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내 뒷구멍은 더는 뻑뻑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았다. 온몸으로 흘린 땀과 재차의의 성기에서 물처럼 솟구쳐 나온 프리컴으로 인해 허벅지가 다 덥도록 축축해졌다. 체액을 윤활제 삼아, 이미 꼬챙이 박히듯 내 몸에 처박은 성기가 더욱 쉽게 들어온다. 제멋대로 미끄러지며 배 속을 쑤셔 댄다.
“으음, 하아….”
다시, 짝 소리와 함께 재차의는 두 손으로 내 양쪽 허벅지를 동시에 내리쳤다. 이번에 나는 비명조차 지르질 못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고 가슴팍이 부르르 떨렸다. 열이 오르고 살갗이 팽팽하게 부어오른 허벅지 위를, 재차의는 큰 손으로 덥석 쥐었다. 그리고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예민해진 살갗 위를 울리는 통증과 배 속 깊이 쑤셔박힌 성기로 인해 머릿속이 온통 하얘졌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내 신경은 속을 꾸역꾸역 누르는 커다란 좆이 아닌, 허벅다리 위를 어루만지는 재차의의 손바닥에 쏠려 있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이 내 허벅다리 위를 긁듯이 미끄러져 내려가면 속이 꽉 조이고 소름이 돋았다. 무릎에 머무르는가 싶다가 멀리 떠나면 긴장이 풀려 뭉쳤던 아랫배가 느슨해졌다. 재차,
짝!
큰 소리를 내며 기습적으로 한쪽 허벅지에만 통증이 일었다. 나는 반대쪽으로 허리를 뒤틀며 끅끅 신음성을 삼켰다. 복근이 아주 꽉 말려 들어가며 배 속까지 단숨에 오므라들었다.
“좋아? 하하….”
재차의가 웃는다. 그의 큰 웃음이 주는 진동에 나는 위아래로 들썩거려야 했다.
‘…누가, 누가 좋아해? 이런 미친, 고문 같은 짓거리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고자,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러자 흐려진 시야를 축축하게 젖은 내 물건이 채웠다. 끄트머리가 붉어지도록 팽팽하게 발기한 물건은 이미 더러워진 지 오래였다. 재차의의 짙은 가슴팍 위에 튄 정액 방울이 선명했다.
사정한 기억도 없이 흘려 버린 정액에 소스라치게 놀라, 나는 몸을 떨며 다리를 움직거렸다. 자세를 바꾸어 보려 허우적거리는 내 몸짓에 재차의가 흉곽을 크게 부풀리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아….”
만족스러운 듯 그는 크게 신음하며 내 허리를 아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아, 하아, 송모래, 으음!”
입을 벙긋거리며 나는 사물처럼 들썩거렸다. 발기한 내 성기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아랫배에 퉁퉁 닿는 느낌이 생경해, 수치심에 소름이 확 끼쳤다.
“헉…, 흑…, 흣.”
이를 악물며 나는 내 허리를 조이는 재차의의 손을 긁고, 치고, 밀어 내려 애를 썼다. 그럴수록 내 몸은 더욱 크게 들썩이며 재차의의 샅에 아주 주저앉았다가, 속을 채운 성기가 아슬아슬하게 빠지도록 위로 쑥 들리길 반복했다.
“악…! 흑, 흐으….”
뒷구멍 끄트머리에 귀두가 걸린 느낌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머리카락이 위로 날리며 덥석 들렸던 몸이 거칠게 내려앉았다. 뱃가죽이 불룩 앞으로 튀어나오고, 볼기짝에 재차의의 고환이 닿았다.
“…….”
끅… 머리통이 휙 뒤로 넘어가고 온몸에서 힘이 죽 빠졌다. 신음을 억지로 삼키는 것밖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재차의는 같은 행위를 두 번, 세 번, 네 번째 반복했다. 거친 추삽질이 이어질 때마다 머리며 성기를 끄덕끄덕 억지로 흔들며 나는 땀에 젖고 열기에 물들었다.
“아, 흑, 헉, …아….”
안 돼, 안 돼….
“흑, 흐으…, 흐윽!”
싫어, 이런 건, 이런 자세는 싫다고….
섹스인지 자위인지 모를 행위는 무서울 정도로 오래 이어졌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으로 얼굴이 흠뻑 젖은 채 나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벌벌 떨기만 했다. 억지로 정액을 토해 낸 내 성기는 이제 시뻘건 빛깔이었고, 흥건해진 머리카락이 이마며 눈가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렸다.
“아아, 으음.”
눈을 내리감고 제 입술을 혀로 축이며, 재차의는 자위에 몰두한 듯 내 몸뚱이를 쥐고 흔들었다.
‘그만, 제발!’
배가 아프고 진이 빠져, 나는 헐떡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든 떼어 내어 보려 재차의의 손가락을 붙들었지만, 두 손에 각각 그의 엄지 하나를 움켜쥔 꼴이 됐다.
내 몸을 쥐고 흔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재차의는 제 하반신을 가볍게 위로 쳐올리기 시작했다.
“흐…윽! 아, 아!”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볼기짝을 맞는 감각에 머릿속이 빨갛게, 하얗게, 이내 파랗게 질렸다. 이제 고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아…! 아, 아!”
성적 쾌감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 두 가지는 하나로 뒤엉킨 지 오래라 내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조차 알 수 없게 했다. 숨이 막혔고, 땀에 섞여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흑…, 흐, 윽, 읏! 윽….”
그만, 그만, 제발….
“악….”
두 눈을 꽉 감아 눈물을 떨구며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잔뜩 멘 목소리를 흘렸다.
“제, 제발….”
내 목소리는 형편없이 낮고 작아서, 차라리 철퍽거리며 볼기짝을 맞는 소리가 더 클 지경이었다. 열 번 도리질을 친 끝에,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제, 제발 그, 그만. 그만….”
그러자 어지럽도록 크게 끄덕거리던 고갯짓도, 위아래로 연신 흔들리던 상체도, 딱딱한 샅이며 고환으로 볼기짝을 때리는 감각이며 배 속을 쑤시던 성기가 주는 고통까지 한 번에 뚝 그쳤다. 재차의가 행위를 멈춘 것이었다.
“흐…, 흐으….”
어느새 내 손안에 그의 엄지가 각각 잡혀 있었다. 나는 민망한 줄도 모르고 그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며 소극적으로 애원을 마쳤다.
“그만, 흣, 그만….”
제발 그만해 달라고, 이제 그만…, 그만하라고.
“이, 이제… 모, 못…. 못 해요.”
“하….”
그러자 재차의가 한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다. 드물게도 그는 다소 낙담한 듯 보였다. 진한 눈썹 끝을 끌어 내리며 눈을 질끈 감는데, 내겐 그 모습이 치밀어 오른 성욕을 짓씹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재차의는 억지로 세워져 있던 내 상체를 납작 누를 기세로 끌어안아, 제 몸 위에 눕혔다.
“아, 송모래.”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재차의가 신음했다.
“하아, 으음….”
그와 동시에, 꿈틀, 꿈틀… 짓밟힌 벌레처럼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거렸다.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상했다. 사정하는 것은 재차의이지 내가 아닌데, 내 성기는 더는 빼낼 액체가 없어 늘어진 지 오래인데, 숨 막히는 쾌감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리고 속이 터질 것처럼 꽉 차 배가 불렀다. 자잘한 경련으로 인해 세게 움츠러든 뒷구멍 밖으로, 재차의의 성기가 반쯤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바깥으로 울컥울컥 빠져나오는 정액이 끈적하고 뜨끈했다.
“흐, 으….”
“하아, 아….”
대뜸 쌀쌀한 기운이 밀려들어, 나는 재차의의 어깨에 이마를 박치기하듯 쿵 찧었다. 그러자 재차의가 두 팔로 나를 세게, 아주 세게 고쳐 안았다. 진한 포옹에 눈이 절로 감기며 속이 느슨해졌다.
이대로 잠들면 좋을 것 같았다. 재차의의 성기가 여전히 뒤에 박혀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늘 있었던 나쁜 일은 다 없어진 셈 치고, 잊어버린 척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어차피 재차의는 내 방에서 잘 거니까. 이렇게 세게 껴안고 같이 잠든다면 그걸로, 파트너로서의 대우는 내 알량한 마음이 만족스러울 정도는 되니까….
재차의의 숨결을 따라 몸이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의 큰 손이 내 뒤통수를 끌어안듯 움켜쥐고, 그의 입술이 내 정수리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 감각이 섬세하게 느껴졌다. 내 어깨며 팔뚝에 돋은 소름을 쉽게 닦아 낸 뒤 그는 내 등허리에 손을 붙였다. 그리고 부드럽게 토닥거렸다.
따듯한 물 위에 떠 있는 듯 기분이 좋았다. 밤새도록 그가 나를 안아 주었으면 바랐다. 자위 도구나 성인용 장난감 취급을 한대도 상관없었다. 행위 끝에 이렇게 안아만 주면 내 구차한 기분은 빠르게 회복되어 버리니까. 외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희한한 빛깔의 집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잠이 온다. 나쁜 꿈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풀썩, 내 몸이 시트 위로 떨어졌다.
“…….”
푹신한 매트리스의 반동에 위아래로 흔들거리면서, 나는 반쯤 감겼던 눈을 뜨고 재차의를 살폈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꿀꺽꿀꺽 목을 축였다.
침대 위에 모로 누운 채 나는 그를 쳐다만 봤다. 그는 말없이 터벅터벅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간 샤워기 물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재차의가 침대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십여 분간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예측도 하지 않으려 일부러 노력했다.
정사의 흔적을 씻어 내어 깨끗해진 몸으로 욕실에서 나와, 재차의는 벗어 던졌던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는 거예요?’
그런 비루한 질문은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통증으로 가슴이 꽉 조여 답답했다. 대신에, 나는 두 번째로 궁금한 질문을 억지로 꺼내어 건넸다.
“윤도곤, 은….”
“뭐?”
“왜 그분을 두고 제 방에, 왔는지….”
끝을 흐리며 어렵사리 꺼낸 말에 재차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예쁘다’ 하고 속으로 천 번 칭찬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윤도곤은 한동안 동생 방에서 묵는다던데. 내가 거길 쳐들어갈 이유는 없지. 나한테는 여기 네가 있잖아, 송모래.”
그리고 그는 가볍게 턱짓했다. 더러워진 침대 중앙에 그보다 더 더러워진 몸으로 자빠진 채 나는 천천히 그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소파 자리 벽기둥에 걸린 시계의 시침이 자정을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