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도깨비한테 홀리면 이런 기분일까. 다 큰 도깨비도 아니고, 조그마한 아기 도깨비불의 유혹에 빠져 버린 것 같다. 짙은 위화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두 아이의 태도는 그만큼 괴상했다. 동네 놀이터에서 숨바꼭질한다는 양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새 장난감을 발견해 기쁜 듯한 기색으로 두 눈을 반짝이면서 그들은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그러곤 툭 뻗은 내 발 양쪽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바삐 종알거렸다.
“저기요, 신입이에요? 처음 보는데?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재차의 님이랑 같이 온 거예요? 근데 왜 혼자 있어요? 재차의 님은 어디 갔어요? 혼자 어떻게 살아 있어요? 괴수랑 싸웠어요?”
“저기, 혹시 이름이 ‘송모래’예요? 당신이 송모래 님이에요? 누나들이 그랬는데요, 송모래 님이 재차의 님의 새 파트너라던데요, 급도 되게 높다던데요, 진짜 그래요?”
와르르 쏟아지는 질문에 눈앞이 아찔했다. 기운 넘치는 두 아이의 면면을 번갈아 살피다가, 나는 전철 내부로 눈을 돌렸다. 아이들의 수다에 정신을 빼앗긴 새에 빨간 괴수가 몸을 뻗어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내 염려를 알아챈 듯, 남자아이가 ‘아아’ 하고 소리쳤다. 그러곤 조그만 가슴팍을 앞으로 쭉 내밀며 떵떵거렸다.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요, 능력을 써서요. 지금 괴수는 우리가 어딨는지 몰라요!”
그 말이 내게 어떤 확신을 주는지, 아이는 모를 터였다.
‘문소여다…. 이 애, 진짜 문소여야.’
스무 살 무렵의 문소여는 훤칠한 여자처럼 보일 만큼 예쁘장했었다. 그나마 낮은 목소리며 목젖의 모양으로 겨우 성별이 드러날 정도였다. 아직 이차 성징이 오질 않은 열네 살의 문소여는 그보다 훨씬 더 요정 같았다. 구태여 성별로 표현할 것 없이, 판타지 소설책에 등장하는 별개의 종족처럼 보였다. 피부는 갓난아기처럼 뽀얗고 머리칼이며 눈동자는 여린 나뭇가지 빛깔이었다.
내 추측이 전부 틀린 셈이다. 지금쯤이면 문소여가 발현하기 전일 거라 짐작했건만 오해였다. 스무 살 무렵의 그를 두고 ‘수영을 못 배운 새끼 수달’이라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착각이었다. 열네 살의 문소여는 게이트를 신나게 누비고 있었다. 사실은 벌써 배영이고 잠영이고 다 해 본, 얼굴만 귀여운 프로 수달이었던 거다.
‘이상하네. 그때는 분명… 파견을 못 나가는 신세라고 그랬었는데.’
작은 의문에 빠져 나는 문소여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어른이 된 문소여에게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혹시… 이렇게 파견을 나서다가 어딜 크게 다치게 되나?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내 시야로 여자애가 불쑥 끼어 들어왔다. 문소여의 어깨를 제 어깨로 세게 떠밀면서 아이는 또박또박 외쳤다.
“제가요! 제가 능력을 써서요! 괴수가 아파서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제가 더 멋있죠?”
관심을 갈구하는 태도에 나는 얼떨떨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가 ‘으헤헤’ 하고 장난꾸러기처럼 웃는다.
‘얜 또 누구지?’
문소여와 달리 여자애는 완벽한 초면이었다. 내가 알기로 대슈망 소속 파수꾼 가운데 불을 사용하는 뉴타입은 이이재가 유일했다. 그러나 6년 전의 이이재라 보기에 이 여자애는 너무 어렸다. 이목구비의 모양이며 인상도 아주 달랐다. 이이재는 스포츠 화보에서 막 튀어나온 듯 장신에 근육이 다부진데, 이 애는 체구가 작고 팔다리는 깡마른 말괄량이였다. 까만 머리카락은 숱이 적어 보슬보슬해 보였고, 눈매가 동그랗고 눈동자는 아주 크고, 콧잔등에 주근깨가 가득했다.
“넌… 누구야?”
고민 끝에 내가 물었다. 그러자 문소여가 먼저 대답했다.
“제 이름은 문소여예요! 파수꾼 문소여!”
여자애가 그에 질세라 콧방귀를 흥! 뀌며 대꾸했다.
“저는 장원심이에요, 파수꾼 장원심.”
다시, 문소여가 ‘A+급’이라며 자신의 등급을 으스대며 덧붙이고, 장원심이 성난 강아지처럼 으르릉 소리를 냈다. 그러곤 서로의 어깨를 밀어 가며 다투기 시작했다.
“원심이는요, 등급이 A-급 밖에 안 되거든요오.”
문소여가 말끝을 늘이며 종알거렸다. 장원심은 빠르게 울상이 되어, 쭉 내민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 이야길 왜 해! 야! 능력 풀어! 내가 저 괴수를 당장 무찔러 줄게! 누가 더 센지 한번 보자고!”
“흥. 형들이 그러는데, 요즘 뉴타입은 파워보다는 기술이랬어.”
“뭐야! 숨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숨바꼭질이나 하러 가!”
“뭐야? 태우는 거밖에 못 하는 주제에. 삼겹살이나 구워라!”
아이들의 다툼 소리가 너무 커, 괜스레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부러 낮은 목소리를 내어 속삭였다.
“쉿. 조심해.”
그러자 두 아이의 숨 가쁜 다툼이 뚝 끊겼다. 처음부터 내 관심을 끄는 것만이 목표였다는 듯, 작은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나를 본다. 그리고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송모래 님. 우리 파수꾼이라니까요? 조심하면 아무도 못 지켜 주는데?”
싱거운 웃음으로 돌아온 대꾸가 나를 심란하게 했다.
6년 전의 한국을 생각해 보면…, 그래. 어린 파수꾼들이 게이트를 누비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진 않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게이트 돌발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가 무척 심각했었으니까.
대슈망 연구 센터에서는 게이트 발발을 지진에 빗대 설명했다. 해저 산맥의 균열, 화산 활동, 판의 중첩으로 인한 지진 현상이 판 구조론으로 해석되듯이, 게이트의 발생 또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판’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론이었다. 실질적인 증명이 불가능하긴 해도 신뢰도 높은 이론이다. 마치 지진과 같이, 게이트 사고도 특정 지역에서 유독 잦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정말로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떠한 판이 지구상에 존재하여, 저들끼리 부딪치고 깨지면서 게이트가 발생하는 듯했다. 한동안 동해에 머무르는 듯하던 돌발 현상이 부산을 거쳐 서울로 밀려 들어온 것도 센터에서 내놓은 예고 그대로였다.
뉴타입 발현율은 땅덩어리며 인구수에 비례하기 마련이라, 한국은 뉴타입의 머릿수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괴수를 처리하는 속도는 물론이며 다이브 및 스티치 성공률은 손에 꼽히게 우수했다. ‘우리 땅’에 대한 집념이 원체 어마어마한 덕분이었다. 침략으로 인한 아픈 역사를 지닌 국가의 게이트 대처 능력이 좋은 것은 애석하게도 검증된 사실이다. 하물며 신산시의 조직폭력배들조차 자기들 땅에 생긴 게이트는 팔 걷어붙이고 박살 내는 판국이니 오죽할까.
특히 6년 전 이맘때면 괴수에 대한 분노가 범국민적 차원일 시기다. 사건 사고로 인해 민간인들이 워낙 많이 사망한 해이기도 했다…, 꼭 내 가족들처럼.
그러니 문소여나 장원심처럼 어린아이들까지 A+라느니 -라느니 등급을 매겨다가 파수꾼으로 임명한 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별수 없이 꼰대인가 보다.
‘파수꾼이고 나발이고, 씨발, 이거 아동 학대 아니야?’
변성기도 오지 않은 어린애들이 나를 지켜 준다느니 괴수를 무찌른다느니 위력을 과시하는 꼴이 보기 싫었다. 그런 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들 어른 중에는 대단하신 영웅인 재차의도 있고 말이다. 아이들이 할 일은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재차의가 곧 이리로 와 줄 테니까.
내가 알기로, 재차의는 단 한 번도 게이트 스티치에 실패한 적 없다. 실패는커녕 괴수와의 전투 중 다친 기록 한 줄 없다. 그러니 이토록 어린아이들이 전투에 나설 필요 또한 없다.
문소여도 문소여지만, 나는 장원심이 걱정됐다. 크게 다치거나, 죽거나, 실종되거나…. 셋 중 어떤 일이건 이 아이에게 벌어질 터였다. 그러니 고급 파수꾼임에도 미래의 대슈망 센터에선 만날 수가 없고, 세간에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것 아니겠는가. 나쁜 사고를 당하기에 장원심은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아무렇게나 헤 웃는데, 윗니 하나가 유독 작고 조그맸다. 유치가 빠진 자리에 새 이가 돋는 중이었다.
“그래도 나서지 마.”
인상을 굳히며 나는 장원심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리고 경고하듯 말했다.
“파수꾼이라고 안 아픈 건 아니잖아.”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기껏 건넨 주의에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도, 이내 눈망울을 반짝 빛내며 저들끼리 속닥대기 시작했다. 빤한 눈길은 내 얼굴에 화살처럼 꽂힌 채였다.
장원심이 문소여의 귀에 대고 무어라 귓속말하고, 문소여가 다시 장원심의 귀에 대고 귓속말했다. 애들에겐 미안하지만, 귀에 대기도 전에 말을 흘려 댄 탓에 그들 대화가 내게도 다 들렸다.
“근데 진짜 잘생겼다. 그치?”
에휴…. 어른 말을 안 듣는구만….
“능력도 어떻게 S급이나 되지? S급 가이드 처음 봐.”
“S급이면… 팀장님이나 대리님보다 더 높다. 그치?”
“그치. 훨씬 높지…! 상록이 언니도 못 이길걸? 대슈망에서 제일 높아.”
동그란 눈동자에 윤기가 도는 게,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 사 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나는 그 눈빛에 실린 소망을 빠르게 알아챘다. 스무 살의 문소여가 내게 해 온 부탁이 힌트였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저에게도 가이딩을 해 달라는 요청을 ‘조금만 도와 달라’는 에두른 표현으로 전했었다. 이중 파트너라도 좋으니 저를 고려해 달라고 그랬었다….
이번에는 허튼 기대로 힘 빼지 않을 수 있게, 미리 말해 줘야겠다. 내겐 그렇게 정성 들일 가치가 없다고.
“나는 별종이야.”
살면서 들은 말이 그뿐이라, 할 줄 아는 말도 그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