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내 가이딩 실력은 좀… 특이해. 재차의 님이 아닌 파수꾼을 상대로는 E급밖엔 안 돼. 너희들에겐 내 가이딩이 아무 소용도 없을 거야.”
그러자 문소여의 표정이 철 지난 꽃처럼 시무룩해졌다. 장원심도 마찬가지였다.
“아…. 정말요?”
혹시나 하는 기대가 실린 되물음에도,
“그래, 정말이야. 미안하게 됐어.”
내 대답은 한정적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한껏 쪼그렸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반대쪽 자동문으로 자리를 옮기는가 싶더니 저들끼리 다시금 수군거린다. 용건을 잃어버렸으니 더는 내게 볼일이 없을 터였다.
이번에 나는 그들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어깨에서 밀려드는 통증에 두 눈을 꽉 감았다. 허벅다리 위에 놓인 손을 위로 들어 보려는데, 손등만 까딱거릴 뿐 팔이 올라가질 않았다.
“…….”
굉음과 함께 닥쳐왔던 정체 모를 고통도 여전히 전신 곳곳을 맴돌았다.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아픔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깁스가 박살 난 오른쪽 다리는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깨진 깁스에 찍힌 자국만 일자로 남았을 뿐, 무릎의 모양도 멀쩡했고 멍울 하나 없었다. 재차의가 말한 ‘큰 수술’은커녕 연고를 바를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내심 어리둥절하여 무릎을 세워 보는 내게, 문소여가 다시금 쪼르르 다가왔다. 그러더니 바닥에 털썩 앉아, 기껏 세운 내 무릎 위에 제 턱을 척 올렸다. 애교 넘치는 동작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놀라고야 말았다.
“있잖아요, 송모래 님.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대뜸 건네 온 말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뭐?”
멍하니 건넨 되물음에 문소여는 더욱 또박또박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형이요, 형. 모래 형이라고 부를게요! 형도 나 이름으로 불러요. 나는 ‘소여야’, 얘는 ‘원심아’.”
“전 오빠라고 부를게요. 모래 오빠!”
장원심까지 쪼르르 달려와 외치는데, 그 발랄한 말들이 내겐 주먹질보다 더 강렬했다.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 정신이 얼얼했다.
‘난 가이딩도 해 줄 수가 없는데, 무능력자인데. …그래도 나를 형 취급해 주겠다고?’
스무 살의 문소여가 내 머릿속 방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가 죽은 동생 흉내를 내며 날 속였다는 생각에, 배신감과 실망으로 추락하던 내 심정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내가 그의 눈앞에 대고 문을 닫아 버릴 때, 문소여의 표정이 어땠었지? 그것만큼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똑바로 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형아. 괜찮아요?”
열네 살의 문소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많이 다친 거 아냐? 머리가 아픈가 봐.”
내 얼굴에 대고 손을 휘휘 흔들면서 장원심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문소여를 향해 조바심을 섞어 외쳤다.
“소여야. 안 되겠어, 오빠 빨리 임시 기지로 데려가자.”
“아! 안 돼. 움직이지 마. 괴수가 사방에 깔려 있어서 지금은 들킬 수도 있단 말야.”
“빨간 리본이 아직도 여기 있다고?”
…‘빨간 리본’이라니, 그 끔찍한 괴수를 참 귀엽게 설명해 주네.
“응. 우리랑 같이 있어.”
종알종알 상황을 설명하며 문소여는 낮은 천장을 손가락질했다. 그 방향을 향해 장원심도, 나도 고개를 움직였다. 그러나 괴수의 모습은 눈에 보이질 않았다. 괴수 역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을 터였다. 어디 볼 수만 없던가. 문소여의 비호는 신기할 만큼 대단해서, 서로 간에 말소리를 들을 수도, 몸을 건드려 만질 수도 없게 했다. 그런데도 괴수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하네.”
내 의견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장원심이 종알거렸다.
“딱히 전투적인 괴수는 아니던데. 아까까진 계속 도망만 치더니… 왜 여기에 멈춰 있지? 야, 너 능력 똑바로 쓰고 있는 거 맞아? 우리 목소리 다 들리는 거 아냐?”
“아냐! 그런 거면 저렇게 가만있질 않았을걸!”
그에 장원심이 한숨을 크게 푹 내쉬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허리를 숙이나 싶더니, 열네 살 인생에 큰 시련이라도 닥쳤다는 듯 한껏 낙담한 얼굴로 속삭인다.
“모래 오빠, 입을 다쳤나 봐. 말을 못 하잖아.”
‘아. 안 하는 건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껏 부푼 감정 표현을 보자니 기분이 절로 나아졌다.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일절 없는 솔직함이 보기 좋았다. 나는 그러지 못하기에 더욱 그랬다. 온몸을 맴도는 고통도 잠시 잊힐 정도였다.
그러나 한결 가벼워진 눈길을 문소여에게 옮긴 순간, 사방의 공기가 바듯해지는 듯 숨이 막혔다.
“…….”
부드럽고 말랑해 보이던 문소여의 양 뺨 위에 닭살 같은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커다랗게 뜬 두 눈은 동공이 벌어져 색이 까맸고, 머리털이 쭈뼛 서서 온몸에 정전기가 난 듯 보였다. 괴수를 상대하면서도 웃으며 농담하던 아이인데, 겁에 질린 얼굴이 새하얬다. 하얗다 못해 파란빛이었다.
아무도 보이질 않는 전철 한편을 바라보면서, 문소여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재차의 님 오셨어요….”
그 말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희소식을 비극인 듯 전하는 문소여의 태도가 이상했다. 혹시 재차의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지금 보이지 않는 전투라도 벌이는 중인 걸까? …그렇다면 내 가이딩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자리에서 급히 일어서려, 나는 철제 봉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문소여가 재빨리 두 손을 날 향해 뻗었다. 이어지는 외침이 카랑카랑했다.
“아니요!”
그러더니 작은 입술을 벌벌 떤다. 따닥따닥,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릴 지경이었다.
“제…, 제 능력을 절대 풀지 말라고 그러시네요. ‘말 안 듣는 송모래’. …‘절대 못 보게 해’ …라고….”
그러더니 문소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구석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웩 소리를 지르며 구역질까지 해 댔다. 당황하고 놀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덩달아 긴장한 듯, 장원심이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뭐야’, ‘왜 그래’하며 연거푸 던져 대는 질문에도 문소여는 말이 없었다.
이내 문소여가 허공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네!”
그리고 헐레벌떡 달려와, 나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형, 형. 얼른…, 얼른 가요.”
다친 어깨를 늘어뜨린 채 나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줬다.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우선은 문소여의 지시에 따라 옆 칸으로 이동해야 했다. 어린 문소여의 얼굴이 워낙 절박하고 가여워 보여,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힘내어 움직였다.
전철 옆 칸으로 옮겨 가자마자 나는 텅 빈 노약자용 좌석에 몸을 앉혔다. 그제야 문소여도 긴 한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장원심도 더는 제자리에서 폴짝거리거나 억지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큰 불안을 느꼈는지 딱히 보이는 것도 없는 전철 옆 칸의 문을 힘주어 닫아 버렸다.
“하아….”
딱딱한 시트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며 나는 천천히 숨을 돌렸다. 아무튼 재차의가 와 주었으니 이 지옥 같은 전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안심이 되어 그런지 어깨의 통증이 다시금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덜컹’ 소리를 내며 전철 칸의 이음매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재차의가 보였다. 타인의 입을 빌려 등장한 지 3분도 채 지나질 않았는데, 용무를 전부 마쳤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문소여가 왜 그토록 벌벌 떨며 두려워한 건지 의문스러울 만큼, 재차의는 멀쩡했다. 멀쩡하다 못해 완벽했다. 옷가지는 물론이며 얼굴, 목, 손의 피부에도 긁힌 흔적 하나 없었다. 늘 반듯하던 바짓단에 구김이 졌을 뿐이었다.
등 뒤의 전철 문을 밀어 닫으면서, 그는 검은 구둣발을 바닥에 대고 툭, 툭 털었다. 그리고 내게로 직진해 다가왔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재차의를 나는 굳은 얼굴로 올려다봤다. 사달이 해결되었으니 이젠 핀잔을 들을 차례였다. 결국 그에게 짐이 되어 버리고야 말았으니까. 나 때문에 그가, 아득히 먼 게이트를 주파하며 달려와야만 했으니까….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죄할 말을 준비하는 날 향해 재차의는 오른손을 뻗어 왔다. 그리고 내 아래턱을 움켜쥐더니, 허리를 깊이 숙이며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맞닿을 것 같아 나는 눈가를 움찔거렸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그는 불현듯 멈췄다.
“입술.”
그리고 물었다.
“빨아도 돼?”
“…아.”
아, 아…. 내 속이 크게 울렁거렸다. 맞아, 강… 제. 강제로 하는 것, 싫다고 그랬었으니까. 내가 내걸었던 유일한 조건을 의식하고, 지켜 주려는 재차의가 신기했다.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나는 아이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문소여와 장원심은 어느새 저 멀리, 전철 반대쪽 칸으로 뛰어가 버려 보이질 않았다.
남은 문제는 딱 하나였다. 내 입이 영… 꺼림칙하게 더럽다는 것이었다.
“저… 토했어요.”
그러자 재차의가 잘생긴 미간을 퍽 찡그렸다. 이어져 나온 음성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랬어?”
한껏 의식한 티가 역력한, 평소보다 두 톤은 더 높인 목소리였다. 아프다고 투정하는 어린애 달래는 듯, 공감하며 어르는 듯했다. 그러면서 내 아랫입술에 엄지 끝마디를 대고 슥슥 문질러 쓰다듬기까지 했다.
나는 얼떨떨하니 목석처럼 굳어 버렸다. 아무리 가이딩이 급하더라도 토 냄새 나는 입술을 빨고 싶진 않으리라 생각해 건넨 소리였다…. 지금은 내 입이 더럽고 역겹다고, 싫은 상태일 거라 먼저 경고해 주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태도는….
“왜 토했어. 어지러워서 멀미 났어?”
“…….”
젖먹이 구슬리는 듯한 재차의의 태도에, 나는 도리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멀미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