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61)화 (61/76)

61.

콜라주.

쓰다. 텁텁하다. 쥐가 올라서 간지러워. 얼얼하고, 뻐근하다. 축축해. 무겁다. 아프고 뜨겁고 따가워.

‘왜지?’

난 죽었는데.

“어….”

벙긋 입을 열자 둔한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고개를 좌로, 우로 천천히 흔들면서 나는 눈알을 느릿느릿 굴렸다. 껌껌하던 시야가 차츰 밝아졌다. 사방을 채운 가구며 소품들이 순차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접힌 채 벽에 세워진 병풍이었다. 그 옆으로 종이 박스가 두 개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부조금 상자는 텅 빈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상주 띠를 둘러놓은 검은 재킷이며 옷걸이가 보이고, 장판 위에 힘없이 떨어진 내 손이 보이고…. 영 어울리지 않는 흰 셔츠 소매가 구깃구깃했다.

팔뚝까지 걷어붙인 소매 밑으로 노란 고무끈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밑으로, 불룩 솟은 핏대에 찔러 놓은 주삿바늘이 보였다.

“모래야. 깼어?”

히죽히죽 웃는 소리, 반쯤 쉰 듯한 음성, 강압적인 말을 상냥한 척 뱉던 어투…. 내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아 놓은 남자는 삼촌이었다.

그는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손바닥으로 장판을 딛고는 몸을 끌다시피 미끄러뜨리며 내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새 게임기 앞에서 신난 어린애 같은 동작이었다.

“…….”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나는 삼촌을, 그리고 내 팔뚝을 번갈아 쳐다봤다. 주춤거리며 팔을 뒤로 물리려 하자, 삼촌이 내 손바닥에 대고 제 무릎을 내리눌렀다. 억지로 팔을 쭉 뻗은 채 나는 몽롱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탓에 삼촌의 얼굴이 영 낯설었다.

“가만있어. 착하지?”

의식의 촛불이 픽 꺼져 버리던 죽음의 순간을 나는 기억했다. 처참해서 어여쁘던 재차의의 표정도,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러나 ‘오늘’, 이날… 내가 스무 살이 된 해의 끔찍하게 무덥던 날, 어색한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의 한편에 딸린 작은 방에 누워 주사를 맞던 이 순간도 나는 기억했다. 아주 선명하게, 충분히 끔찍할 만큼 잘 기억했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삼촌은 내 팔뚝을 묶어 둔 고무줄을 풀었다. 헐떡이며 살펴본 주사는 이미 약물을 끝까지 짜 넣어 텅 빈 상태였다. 삼촌은 내 팔뚝에 꽂은 주삿바늘을 빼 주지도 않고서 조급하게 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제 바지 버클을 깔짝거리며 풀고, 팬티까지 단숨에 벗어 내려 엉덩이와 성기를 드러냈다.

가이딩을 빙자하여 오가던 손잡기며 포옹, 뽀뽀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순간도 바로 지금, 이때였다.

‘내가 지옥에 온 건가?’

약 기운이 도는 듯 가슴 안이 홧홧했다. 속에서 피어오른 열기는 꿈틀거리며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나는 바지가 벗겨진 건 물론이고 속옷까지 잃은 지 오래였다. 내 성기를 제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삼촌은 만족스러운 듯 히죽 웃었다.

영문 모를 눈물이 관자놀이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나는 입 안에 감돌던 씁쓸하고 텁텁한 맛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건 빌어먹을 ‘가이딩’ 행위 내내 나를 꿈쩍도 못 하게끔 마취시키던 알약이었다. 긴 시간을 이 맛에 중독되어 지냈으니 틀림없었다.

고개를 모로 돌리며 나는 입 안 가득, 시럽처럼 거의 다 녹아내린 약물을 뱉어 냈다. 구토하듯 우엑, 소리를 내며 침을 뱉자 삼촌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모래야. 왜? 맛이 이상해?”

발정제의 영향으로 억지로 선 성기가 아팠다. 기둥은 터질 것처럼 쓰라리고, 귀두는 타는 듯 뜨거웠다. 이미 겪어 본 상황임에도 역겹고 싫어서 온몸의 살이 다 떨렸다.

‘왜?’

왜 내가 죽어서도 이런 짓을 당해야 하지?

‘왜…?’

지옥에 떨어질 만큼, 날 버린 부모님도 날 떠난 형제들도 못 만날 만큼, 내가 그렇게나 나빴던가?

눈물이 뺨을 타고 여러 갈래로 흘러내렸다. 치를 떨며 우는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삼촌은 잠시간 눈을 굴리나 싶더니 제 욕정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멋대로 내 물건 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이리저리 자세를 취하는 식이었다.

“아, 아….”

나는 멍하니 입을 끔벅거렸다. 하지 마, 씨발, 이 더러운 새끼, 씨발 새끼야… 이렇게 욕하고자 입을 여는데, 잇새로 나오는 소리라고는 ‘아’, ‘어’ 하는 뭉개진 발음뿐이었다. 아무래도 마취제를 오래 머금은 탓에 입 안 전체가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삼촌은 그런 내 음성을 저 좋을 대로 오해했다. 내 온몸이 충분히 마취되었다고 착각한 듯, 그는 보다 확신 어린 손길로 내 가슴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셔츠 위로 미끄러지는 말라빠진 손아귀가 영 역겨웠다.

‘씨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나는 두 팔을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마자 머릿속이 핑 돌고 귓가에 이명이 울려 도로 나자빠지긴 하였지만, 내 몸 위에 올라탄 삼촌을 뿌리칠 순 있었다.

“아…! 아…! 아악…!”

꽉 막힌 숨을 헐떡거리며 나는 최대한 크게 소리 질렀다. 악, 악… 까마귀처럼, 놀란 어린애처럼 비명을 뱉는 내게로 삼촌은 헐레벌떡 기어 왔다. 그는 어떻게든 나를 도로 눕혀 놓고 내 입에 새 마취 약을 집어넣으려 했고,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자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또 질렀다.

“아악….”

누가, 누가 좀, 도와 달라고. 여기, 내 인생이 시궁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이 순간을 지나면 두 번 다신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처참하고 더러운 악몽에 처박혀 버리고야 만다고….

“읍, 으읍…!”

발정제의 영향으로 열이 올라,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내가 휘두른 주먹은 삼촌에게 닿지 못했고, 삼촌의 두 손은 정확하게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손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알약이 내 잇새로 떨어졌다.

그래도 나는 발악하며 버둥거리길 멈추지 않았다. 삼촌의 주먹에 뺨을 맞아도, 왜 이러냐는 핀잔과 가만히 좀 있으라는 명령이 여러 차례 욕설과 함께 밀려와도, 점차 팔다리가 마비되고 온몸이 고장 나 움직이지 않게 되어도….

“으…, 윽, 으윽….”

억지로 다물린 잇새로 비명이라도 질러 보려 연신 노력했다.

내가 짐승처럼 눈물 흘리며 죽어 가는 비명을 지르건 말건, 삼촌은 다시금 나를 강간하려 들었다. 내 성기를 제 엉덩이에 대고 문질러 대더니, 연신 입맛을 다시며 벌써부터 헐떡거렸다.

‘토할 것 같아.’

영혼까지 질식시키는 무기력감을 느끼며 나는 어, 아… 아아… 비명을 연신 흘렸다. 이곳, 장례식장에서는 누가 듣더라도 애도하는 울음인 줄 착각하고 지날 성싶었지만, 그래도 멈추질 않았다. 지나간 스무 살 시절에는 가족을 전부 잃은 슬픔에 잠식당해서 미처 해내질 못했던 반항이었다.

그리고 내 지옥의 문이 열렸다. 쿵 하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활짝 젖혀진 나무 문 너머에 커다란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방 안은 워낙 어둡고 밖은 놀랍도록 환해서, 바닥에 널브러진 내 위치에서는 그의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기다랗게 뻗어온 그림자를 느낄 따름이었다.

남자는 나의 좁은 지옥에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휙 뒤를 돌아본 삼촌의 안면이 그의 손아귀에 덥석 잡혔다. 그러곤 온몸이 붕 떴다. 마치 종이 인형 내던지듯, 남자는 삼촌을 병풍에 대고 휙 휘둘러 집어던졌다.

강한 타격음을 내며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지고, 쓰러진 병풍에 맞으면서도 삼촌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눈을 뜬 채 기절한 그의 입가로 게거품 같은 침이 흘렀다.

“시끄러워.”

남자가 말했다.

온몸은 땀으로,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향해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는 내 옆구리 양옆에 두 발을 대고 섰다. 그리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 각도가 완전히 직각이 되고 나와 그의 얼굴이 평행을 이루게 되자, 비로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날카로워서 나를 찌를 것만 같은 코, 유독 깊고 어두운 눈매, 사람의 탈을 쓴 괴수처럼 시커먼 눈동자, 아무 감정도 표정도 보이지 않는 눈….

“시끄러우니까 그만 울어.”

작금의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질서를 잃은 와중에도 그의 존재만큼은 분명하고 또 선명했다. 언제나 이전과도 같고 나중과도 같이 완벽한, 그는 유일무이한 최강의 파수꾼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남자였고, 내 지옥에 모습을 드러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악마였다.

‘재차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서 나는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내 행색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방구석에 찌그러진 모양새로 쓰러진 삼촌의 볼기짝 또한 힐끔 쳐다보았다.

“하…. 나는 또, 웬 미친놈이 꼬마한테 좆 박으려 드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네.”

한숨 소리를 섞어 가며 재차의가 중얼거렸다.

“완전 반대였던 거야. 그렇지?”

짐짓 상냥하게 들리는 질문에 나는 멍하니 머리를 끄덕였다. 억울하게 받아 온 오해가 떠올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와중에도 고개를 움직일 힘이 났다. 혹시 재차의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가 생전의 내가 품었던 한을 풀어 주려 하나… 그런 허황된 생각마저 들었다.

내 위에 군림하듯 선 재차의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그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그때의 재차의와 지금의 재차의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당장 내 눈앞의 그는 나를 꼬마라 부른다는 점뿐이었다.

“꼬마야. 너, 가이드구나.”

땀에 젖은 등이 장판 바닥에 눌어붙는 감각이 뭉근했다. 강제로 피 쏠린 성기를 덜렁 대놓은 채 나는 입술만 꿈질거렸다. 재차의의 말에 대답하고 싶은데, 입이 도통 열리지를 않았다.

재차의는 그런 날 향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대단한 향기라도 음미하는 듯 숨을 들이켰다.

“네 냄새…. 마음에 들어.”

이내 그의 손이 내 얼굴에 닿았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손이 부쩍 시원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도록 더운 탓에 나는 그 손길에 얼굴을 맡기며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침을 흘리면서, 이것으로 한풀이는 전부 마쳤다고 생각했다. 이제 저승사자가 나를 데려가 주겠거니 기대했다.

그러나 재차의는 나를 지옥 혹은 완전한 소멸의 길로 데려가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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