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뜸 찾아간 노사장 사무실에는 뜻밖에 손님이 와 있었다. 빨간 가죽 재킷에 운동화를 신고, 옆구리엔 헬멧을 낀 남자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그가 노사장이 부리는 다른 심부름꾼임을 알았다.
가져온 헬멧으로 머리통 전체를 얼른 가린 다음, 나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저는요?”
내게도 일감을 달라고,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할 적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도록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밤새 꿈속 재차의의 미소에 시달린 탓에 반쯤 미쳐 있었다.
노사장은 당황스러운 듯 날 향해 끼어들지 마라, 닥쳐라 하며 윽박을 질러 댔으나, 빨간 재킷을 입은 심부름꾼은 오히려 잘됐다며 제 일거리를 양보했다.
“여기, 이분이 하시면 되겠네. 사장님? 전 빠질게요. 게이트에는 가 본 적도 없고.”
그 말에 ‘나는 게이트에 가 본 적 있다’며 자랑하듯 대답했다. 빨간 재킷의 심부름꾼은 기회를 얻었다는 듯 재빨리 사무실에서 달아났다. 나는 노사장 앞에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어서 내게 넘기라는 의미에서였다.
한참을 욕설하고 또 고민한 끝에 노사장은 내게 일거리를 건네주었다. 나흘 뒤 스티치가 예정되어 있는 게이트에 숨어들어 가, 특수 나침반이 알려 주는 방향을 참고하여 부산물을 수집해 오란 말이었다. 성공하면 돈이야 많이 주겠지만 몹시 위험하다고, 잘 생각해 보라고, 대슈망 놈들이 덜 치운 괴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노사장의 경고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노사장도 뭘 모르는구나. 괴수는 무슨 괴수…. 대슈망이 초짜 용병단도 아니고, 재차의가 두 눈 말똥말똥하게 뜨고 돌아다니는데 게이트에 괴수가 남아 있겠어?’
그리고 흔쾌히 이 일을 맡겠노라 선언했다.
“다녀올게요.”
그건 내가 이번 생에 벌인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대다수 실수가 그렇듯이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인지했다. 그레이존 밖으로 바이크를 몰고 나와 출입 금지 표지판을 아무렇잖게 지나고, 아무도 없이 텅 빈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이 게이트는 어느 나라를 본떠 만든 걸까 추측하고, 기괴하게 달칵달칵 흔들거리며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쫓고자 바이크를 세워 둔 채 터벅터벅 걷던 중, 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 이 게이트가 본뜬 장소는 아무래도 미국의 스쿨 존인 듯하다. 노란색 버스며 커다란 운동장을 지닌 학교, 축 늘어진 파란 국기가 딱 그래 보인다.
둘, 노사장의 말이 옳았다.
“…….”
나침반을 쥔 손이 바람 앞의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렸다. 등줄기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순식간에 입 안이 마르고 목구멍이 퍼석해졌다. 그러는 내내 내 두 눈은 거대한 괴수의 눈에 꽂혀 있었다.
내가 놈을 보듯이 놈도 나를 보았다.
“…….”
차도 위에 우뚝 선 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괴수 또한 네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자세를 납작하게 낮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놈의 피부는 푸르스름했고, 외형은 거의 늑대와 비슷했다. 그럼에도 들개나 떠돌이 늑대일 거란 소망은 조금도 품을 수가 없었다. 그 크기가 바로 옆에 세워진 SUV 차량보다 더 커서, 눈이 마주치도록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여태껏 컨테이너 박스인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
파도치던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뒤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괴수들은 생존한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더욱 크게 자라난다고 했다. 내 눈앞의 낯선 괴수는 덩치가 큰 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생존 기술을 습득한 듯했다. 그러니 대슈망 파수꾼들이 다녀간 뒤에도 살아남아 길거리를 배회하는 게 분명했다.
거의 1시간처럼 느껴지는 10초간 놈을 관찰한 끝에, 나는 어째서 저 괴수가 내게 달려들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알았다.
‘눈이, 잘 안 보이나 봐.’
군데군데 회빛 흉터가 진 눈동자는 자세히 살펴보니 색이 탁했다. 안광도 없었고 약간의 움직임도 없었다. 내게도 살 확률이, 조금이나마 있다는 의미였다.
‘아…. ‘살 확률’이라니….’
실소가 나오려는 걸 억지로 꾹 눌러 삼켰다. 목숨을 건 위협과 자기 자신에 대한 조소가 동시에 끼쳐 오니 눈가 살이 파르르 떨리고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솔직히 긴장이 되고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살고 싶었고, 살고 싶은 내가 우스웠다.
‘그렇게 살고 싶었으면, 왜 위험한 줄을 알면서도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야?’
아주 조용히 숨을 고르면서 나는 왼발을 뒤로 내뺐다. 괴수가 나를 못 알아챈 틈을 타 빨리 이곳에서 달아나야 했다.
그러나 내가 반 발짝 뒤로 물러서자마자,
킁.
괴수가 턱을 추켜들고 꽉 닫혀 있던 콧구멍을 가로로 열었다. 그리고 땅이 울리도록 킁킁 소리를 내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들숨 소리는 천둥처럼 크고 날숨 소리에선 작은 회오리바람이 부는 듯했다.
이내 괴수는 완전히 두 발로 기립했다. 앞발을 높이 추켜들며 뒷다리로 매우 기괴하게 앉는가 싶더니, 놈은 서서히 고개의 방향을 고쳤다. 나는 하얗게 얼어붙은 채 괴수의 얼굴을 쳐다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어에 두 눈동자를 찔리거나 베인 듯, 동공이 있어야 할 부분에 일자형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남색 털로 덮인 이마에는 작은 칼이 박혀 있어 칼의 손잡이가 보였다.
오른쪽… 다시, 왼쪽… 또 저편을 보는가 싶더니, 괴수가 홱 네 발을 바닥에 댔다. 놈이 날 향해 튀어 오른 순간 나는 뒤돌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헉! 허억, 헉…!”
가져온 물건을 다 팽개치며 나는 두 손으로 허공을 가르고 두 발로 땅을 뒤로 밀어 냈다. 바이크를 어디에 뒀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미친놈처럼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뒤돌아 상황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 등 바로 뒤에서 찢어지는 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쇄액, 쇄액… 희한한 숨소리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순간 나는 크게 넘어져 턱을 바닥에 찧었다.
“윽…!”
그러곤 곧바로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다. 쇄액, 쇄애액… 구멍 뚫린 목으로 피리 부는 듯한 그 소음은 내 현실 감각을 다 앗아 갔다. 악몽 속을 질주하는 기분으로 나는 큰 골목길에서 홱 달리던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마자 일부러 바닥에 몸을 던졌고, 노란색 스쿨버스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심장은 미친 듯 쿵쾅거리고 입 안에선 피 맛이 감돌았다. 버스를 지나 쇄액, 쇄액, 소리 지르며 멀어지는 괴수의 위치를 확인한 뒤, 나는 천천히 몸을 옆으로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스쿨버스와 건물 외벽 틈새에 바짝 끼다시피 했다. 남은 일은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이내 나는 저 괴수가 어떻게 대슈망의 수색을 피해 살아남았는지 그 능력을 알 수 있게 됐다. 커다란 몸뚱이를 흔들며 네 발로 뛰어다니는데, 발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기척도, 기운도, 존재감도 없었다.
“…….”
커다란 버스 뒤에 숨은 것 자체는 좋았으나, 내 눈에도 놈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누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스쿨버스의 차창을 이용해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
기웃거리며 살펴본 건널목에는 누구의 기척도 흔적도 없었다.
‘멀리 갔나….’
그리고 불쑥, 놈의 커다란 머리가 차창을 가득 채웠다.
“…흡…!”
놀라 크게 들이쉰 내 숨소리를 들은 듯, 괴수가 턱을 위로 추켜들며 길쭉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더니 놈은 손인지 앞발인지 모를 것으로 버스 차창을 긁어 부수기 시작했다. …킁킁, 킁킁…. 내 냄새를 찾아 연신 숨을 들이켜는 놈의 소리가 섬뜩해 미칠 것 같았다. 놈은 나를 찾아 커다란 머리통을 두리번두리번 움직이다가, 차창에 두 팔을 끼워 넣은 채 몸을 뒤로 내뺐다가, 재차 세게 돌진했다.
“악…!”
쿵 소리를 내며 버스 차체가 나를 향해 부딪쳐 왔다. 크게 기우뚱거리는가 싶더니 고스란히 내 상체에 충돌한 버스의 무게에, 비명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커다란 차체와 벽 사이에 낀 흉통이 부러지고 폐부에서 피가 터지는 고통이 형형했다.
“컥…, 컥….”
다리의 힘이 온통 풀려 버려, 나는 바닥에 나자빠졌다. 비명을 듣고 내 위치를 알아챈 듯, 괴수는 버스 천장을 타고 위로, 위로 기어 올라갔다. 몇 초 만에 시커먼 그림자가 머리 위에 드리워졌다.
“커헉, 억…. 어윽….”
나는 숨소리는커녕 신음을 숨길 수도 없게 됐다.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를 찌르고 있었다. 왼쪽 어깨도 탈구가 된 건지 부러져 버린 건지 힘없이 밑으로 축 늘어지기만 했다.
“아, 으윽!”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자빠져 있자니, 괴수로부터 도망치려 시도한 것 자체가 후회됐다. 그냥 녀석에게 바로 잡혀서 죽임당했더라면 아주 짧게, 잠시 동안만 아팠을 텐데….
‘아, 아파….’
땀과 침,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나를 향해, 괴수는 재차 코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놈의 머리가 내 몸통 위에 차양을 만들다시피 했다. 앞발로는 건물의 외벽을 딛고, 뒷발로 버스 천장을 움켜쥐나 싶더니, 놈은 두 발로 버스를 밀쳐 냈다. 커다란 스쿨버스가 천둥 번개 같은 소리를 내며 멀찍이 나가떨어졌다.
운전수 없는 교통사고 현장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