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호출을 받은 남자 직원이 방으로 달려왔다. 건장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나는 천천히 침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순 무능력자가 된 기분으로 푹신한 매트리스에 등을 대고 누워 있자 의사가 이리저리 내 동공 반응이며 혈압을 확인했다.
“과잉 진압으로 쓰러진 가이드를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송모래 님 같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빈혈에 영양실조, 뇌진탕 증세까지 보여요. 족히 한 달은 푹 쉬셔야만 해요. 한동안 가이딩은 삼가세요.”
뻑뻑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내가 중얼거렸다.
“가이딩을 안 하면 어떻게 일합니까.”
그러자 의사가 제 팔뚝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재차의 님과는 사이가 아주 좋으시지 않습니까.”
그의 손에 들린 주사를 확인하고 나는 아무렇게나 뻗어 뒀던 팔을 거뒀다.
“주사는 됐습니다.”
“예? 아니, 그래도 링거를 더 맞으셔야….”
“아뇨, 싫습니다.”
무턱대고 그렇게 말하자 의사의 표정이 미심쩍게 변했다. 항생제와 백신을 부정하는 음모론자 보듯이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그는 한숨 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답답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약물이 가득 실린 카트와 함께 사라지는 그를 보는 척 마는 척하며, 나는 직원을 살폈다.
건장한 몸으로 뒷짐을 지고 선 채 상황을 지켜만 보던 그도 내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까딱였다. 무어 시킬 일이 있냐는 듯한 동작에 나는 가장 궁금한 질문을 했다.
“재차의 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러자 직원은 영 뚱딴지같은 말을 돌려줬다.
“송모래 님은 꼭 그런 가이드, 되실 거라면서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나는 눈만 끔벅였다. 내 반응에 그는 도리어 더 낙담한 사람처럼 한숨을 크게 쉬었다. 큰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도록 아주 큰 한숨이었다.
이내 그는 주위를 살펴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았다. 그대로 말없이, 텔레비전을 켜 주어 놓곤 내 방을 떠났다. 터벅터벅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인기척을 느끼며 나는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을 쳐다봤다. 거기에 재차의가 있었다. 구조된 생존자 세 사람과 함께, 카메라 세례를 받는 채였다.
화면 속에서 재차의가 무어라 입을 움직이는데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텔레비전 자체가 묵음 상태인 탓이었다. 이왕 화면을 켜 주고 갈 거면 음량도 높여 주거나 리모컨을 나한테 건네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불평을 했다가 흠칫 놀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팔자가 좋았었다고.’
저릿한 손을 들어 내 뺨을 툭툭 쳤다. 그리고 텔레비전 하단의 자막을 살폈다. 푸른 바탕에 하얗고 굵은 글씨가 스르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절망 속 한 줄기 빛… 재차의, 일가족 무사 구출