였다.

그의 면전에 대고 재차의가 소리쳤다.

“이 게이트 위험도, 하급으로 보고한 새끼가 누구야?”

이내 곤혹스러운 목소리가 이리저리 섞였다. 상부에서 책임 소재를 묻기 시작하면 각자 내놓는 변명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해지는지 모른다. 수어 명의 음성이 재깍재깍 묶어낸 결론은 하나였다. 이번 파견 의뢰의 출처가 재벌 기업체 한성인데, 한성의 하청을 받아 1차 수색에 나선 뉴타입 용병들이 게이트 위험도를 거짓으로 보고했단 것이었다. 속임수를 써서라도 대슈망의 도움을 받아, 빨리 스티치를 마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업이면 뭐, 주식이나 건설사 문제겠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서 나는 오가는 말소리를 라디오 청취하듯 흘려들었다. 기업 사회며 정치 공작 운운하는 어려운 토론은 일개 가이드인 나와는 무관하지 싶었다.

‘참… 옛날은 옛날인가 보다…. 대슈망에서 외부 의뢰도 받고.’

후일 모든 게이트의 관리를 대슈망에서 전적으로 맡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사설 용병 뉴타입에 대한 신뢰도가 곤두박질치는 사건 사고가 하나씩 발생하다 보니, 끝내 정부에서조차 대슈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러한 독립에는 최강자 파수꾼, 재차의의 위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내 재차의의 발소리가 저벅저벅 멀어졌다. 수많은 구둣발 소리로 어지러운 가운데, 재차의의 발소리만은 신기하게도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베갯잇에 얼굴을 파묻고서 멍하니 그 소리를 쫓던 끝에 ‘끅’ 하는 괴상한 신음성이 들렸다. ‘재차의 님’ 하는 외침도 아주 크게 울렸다.

그제야 얼굴을 들어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픈 어깨가 세게 굳도록 놀랐다. 성난 듯 평소보다 더욱 부푼 등을 보인 재차의의 뒷모습이며, 그의 두 손에 머리통을 잡힌 뉴타입이 둘 보였다. 사설 용병 소속인 듯 복장부터 낯선 그들은 꺽꺽 비명을 지르며 사지를 바르작거렸다. 팔다리가 각각 벌레 날개 꺾이듯이 이리저리 파닥거리며 사방을 차고, 치고, 긁어 댔다.

그대로, 재차의는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임시 기지 바깥으로 사라져 버렸다.

홀린 듯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다. 무어라 귓속말을 하거나 사색이 되어 외면하는 등,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는 파수꾼과 가이드가 많았다. 개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완벽하던 백색 대신 연회색 머리칼을 빛내는, 윤도곤이 그랬다.

‘어….’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나와 마주쳤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몰라 나는 잠시 고민했는데,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더니 냉랭한 태도로 자리를 떠났다. 그 반응이 못내 미심쩍었다. 6년 전이면 윤도곤이 재차의의 파트너로 선별되기도 전일 텐데, 그래도 나를 싫어하나 싶었다.

…하긴, 이전에도 윤도곤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꼭 이중인격자처럼, 재차의 앞에서는 콧대 높게 도도하더니 나와 단둘이 섰을 땐 희한하게 생기가 넘쳤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생각에 잠긴 내 귓가로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뻣뻣한 눈길을 옮기자 새하얀 유니폼 차림의 여자가 간이침대 바로 곁에 서 있었다. 문소여의 파트너, A+급 가이드 이상록이었다.

내가 알던 모습에 비해, 오늘날 이상록은 머리카락이 더 길어 어깨를 덮었다. 얼굴에는 안경을 꼈고 두 손에는 은색 의료 상자를 들었는데, 눈 밑이 보랏빛이라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다. 오가며 들은 말이 있어 경력자인 줄은 알았지만 스물한 살 시절부터 게이트를 누빈 줄은 미처 몰랐다.

커튼으로 간이침대 자리를 완전히 가려주며, 이상록은 종이 상자를 협탁 삼아 가져온 약품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다들 가이드 1팀이고, 회색 머리 오빠는 윤도곤이에요. 재차의 님의 새 파트너 자리를 놓고 매칭 테스트를 2차까지 마쳤거든요. 그래서 저래요, 탈락한 게 속상해서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무슨 놈의 매칭 테스트를 2차까지 쳐? 그럼 3차도 있고 4차도 있단 소린가?’

그러니 가이드들이 미쳐서 날뛴 거구나. 몇 번씩 테스트를 치면서 희망만 가득 쌓아 온 입장에서 내가 오죽 미웠을까. 나로서는 구태여 이해하거나 배려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난날 당한 사고의 원흉을 짐작할 순 있게 됐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날 향해 이상록은 입꼬리를 올리며 방긋 웃었다. 양처럼 순한 두 눈에서 왠지 모를 호의가 빛나는 듯했다.

이전에도 나는 이상록만큼은 좋게 생각했다. 행동이며 말투에서 이지가 폴폴 풍기는데, 그처럼 단정하고 상냥한 여자는 나로서는 보기 드문 오로라 같은 것이었다.

“고마워요. 소여랑 원심이를 잘 챙겨주셨다면서요.”

오로라가 나를 칭찬한다. 예상치 못한 인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두 어린애를 내가 무슨 수로, 도대체 언제 챙겨줬다는 소리인가 싶었다. 오히려 아이들 덕분에 목숨을 구한 나였다.

“아뇨, 뭘요.”

그래서 그렇게 대꾸했다. 뱉고 보니 겸손을 떤 것 같아 재수 없었다. 머쓱해서 입술만 비틀 뿐 나는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적극적으로 이상록을 마주 보진 못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간 망가진 어깨가 완전히 떨어질 것만 같았다.

이내 이상록이 조그만 쪽가위를 꺼내 들었다. 날카롭고 작은 날을 보자마자 나는 괜히 귓불이 아팠다. 베개에 턱을 괴며 애써 가위를 외면했다.

“셔츠… 자를게요. 벗기 힘들어 보이셔서.”

이 정도 부상자는 익숙하다는 듯 이상록이 내 셔츠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삭삭 가위질하는 소리가 등허리 밑단부터 목덜미까지 일자로 들려왔다. 이내 등줄기가 시원했다. 셔츠 속에 고여있던 땀이 빠르게 말랐다. 내 날갯죽지에 마른 피와 함께 붙은 옷조각을 떼어내면서, 이상록은 ‘으으’ 하고 제가 다 아프다는 듯 신음했다.

그러더니 라텍스 장갑을 꺼내어 양손에 끼었다.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준비만 도와주는 줄 알았는데, 직접 무얼 하려는 듯한 움직임에 나는 당황했다. 고급 가이드인 이상록이 왜 내 치료 따위를 도맡는 건지 이상했다.

이내 이상록이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상한 짓 안 해요. 약만 발라 드릴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잠금장치가 걸린 검은 상자를 꺼내어 보였다. 비밀번호 여덟 자리를 입력하여 개봉한 상자 속에 든 건 뜻밖에, 천사의 눈물이었다…. 찢긴 피부를 꿰맬 실과 바늘을 상상한 내 앞에서, 이상록은 푸른 약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꺼내었다. 그러곤 도통 얼마인지 값이 가늠조차 되질 않는 약물을 백색 연고와 섞기 시작했다.

“이거 하나면 충분해요. 저번에도 써 보셔서 알죠? 순식간에 치료될 거예요.”

말인즉슨 내 무릎 골절도 진작에 천사의 눈물로 고쳤다는 소리다. 재차의가 말한 ‘비싼 수술’은 결국 반만 진실이었던 셈이다. 수술은 필요가 없되, 빌어먹게 큰돈을 들이긴 하였으니까.

‘왜…. 왜 굳이 이 비싼 걸 나한테 쓰지?’

낭비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빠진 어깨뼈야 다시 맞추고, 찢어진 피부는 꿰매면 그만이다. 흉이야 좀 지겠지만 뭐가 대수라고…. 무릎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게 재차의가 베푼 선심임이 너무나 확실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불안 속을 허덕이며 살아 그런가, 이젠 친절도 불안하다. 특히나 재차의의 호의는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직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질 않았다. 큰 빚을 내게 지워놓고, 어떻게 갚게 할 심산인 걸까? 주머니를 털어봐야 먼지 한 올 나올 것 없는 내 신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내게 요구할 것이 돈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가이딩, 혹은 섹스인가. 둘 중 뭐가 됐든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재차의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가 어떻게 망가지든 간에…. 그러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나한텐 이렇게까지 큰 공을 들일 가치가 없는데. 보람 또한 없을 텐데….

“저… 송모래 님?”

어두운 망상에 사로잡힌 새에 이상록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연고를 내 날갯죽지와 어깨에 꼼꼼히 도포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제 이름은 상록이에요. 이상록.”

난데없는 자기소개에 나는 내심 당황했다. 어깨 주변을 빙글빙글 맴도는 손길이 따끈하고 부드러웠다.

“그게, 우리 1팀 가이드들은… 송모래 님의 이름을 다 알거든요. 물론 얼굴도요.”

“아, 네.”

“…저만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건 좀 불공평하잖아요?”

그러더니 이상록이 웃는다. 어리숙한 얼굴은 여전히 하얀데, 귀는 동상이라도 입은 사람처럼 새빨갰다.

상대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아는 게 둘 중 누구에게, 왜 불공평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 여길까 봐 그랬다. 눈치껏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자, 이상록은 의자를 뒤로 끌며 물러났다.

“자, 다 나았어요. 움직여 보세요.”

이상록의 말마따나 어깨며 등허리가 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엎드렸던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나는 찢어져 두 쪽 난 셔츠를 완전히 벗었다. 그러자 이상록이 ‘어어’ 하더니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났다. 그러곤 커튼 앞으로 뛰어가 등을 돌리고 나를 외면했다.

내 등짝을 아무렇잖게 만지기에 앞을 보여도 그러려니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치한이라도 된 듯한 당혹감과 죄책감에 나는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이상록이 팔을 뒤로 휘휘 흔들며 소리쳤다.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말끔해진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 보고, 기지개를 켜며 나는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간이침대 아래에 놓인 점퍼를 찾았다.

알몸이 된 상체에 검은 점퍼를 걸치고 지퍼를 올리는데, 구석 자리에 떨어진 장신구가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게 꼭 금붙이 같기에 얼른 집어 들고 보니 보라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습관적으로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이상록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린 데다가, 근방에 설치된 카메라도 없었다.

“…….”

다 올린 점퍼 지퍼를 일부러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목 밑까지 지이익 소리 나게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다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문소여와 장원심이 뛰어 들어왔다. 그러더니 ‘모래 형’, ‘오빠’하는 간지러운 말로 나를 부르면서, 같은 릴리를 타고 귀환하면 안 되겠느냐며 이상록의 옷자락을 쥐고 흔들어댔다. 어린 파수꾼들의 우악스러운 팔 힘에 깃발처럼 흔들리면서 이상록은 기운 없이 대답했다.

“재차의 님께 허락받으면 그래도 돼.”

그러자 문소여와 장원심이 동시에 얌전해졌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그들은 ‘취소, 취소’하고 뱉은 말을 물렸다. 아이들의 정수리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이상록을 보며 나는 괜스레 눈알만 굴렸다.

그리고 재차의가 보였다. 기분이 몹시 상한 듯, 미간 사이에 구김이 진 채 돌아온 그는 두 손과 턱을 물로 적신 채였다. 건들건들한 걸음걸이로 임시 기지 중앙을 가로지르더니, 가타부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나를 덥석 들었다. 이제는 무릎은 물론이고 어깨도 쾌차했건만, 그는 평소 조롱하던 대로 나를 공주처럼 안아 들고 임시 기지를 떠나버렸다.

재차의의 걸음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철 천장에 뚫린 게이트의 아가리로 오르는 데엔 발돋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순식간에 게이트에서 빠져나와, 그는 대기 중인 릴리에 나를 집어넣고 옆자리에 탑승했다. 그리고 동그란 패드에 대고 손바닥을 내리눌렀다.

기다렸다는 듯 릴리가 출발해 버렸다. 차창 밖으로 우리를 쫓아 뛰어오는 직원 두엇이 보였지만 금세 쌀알처럼 작아졌다.

“어, 저…, 스티치는요?”

쌩쌩 달리는 릴리의 창밖을 살피며 내가 물었고,

“왜.”

재차의가 코웃음을 크게 쳤다.

“그놈의 핵 부수러 내가 자리 비우면, 다른 파수꾼이랑 드라이브라도 하려고?”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잠깐 한눈판 사이에 문어한테 잡혀가질 않나, 가슴 다 까놓고 아양을 떨어대질 않나.”

“…….”

아니, 이 변태 능력자가…. 그 귀한 천리안을 이런 식으로, 커튼 뒤에서 옷 갈아입는 날 훔쳐보는 데에 쓰다니…. 만일 신이 있다면 재차의를 만드는 데에 며칠 밤낮의 공을 들였을 텐데, 지금쯤 땅을 치며 열 번은 한탄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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