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62)화 (62/76)

62.

온몸이 굳어 버려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 나를 대신해 그는 떨어진 바지를 주웠다. 장례식장에서 지급한 기본 정장 바지로, 내 몸에 비해 기장은 짧고 허리는 넉넉했다.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내 두 발부터 시작하여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잘 입혀 주는가 싶더니, 그는 억지로 발기해 버린 성기를 제 손바닥으로 눌러 바지 속에 집어넣었다. 그 손길이 너무나 서슴없고 또 부드러워서 나는 놀라 소리 질렀다.

“…흐, 으.”

그래 봐야 뻣뻣해진 입 밖으로 나오는 음성은 형편없었다. 팔뚝에 소름이 오르고 심장이 쿵쿵 뛰는 와중에 나는 얼굴을 붉히는 것밖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수치심에 완전히 박살 났는데, 재차의는 무덤덤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이 내 바지의 지퍼며 버클을 채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길이 내 팔뚝에 와 꽂혔다.

빤한 시선을 따라 나도 눈동자를 굴렸다. 팔뚝 중앙에 떡하니 박혀 있던 작은 주사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굵은 핏방울이 허연 살 위에 진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바늘이 잘못 뽑혔나 보다…. 둔한 생각을 굴리는데, 재차의가 제 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내 몸 위에 펄럭 덮더니, 거의 멍석 말듯이 둘둘 감싸기 시작했다.

내게 남은 건 순수한 당혹감뿐이었다. 도통 내 예상대로 흘러가질 않는 이 ‘지옥’의 정체는 무언지, 재차의는 왜 날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약간의 설명이라도 해 주었으면 바라 올려다보아도 그는 안 어울리게 과묵했다. 제 코트 속에 번데기가 된 듯 갇힌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따름이었다.

“…….”

짧은 침묵을 깬 건 바깥에서부터 울려오는, 군중의 웅성거림과 발소리였다.

재차의는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더럭 몸을 움직였다. 내 허리를 인형 다루듯이 집어 들더니, 옆구리에 끼다시피 들었다. 나는 젖은 걸레처럼 사지를 늘어뜨린 채 장례식장 밖으로 옮겨졌다.

향냄새 진동하던 좁은 지옥과 달리 바깥 날씨는 환하다 못해 상쾌했다. 약한 바람이 목의 땀을 훔쳐 가고, 여름의 볕이 내 눈가에 직선으로 떨어졌다. 세상은 대낮인데 나만이 한밤처럼 느껴지는 순간, 남들의 태양은 나를 떠안은 재차의였다.

“재차의 님!”

“재차의 님, 이번 게이트 사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쪽 한 번 봐 주세요, 재차의 님!”

병원 정문을 빼곡히 채웠던 인파가 우르르 재차의를 향해 모여들었다. 찰칵찰칵 요란한 셔터음이며 말투를 보아 기자인 듯했다. 땅을 향해 고개를 푹 떨군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재차의의 검은 구둣발뿐이었다.

제자리에 멈추어 서나 싶던 구두는 휙 방향을 틀더니 곧장 빨라졌다. 헐레벌떡 뒤를 쫓는 목소리가 들려도 막힘이 없었다. 이내 회색 돌바닥에 노란 선이 죽죽 그어진 땅이 보이고,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을 상징하는 그림이 보였다. 주차장에 왔나 보다… 생각하던 차, 재차의가 내 어깨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대로 낯선 이들에게 넘겨졌다.

“재차의 님! 얼마나 찾아다녔다고요! 어딜 다녀오신 거예요?”

흰 셔츠 칼라와 좌우로 까딱거리는 보라색 명찰이 눈앞을 꽉 채웠다. 그것만으로도 소개는 충분했다. 대슈망의 직원들이었다.

“이, 이 학생은 누구죠? 상태가 왜 이래.”

“재차의 님…. 재차의 님이 이러신 건 아니죠…?”

오가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내심 ‘학생’이라는 지칭에 당황하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빠져 늘어져 있을 따름이었다. 내 정수리 위로 재차의의 대답이 툭 떨어졌다.

“새 가이드. 방금 저기서 주웠어.”

“예?”

재차의 님, 재차의 님… 기자들의 외침이 천둥처럼 쿵쿵 울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대슈망 직원들의 합창 또한 내 골 안을 크게 때렸다. 외부 자극이 온통 고통으로 닥쳐왔다. 재차의의 팔에 들려 흔들거리며 옮겨진 탓에 약 기운이 온몸에 확 번진 모양이었다. 두통과 이명, 발열에 시달리며 나는 마음 안으로 소리 질렀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달라고. 어디든지 좋으니까 앉히든 눕히든 버리든 해 달라고. 온몸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일단 데려가. 주사를 맞았던데, 무슨 성분인지 알아내고. 깨끗하게 해독시켜 놔.”

그 말을 끝으로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흔들리는 명찰이며 손, 다닥다닥 붙어선 구둣발만 가득하더니, 대뜸 엉덩이 밑이 푹신해지고 차창 밖이 내다보였다. 직원들이 나를 차량 뒷좌석에 태운 것이었다.

자리에 앉고 나니 나는 오히려 더 어지러웠다. 목의 균형조차 잡을 수 없어, 반쯤 쓰러지고 반쯤 늘어졌다. 차창에 퉁 소리가 나게 관자놀이를 대자 옆자리의 직원이 ‘어’ 하고 놀란 소리를 냈다.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리는 그의 손짓이 곁눈질로 겨우 보였다.

“학생.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 배 밑으로 흘러내리는 재차의의 코트를 다시금 추켜올려 주며, 직원이 말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요. 대슈망 센터로 가면 다 해결될 거야.”

‘아니. 그렇진 않을걸요….’

나는 속으로 대꾸했다.

‘그런다고 해결될 만큼 내 문제가 쉽지는 않던데요. 벌써 해 봐서 잘 아는데….’

빡빡한 눈동자를 추켜올려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뱉은 입김으로 뿌예진 얼룩이 아주 가깝고, 재차의의 뒷모습은 벌써 멀었다. 식빵 조각을 발견한 개미 떼처럼 모여든 기자들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등이 유독 커다랬다.

이내 나를 태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변하는 차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열기에 서서히 잠식당했다. 흐려지는 이성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품은 생각은 참 기이했다.

…근데 이 지옥, 왜 끝나지를 않지?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파로 만든 방 안이었다. 그 밖에는 이 공간을 표현할 말이 따로 없었다.

상하좌우 어디를 보아도 쿠션 발린 벽뿐이다. 푹신한 여섯 면을 물끄러미 살피다가,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긴가민가하며 주먹을 쥔 손도, 꿈틀 오므린 발가락도, 벌떡 일으킨 허리도 곧잘 움직였다.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팽팽 돌던 열 기운도 온몸을 얼려 놓던 약 기운도 씻어 내린 듯 지워졌다.

더듬거리며 살펴본 옷은 여전히 검은 바지에 구깃구깃한 셔츠인데, 목에는 내 것이 아닌 목걸이 줄이 걸려 있었다. 등 뒤로 돌아간 줄을 당기자, 따로 쓰인 이름도 없이 ‘임시 방문자’ 다섯 글자가 인쇄된 자격증이 딸려 왔다.

이내 드르륵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있는 줄도 몰랐던 문과, 그 문을 열며 들어온 사각형의 커다란 기계, 또 그것을 실은 카트 손잡이를 끙끙 미는 직원이 보였다.

큼지막한 기계를 방 중앙까지 옮긴 뒤에야 그녀는 깨어난 나를 발견했다.

“어, 학생. 일어났어요?”

“…….”

반갑다는 듯 웃어 보이는 얼굴이 묘하게 익숙했다. 단정하게 틀어 묶은 머리며 안경 너머의 가느다란 눈매, 깨끗하게 정돈된 손톱에 발린 색색의 매니큐어 같은 것들이….

‘안후이 부장…?’

상대의 이름을 알아챔과 동시에 나는 빠르게 뒷걸음질했다. 그녀는 안후이면서 안후이가 아니었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려우나 어딘지 전과, 사뭇 달랐다. 괴리감에 시선을 떼질 못하는 나를 올려다보며 안후이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기소개했다.

“인사 관리 업무를 맡은 안후이 대리입니다.”

‘대리?’

나는 빠르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안후이의 생기 넘치는 얼굴이 달라지진 않았다. 몹시 쾌활하고 또 어린 목소리로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여긴 대슈망 센터니까. 몸은 좀 괜찮죠? 해독도 다 했고, 피 검사 결과도 곧 나올 거예요.”

그제야 나는 내 오른팔을 살폈다. 팔뚝 중앙에 전에 없던 솜이 붙어 있었다. 갈색 의료용 테이프를 손끝으로 긁어 뜯어 내자, 주삿바늘 자국이 점처럼 세 개 찍혀 있었다.

빨갛게 남은 주사의 흔적만 보아도 눈앞이 핑 돌았다. 우뚝 선 내 몸이 바닥에 누운 듯 느껴지고, 발끝에서부터 삼촌의 손이 다닥다닥 뼈마디를 두들기며 기어 올라오는 것만 같다. 어지럼증에 눈썹을 찌푸리는 내게, 안후이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은 건 매칭 테스트뿐인데,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검사니까 안심해요. 자, 이리 와서 앉으세요.”

“싫습니다.”

내 대답은 단연 거절이었다. 그러면서 두 걸음 더, 문을 향해 물러나자 안후이가 제 목덜미를 문지르듯 매만졌다.

“어…. 학생, 가이드라고 그러던데…. 가이드가 되기 싫어요?”

“…….”

그건 이상한 질문이었다. 내가 좋다고 해서 가이드로 발현한 게 아닌 것처럼, 내가 싫다고 해서 가이드가 아니게 되지도 않으니까. 이 일에 내 기호 같은 건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다.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나는 가이드인 게 싫지는 않았다. 구질구질하고 외롭던 스물여섯의 삶에, 누군가 나를 찾아 주던 이유는 내가 가이드이기 때문… 오직 그뿐이었으니까. 삼촌은 물론이고 용병단의 누구, 또 한건, 그리고 재차의도 그랬다.

그러니 가이드라는 자기소개는 싫지 않다. 특히나 S급 가이드라는 명함은 반쪽짜리일지언정 내 생애 유일한 업적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건 그저 이, 좁은 방에서 강제로 시행될 매칭 테스트다.

“어…. 저기요, 학생?”

“…….”

“학생. 왜 그래요?”

“…….”

구구절절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며 기계로부터 멀어졌다. 그런 나를 붙잡으려 안후이가 한 발짝 다가온 순간, 내 등 뒤로 누군가의 가슴팍이 툭 닿았다.

“새 가이드가 들어왔다면서요? 테스트 상대해 주려고 지원 나왔습니다.”

고개를 돌려, 나는 두 번째 불청객을 확인했다. 좁은 방문을 가로막고 선 그는 키가 크고 젊은 남자였다. 검은 반소매 티셔츠에 검은 운동복 바지를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었는데, 바지 밑단 아래로 가죽 벨트가 보였다.

‘구속복….’

파수꾼이다.

가타부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의 옆구리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좁은 복도를 향해 후다닥 뛰쳐나갔다. 곧바로 이어진 문을 몸통으로 부수다시피 들이박으며 열고 지나자, 더욱 크고 넓은 복도가 환하게 펼쳐졌다.

기다란 복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놀란 시선이 내게로 와 다닥다닥 꽂혔다. 나는 그 눈짓들을 거칠게 털어 떨치려는 양 두 팔과 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뛰었다.

“어어!”

무턱대고 내달리기 시작한 내 등 뒤로, 안후이 부장… 아니, 대리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학, 학생! 어디 가요!”

외침에 대답할 여유 따윈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좋을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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