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60)화 (60/76)

60.

“아, 허윽, 헉….”

전신에 힘이 죄 빠져 버려 바닥에 널브러진 채 나는 반항하지 않았다.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어서 괴수가 내 목숨을 끊어 버리기를, 이 고통을 끝내 주길 기다렸다.

내 위치를 아주 확신한 듯, 괴수는 내 몸통에 대고 제 커다란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게걸스러운 숨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컸다. 놈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들이켤 때마다 내 상의가 펄럭대는 느낌마저 들었다. 괴수의 축축한 코에 치여 팔이며 어깨를 툭, 툭, 뒤로 밀리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아. 의식이 흐릿해지려 한다.

그리고,

‘잠들면 안 돼.’

내 안의 내가 외친다.

‘잠들면 죽어. 잠들면 안 돼. 송모래, 움직여!’

시선을 내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가슴과 어깨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미 상의가 다 젖은 채였다. 하지만 다리는 지릿지릿하게 아프기만 할 뿐 겉으로 보이는 외상이 없었다. 기회를 틈타면 일어나 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죽을 때 죽더라도, 괴수의 아가리에 시체마저 찢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 시신을 수습해 줄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그래도….

‘혼자 있고 싶어.’

죽을 때 죽더라도 나는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죽고 싶다. 그나마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용하게, 혼자 죽고 싶다. 평생 내 뜻대로 된 것 없는 인생의 종지부까지 불청객과 함께이고 싶진 않다.

“…….”

입맛을 다시고 냄새나 킁킁거리며 괴수가 여유를 부리는 지금이, 내겐 기회였다. 아주 조용히 오른팔을 들어, 나는 놈의 이마에 꽂힌 칼 손잡이를 콱 쥐었다. 그리고 뒤로 확 빼내었다.

아주 짧은 단검이리라 생각한 칼은 예상치 못하게 길었다. 나는 칼을 휘둘러 공격을 시도할 생각이었는데, 놈은 그 기다란 것을 제 머리통에서 뽑아낸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듯 크게 몸을 흔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나는 기껏 얻은 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대신에 엉금엉금 기고 또 기어,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났다.

녀석이 아픔에 내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고, 두 번 넘어지고 한 번 크게 구르면서 서너 블록을 뛰고 또 뛰었다. 최종적으로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폐강당이었다. 바닥에는 바람 빠진 풍선이며 한차례 파티를 마친 듯한 테이블들, 플라스틱 의자가 가득했고 무대 위에는 빨간 천막이 내려져 있었다. 나는 그 천막 너머의 협소한 공간 안에 몸을 앉혔다. 다치고 지치고 아픈 몸을 벽에 기대었고, 더는 달릴 힘이 남지 않은 두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었다.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것으로 온몸이 축축했다. 근육은 죄 땅을 향해 늘어졌고 뼈는 마디마디마다 온통 아팠다. 특히나 왼쪽 가슴, 그리고 옆구리가 무척 아팠다. 너무 아프면 눈알에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두 눈이 전부 터져 버릴 것처럼 얼얼했다. 힘이 빠져 쩍 벌어진 잇새로는 분홍색 액체가 흘렀다. 피와 타액이 섞여 줄줄 흘러내려도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사력을 다해 숨어든 결과, 나는 혼자 죽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인생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나는 죽음이 무서웠다. 혹여 저승이 있을까 봐, 내가 죽은 뒤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될까 봐 무서웠다.

‘엄마, 아빠…. 형도, 동생들도 다… 벌써 6년을 저세상에 가 있었을 텐데. 자기들끼리 한참은 더 친하게 지냈을 텐데….’

나는 그 틈바구니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반길 거란 기대조차 들지 않았다. 차라리 날 잊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다시 만난 가족들과 잘 어울릴 자신이, 없었다….

‘외로워.’

외롭다. 부러진 내 뼈에 내 살을 찔리는 고통보다도, 나는 외로움이 아팠다. 죽은 뒤에도 혼자일까 봐 서글펐다. 사후 세계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기를 소망했고, 어느 누구도 내 시체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 게이트의 스티치를 마치기를 기도했다. 제발 내 영혼이며 몸뚱이가 얼간이, 떠돌이, 외톨이처럼 덩그러니 남겨지지 않기를, 버려지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나는 바닥을 더듬었다. 어깨를 타고 반쯤 흘러내린 재킷의 밑단이 잡히기에 움켜쥐고는, 남은 힘을 쥐어 짜내어 내 몸 위를 덮었다. 피투성이가 된 가슴이며 배를 모조리 덮어 놓고 모르는 척했다. 그러고 나니 괜찮아졌다. 시선을 떨궈도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재차의의 재킷뿐이어서 좋았다.

컴컴하니 어두웠던 시야에 문득 빛이 들었다. 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이 굳어 꿈쩍조차 하지 못하고 앞을 응시했다. 무대의 굵은 천막이 걷히는가 싶더니 검은 바지와 구둣발이 보였다. 바지는 정장으로 신축성 있고 고급스러운 소재인데, 발목에는 투박한 가죽 벨트의 버클 같은 것이 묶여 있었다. 앞코가 반질반질한 검은 구두가 내 벌어진 다리 사이에 들어와 섰다. 이내 커다란 손이 쑥 내려와 정장 바지의 무릎 단을 살짝 꼬집어 올리고, 서서히 낮게 쪼그려 앉는 남자의 몸이 보이고, 얼굴이 보였다.

재차의가 보였다.

“…….”

이미 반쯤 감긴 눈을 끔벅거릴 뿐 나는 놀라지조차 못했다. 눈앞의 광경이 환시인지, 꿈인지, 주마등인지조차 분간되질 않았다. 아름다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재차의는 고개 숙여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송모래.”

이내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제 재킷을 훔쳐 입고 멍청하게 자빠져 있는 나를, 그는 아무런 조롱도 비소도 없이 바라보았다. 눈동자며 눈썹, 코끝이며 입술, 미간이며 인중 어디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너무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린 석상 같았다.

아주 천천히 옷을 젖혀 내 상처를 확인하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빨라졌다. 온 얼굴을 단숨에 일그러뜨리더니 두 손을 뻗어 내 아랫배를 눌렀다. 그가 압박한 뒤에야 나는 내 배에 구멍 뚫린 상처가 났음을 알았다. 이제 와 욱여 쥐며 지혈을 해 봐야,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참 이상하다. 이제는 아프지가 않다. 아무런 감각이 없다…. 마침내 온 고통이 나에게서 빠져나갔나 보다. 평생 내 오랜 고통이 마취되기만을, 호흡마저 무감각해지기를 기도하며 살았는데, 그 대가로 목숨을 지불해야만 하는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기도는 하지 말걸.’

벌어진 턱을 타고 피인지 침인지 모를 것이 뚝 떨어졌다. 배에 이어 가슴이며 옆구리까지 박살 난 내 상태를 확인했는지, 재차의의 얼굴은 더욱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입매는 혐오하는 사람처럼 구겨졌고 찌그러진 눈가며 콧잔등에선 정체 모를 슬픔이 일렁거렸다.

“송모래…? 송모래, 정신 차려. 잠들면 안 돼.”

이 재차의는 아무래도 가짜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 재차의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화내고 슬퍼해 주는 사람이었나….

“조금만 참아. 내가 다 고쳐 줄 테니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나는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었다. 재차의로 인해서 내가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도 나로 인해서 티끌 만한 생채기 하나쯤은 얻었으면 좋겠다던 못된 목표를.

“전부 낫게 해 줄게, 송모래. 너를 새것처럼 만들어 줄게…. 내 말 들려? 응? 대답해.”

윽박지르듯, 고집부리듯 소리치면서 재차의는 연신 내 상처를 더듬어 댔다. 목 전체가 고장 나 버려 나는 그의 손이며 내 환부는 살피지를 못하고, 굼뜬 눈동자로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꽤나 처참한 표정의 그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어려운 심문에 쩔쩔맬 필요가 없어지니까…. 왜 도망갔느냐는 말로 혼나지 않아도 되고, 유약하고 욕심 많은 새끼라고 욕먹지 않아도 되고, 이미 죽은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마음대로 재차의를 눈에 담아야지. 마침내 감정에 충실해도 좋을 순간이 내게도 온 셈이다.

“송모래.”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던 재차의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두 눈은 커지고 새카만 동공은 크게 벌어지고, 입은 무어라 말하려던 모양 그대로 멈춰 버렸다.

“웃지 마….”

마치 복화술 하듯, 낮은 목소리가 그의 목구멍을 긁으며 빠져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들은 뒤에야 내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눈이 가늘어지고 볼이 팽팽해지도록 활짝 웃고 있다는 걸, 남의 일처럼 희미하게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서, 나는 재차의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예쁘다.”

미움도 설움도 질투도 남지 않게 되어 그렇게 말했다. 내내 혼자 품어 온 감상을 툭 뱉는 순간에는 희한하게도 신음성도 꺽꺽대는 숨소리도 없이 내 목소리가 참, 평안했다.

참 웃기는 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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