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브리콜라주 (48)화 (48/76)

48.

대슈망 센터 전체가 아주 발칵 뒤집혔다. 은연중에 그러려니 짐작하기는 했지만, ‘윤도곤’은 대슈망 센터의 모든 사람들과 절친한 유명인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실종 및 사망 신고는 물론이며 시체 없는 장례식마저 이미 마쳤던 윤도곤이 살아 돌아왔음에 가이드들은 눈물을 흘렸고 파수꾼들도 축제 분위기였다.

일부러 찾아 듣지 않아도 그와 관련된 소식은 내 귓구멍을 파고들도록 요란했다. 기력이 쇠하고 어딘지 멍해 보이기는 하지만 큰 이상은 없어서 다행이라거나, 그가 머무르는 병실 밖이 병문안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정작 윤도곤은 덤덤하고 말수가 없다거나, 뭔가에 큰 충격을 받은 사람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다면 모두들 윤도곤의 귀환에 기뻐하면서도 딱히 오래 놀라워하진 않는단 거였다. 작은 초콜릿 한 상자를 들고 내 방을 찾아온 이상록이 건네준 말에 따르면, 윤도곤이 실종되었던 게이트를 스티치 없이 보존하게 한 이가 재차의였다고 했다.

“재차의 님께는 언제나 남들이 모르는 대단한 뜻이 있거든요.”

나는 그 말이 조금 메스꺼웠다. 주어를 ‘재차의’가 아니라 ‘신’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물론 재차의가 아주 대단한 파수꾼인 건 사실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피부 안에서 꿈틀거리는 통증을 참고 사는 사람,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게이트 속의 진풍경도 괄시해 버리는 사람, 욕망에 충실하여 손 한 번을 잡아도 내 손바닥에 제 중지를 비비적거리는 사람. 그런 재차의를 굳이 그렇게까지 추앙해야만 할까 의문스러웠다. 나로서는 마냥 달가워할 수도 그렇다고 투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못되게 속이 비틀려서인지도 모른다.

‘그래? 대단한 뜻이 있고 대단히 멋진 존재라서 이딴 식으로 사람 헷갈리게 하나 보지? 벌써 새 파트너를 구해 놓은 주제에, 전 파트너를 갑자기 찾아오다니….’

그렇다고 해서 윤도곤의 귀환을 마냥 싫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나와는 생면부지인 남이라곤 하나, 그의 생환을 고깝게 여기는 나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싫었다. 윤도곤이 아닌 내가 더 싫었다.

“네, 뭐….”

문틀에 기대어 팔짱을 낀 나를 힐끔거리다가 이상록은 ‘헤헤’ 하는 귀여운 웃음소리를 남기더니 왔던 것처럼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떨떠름하니 방문을 닫고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 실망했다. 이상록이 두 손으로 보기 좋게 들고 있던 초콜릿 상자를 두고 어쩌면 내게 건네줄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기에 그랬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힐끔 살피며 나는 한숨 쉬었다. 여자애들에게 초콜릿이며 사탕을 받던 건 서로 간에 출신을 따질 필요가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나 있던 일인데,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다.

‘더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어디에 낄 수 있을 거라고… 아직도 희망을 가져? 멍청한 송모래….’

잠깐의 붕 뜬 기대감이 지나간 자리엔 현실만이 남았다. 이렇게 혼란한 때에는 내게도 가이드가 필요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이제 내 직업은 뭐가 되는 건지, 나의 입지는 얼마나 좁아질 것인지… 내 손을 잡고 일일이 설명해 줄 가이드가.

방 안에 틀어박힌 채 시간을 보내길 반나절째에, 가이드가 하나 나를 찾아오긴 했다. 그러나 흥에 겨운 걸음으로 나를 찾아온 가이드는 아주 불친절하고 부루퉁한 녀석으로, 이름은 윤희수였다.

“저는요, 재차의 님께서요, 언제가 되든 꼭 우리 형을 찾아오실 줄 알았어요.”

“…….”

남의 방문을 여덟 번 노크해 마지못해 열게 해 놓고 윤희수가 대뜸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의 얼굴에 홍조로 불거진 아주 커다란 환희가 들어차 있기에 만류하기 어려워 그러했고, 그가 건넨 말이 나에게 뒤늦은 깨달음을 주어서 그랬다.

윤희수…, 윤도곤. 윤도곤, 윤희수….

‘둘이 친형제였어?’

대슈망에 온 뒤로 하루 건너 한 번꼴로 이런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나만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관계가 사방에 깔려 있어서, 신입인 나만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는 외부인 취급을 당했다는 생각에 착잡해야만 하는, 좆같은 기분을.

어쩐지 윤희수가, 나에게만 참 고깝게 군다 싶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같잖은 심술은 전부, 내가 제 형제의 자리를 꿰차 벌인 짓거리였다. 제 형은 게이트에서 실종되어 시체로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대뜸 등장한 나라는 놈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니 화가 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따위 사정이야 내가 봐줘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내가 윤도곤더러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것도, 칼을 쑤신 것도, 목을 조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 흑, 하하….”

혼자만의 감격에 벅차오른 윤희수는 눈물까지 보였다.

“재차의 님께서는요, 쓸모도 없고 전력도 끊긴 게이트 내부까지 가이드 모집 광고 전광판을 걸게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난 알고 있었어요, 우리 형더러 보라고, 아직 형을 대체할 사람은 찾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형을 찾고 있다고… 시그널을 보내신 그 의도를요.”

유감스럽게도 내겐 그의 일인극을 관람하고픈 마음이 좆도 없었다. 구구절절한 헛소리가 길어지기 전에, 말을 끊어야만 했다.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그러자 윤희수는 내 한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움켜쥐었다. 그리고 뜻밖의 부탁을 꺼내 놓았다.

“제발 부탁드리는데, 우리 형 괴롭히지 마요.”

이건 또 뭔 개소리지?

“…뭐라고요?”

“한 계절을 갇혀 지내다가 겨우 돌아온 사람이에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도 안 해요. 저기요, 우리 형은요,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이 재차의 님 파트너가 된 거….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 형한테는 충격적인 일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형을 더 괴롭게 하지 마세요.”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는 윤희수는 전보다 훨씬 더 어리고 약해 보였다. 눈시울을 빨갛게 붉히면서 금발 머리카락이 흔들리도록 고갯짓하며 토로하는데, 그의 존재 자체가 너무 컬러풀해서 눈이 시릴 정도였다. 눈에 보이는 외모도 그랬지만 발라당 까 보인 속은 더 드라마틱했다.

윤도곤은 좋겠네.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는 치를 나는 부러워했다. 참 좋은 동생을 뒀잖아. 형을 존나게 사랑하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우애다.

“죄송하지만요, 세상은 송모래 님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이제는 아시겠죠?”

제 두 손바닥 사이에 햄버거 패티 끼우듯 꼭 쥔 내 손을 압박하면서, 윤희수가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 좀 하세요. 그렇게 무시하지 말고.”

그런 그를 빤히 내려다보며 기계적으로 눈만 깜빡였다. 솔직히 말해 ‘우리 형’이라는 단어 이후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다만 그 이전의, 게이트 이야기를 리와인드하듯 돌이켜 곱씹었다.

‘쓸모도 없고 전력도 끊긴 게이트 내부까지 가이드 모집 광고 전광판을 걸게 하셨거든요.’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나는 빠르게 잡힌 손을 빼냈다. 그리고 윤희수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면전에 대고 방문을 닫았다.

방을 향해 뒤돌자마자, 소파로 가 앉고자 한 내 두 다리는 그대로 주르륵 미끄럽게 허물어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는 차가워진 머릿속을 느꼈다.

쓸모도 없고 전력도 끊긴 게이트 내부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아주 숱하게 많다. 개중 특이하게도 가이드 모집 광고 전광판이 걸린 곳 또한, 밤새도록 누빈 기억이 선명했다.

‘내가 청소한 곳이잖아.’

그러고 나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당시엔 몰랐다, 그 순간의, 지난날의 내 입지가 이토록 거지처럼 느껴질 줄은. 괴수 잔해를 벅벅 긁어모으면서 온몸으로 악취를 뒤집어쓰고는, 시궁창 쥐새끼 몰골로 전광판을 올려다봤었다. 반짝이는 전광판에 뜬 재차의의 얼굴을 감상하고, 그 빛을 유일한 태양이자 달 삼았었다.

이제 와 알고 보니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였다. 게이트 속에서 길을 잃은 실종자, 윤도곤더러 보라고, 나는 아직도 널 찾고 있다고 보낸, 시그널…. 결국 뼛속까지 남의 것이었다.

이제 미뤄 왔던 불안감을 감내할 차례였다. 가까스로 귀환한 모두의 친구 윤도곤, 또 그런 윤도곤을 좋아하여 한 계절이 지난 뒤에라도 기어코 찾아낸 재차의의 정성…. 나로서는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이 두 남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만약 내가 실종되어도… 그렇게 찾아 줄까?’

긴긴 낙담 끝에 그런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찾아 줘야지, 당연한 거 아냐?’

재차의는 그렇게 해 줄 것이다, 나를 찾으러 게이트에 들어와 재수색을 펼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그랬으니까. 제가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재차의는… 나를 찾아 줄 것이었다.

애먼 가정에 답을 얻고 나니 무릎에 힘이 돌아왔다. 이를 악물며 나는 억지로 기운을 차렸다. 방문에 등을 대고 천천히 일어서려는데,

똑똑.

또 다른 방문객이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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